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 진평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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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상기억합금, 백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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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우 진기주
진평려
秦坪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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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세 여성
163cm/45kg
가수
(그다지 유명하지 않음)
나비로 태어나 갇혀 살면 되겠어?
려는, 살아있다. 살아있어서, 노래를 부른다.
제 성대의 울림으로 빚어지는 고운 소리. 그것이 려의 보물이다. 매 순간 자랑하고 싶은 것이다. 자랑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간다. 후미진 바의 초라한 무대일지라도.싸구려 조명이 내뿜는 열기에 한껏 불콰해진 얼굴로 곡이 끝날 때까지 최선을 다한다. 다만 자기 나름의 기준 또한 확고하여, 낮은 곳에 임할 때엔 (무대 아래에서) 한없이 천박하게 군다. 어제 맛본 입술의 맛을 오늘 잊는다.
그와 반대로, 자리가 본격적이고 성대해질수록 평소엔 찾아 볼 수 없던 예의와 고지식을 내세우며 나는 결코 싼 여자가 아니에요. 살랑살랑 가짜 꼬리를 흔든다. 그렇게 판이하게 군다곤 해도, 그녀의 본 모습을 의심하는 자는 거의 없다. (하루아침에 싸구려 바에서 고급 바로 옮겨가는 사람을... 최소한 려 자신은 본 적이 없으니까!)
...낮은 곳이든, 높은 곳이든. 가볍게 흘러 다니는 것 같아 보여도, 그녀의 철칙 하나는 반드시 지킨다. 바로 이름을 알려주지 않는 것. 그녀를 본 모든 이들은, 려를 려라고 부르지 못하고. 검은 나비. 그저 나비. 훌훌 날아가 버리는. 려에겐 이 도시에 아무런 연고도 없었으므로. 자신조차도 증명할 필요가 없으니까. 잠시 앉았다 날아가는 나비처럼...
그 여자는 자기 이름을 좀처럼 가르쳐주지 않는다네
그녀의 입술보다 그녀의 이름을 갖기가 더 어렵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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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와의 조우 - 나비에게 묻다
Q. 나비, 당신은 아주 자유로워 보여요, 그런데... 약지에 그 반지. 내가 생각하는 게 맞나요?
A. 아, (끼고 있는지도 몰랐다는 듯 새삼스레 제 약지의 반지를 쳐다보고 손가락에서 빙빙 돌린다.) 풍선이 너무 멀리까지 날아가지 않도록 잡아주는 추가 하나 쯤은 있어야죠? 맞을 거예요.
Q. 당신을 붙잡아주는 추... 그는 어떻게 처음 만났나요?
A. 그이는... (스읍-하고 옛날 이야기를 꺼낼 준비 하기) 어느 추운 새벽이었어요. 나는 여느 때와 다르지 않게. 무대를 했고. 술을 마셨고. 누군지도 모르는 이와... 뒹굴었죠. 하지만 그 사람은 뒷처리가 깔끔하진 못했어요. 과정이야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내가 겨울 비 내리는 골목에 인사불성으로 쓰러져 있었대요. 그런 나를... 그이가 '주운' 거죠. (하! 하고 짧게 웃는다. 영문 모를 웃음.)
Q. 주웠다...라... 그 다음의 이야기도 천천히 들을 수 있을까요?
A. 음. 그이는 기계를 만져요. 특히 음향기기. 싸구려 스피커를 고쳐서 어떻게든 소리가 나오게 만들고. 참 신기해요. 내가... 나를 별로 인간답게 여기지 않아서 그런가? 그이가 나를 비싼 기계 다루듯 조심스레 대할 때... 좋았어요. 물론 그는 의사가 아니지만. 일하고 돌아와 아직도 윤활유 냄새가 나는 그 몸으로도, 나부터 구석구석 살폈어요. 때론 약을 구해서 진짜로 고쳐주기도 했어요.
다른 남자들은, 내가 어떻게 되든 말든. 나와 다리를 섞었어요. 혀 끝을 세워 나를 세세하게 희롱하고. 물론. 나도 즐겼으니 같이 놀아난 것이었겠지만... 내가 피를 흘리고, 아파하고. 얼굴이 일그러져도. 그들은 나에게 자기를... 쑤셔 넣었죠. 오직 그것만이 목적이었다는 듯이. 그 뒤엔 모두가 천편일률이었어요. 가볍게 버리죠. 처음에야 그 하나하나가 다 상처였지만? 나 또한 가볍게 버리면 된다. 고 생각하니 별 느낌도 안 들더라고요...
그런데. 그런데 그이는... 게걸스럽지 않았어요. 나를 먹지 않는 남자가 없었는데. 오히려 내가 먼저... 나를 먹어줘. 끝없이 탐해줘. 하고 애원하듯 내 여린 살을 집어넣고, 귓가에 속삭여도... 하지 않았어요. 물론. 그 또한 여느 남자이니까. 굉장히 참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어요. 그 점이 정말로... 귀여웠어요. 너무 귀여우니까. 나의 이름을 말해 줬어요. 그이는 놀랐죠. 오며가며 마주치던 그 요부가. 진짜 이름을 알려주다니... 나는 이름을 가르쳐주며, 그래. 이 사람이라면 조금은 붙잡혀 있어도 괜찮겠다. 생각했어요.
Q. 나비의 이름이라...(입맛 잠깐 다신다.) 정말 부럽네요. 내가 나비를 본 게 몇 년인데...! 아직도 이름 하나를 모르잖아요? 네... 아무튼. 그 뒤로 그 사람과는 어떻게 지내고 있나요?
A. 이런 것부터 말하면 낯뜨거울까요? 돌부처마냥 참던 그 또한, 아까도 말했듯 평범하기 짝이 없는 남자이니까. 벗은 나를 감상하고, 하나 하나 훑고. 살살 달래주면서... 그가 커다란 기계를 열심히 고칠 때보다 더 땀을 많이 흘리더라고요? 그게 결코... 격한 움직임으로 인해 나오는 땀은 아니었어요. 음. 왜인지 그럴 것 같았지만. 경험은 별로 없는 남자였어요. 동작과 동작 사이가 삐거덕거리고. 이거 해도 되냐, 저거 해도 되냐. 그렇게까지 많이 물어보는 사람도 또 처음 봤어요. 다들 나를 벗긴 순간부터 휘몰아치기에 바빴는데... 전혀 아프지 않았고. 부드럽고... 재미가 하나도 없었어요. 그럼에도 정사가 끝난 뒤, 그에게 그저... 좋았어요. 말곤 할 수가 없더라고요. 좋았어요. 이 말 하나는 거짓이 아니에요.
...그 뒤론 한 번도 하지 못했어요. (하하! 초탈한 웃음이다.) 분위기야 내가 수도 없이 만들었지만... 내가 그이 눈 앞에 친히 다리를 벌려놔 줘도. 그는... 꼼꼼히 진찰하듯 살피기만 하고. 늘 끝에는 '당신 아직 다 낫지 않았어요.' 하며 가만히 나를 이불로 감싸주기 일쑤였죠. 어느 날은 정말 답답했어요. 그이가... 혹시 더 이상 남자의 구실을 못 하는데 내 핑계를 대는 건 아닐까? 하고. 집요하게... 괴롭혀도 봤어요. 문제는 없었는데... 그이가 필요 이상으로 부끄러워 하는 걸 넘어서 수치스러워했어요. 그날도 끝내 넣어서 나를 휘젓지는 않았고... 이후엔 내가 조금이라도 노골적으로 굴면 단호하게 막았어요. 그나마 허락해 주는 건 입맞춤 정도? 그것도 나와의... 키스를 한껏 느끼는 게 아니라, 내 구강을 촉진하는 기분이 들었어요. 입술을 떼면, 어김없이 나에게 영양제를 주고, 입 안에 바르는 약을 발라 주고. 그게 다예요. 그도 분명 자기나 나를 닮은... 예쁜... 아이를 가지고 싶었을 수도 있었을 텐데. 너무너무 조심스럽기만 해서. 혹시 이 사람이 나를 애닳게 해서 죽이려고 드나. 그런 생각까지도 들었어요. 하지만 매순간 나를 대하는 그의 눈빛과 표정과 손길은... 가짜가 아니었어요...
Q. 아이구. 네... 그랬군요...(약간 측은해지기까지 한다.) 그래서... 들리는 소문으로는...?
A. 그쵸. 너무 올곧은 사람을 내가 못 견디겠더라고요. 점점 더 뒤틀리는 건 나 뿐이고. 그가 없는 곳으로 나도는 시간이 많아졌어요. 나를 거세게 탐미해줄 사람이 필요했어요. 그동안 나도 나이를 먹어서, 확고한 기준 또한 세울 수 있게 되었으니까. 영 쭉정이 같은 놈들은 아예 살을 맞대지도 않았어요. 그러다가... **를 만났죠. 네 뭐... 그 뒤로는 쉽게 생각할 수 있는대로... **는 내 약지를 보고도 아랑곳 하지 않았어요. 나도 그의 약지를 애써 모른척 했고... 그렇게 **과 서로를 탐하기로 했어요.
Q. 그...이에게 안 들키던가요?
A. 당연히. 티가 나겠죠. 그래서 일부러 더... 그이가 보는 앞에서 나 홀로 내 가슴을 만지고, 스스로를 쑤시고... 이래도? 이래도? 네가 나를 만족시키지 않는다면... 나는 떠나갈 거야. 하는 무언의 시위를 계속한 거죠... 그이도 알 거예요. 내가 점점 더 집에 늦게 들어오고. 들어오면 나에게 낯선 향기가 나고. 나의 눈이 미묘하게 풀려 있는데... 그것까지도 눈 감아주는 것 같더라고요. 점점 더 객기가 생기는 거 있죠. 그래서... **에게도 내 이름을 흘려주기로 했어요... 과연 네가 이것도 참을까?
Q. (하...아... 한숨을 쉰다.) 그랬더니요?
A. 그이가 나를 앞에 불러 앉히고... 말했어요. **가 나의 이름을 부르며 나와 입을 맞추는 걸 봤대요. 뭐... 그래서. 이제 어쩔 셈이지? 나의 뺨을 때리기라도 해. 욕이라도 해. 이런 년인지 모르고 만났어? 내가 휘몰아치자 그 이는...어느 때보다 흔들리는 모습을 하고, 아무 말 없이 그 큰 손으로 자기 얼굴을 감싸며... 우는 소리를 냈어요. 내가 그 한 손을 치워봤는데... 눈물은 흘리지 않더라고요? 아. 이제 뭐가 되든... 되겠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Q. 한 마디만 해도 되나요... 나비 정말... 나쁜 사람이네요. 그렇게 당신에게 헌신하던 그는... 뭐였나요?
A. 부정하진 않을게요. 하지만 그는 이미 내가 쥐고 있고. 나는 수집가 기질이 다분해요. 내 수족관이 이렇게나 큰데! 예쁜 물고기들로 채우고 싶은 건 당연한 거 아니겠어요? 그이가... 그렇게... 바보 등신같아서. 사랑해요. **와는 또 다른 형태로. 뭐. 그이도 나쁘진 않을 거예요. 더이상 내가 자기에게 노골적으로 굴지 않으니까. **와 한바탕 뒹굴고 돌아오면, 나는 그의 곁에서 순하게 잠만 자니까... 그이는 잠든 내가 못 견디게 예쁘다고 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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