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무벨져] "편하긴 했지"

조각

커피 향이 은은하게 배어나는 공간이어야 할 터. 그러나 문을 연 순간 날카롭게 찌르듯 후각을 자극해 온 것은 높이 치솟아 짧고 강하게 흩어지는 베르가못이었다. 귀하냐 하면 그렇기도 하고, 불편하냐 하면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조금은 거북하다 할 만한 객의 방문이었다.

근래 자주 오는군. 그리 생각하며 시선으로 방 안을 훑자 마치 주인이라도 된 양 책상에 앉아 우아한 손짓으로 잔을 들고 한 모금, 한 모금 차를 넘기고 있는 벨져가 있었다. 방의 진정한 주인이 돌아와도 인사 한 마디는커녕 제 할 일만 중요한 듯 하고 있는 괘씸한 동생. 웬만해서는 먼저 발길을 하려 들지 않는 만큼 이번에도 피로가 꽤 심할 것이다 생각한 그는 덤덤히 걸어가 소파에 앉았다.

"이리로 와라, 벨져."

벨져는, 그의 동생은 미동도 없다. 물론 이마저 익숙했다.

"피곤하다는 녀석이 홍차는 왜 마시고 있는 거냐. 재워줄 테니 어서 옆에 와 앉아라."

가느다란 눈이 흘긋 기울여진 것을 뛰어난 동체시력으로 발견했으나 벨져는 없었던 일인 척 눈을 감아 버렸다. 한숨과 같이 깊게 숨을 내쉬었다. 싫은 건 싫다, 좋은 건 없다 하는 성격이니 이것은 어리광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피곤해서 찾아왔으면 그 성격을 조금이라도 죽일만 하지 않은가. 긴 신경전 끝에 결국 움직이는 것은 자신이 될 게 분명해 그는 시간이라도 줄이고자 다시금 몸을 일으켜 벨져에게 다가섰다. 몸을 가리고 어깨, 머리까지 그림자가 드리우자 드디어 벨져가 눈을 뜨고 고개를 올려 시선을 맞췄다.

아주 짧은 찰나. 제 것과 다르며 비슷하다고조차 할 수 없는 색감의 눈동자는 마주할 때면 언제고 묘한 감상을 불러 일으킨다. 처음 눈을 뜨는 것을 발견한 이로서, 긴 일생을 함께 할 동반자로서 어떤 형태로든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 같은 것 말이다. 물론 이러한 보호는 거부당한 지 오래지만 까칠하기 그지없는 동생이라도 이것 하나만은 스스로 원하니. 그는 동생의 몸을 돌려 저를 마주보게 하고 늘 해 주었듯 우직하게 끌어안았다.

뒷머리를 받쳐 품으로 당기자 저항감 없이 따라온 고개가 톡 기대어졌다. 이마가 먼저 닿더니 조금 뒤 슬쩍 고개를 틀어 뺨이 닿도록 옆면을 댄 벨져가 슬그머니 몸에서 힘을 빼내는 것이 느껴졌다. 이윽고 느리면서도 작게 내쉬는 숨결이 종종 뜨겁게 품을 덥혀 오는 것은 평온하고, 더없이 안정감 드는 일생의 한 조각이라. 아주 짧은 시간 들었던 거북함은 사라지고 그 역시 깊은 숨을 내쉬며 함께 녹아들었다.

"…조금, 눕겠느냐."

아무래도 앉아서 기대기만 하는 것보다 누운 게 편할 것이다. 그러나 벨져가 희미하게 고개를 저었고, 그는 묵묵히 동생을 조금 더 강하게 당겨 안았다. 다른 이라면 갑갑함마저 호소할 정도의 힘이지만 그의 동생은 오히려 마음에 드는 듯 편안한 숨을 길게 늘여놓는다. 그는 동생이 이럴 때마다 당사자에게 말하면 성을 낼 만한 생각을 자연스럽게 했다. 사방이 막힌 좁디 좁은 공간에 몸을 욱여 넣고 세상에서 가장 안락한 곳인 양 갸릉거리는 고양이. 그는 혹여 생각을 들킬까 환기하며 책상으로 시선을 내렸다.

찻잔에는 차가 반을 넘어 밑면이 흐릿하나마 보일 만큼 줄어들어 있었다. 상당히 오래 기다렸구나 하는 감상과 함께 어느 정적인 풍경을 기억에서 건져올렸다. 옛 즐거움을 차마 완전히 떨치지 못하고 남겨둔 피아노 앞에 서서 미련스럽게 하나의 건반을 누르고 있으면 어느새 방에 퍼져 오른 홍차 향과, 슬쩍 돌아보는 눈에 어김없이 소파에 앉아 느긋한 자태로 책을 읽는 동생이 비쳤던 어린날의 언젠가. 시를 쓰기 위해 펜을 들면 마치 어제 일처럼 그려지는 그리움의 잔향이었다. 심신이 지칠 때마다 훌쩍 찾아오는 것은 같은 향취를 공유하기 때문이리라.

시작부터 그러했듯 여전히 그보다 작은 체구를 품에 안으면 돌아오지 못할 순간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듯했던 베르가못 향이 흐려질 즈음 그는 보다 힘주어 동생을 품에 가뒀다. 가겠다고 하면 놔줘야 할 테니 소용 없는 행동이겠지만 그의 바람은 전해질 것이다. ‘지금’은 언젠가 끝날 테니, 이유 없이도 찾아오는 동생이 되도록 가까운 미래에 존재하기를.

짧은 시간이 지나고, 동생이 벗어날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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