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키벨져]옛날에 쓰다 만 그뭔ㅆ

나는 화를 내는 방법을 몰랐다. 화를 낸다는 것은 기대가 있었다는 말이고, 나는 기대라는 것을 할 만큼 타인을 인정하는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나는 욕심이라는 단어를 몰랐다. 내 앞으로 세워지는 계획들은 당연히 이뤄내야 하는 것이고, 주어지는 것들은 마땅히 가져야 하는 것들이었으니까.

그래서 처음 느끼는 것들의 대상이 하필 사람이었을 때,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필요에 따라 면식이 있는 대학 교수를 찾아갔을 때 그는 강의중이라고 했다. 그가 지금 가 있는 강의실과 그의 방까지는 거리가 꽤 있었고, 짧은 대화로 충분할 것이기에 근처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마침 근처에 대강당이 있어 그 끄트머리에서 잠시 앉아 기다리면 되겠다고 생각했는데 그 안에선 연주가 벌어지고 있었다. 바로 나가려고 하다, 잠든 이가 있다면 바닥에 굴러떨어지는 경험을 주겠다는 것처럼 찢어내는 소리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날카롭지만 유하게 휘어지는 선율. 뜯기듯한 비명이 그 선율 사이사이에 섞여 기괴함을 자아내고, 그럼에도 음율 자체는 부드러워 불쾌한 위화감을 청자에게 떠안긴다. 절정 부분으로 향하며 점차 화려해진 연주는 이제 비명마저 처음부터 하나였던 듯 섞여들게 해 모골을 송연하게 만들었다….

뛰어난 연주자는 아니지만 그건 점차 다듬어지고 향상될 것이다. 눈과 귀를 사로잡은 건 그의 표현력이었다. 조용하며 잔잔하여 신비로움을 주는 신성한 찬가를 연주하는 것만 같은 얼굴로 현란하면서도 괴악한 악보를 펼쳐낸다. 고지식한 클래식, 짧고 단조로우며 깊은 시구 등 지금껏 확신했던 선호의 경험들이 연주와 함께 조각났다.

백색 모래사장이 넓게 깔린 해변 위로 밀려들어 모래를 깊은 곳으로 쓸어 가져가는 풍랑 치는 파도 색깔의 머리카락. 연주를 마치고 눈을 뜨는 자가 이쪽을 볼 리가 만무한데 시선이 왠지 나를 향한 것 같았다. 곧 그가 무대에서 내려가고 다음 연주자가 앞으로 나섰지만, 깔끔은 하나 재미가 없는 음색을 들으니 조금 전의 바이올린이 떠오를 뿐이라 귀를 더럽히기 싫은 마음으로 강당을 나왔다. 마음을 떠도는 노랫소리를 머리로 반복하며 복도를 돌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지나고 교수가 나와 나를 불렀다.

논문은 곧 올라갈 걸세.

지연 가능성은?

가능성만 따지자면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차질 없게 해야지. 곧 있으면 축제라 어차피 마음이 떠나기 전에 해야 하네.

축제인가.

관심이 있나? 시간이 된다면 자네도 와 보게. 우리 대학은 음대가 같이 있어서 공연이 볼만하거든.

음악 대학과 공연. 그 말에 떠오르는 건 그 연주자였다. 한 달 하고도 보름. 하지만 그 전에 스페인을 다녀와야 한다.반사적으로 일정을 계산해 본다. 빠듯해. 하지만 잘 하면 당일에는 도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고려해 보지.

교수가 희멀건하게 웃었다. 자네도 나잇대로 보일 때가 있군.

교수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내가 어떤 표정으로 교수와 대화를 나눴는지도 나는 영영 모를 것이다. 일을 이르게 마쳐 축제날보다 하루 일찍 귀국했을 때 사고가 발생해 축제가 취소되었다는 것을 들었을 때도, 그 사고의 주인공이 그 연주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도. 대략적인 인적사항을 들춰보며 후원을 해 볼까 계획하던 것이 그가 연주하던 곡의 피날레와 함께 산산이 부스러진 순간의 나는, 무엇을 해야 했을까. 몇 년이 지나 어느 회사의 전문경영인을 만나고 돌아가는 길에서 본 적 있는 바다의 색을 발견하고 반사적으로 차를 멈춰 내린 나는? 과거에 홀린 것처럼 그 뒤를 따라가 도달한 곳이 전세계적으로 알음알음 퍼져 있고 내가 반대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는 사이비 종교 집단의 주거지였을 때는.

음악 세계에서 보지 못하게 되었으니 그 인생과 더는 얽히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한 때의 일로 묻어 두었다. 현을 뜯지 않는 이상 관심 안으로 돌아올 일은 없을 줄 알았다.

드물게도 후회가 잔잔하게 밀려와 마음을 푸르게 물들였다. 파랑과 함께 쓸려나간 자리는 검은색일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고서야 다시 본 얼굴이 작디 작은 무대 위에서 연습곡을 연주할 때보다 깨끗해 보일 리가 없으니까.

길을 잃었는가.

그 얼굴을 바라보고 있으니 그가 점차 가까워졌다. 항상 음지에서 움직였기에 내 외형을 알 리 없는데도 입술이 말랐다. 아니…, 이건 다른 긴장이다. 단 한 번의 마주침을 이 자가 기억할지에 대한 어떠한 감정이다. 그는 무대 위에 있었고, 나는 빛이 꺼진 곳에 서 있었으니 보았을 리가 없을 텐데도 나도 모르게 가지는 기대.

방황하는 눈이로다. 어쩔 수 없지. 쉬었다 가는 것을 허락하노라. 들어오거라, 우리의 성지에.


대체 뭘 쓰고 싶었던 걸까 싶은데 

문제는 내 취향이긴 한... 그게뭔데씹덕아의 무언가.

ㅁ님하고 덕톡(?) 하다가 발굴했는데 더 이을 것 같지는 않아서 그냥 올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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