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져릭] 무제

커피콩곳간 by 컾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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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볍게 재활연성 시작합니다…:ㅇ


"사랑해, 벨져. 진심이오."

달빛이 아름답게 내리는 어느 날 밤, 릭은 내게 이런 말을 남기고서 작별 인사를 마지막으로 내 곁을 떠나갔다. 릭의 입에서 나온 이 고백이 뜻밖이 아닌, 언젠간 나올 예상된 일이었지만, 나는 준비된 말을 쉽게 꺼낼 수가 없었다. 릭이 날 바라보는 눈빛이 점점 달라지는 것을 느끼고 확신해진 순간부터 나 또한 미래를 조금 생각해 보았다. 릭과 연인이 된다면, 어떨까? 나는 이 생각을 오래 끌고 가지 않았다. 나에게 있어 릭은 피가 섞인 가족 말고도 유일하게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의 고백에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임무가 끝난 이후에는 어김없이 승낙하였겠지만, 역시나 릭은 아직 내 임무가 끝나지 않은 이때 고백을 해왔다. 그 덕분에 나는 준비해 둔 거절의 말을 꺼내야 했다. 하지만, 난 도저히 입을 열 수 없었다.

거절의 의미를 담긴 말을 꺼내려던 순간에 나는 릭과 동행했던 지난 일들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고, 그동안 릭이 내게 보여준 여러 모습 또한 함께 지나갔다. 어색했던 첫 만남에서부터 함께 티타임을 즐겼던 소소한 일상과 또 불과 몇 시간 전, 볼주머니를 가득 채운 다람쥐처럼 먹을 만한 햄버거를 우걱우걱 먹고 있던 모습까지-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아직 임무가 끝나지 않았지만, 이 고백에 허락하고 싶다고… 그와의 관계가 인연으로서 끝나는 관계가 아닌, 연인으로서 있고 싶다고- 하지만, 내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릭은 내게 사과하기 시작했다. 자기 생각이 짧았다며, 역시 우리 사이는 협력관계가 낫겠지라며 어색하게 웃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자리를 떠나갔다.

그 이후로 몇 번 전투 중에 또는 길을 걸어가다 우연치고는 너무나도 부자연스럽게 릭을 마주친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마다 릭은 어색하게 인사를 한 후, 도망을 쳤었다. 나는 이런 한심한 상황이 무척 싫었다. 그래, 인연을 끝내려면 확실하게 하는 것이 낫다. 그렇게 나는 릭이 다시 내 곁을 맴돌기만을 기다렸고, 마침 오늘도 내 주변을 어색하게 맴돌던 릭을 찾아 불렀다. 내 목소리에 그는 거짓말이 들통난 어린아이처럼 어색함을 감추지 못한 채, 또다시 인사를 간단하게 남긴 후 앞을 향해 빠르게 걸어갔다. 한심하긴. 나는 결국 어색하게 도망치고 있는 릭 앞으로 달려가, 그의 손목을 붙잡았다. 분명, 손을 쓰지 못하면 능력을 쓰지 못하였지…

“하하… 내게 하고 싶은 말이라고 있는 것이오?”

“그래, 아주 많지.”

“난- 딱히 오랜만에 만남의 반가움의 인사말밖에 없는데…”

“선택하라. 아무도 없는 조용한 곳이 낫겠는가, 아니면 사람이 적당히 있는 곳?”

내 질문에 릭은 잠시 눈을 감고 생각하더니, 눈을 살며시 뜨면서 사람이 적당히 있는 곳이 좋을 것 같다며 말하였다. 나는 예상대로 릭이 선택한 장소가 적합하다고 생각한 장소가 적힌 작은 쪽지를 건네주었다. 쪽지를 건네받은 릭은 이내 이곳이 어딘지 모르겠으나, 좌표를 읽어내고선, 단숨에 게이트를 열었다. 그래, 릭은 너무나도 완벽한 사람이었다. 길게 말할 필요도 없이, 알아서 척척 해내는 것이 특히나 마음에 들었다.

“어라? 여긴…”

게이트 너머로 도착한 장소는 릭도 아마 익숙한 곳이겠지… 이곳은 적당히 사람이 있는 홀든 소유의 작은 별장이었다. 또한, 루사노에서 릭이 어깨의 부상으로 인해 잠시 머물렀던 곳이자, 현재는 내가 머무는 곳이기도 했다. 입이 무거운 저택 안의 고용인 몇 명을 데리고 왔기에 인사를 해주는 이들에게 나는 가볍게 인사를 한 후, 아직 놓지 않은 릭을 이끌고 방으로 들어갔다. 커다란 문이 닫히자마자 나는 릭의 손을 자유롭게 풀어주었다. 이제 곧 게이트를 열어 또 내 곁을 떠나겠지? 그렇다면, 나는 생각해 둔 작별 인사를 꺼내려고 하였지만, 어째서지? 릭은 오히려 내게 할 말이라도 있는 듯이 머뭇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의 입이 떨어지기를 기다렸다. 창문을 열어 달빛과 함께 시원한 밤바람이 불어와,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릭은 나와 달리 몹시 불편해 보였다. 아님. 내 생각이 틀렸나. 내게 할 말이 있는 것이 아닌, 내 말을 기다리는 걸까? 릭은 열린 창문 너머 달빛을 향해있던 녹색의 눈빛을 가끔 힐끔거리며 내 주변. 아니 나를 쳐다보았다. 그 모습에 흥미가 생긴 나는 하려던 말은 늦게 꺼내도 되겠지 싶어, 지금은 릭의 행동을 천천히 감상하였다. 릭은 이내 길게 한숨을 내쉬더니. 무언가 말하려는 듯이 입을 우물우물하다 그만두는 모습을 여러 반복 하더니, 끝내 입을 열었다.

“미안- 미안하오.”

“사과부터 하다니, 너무나도 너답군.”

“사실 그대가 내 마음을 받아주지 않았던 그날부터 쭉 난 그대를 잊으려고 했소. 하지만, 역시 그게 잘 안되더라고… 그래서 계속 그대 곁에 맴돌았던 것뿐이야…”

“역시, 넌 거절당했다고 생각했군.”

“아니었소?”

“허락도 거절도 하지 않았지.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도망친 건 너다. 릭 톰슨.”

내 말에 릭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사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듣고 싶지 않았던 핑계를 줄줄이 말하기 시작했다. 인연을 끊고 싶었는데, 눈을 감아도 밥을 먹어도 일을 하거나 운동을 할때도 내 모습이 떠나지 않아서, 역시 내 얼굴은 잊기 어렵다는 둥, 헛소리가 제법 재미있었지만, 이렇게 의미없이 반복되는 상황은 몹시 싫었지만, 나는 여전히 릭이 밉지 않았고, 역시나 같은 마음이란걸 다시금 깨달았다. 하지만, 나는 이번에도 말은 하지 않았다. 그저 그의 앞으로 다가가 가볍게 입을 맞추어주었을 뿐이었다. 그랬을 뿐인데, 릭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눈물을 한두 방울 흘리더니 고개를 휙 돌린채 흐르는 눈물을 훔치기에 바빴다. 그래, 더 이상 무엇인가 말하지 않아도 되겠지?

다음 날 아침, 릭은 퉁퉁 부은 얼굴로 아직 뜨지도 못한 눈으로 날 바라보며 아침 인사를 해주었다. 지금 시간이 점심을 지나 오후로 흘러가는 시간이었지만, 나는 릭의 인사를 받아주었다.

“좋은 아침이군. 릭 톰슨.”

힘겹게 침대에서 일어난 릭은 온몸이 통증으로 아프다며 툴툴거리다가도 바닥에 떨어진 옷가지를 보며, 지난 밤 일이 생각나기라도 했는 지, 부끄러워하다가도 훨신 전부터 들려오던 뱃소리가 드디어 제 귀에도 들렸는지, 배고프다며 아침은 간단하게 먹고 싶단 말을 꺼내었지만, 이렇게 어디로 튈지 모르는 모습이 평소의 릭과 다름이 없었기에 나는 만족스러웠다. 애초에 연인사이가 되었다고 사람이 달라졌으면, 곁에 두지도 않았을 테지만…

“릭, 사랑한다.”

갑작스런 말이었나? 릭은 금새 얼굴이 빨개지더니, 내 얼굴이 어쨌다는 둥, 그런 얼굴로 바라보지 말라는 둥, 아침부터 공격하지 말라는 둥, 이상한 소리를 연달아 하기 시작했다. 그래, 이런 부분이 달라졌군. 제법 숨김 없이 솔직해졌어… 달라진 부분이 있었지만, 그래 나쁘지 않았다.


지인들에게 단어 부탁받아 연성했습니다!

사랑해/볼주머니/달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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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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