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定義)
: 어떤 말이나 사물의 뜻을 명백히 밝혀 규정함. 또는 그 뜻.
"저어···, 큰일 났습니다."
"··· 뭐? 이런 쓸모없는 새끼들!"
의사 양반인지 종교 단체 놈들의 비위를 맞추겠답시고 자리를 비운 그 잠깐 사이에 일이 터졌다. 청소를 해주던 얼빠진 놈의 대걸레 자루를 강탈해 주변을 감시하던 놈들을 따돌리고, 때려눕히기까지 했다는 말에 그깟 능력도 없는 여자 하나를 못 잡는 새끼들이 한심해서 화가 치밀어 올랐다. 다만 그녀에 대한 분노는 아니었다고 장담한다.
보고랍시고 아니꼽게 이야기하는 녀석은 둘째 치고, 달려간 복도에는 아직도 정신을 덜 차린 새끼들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참을 수 없는 기분에 굴러다니는 몇 놈들을 세차게 걷어차며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이런 잡일이 전부인 새끼들이 잡일마저도 못하면 구제불능이라며 욕을 퍼붓고 뒷수습과 방의 재정비를 명령하고 밖으로 나왔다.
그녀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뻔하다, 어디로 갔는지도.
지금 거점에는 높은 절벽이 하나 있다. 아래로는 떨어지면 아득히 먼바다로 갈 수 있는 그런 바다였지만 그녀는 탈출을 하든, 뛰어내려 죽든, 하나의 방법을 택할 것이 뻔하니 그 절벽이 답이다. 그리고 그녀에 대한 경멸과 다르게 나의 예상은 빗나간 적이 없었다. 예상대로 그녀가 절벽 끝에서 떨리는 손으로 나를 바라봤다.
"··· 다가오지 마."
그녀의 뒤로는 더 이상 땅이 없다. 심적으로도 그녀는 벼랑 끝이었기에 말 한마디라도 잘못하면 나의 첫사랑은 바다에 처박혀 영영 내 곁으로 돌아오지 않게 된다. 때문에 자극하지 않기 위해서 꽤 떨어진 곳에서 그녀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마르티나, 팔티잔의 모두가 너를 찾는데 주력하고 있다더라. "
"···."
"그중에서도 그레타가 너를 애타게 찾고 있다던데."
"··· ···."
그녀가 동요하기 시작했다. 이제껏 자신을 돕지 않았음에도 이제는 자신을 찾아줄 거라고 확신하고 있는 멍청한 동생의 소식일 뿐인데도 조금 안정된 모습으로 내 목소리를 듣는다. 불쾌하기 짝이 없지만 죽음을 저지할 대화 수단이라는 것은 확실하다.
"돌아가고 싶다는 거 알아, 곧 돌려보내 줄게. 정말로."
"···뭐?"
황당한 소리를 한다는 얼굴이었다. 그녀가 멍청하진 않았기 때문에 자신의 처지가 어떤 처지인지도 알고 있으리라, 그러니 더욱 저런 반응 보이는 거겠지. 하지만 진심이었다. 그리고 그 진심에는 나의 뒤틀린 사랑이 담겨있었다.
나의 첫사랑을 죽여서 흔히 말하는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말을 실현하고 싶지 않기도, 나의 인생의 낙으로 자리 잡은 인물을 잃어서 좋을 것이 없다는 것도 모두 고려한 진심이었다.
물론, 내 마음 하나로 결정된 사항은 아니었다. 그레타의 합류, 연합의 원조로 팔티잔이 빠르게 세력을 수복하고 있었기 때문에 연합의 원조를 서둘러 돌려보낼 방법으로 제시한 것이 납치한 마르티나를 팔티잔으로 돌려주는 것이었다. 원조가 없다면 무너진 마르티나와 그레타는 언제든 내가 다시 주무를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기에.
"마르티나, 믿어줘. 정말이야."
의심 많은 표정으로 살살 발을 뒤로 옮겨 물러나려는 모습에 한 치의 고민도 없이 털썩ㅡ, 그녀의 앞에서 무릎을 꿇고 앉아 애원하고 빌었다.
"마르티나! 곧 돌아갈 수 있어, 내가 돌아가게 해 줄게. 응?"
돌아오는 대답이 없다.
"네가 그 선택을 하겠다면, 정말로 그러겠다면···. 나와 함께 떨어지자."
그녀는 불쌍하고 여린 것처럼 빌빌 거리는 내 행위에 인상을 구기다가도 그녀는 결국 절벽의 끝에 자신이 아닌, 막대기를 던져버리고는 힘없이 휘청거리며 나의 앞을 스쳐 지나갔다. 그녀는 그녀답게 팔티잔에 대한 책임과 그레타에 대한 애정으로 붙잡힌 것이지만 어쩌면···, 어쩌면 나에 대해서 애증을 가지고 있기에 그런 선택을 해준 것이 아닐까?
오랜만에 절벽 끝에 매달려 맹렬하게 타오르며 그녀의 등을 지지해주던 해는 이제 온대 간데없고 검은 막이 내려 희미한 달빛만이 비치는 때, 그녀는 다시 어두운 방에 갇혀 한껏 제 다리를 끌어안아 웅크리더니 고개도 들지 않고 숨 쉬는 소리마저 죽여가며 조용히 지냈다. 나 또한 그녀를 감시한다는 이유로 방에서 함께 지냈다.
여기에서 지내며 식음을 전폐하던 수준이었던 그녀를 어르고 달래 가며 억지로 물과 음식을 먹이고, 창문 하나 없고 조명하나 없는 방이 갑갑할까 밤이 되면 손을 잡고 달빛에 의지해 산책을 했다. 밤 산책 정도면 주변이 충분히 보이지도 않을뿐더러 그녀에게 철저하게 계산된 기분전환 정도만 될 테니.
이렇게 나는 너에게 영원히 갈구하고, 갈취하며, 침해하고, 유린하며 이루는 사랑을 할 거야, 마르티나.
네게서 나는 바스티안이라는 이름도 모자라 소브차크라는 이름조차도 사라졌을 테지만 그마저도 내게는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이지. 또다시 네게 이름을 알려주고, 나의 이름을 불러달라고 애원할 수 있을 테니까.
그래, 이런 사랑은 네가 상상했던 사랑이 분명 아니겠지.
너는 너의 동생의 평범하고 행복한 사랑을 상상했어도, 네가 행복한 사랑을 한다는 생각조차도 하지 않을 테니까.
애초에 너는 사랑을 뭐라고 정의하고 있을까?
말해줘, 마르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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