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인밀레] 어떤 일상
우당탕탕 대공저의 식사시간 이야기
"이 저택을 나갈까해."
가볍게 던져진 말이었지만, 그 말이 가져온 결과는 전혀 가볍지 않았다. 막 스테이크를 썰어 삼키고 있던 노아는 입 안에 있던 음식을 씹지도 않고 꿀꺽 삼키고 말았고, 컵에 물을 따르던 일레이시아는 그만 물병을 놓치고 말았으며, 막 양손으로 식기를 집어들었던 유미너리는 왼손에 들었던 포크를 식탁 밑으로 떨어뜨리고 말았다. 그런 그들의 반응에 아랑곳 하지 않고, 이 상황을 초래한 장본인은 대체로 그렇듯 여유롭게 웃고 있었다.
"그게 갑자기 무슨 헛소리야?"
저택의 주인답게, 사용인들과 달리 실수 하나 하지 않고 침착하게 식기를 식탁 위에 내려놓은 사쿠야가 제 배우자에게 물었다.
"내가 이 저택에 있는 의미가 없는 듯 하여."
이채를 띈 검은색 눈동자가 반짝거렸다. 머리카락에 가려진 반대편의 붉은 눈동자도 분명 즐겁다는 듯이 웃고 있을 것이다. 또 무슨 심통이 난 건지, 사쿠야는 머리가 아파와서 오른손으로 제 이마를 짚었다.
"대체 뭐가 또 마음에 안 들어서 그러는데?"
"그대는 나를 너무 어린아이인양 보는 경향이 있어. 나름대로 고심해서 내린 일인데 너무하는군."
"아니 가출하겠다는 말을 꼭 다같이 밥 먹고 있을 때 해야하냐고."
"다들 모여있을 때 말하는 게 합리적이지 않나? 그렇지, 라인하르트?"
"이럴 때만 합리적으로 구시죠, 우리 비전하."
저를 호명하는 말에 적당히 대답한 노아가 물을 마시며 진정했다. 어후, 평소에는 저것들이라며 사용인들을 싸잡아 부르곤 하는 베인은 이럴 때만 다정하게 그들의 성을 부르곤 했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장족의 발전이라고 생각하긴 하지만.
"물론, 그대와 떨어져있을 생각을 하니 나도 심장이 찢겨져 나가는 듯 해. 하지만, 나와 달리 그대는 그렇지 않겠지......"
"그냥 하고 싶은 말을 해...제발..."
사쿠야가 사랑해 마지 않는 배우자는 가끔, 아니 자주 어린 아이마냥 투정을 부리곤 했다. 사쿠야가 무의식적으로 그를 애처럼 보는 것도 어찌보면 베인의 자업자득인 것이다. 무의미한 대화를 반복하느니, 차라리 먼저 항복하는 게 낫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는 사쿠야가 한숨을 쉬며 말하자, 빙그레 웃은 베인이 솔직하게 대답했다.
"그대가 나와 보내는 시간이 너무 적어."
"...뭐?"
예상치 못한 발언에 사쿠야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그제야 베인이 하는 말의 원인을 깨달았다.
근래, 사쿠야가 저택을 자주 비우기는 했다. 너를 닮은 장미 부케를 구하고 말거야....라는 의미모를 말만을 베인에게 남기고서. 그 말을 사용인들을 바로 알아듣고 벌써 또 그런 시기인가~하는 반응으로 제 할 일을 하였지만 베인은 당최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장미같은 풀떼기는 저택 온실에도 널리고 널렸는데 뭐 특별하고 다른 게 있다고 그걸 구하겠다고 자리를 비우고 저를 혼자 두는가?
그래도 베인은 오래 참았다. 그치고는 오래 인내했다.
"그래서 가출하겠다고?"
"그대와 함께 있을 수 없는데, 내가 굳이 이곳에 처박혀있을 필요는 없지."
단단히 삐졌구나. 사쿠야는 제 배우자가 하고자 하면 하지 못 할 일이 없음을 알고 있었다. 고개를 돌려보니 사용인들이 흥미진진하게 주인 내외의 다툼 아닌 다툼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들의 앞에서 하기는 부끄러운 행동이었지만, 우선순위는 명백했으므로 사쿠야는 자리에서 일어나 베인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크고 단단한 그의 손을 다정하게 어루어 만지며 말했다.
"혼자 있게 해서 미안해, 앞으로는 저택을 너무 자주 비우지 않을 테니까. 화 풀어."
"화 안 났네. 내가 어찌 그대에게 화를 낼 수 있겠나."
"너를 닮아서, 보고 있으면 네가 생각나서 가지고 싶었어. 하지만 네가 있으니까, 그런 거 없어도 돼. 나 좀 봐, 베인."
그는 가출하지 못할 것이다. 서운하더라도, 저를 어르고 달래는 사쿠야 스칼렛을 세상 그 무엇보다 무겁고 뜨겁게 사랑하기에. 사쿠야는 그를 다정히 끌어안았다. 그제서야 베인은 만족스러운 듯 사쿠야의 품에 머리를 기댔다.
큰일이 될 뻔한 사건이 겨우 또 진정이 되었다.
구경 다 끝났으니 우리는 마저 식사하자며, 사용인들은 다시 포크와 나이프를 움직였다. 전하 그냥 리레리블 부케가 안 나와서 못 구하신 거잖아요....라는 말은 현명하게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오늘도 대공저는 평화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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