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무텐

행성 탐구자 (1)

열의의 지하도시


스칼렛


선택받은 자들이 살아남았다.

분위기에 맞지 않게 길고 하얀 로브를 입은 자들이 그렇게 외치고 있었다.

저런 짓을 해서 얻는 게 무엇일지 생각해 봤지만, 스칼렛의 생각으로는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그들이 기도하고 바라는 대상이 누구지? 이곳에 있는 종교인들의 생각은 도통 알기 힘들다. 저런 부분에는 흥미가 없기도 하고.

사람들이 시끄럽다고 민원이라도 넣었나, 멀쩡한 도시 안을 놔두고 여기서 이러고 있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기계음이 한참 동안 윙윙거렸다. 피곤이 몰려와서 하품했다. 몇 분 정도가 지나서 엘리베이터 문이 열린다.

아래에 도착했다. 익숙하고도 낯선 냄새가 난다. 창백한 건물들 사이로 빛이 반짝인다. 사람들이 분주하게 돌아다니고 있다.

깊은 땅속에 묻혀 있는 곳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곳이다. 또 다른 땅이 하나 더 있는 것 같다. 어느 날 갑자기 천장이 무너져 내리는 상상을 가끔 하지만 이곳에서 살아온 평생 그런 일은 없었다.

이 부분에서 보이는 사람들은 대부분 탐험가다. 안에서 지내고 있는 사람들은 굳이 입구 부근까지 올 일이 없다.

다른 지하 도시는 불야성처럼 체계적이고 안전하지 않다는 말을 살면서 몇 번이나 들었지만, 다른 도시를 눈으로 직접 확인해 본 적이 없어 모르겠다.

확실히 입구에서 주는 느낌만큼은 강렬하다. 불야성 소속 탐험가들이 힘을 합쳐 거대한 장비를 나르고 있었다. 정확히 어디에 쓰는 건지 자신의 지식으로는 모르겠다. 군데군데 녹이 슨 부분이 있는 걸로 보아 중요한 물건인 것 같았다.

다행히 불야성 게이트를 지키는 파수꾼들은 월아나 유물을 보고 별말 하지 않았다. 십 년 넘게 탐험가 활동을 해 온 리처드 덕분일 것이다. 그들은 리처드의 부목을 보고는 어쩌다가 다쳤냐고 물어보느라, 옆에 있는 월아에게는 관심도 주지 않았다. 리처드는 도마뱀에게 당한 상처를 적당히 둘러대느라 애먹었다.

월아는 불야성 게이트를 통과하고 안에 들어오는 동안 계속 감탄하기 바빴다. 온통 모르는 것뿐이라며 주변을 계속 둘러본다. 그 모습이 수상해 보이진 않을까 걱정했지만, 사람들은 각자의 이유로 바쁜 탓에 월아를 신경 쓰지 않았다.

리처드는 시장에 잡동사니를 처분하고, 병원에 갔다 오겠다고 말했다. 중간에 방향이 갈리게 되어, 월아를 데리고 가는 것은 스칼렛의 몫이 되었다.

거주 구역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거리는 더 한산해졌다. 건물들의 색이 점점 없어진다.

“되게 넓다. 걸어도 걸어도 끝이 없네. 이거 정말 사람이 만든 거야?”

“난 이 도시를 만든 과정을 못 봐서 잘 모르겠지만… 그 정도로 놀랄 일인가?”

월아는 여전히 주변을 둘러보며 그렇게 말했다. 이곳에서 나고 자란 자신에게는 지극히 당연한 일이어서 그런 부분은 체감하지 못하고 있었다.

탐험대 아지트는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한 부분에 자리 잡고 있었다. 주변은 아주 고요하다.

좋게 말하면 거주비가 저렴하고, 나쁘게 말하자면 좋은 건물이 아니다. 거주 구역에서 10분 정도를 더 걸어 도착했다.

“여기야.”

삐걱 소리가 나는 문을 열고 계단을 오른다. 다시 한번 문을 열었다.

간신히 서 있는 것 같은 외관과는 달리 안은 멀끔하다. 전에 확인해 봤는데 방음도 생각보다 잘 되는 곳이고.

월아는 어깨를 살짝 움츠리며 따라 들어왔다. 그가 등에 지고 있는 유물을 내려 주었다. 천과 밧줄로 꽁꽁 동여매 놔서 어떤 것이 들어있는지 가늠하기 힘든 모양새가 된 상태다.

가방을 내려두고, 소파에 앉았다. 등받이에 외투를 건다. 피곤하니 아예 드러누워 버렸다.

천장에 달린 전구가 묘하게 약해진 것 같다. 눈이 나빠질 것 같아 시선을 살짝 비켜 두었다.

“너도 거기 앉아.”

조촐한 아지트 방 안에는 책상 하나를 사이에 두고 소파가 마주 보듯 두 개 놓여 있다.

엄청 안락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안에 있을 건 다 있는 곳이다. 싱크대도 있고 따로 화장실도 있는 완벽한 아지트다. 단점이라고 한다면 차가운 물만 나온다는 것 정도일까….

월아는 주춤하다가 조심스레 다른 소파에 앉았다. 등을 기대지는 않는다.

“힘들어~ 씻기도 해야 하는데… 졸리기도 하고….”

그렇게 말하고 얼굴을 손으로 쓸어내렸다. 긴장이 풀리자 이제야 잠이 쏟아졌다. 아직 잠에 들 수는 없다.

“여기, 마음에 들어.”

“그래?”

“조용하고… 사람들이 없잖아. 그리고 여긴 바깥하고 달라. 갑자기 괴물이 나오지도 않아.”

“맘에 든다니 다행이다. 편하게 지내.”

월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일어서서 책장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스칼렛 또한 꾸물거리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피로에 푹 젖은 몸을 씻을 차례다.


 

가스레인지 위에 팬을 올렸다. 위에 손을 올리자 금방 달구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익숙한 솜씨로 달걀을 단숨에 깨서 팬에 넣었다. 조심해서 깬 것 같았는데 노른자가 터져 있다. 흰자에 노란 빛이 섞여 들어간다. 리처드가 만들었던 모양이 예쁜 반숙 프라이가 생각나 아쉬웠다.

스칼렛의 요리 실력은 좋은 편이 아니었다. 간단한 것을 만드는 게 고작이다. 끼니를 대충 때워야 할 때 달걀만큼 좋은 것이 없었다. 그래도 월아는 이런 것이 신기하다는 듯 시선을 떼지 못했다.

다 구워진 것 하나를 접시에 올렸다. 스칼렛은 월아에게 달걀 하나와 뒤집개를 내밀었다.

“네가 해 봐. 알려줄게.”

“내가?”

“별거 없어. 그걸 깨서 안에 있는 걸 넣어.”

월아는 손에 쥐어진 달걀을 바라보다가 힘을 주었다. 당연하게도 대참사가 일어났다.

팬 모서리에 툭 치면 된다고 말해야 했는데 이미 늦었다. 달걀은 월아의 손에서 껍질과 뒤섞여 엉망이 되어 있었다. 투명하고 끈적한 것이 흘러내린다.

“…먹을 수만 있으면 됐지.”

사소한 일이다. 스칼렛은 자연스럽게 다른 달걀을 가져와 팬에 다시 넣었다. 구워지는지 확인하라며 지켜보기를 당부하고, 냉장고에서 주황색 주스 병을 꺼내 잔 두 개에 부었다.

단순한 식단이 완성됐다. 나갈 힘이 없으니 대충 때우고 다음에 괜찮게 먹으면 되겠지. 월아는 포크를 든다. 어색하다는 눈빛으로 한참을 바라본다. 독이라도 들었는지 확인하는 모습 같다.

신경 쓰지 않고 계란 프라이를 먼저 입에 넣어 버렸다. 따뜻하다. 스칼렛이 우물거리며 먹는 모습을 보고 월아도 따라 먹는다. 조금 입에 넣어 맛을 보더니 삼킨다.

“이게 음식을 먹는다는 거구나.”

“우와… 방금 발언은 좀 그렇지 않아? 누가 들으면 진짜로 오해하니까, 밖에서 그러면 안 돼.”

그는 어느새 계란을 입 가득히 넣고 있었다. 웃기는 일이다.

“밖에 나가면, 맛있는 걸 많이 팔아. 다음엔 하나씩 먹어 보자.”

“좋네.”

방 안이 계란 냄새로 가득 찼다. 창문을 열었다. 창문 너머로 시멘트벽이 보인다. 바로 옆에 건물이 위치한 탓이다. 이 건물을 만들 때 창문 방향을 고려하지 않은 건지, 아니면 저 건물이 나중에 생긴 건지 모른다. 바깥이 보이지만 답답하다.

 

그가 음식을 먹는 사이 기본적으로 알아야 할 사실에 대해 몇 개 알려주기로 했다. 누군가 다른 사람이 물어봤을 때 아는 척이라도 할 수 있도록. 애초에 불야성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이야기들이다. 다 큰 성인이 얼버무리면 수상한 사람 취급을 받을 수밖에 없다.

“나도 학교 다닐 때 배운 걸 그대로 말해주는 거긴 하지만… 예전에는 태양이라는 게 아주 밝게 빛나는 별이었대.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그래서 세상이 밝았다더라.”

“하늘에 있던 그거구나.”

“달일 수도 있고… 어쨌든 달이랑 번갈아서 뜨는 그거야.”

“흥미롭네.”

“예전 사람들은 우리보다 훨씬 더 잘 살았대. 우주를 여행하기도 했다나. 어떤 방식인진 모르겠어. 실제로 달을 밟아 본 사람도 있었다는데.”

“그 정도 기술력이 있었는데 왜 이렇게 됐지?”

“태양이 약해지면서 이 행성 전체의 생태계가 갈아엎어졌다는 거지. 원래 있던 생물들이 대부분 멸종하고, 바뀐 행성에 적응하고 진화한 녀석들만 살아남았어. 다행히 그중에는 인간도 포함되어 있었고. 지금 살아서 계속 대를 잇는 사람들은 전부 신인류야.”

“신인류라고 하면… 예전 사람들과는 다르다는 거겠네.”

“응. 기본적인 신체 능력의 차이도 크지만, 무엇보다 다들 특별한 능력을 자각하고 있어. 그 덕분에 멸종하지 않고 살아남아 지하 도시도 만들고, 괴물들도 막아낸 거라고 해.”

“능력?”

스칼렛은 월아의 말에 잠시 학창 생활을 떠올렸다. 넘쳐나는 힘을 주체하지 못하고 교실을 난장판으로 만들던 그 시절의 친구들 얼굴이 흐릿하게 지나간다.

“허공에서 불을 만들거나, 초인적인 힘을 가졌거나, 뭐 그런 거. 사람 수만큼 다양해. 태어나서부터 정해지는 거라 재능이라고 불러. 진짜 운이 없는 게 아닌 이상 다들 하나씩 가지고 있어.”

“그럼 스칼렛은?”

“난 별거 없는데….”

평소에 자기 자신에게 불만이 많았던지라 그렇게 말했지만, 월아는 여전히 궁금하다는 듯 눈을 끔뻑였다. 묘하게 빛나는 청록빛 눈동자가 꼭 듣고 싶다 전하는 듯했다.

“다른 사람 재능에 영향 안 받아. 아, 참… 불야성에서는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같은 사람을 자기 능력으로 공격하는 건 중죄야. 그래서 딱히 쓸모는 없어.”

스칼렛은 그렇게 설명하며 옆에 놓여 있던 수첩과 펜을 가져와 대충 끄적였다.

“그래도 괜찮네. 혹시 모를 위협에서 안전하잖아.”

“안 좋은 면도 있어… 치료나 강화 재능을 가진 사람의 도움도 못 받으니까.”

“그것도 안 통하는구나. 의외의 단점이네.”

“확실히.”

“다른 사람들은?”

“레이시는 상처가 빨리 회복되는 거였고, 리처드 아저씨는 조금 복잡해. 손에 들고 있는 물건을 보이지 않는 곳에 있는 물건이랑 바꿀 수 있어.”

“바꿔?”

“예를 들면… 내가 손에 들고 있는 이 수저를 저 서랍에 들어 있는 수첩하고 바꿀 수 있는 거지. 타인 시선도 기준에 포함이랬어. 꼭꼭 숨겨둬야 하는 거지.”

“재밌겠다. 손 안 대고 꺼낼 수 있는 거잖아.”

“그래서 아저씨 항상 큰 가방 가지고 다니잖아. 기억나?”

“응.”

설명한 것들을 월아가 제대로 이해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대충은 알려줬으니 그런대로 기억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탐험가들은 주로 뭘 하고 지내?”

“뭐… 이것저것. 사냥이나 채집으로 먹고 사는 사람이 많지. 지하 도시에서 구할 수 없는 게 바깥에는 널려있으니까. 운 좋게 좋은 유물을 발견하면 한탕 하는 거고. 비싸게 사는 사람이 많거든. 나중에 시장도 같이 가 보자.”

“스칼렛은 대단한 사람이었구나.”

“뭘. 탐험가라고 다 같은 것도 아니고… 나는 무명에다 아마추어야. 불야성 소속 탐험대에 들어가는 데 실패해서. 아직 대단한 발견이랄 것도 못 했고.”

그렇게 말하고 주스를 한 모금 마셨다. 과일 맛이다. 어쩐지 조금 쓴 맛이 나는 것 같기도 했다.

“꼭 거기 있어야 뭐가 되는 건 아니잖아.”

“그렇긴 하지만.”

“나도 열심히 할게.”

“월아는 아직 환자잖아. 몸부터 챙겨야지.”

“전에 탐험대에 넣어 준다고 말했었잖아.”

“그랬지….”

괜히 수저로 주스 잔을 휘적거렸다. 가끔 수저가 유리잔에 부딪힐 때 나는 소리가 좋다. 물론 월아가 같은 팀이 되는 것은 기쁜 일이지만, 저번의 일이 마음에 걸린다. 머리 두 개 달린 도마뱀에게 당해 죽을 뻔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 자리에 월아가 없었더라면 거기에서 끝이었다.

그땐 솔직히 자신의 부족함에 실망했었다. 최고로 강한 사람은 아니어도 좋다. 누군가의 발목을 잡는 짓은 하고 싶지 않다.

원하는 대로 훌륭한 탐험가가 되려면, 우선 강해져야 한다. 좋다고 냉큼 받아들이고 다음 여정을 나서는 것은 꺼려진다.

“열심히 해야겠어….”

생각만 하려던 것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그 말을 들은 월아는 고개를 갸웃했다.

“충분해.”

“어떤 게?”

“그때 싸우는 모습, 멋있다고 생각했어. 그런 괴물을 상대로 겁먹지 않고 침착하게 상대했잖아.”

“졌는걸.”

월아는 고개를 저었다.

“진 게 아니야. 다른 사람들을 지켜주려고 했으니까.”

이런 말도 할 줄 알아? 정작 그 녀석을 끝장낸 건 월아였다.

“그리고 리처드도 날 지켜주려 했었고.”

“그거 아저씨 앞에서 말하면 분명 욕했을 거야.”

“지금 없으니까 괜찮아.”

어느덧 앞에 놓인 유리잔이 비었다. 스칼렛은 다시 병을 기울여 잔을 3분의 2정도 채웠다. 묘하게 갈증이 났다.

자신도 묻고 싶은 것은 많았지만, 분명 대부분 모른다, 기억 안 난다는 대답이 돌아올 것이 뻔했다.

“탐험가 말고 다른 하고 싶은 건 없어?”

“아직은. 일단은 여기 있고 싶어.”

“신기하네.”

“네 이야기를 듣는 것도 재미있고. 그러니까 이번엔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도 들려줘.”

“그럴까.”

당분간은 같은 탐험대 사람이 될 예정이니 그 정도는 괜찮겠다. 그렇게 생각하고 다시 말문을 열려던 순간 벌컥 하고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카테고리
#기타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