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과 달 (3)
번뇌
리처드
왼팔에는 임시로 급하게 만든 부목이 감겨 있다.
아까까지만 해도 팔은 불타고 있는 것 같았으며, 조금만 움직여도 살을 찢는 고통이 느껴졌다. 통증은 입 안에 쏟아부은 진통제 덕에 조금 나아졌다. 그나마 다리가 다친 것이 아닌 게 위안이었다.
눈이 뻑뻑하다. 리처드는 건조한 시선으로 허공을 바라보았다. 지금 자신의 꼴은 굳이 거울을 통해 보지 않아도 최악일 것이다. 머리는 엉망으로 헝클어져 있을 것이고, 몸은 땀과 피에 젖어 있다.
도마뱀이 더 이상 움직이지 않게 된 후, 남자와 스칼렛의 부축을 받아 겨우 자리를 이동했다. 고통 때문에 정신이 오락가락해서, 기억이 온전한지도 확실치 않았다. 둘은 굴 같이 패여 있는 은신처를 찾아내 리처드를 쉬게 했다.
상황에 대해 최대한 좋게 생각하려 했다. 자주 가던 술집 주인장이 그랬다. 나는 생각하면 이상한 구석에 빠져드는 게 문제라고.
삶에 만족과 보람을 느껴야 한다….
자꾸만 이런 일이 생기는데, 어디서 보람을 느껴야 하냐고 묻고 싶다. 애들만 없었다면 아까 튀어나온 그 징그러운 도마뱀에 대해서 몇 분이고 계속 욕을 퍼부었을 것이다. 그래, 애들만 없었더라면….
치명적인 부상이다. 긍정적으로 생각하자면 자신은 오른손잡이고, 이 정도로 끝난 게 다행이었다. 스칼렛과 저 의문의 남자도 무사하고. 단지 하나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다면 아까 그 일이다. 처음에는 겁먹은 강아지처럼 주춤거리던 인간이, 다른 사람이라도 된 것 같이 변했다. 총알도 제대로 뚫지 못하는 피부를 가진 괴물을 단순한 체급만으로 제압한 모습이 아직도 생생했다.
“아까는 어떻게 된 거야?”
“모르겠어….”
“대단하다.”
꼬맹이들은 옆에서 주절주절 떠들고 있다. 젠장. 머리가 조금 아픈 것 같기도 하다. 제대로 된 의자에 앉거나 어딘가에 누워 버리고 싶다. 지금 정신을 놓고 잠들었다간 다음에 사후세계에서 깨어날 것 같아 애써 참고 있다.
이런 곳에서 죽는다는 상상 또한 끔찍하다. 죽는다면 아무도 없는 고요한 곳에서 홀로 죽고 싶었다. 말 그대로 아무도 없는 곳에서.
그리고 모두가 자신의 존재를 깨끗하게 잊는 것이야말로 완벽한 끝맺음이다.
벽에 아무렇게나 기대 둔 가방은 어느 순간 돌로 된 벽에 쓸리는 소리를 내더니 옆으로 넘어졌다.
보통 사람들이 전과 같은 상황을 겪었다면 심한 공포를 느끼거나 살고 싶다는 말을 연발했을 것이다. 운 좋게 살아남은 것에 기뻐 눈물을 흘렸겠지.
저 둘 또한 방금 죽을 뻔한 위기를 겪고 살아나온 사람 중 하나로 분류된다. 그러나 태연했다. 별일 없던 것처럼 행동하고 있다.
스칼렛은 늘 그런 사람이었다. 여러 명이 모여 있으면 나서서 할 줄 알고, 분위기를 주도하는 쪽이다. 안개가 낀 듯한 분위기는 참지 못한다. 여러모로 자신과는 정반대인 사람이다. 이전엔 그런 점을 높이 샀던 것 같다.
멀쩡한 오른쪽 손을 바닥에 대자 장갑 아래로 거친 모래가 부스러지는 것이 느껴진다. 리처드는 눈을 감았다. 둘의 대화가 들려온다.
“그 유물, 역시 네 거였구나. 쓰는 법을 기억한 거지?”
“으음.”
“아까 분위기가 갑자기 달라졌어. 짐승 같더라.”
“…그 정도야?”
남자는 난처한 듯이 대답했다.
“나라는 자각은 있었지만… 정확히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어. 저 사람과 네가 싸우고 있을 때… 어떻게든 도와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으니까.”
딱히 잘못한 게 없음에도 그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졌다. 자신감이 없다.
“그러던 중에 갑자기 떠올랐어. 그렇게 하면 싸울 수 있다는 게. 물론 네가 말한 대로 그 순간 이상한 기분이 들었지만… 이것도 기억을 되찾은 거라고 봐도 될까?”
“당연하지. 좋아지고 있네.”
다시 눈을 떠서 흘끔 바라보았다.
남자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고, 스칼렛은 옆에서 약한 미소를 띤 채로 이야기한다.
“이대로면 금방 전부 기억하겠다. 잘 됐어.”
“두 사람이 구해준 덕분이야.”
“무슨 소리. 너도 우리를 구해줬잖아. 갚은 걸로 치자.”
예의 없고 수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사람하고 저렇게 부주의하게 떠들도록 내버려 둬도 괜찮은지 잠시 고민했다.
어쨌거나 도움을 받은 것은 사실이니 일단은 어느 정도 수긍했다. 겨우 몇 시간 사이에 평가가 이렇게나 뒤집히다니 인간은 정말 단순한 생명체다.
리처드는 모자 끄트머리를 잡고 앞을 눌렀다. 혹시 시선이 오면 피하기 위해서였다. 깊게 눌러 쓴 모자는 얼굴 절반을 가린다.
“뭐라고 부르면 좋을까?”
몇 분 지나지도 않아 스칼렛이 그런 말을 꺼냈다. 자기 이름도 기억하지 못하는 남자 말이다. 리처드는 고개를 다른 쪽으로 아예 돌려 버렸다. 자신한테 물어보는 일은 없기를 바라면서.
물론 어디선가 따가운 시선이 느껴지는 것 같았지만 애써 무시했다.
“아저씨.”
“….”
자신은 작명하는 사람이 아니다.
무엇보다, 이름을 정해주면 앞으로 그 이름을 계속 들어야 할 게 아닌가. 누군가의 이름을 지어주는 일 따위 싫다.
“네가 정해.”
“이럴 줄 알았어. 아저씨 이런 부분엔 하나도 도움 안 돼.”
스칼렛의 퉁명스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기억도 안 나는데 어쩔 수 없으니… 편한 대로 불러줬으면 해.”
남자는 그렇게 말했다.
“아무리 임시로 쓸 이름이어도 대충은 싫은데. 뭐가 좋으려나. 세 보이는 이름도 좋을 것 같아. 기선 제압이 중요하거든.”
무슨 격투기 선수 이름 짓는 것도 아니고 참 쓸데없는 고민이 많다. 스칼렛은 손을 입가에 댄 채로 한참을 고민하더니 뜬금없는 말을 뱉었다.
“아, 알았다. 어쩌면 달에서 떨어진 게 아닐까?”
인상이 찌푸려졌다. 살짝 고개를 들어 앞을 보니 스칼렛은 남자를 가리키며 당당한 태도로 서 있었다.
남자는 여전히 진지한 표정이다. 어디를 다친 건 확실하다. 아니면 원래부터 바보였거나.
“너… 걔를 닮아가는 것 같아. 아니면 머리를 부딪혔나?”
가끔 이렇게 스칼렛에 대해 저평가하게 되는 일이 생긴다. 걔라고 한다면 매일 이상한 소리만 늘어놓는 레이시를 말하는 것이다.
리처드의 비아냥은 신경 쓰지 않고, 억측은 이어졌다.
“기억도 없지만, 뭣보다 이 세계에 대해 아무것도 아는 게 없잖아. 이 행성 사람이 아닌 거지.”
“하.”
“그러니까, 월아는 어때? 달이라는 뜻이야. 예전에 봤던 게 생각났어. 달에서 왔으니까 월아인 거지.”
“거 달에 되게 집착하네.”
그 말을 끝내자마자 속이 울렁거렸다. 아마 부상 때문일 것이다.
“좋은 뜻으로 지어준 거니까, 난 좋아.”
이제 월아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 남자는 슬며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탐험대에는 바보들밖에 없다. 이딴 거 하지 말 걸 그랬어,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겨우 참았다.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긍정적으로….
“돌아가면 병원도 가봐야 하지 않을까?”
“병원은 뭐 하는 곳인데?”
“아플 때 가는 곳이야.”
“난 아프지 않은데.”
듣고 있으면 답답한 데다가 영양가도 없는 대화다.
“그…러니까, 꼭 그런 건 아니고. 혹시 몸에 이상이 있나 검사할 수도 있는 곳이야. 월아는 바깥에 떨어져 있었잖아? 혹시 병에 걸렸다거나, 안 보이는 아픈 부분이 있을 수도 있어.”
월아는 제 손등을 꾹꾹 누르면서 과하게 친절한 설명을 들었다. 이해됐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리처드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외부에서 온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을 모두가 순순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
“…너무 쉽게 생각하진 마.” 그렇게 말하며 월아를 향해 턱짓했다.
“저 녀석은 외부에서 유물이랑 같이 주운 거야. 뭔가 이상한 게 발견되면 불야성에서 가만 안 놔둘걸. 최악의 상황에는 우리까지 말려들지도 모르고.”
“사람을 물건처럼 이야기하지 마.”
스칼렛은 그렇게 대답했지만… 글쎄.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불야성은 위협으로 느껴지는 것을 절대 안에 두지 않는다. 그게 인간이라면 더더욱.
범죄자들은 강력하게 처벌하고 위험한 유물은 몰수하여 정부에서 보관하는 것이 법이다. 월아가 만약 평범한 일반인이라 하더라도, 주변에서 이야기가 와전되면 좋은 꼴은 보기 힘들 것이다.
“그래. 물건 취급이고 뭐고, 일단은 조심하자는 거지. 보니까 너는 저 녀석이 마음에 든 것 같은데. 오래 보고 지내려면 소중히 대해줘야 하지 않겠어?”
“그건 그렇지만.”
스칼렛은 뭔가 생각하는 듯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럼, 월아가 기억을 찾기 전까지는 우리 탐험대에서 지내게 해 주자. 그러면서 이것저것 가르쳐주고.”
“맘대로 해.”
“그래도 괜찮아?”
월아는 대답에 놀란 듯 눈이 조금 커졌다. 눈을 깜빡이며 리처드를 바라보고 있다. 어쩌면 불친절해 보이는 사람이 호의를 베풀었다고 놀란 걸지도 모른다. 오해하지 않도록 덧붙여 둔다.
”난 저 녀석을 완전히 신용하고 있지 않으니까, 그것도 알아 둬.”
“너무해.”
차가운 사람이라고 말하는 듯한 시선이 느껴졌다. 하지만 살아가다 보면 그럴 수밖에 없다. 세상 것들에 하나하나 이득과 위험을 따져가며 살아야 한다. 남에게 의지하지 않으면 상처받을 일도 없다. 애초에 믿지 않는다면 배신당할 일도 없는 것이다. 인생을 살아오면서 배운 거라고는 그거 하나다.
월아의 힘은 확실히 대단했지만, 그의 기억이 없는 점이 불안 요소다.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주제에 싸우는 법 하나는 알고 있다. 그 힘이 자신을 향하는 상상은 하기도 싫다. 백번을 양보해서 이러고 있는 거지 예전의 자신이었다면 미련 없이 두고 갔을 것이다.
“못 믿는 것도 이해해.”
“이해의 문제가 아니지.”
“아저씨는 늘 저렇게 말하니까, 신경 쓰지 마.”
스칼렛이 작게 웃고는 대화에 끼어들었다. 항상 이런 식이다. 이야기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혼날 때 뭘 잘못했는지도 모르고, 뻔뻔하다. 덕분에 하루도 심심할 날이 없다. 이제 저 덩치만 큰 녀석이 딸려 오면 두 배로 피곤해지겠지.
“어쨌든 고마워.”
월아가 한마디를 더 얹는다. 질린다. 둘은 자신의 속마음이 어떤지 제대로 모른다. 모르니까 저렇게 말할 수 있는 거다. 하지만 그걸 겉으로 내보이고 싶지 않다. 자신이 아이들에게 걱정되니까 위험한 짓은 하지 마, 라고 말해도 그건 위선이다.
리처드는 스스로를 악인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오래전부터 머릿속에 깊게 박혀 있던 생각이라 쉽사리 떨쳐낼 수 없다. 좋은 사람도 선생님도 아닌 사람이 뭐라 할 자격은 없다. 그냥 옆에 있는 사람 하나 정도로 만족하자. 그 정도면 충분하다. 여전히 둘은 무어라 수다를 떨고 있다.
“시끄러워. 이제 제발 좀 쉬자… 기운 넘치는 녀석들아.”
정 같은 건 살아가는 데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하고 고개를 딱딱한 벽에 기댔다.
불편하다. 눈이 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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