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무텐

사막과 달 (2)

낯선

그 자리에서 떠난 지 30분도 되지 않았다.

왔던 길을 그대로 따라 돌아가는 길이었다. 분명 아무것도 없었던 자리에, 무언가 큰 것이 떨어져 충돌한 것처럼 크레이터 같은 흔적이 남아 있었다.

작은 연못 하나의 크기다. 그곳에는 아물아물한 기름 같은 것이 덮여 있었다. 생소한 광경이다. 기름층은 마치 살아있는 듯이 무늬를 일렁였다. 색 또한 불쾌한 무지개색 사이에서 조금씩 변화한다. 가만히 보고 있으면 머리가 아파지는 것 같다.

스칼렛은 기름 막에 물든 땅에서 두 발짝 정도 거리를 둔 채로 고개를 숙여 내려다보았다.

“그때, 이런 게 있다는 말도 했었어?”

스칼렛은 리처드를 바라보고 물었다.

그때라고 한다면 얼마 전 불야성 사냥팀이 사막 구역에서 의문의 괴물을 마주친 사건을 말한다. 한동안 그 주제로 불야성이 꽤 시끄러웠다. 꽤 실력 있던 사냥꾼들이 한 명을 제외하고 전부 죽었다. 뭐가 어찌 되었든 그 괴물은 이미 죽었다고 하니 우리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누군가는 그 살아남은 한 명이 자신의 죄를 덮으려고 거짓말을 한다… 라는 주장도 했었다. 사냥꾼들이 전부 싸움의 프로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 말도 안 되는 궤변임을 모두가 알고 있기에 금방 잊힌 가설이다.

리처드는 쯧 하고 혀 차는 소리를 냈다.

“확실히… 뭔가 일어나고 있군. 이곳 사막은 그렇게 위험한 곳이 아니야. 사냥꾼들에게는 더욱. 그 이야기도 그렇고 이 모습도 그렇고, 뭔가의 징조처럼 보여.”

“이게 안 좋은 건가?”

남자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옆에 다가왔다. 아는 게 없으니 무서운 것도 없는지 옆에서 뭐라 말하기도 전에 이미 손을 기름 막에 가져다 댄 상태였다.

기름 막은 남자의 손에 닿자, 손이 닿은 곳을 따라 기묘한 무늬를 그리며 사방으로 흩어져 버렸다.

“손대지 마. 몸에 안 좋을 수도 있어.”

“손에 묻지는 않았어.”

그렇게 대답한 남자는 손바닥을 펴서 리처드에게 보여 주었다. 맨손 그대로였다.

리처드는 알겠다면서 고개를 휙 돌려 버렸다. 차가운 태도를 계속 취하고 있지만 행동은 어린아이들을 끌고 다니는 선생 같다. 그 모습에 묘하게 웃음이 나왔다. 리처드는 여전히 먼 곳을 보고 있다.

“여긴 오랫동안 이런 게 없는 구역이었어. 내가 탐험가 생활을 시작하고 처음 왔을 때부터 그랬다고. 적어도 10년 동안은.” 그렇게 말하는 모습은 어딘가 불안을 느끼는 듯이 보이기도 했다.

“새로운 괴물이 나타난 것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겠네.”

“타이밍이 나빠.”

리처드는 그렇게 투덜거렸다. 스칼렛은 여전히 기름 연못을 관찰하고 있는 남자에게 다가가 이제 가자고 말했다. 그러나 남자는 갈 생각이 없어 보인다. 무언가 의미심장한 말을 꺼냈다.

“무슨 소리 들리지 않아?”

“아무 소리도 안 들리는데….”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귀를 기울여 보았다. 사막에 먼지가 날리는 소리만이 들린다. 고요하고 삭막하다. 주변에는 어떠한 것도 없다.

“누가 부르고 있어.”

그 소리를 듣자마자 안 좋은 예감이 들었다. 지금 느껴지는 오싹함은 그저 상상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무언가 일어날 징조가 느껴졌다.

스칼렛은 그런 직감과는 거리가 멀고, 앞날을 예견하는 능력도 없지만, 이 순간만큼은 자신의 직감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이 위화감은 어디서 드는 거지?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기분이 들었다. 등에 지고 있던 대검을 꺼내 양손으로 쥔다. 긴장감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두 사람은 여전히 옆에 서 있다. 남자는 아무 생각도 없어 보이지만, 리처드 또한 무언가를 느낀 것인지 모자를 푹 눌러 쓴 채로 주변 어딘가를 주시하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신경질적인 고함이 들렸다.

“저기다!”

저 멀리에서 검은 무언가가 달려오는 것이 보인다. 작다. 아니, 거리가 멀어서 그렇게 보일 뿐이다.

형체는 순식간에 선명해지고, 거대해졌다. 네 발로 뛰어오는 거대한 도마뱀이다. 머리가 두 개나 달려 있다. 원래 인간이 알고 있는 도마뱀의 모습보다 다리가 길어서 불쾌함을 자아낸다.

“저건 뭐야?!”

“내가 할게!”

생김새에 대한 평가를 끝마치기 전에, 달려드는 도마뱀을 막기 위해 양손에 힘을 주고 검을 휘둘렀다.

베이는 것을 상상했는데, 엄청나게 묵직한 감각이 검 손잡이를 타고 전해져 왔다. 둔탁한 소리가 났다. 손목과 팔이 끊어질 듯한 충격이다. 방어하는 데에만 겨우 성공했다.

도마뱀은 뛰듯이 하여 뒤로 물러선 채로 이쪽을 주시하고 있다. 벌어진 양쪽 입에는 이빨이 수북하게 나 있다. 주둥이 안에서 파란빛이 감돈다. 눈이 없다. 먹기 위한 입만 존재하는데 무엇이 어디에 있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다. 보이지도 않는 곳부터 우리를 발견하고 여기까지 뛰어온 거다.

감각이 지나치게 좋다. 사막 구역에 이런 괴물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 본 적이 없다. 순간적으로 아까 말했던 괴물 이야기가 떠올랐다. 신문에서 본 인상과는 달라 같은 녀석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다. 이것 또한 여기에 원래 살지 않던 새로운 괴물이다.

“물러나!”

리처드는 남자에게 괜한 짓 하지 말고 몸을 지키라는 듯이 팔을 뻗어 보이고는, 한 발짝 앞으로 나섰다.

어느덧 그의 손에는 큰 저격소총 한 자루가 쥐어져 있었다. 방금 일어난 도마뱀과 스칼렛의 충돌을 보고는 평범한 총은 안 먹힌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 일대를 가득 찢어 버릴 정도로 큰 총성이 들렸다. 이 정도면 한 방 먹였겠다 싶었는데, 아쉽게도 두꺼운 외피를 뚫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안 통해….”

혀를 차는 소리가 났다. 그래도 도마뱀의 목에 총탄의 흔적은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도마뱀은 충격에 잠시 움찔하며 몇 초 정도 기괴한 소리를 흘렸다. 벌린 입에서 푸른 체액이 뚝 뚝 하고 떨어져 바닥에 스며들었다.

도마뱀은 다리를 구부리고 다시 뛰어들었다. 열을 받기라도 했는지 이번에는 리처드 방향이었다. 족히 2미터는 넘어 보이는 덩치인데도 그에 맞지 않게 잽싸고 빠른 움직임을 보인다.

공격을 막아주기 위해 검을 옆으로 휘둘렀지만, 빠르기만 한 것이 아니고 이쪽의 움직임을 미리 알고 있다는 듯이 피했다. 검은 허공에 맥없이 휘둘러졌다.

“뭐….”

무언가를 씹는 소리가 들렸다.

도마뱀의 왼쪽 머리는 리처드가 내민 총에 걸려 더 들이대지 못하고 있다. 오른쪽 머리는 그가 막기 위해 내민 왼팔을 꽉 물고 있었다. 리처드의 탐험복은 꽤 두꺼운 편인데, 이빨이 제대로 파고들었다.

“이 자식이.”

“기다려! 도와줄게!”

스칼렛은 도마뱀의 오른쪽 머리를 향해 검을 치켜들고, 그대로 내리쳤다. 검이 잘 들어가지 않는다. 도마뱀은 말도 안 되는 악력으로 계속해서 팔을 물고 늘어졌다.

살이 찢어지는 소리가 아닌 뼈가 부서지는 소리가 난다. 섬뜩하다. 온 힘을 다해 몇 번이고 내리쳤다. 빠득 하는 소리와 함께 도마뱀의 목 옆에 검날이 박혔다. 팔을 비틀었다. 고기를 찢는 감각이 느껴지고, 허공에 끈적하고 푸른 체액과 붉은 피가 튀었다. 너무 힘을 준 탓에 그대로 균형을 잃을 뻔했다.

도마뱀의 오른쪽 머리는 절단면이 너덜너덜한 상태로 바닥을 굴렀다. 그제야 리처드는 팔을 부여잡고 주저앉았다. 옷 위로 피가 스미는 것이 보인다. 상처가 너무 깊다. 고통을 참기 위해 어떻게든 애쓰는 것이 느껴졌다.

내가 좀 더 강했더라면. 그런 생각이 뇌 안을 채우자 급하게 머리를 흔들었다. 지금 당장은 싸워야 한다. 도마뱀은 한쪽 머리가 잘려 나간 채로 절단면에서 계속해서 푸른 액체를 토해냈다.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건지 그런 상태가 되어서도 왼쪽 주둥이를 크게 벌리고 다시 달려들었다.

도마뱀과 몇 번이고 검을 부딪쳤다. 공격은 계속해서 들어왔지만, 그때마다 검 덕에 아슬아슬하게 궤도가 꺾여 직격으로 맞는 일은 없었다. 계속되는 공방에 팔 근육이 경련했다. 너무 무겁고 힘이 세다. 이제 막는 건 한계라고 생각할 때 쯤, 옆에서 갑자기 휘두른 꼬리에 맞고 나가떨어졌다.

스칼렛은 바닥을 두 바퀴 정도 구르고 나서야 멈췄다. 대검 또한 바닥에 떨어져 버렸다. 침착을 잃지 말자. 최대한 빨리 자세를 되찾고 무릎에 힘을 줘 일어서려 했다.

순간 왼쪽에서 누군가 자신의 이름을 불렀다. 리처드? 아저씨에게 무슨 일이 생겼나?

“…아저씨?”

바닥에서 일어서자마자 고개를 급하게 그쪽으로 돌렸다. 그 자리에는 아까 떨어진 도마뱀의 머리가 꿈틀대고 있었다. 리처드와 남자는 전혀 다른 방향에 있다.

잘린 도마뱀의 머리에서 다시 한번 푸른 피와 함께 비명 섞인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이제야 이성적인 생각이 들었다. 제대로 속았다. 속았다고 알아챈 순간 이미 늦은 것이다.

괴물이 인간의 목소리를 따라 했다. 인지를 벗어난 사실에 현실 감각이 흐려졌다. 시야의 사각에서 도마뱀이 주둥이를 벌리고 달려드는 것이 묘하게 느려 보였다. 자신의 코앞까지 다가왔다.

이제 죽는구나. 죽는다는 것에 대한 공포보다는 무엇 하나 잘 해내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가 밀려들었다. 먹이 사슬이 존재하니 약자가 잡아먹히는 건 당연한 일이다.

단지… 강해지고 싶었다. 아버지처럼 강인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무엇 하나 지키지 못했다는 사실에 마음이 찢어질 것 같았다.

죽기 전에 드는 생각이 겨우 이런 거라니 구질구질하다.

감았던 눈을 떴다. 큰 소리가 들렸다. 남자가 달려든 것이다. 그는 도마뱀의 공격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뒤로 넘어졌다. 그가 등에 메고 있던 것들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바닥에 쏟아졌다.

“무슨 짓이야! 도망가!”

자기 목에서 나왔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큰 소리가 나왔다. 그 정도로 절박했다. 모르는 사람을 휘말리게 해서 죽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더 싫다.

“그냥 도망치라고 했잖아!”

“그럴 리 없잖아….”

남자는 넘어진 채로 신음했다. 이타적인 사람. 그 마음씨는 어디 가서 보기 힘든 값진 것이지만 그런 것은 냉혹한 세상에서 독이 될 뿐이다.

도마뱀은 남자 위에서 주둥이를 쩍 벌린다. 스칼렛은 앞으로 뛰쳐나갔다. 도마뱀의 옆구리를 향해 검을 찌른다. 팔에 이미 힘이 빠져 있어 잘 들어가지 않는다.

“난 괜찮으니까 빨리 아저씨를 데리고 가.”

남자는 저항하고 있지만, 그 도마뱀의 무게와 힘을 견딜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는 힘없이 이런 말을 내뱉는 게 전부였다.

“무슨 소리야!”

“너희가 다치는 게 싫어.”

“죽어서 도와주는 건 아무 의미 없어! 뭐든지 할 테니까 빨리!”

살아남는다고 하더라도 누군가의 희생이 동반되는 것은 싫다. 조급한 마음에 언성이 높아졌다. 도마뱀의 주둥이가 남자의 머리에 가까워진다.

이젠 틀렸다고 생각한 순간, 빛이 강하게 번쩍였다.

스칼렛은 주춤했다. 어두운 곳에서 갑자기 강한 빛을 보면 눈을 감을 수밖에 없다. 잠시 후 세상이 다시 어둠으로 덮이고, 눈을 떴다. 스칼렛은 눈을 의심했다. 도마뱀이 배를 위로 하고 뒤집힌 채로 버둥거리고 있었다.

남자는 그 옆에 서 있었다. 청록색 안광이 어둠 속에서 번뜩였다. 유물이라고 짐작한 건틀릿 모양의 물건은, 남자의 양 팔 위에 씌워져 있었다. 그 문양을 따라 기묘한 빛을 뿜어내고 있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저 유물은 온 힘을 다해 드는 것조차 힘든 무게였다. 하지만 지금은 저 남자의 손이 된 것처럼 자연스럽게 움직이고 있다.

거대한 손이 쓰러져 있는 도마뱀의 왼쪽 목을 강하게 붙잡았다. 그리고 들어 올린다. 남자는 그대로 도마뱀을 땅에 내다 꽂았다. 그 충격에 땅이 울리는 것이 느껴진다. 그 행동이 반복된다. 도마뱀은 바닥에 부딪힐 때마다 경련하며 기괴한 소리를 흘렸다.

도마뱀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 채로 남자의 손에 매달려 늘어져 있었다. 온 사방에 푸른색 액체가 튀어 있다. 남자의 머리카락, 얼굴, 옷에도 선혈이 낭자하다.

지금 그의 표정에는 이성이 조금도 남아 있지 않다.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기계 같은 움직임이었다.

어딘가 공포가 느껴지기까지 한다.

그는 어두운 하늘을 올려다본다. 무엇을 보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시선은 구름 속에 감춰져 보이지 않는 희미한 달을 향한다.

남자가 다시 한번 팔을 휘둘러 도마뱀의 사체를 내치려 할 때였다. 스칼렛은 달려 나가 손을 뻗어 그의 등을 강하게 끌어안았다.

“이제 끝이야… 다 끝났어. 그만 해도 괜찮아.”

카테고리
#오리지널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