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림하리] 찬란
신비아파트 강림하리 팬픽/10년 후 이야기/모브 나옴 주의
10년 후 이야기
모브 나옴 주의
“어제 그 사람 봤어?”
“봤지! 하리 선배 남친! 잘생겼던데?”
“그런 남자애가 맨날 데리러 오다니 너무 부럽다~.”
모 대학 경찰학과에는 소문이 쫙 깔렸다. 3년째 쉬지도 않고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살뜰히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여자친구를 마중 나온다는 남자친구에 대한 이야기.
이 얼마나 로맨틱한가! 게다가 소문의 중심인 그 남자친구의 미모에 대한 묘사까지 더해져 부러움에 부러움을 샀다. 아마 미모 때문에 화두에 섰으리라.
남학생들은 관심 없는 척 틱틱거리다가도 얼마나 생겼기에 여학생들이 난리들인지 궁금하였기에 한번 쓱 봤다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기가 차듯 허-. 한숨 한번 쉬고 갈 길들 갔다.
그러니까, 그 여자친구의 동기들은 이미 질린 듯이 안다는 눈치였고 잘 모르거나 막 흥미를 갖기 시작한 이들은 신입생이나 복학생뿐이었다.
싹싹하고 씩씩한, 환한 햇살과도 같은 구하리에게 흑심을 가지고 접근하던 사람들도 그에게 어마무시한 애인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포기한 적이 한둘이 아니었다.
게다가 성장하면서 더 사랑스러워진 하리였기에, 강림은 불안한 마음을 겨우내 감춰 담아내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중이었다.
그렇게 제 연인을 필사적으로 견제하며 지키려 한 강림의 의도대로인 줄 알았다.
거의 말이다.
*
수업이 끝날 즈음 학교에 도착해서 하리를 기다리는 강림을 보고 관심을 가진 사람들은 그에게 먼저 다가가기도 하였으나 그때마다 매몰차게 거절당했다.
차가운 무표정으로 거부하는 얼굴이 순식간에 온화하게 풀어지는 순간을 목도한 건 그의 짝이 마침내 나왔을 때뿐이었다. 그제야 수작자들은 포기하고 돌아서 갈 길을 갔다.
그런 강림의 모습을 모르는 하리가 아니었다.
늘 가슴 깊이 자리한 의문이었다. 자신보다 잘난 사람들은 차고 넘치는데 왜 그들에겐 눈길 한 번을 안 주고 오롯이 저만을 봐주는지.
허나 강림이야말로 불안했다. 하리가 자신을 두고 다른 이를 구하러 떠나갈까 봐.
나에게 해준 듯이 다른 사람에게도 이렇게 해 줄까 봐.
그럼 질투에 자신을 잃어 무슨 짓이라도 해 버릴까 섬찟하고 서글펐다.
묻자. 티 내지 말자. 곤란해지고, 상처 주고 종국엔 괴로워지니까.
미성숙한 배려를 하는지 안 하는지도 모르고 같은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두 사람이었다.
폭풍이 일으킨 빗물에 휩쓸려 묻은 것이 다 파헤쳐지기 전까진 말이다.
그 폭풍의 눈은 문제의 복학생 최민호였다.
그 누구도 그에게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꺼려했다고 하는 게 맞았다. 입학 전부터 유명했던 꼬리표처럼 따라다닌 소위 말하는 ‘귀신 들린 애’, ‘저주받은 애’ 였으니까.
급기야는 괴롭힘마저 당하던 어느 날, 그런 그를 내버려 둘 수 없었던 구하리였다.
태양빛이 미치지 않는 땅구석이 없듯이, 구하리는 동떨어진 이를 외면하지 못했으니까.
만류하는 동기들의 말을 가볍게 무시하고 구하리는 다가섰다. 늘 그랬듯이.
바야흐로 시발점이었다.
동시에 그의 동공에 하리가 비쳐 차오르기 시작한 시점도 그때부터였다.
“다 큰 사람들이 유치하게 뭐 하는 거예요? 애들도 안 이래요. 가요.”
“아, 저…”
“하, 구하리. 너 그러다 저주받음 어쩌려고?”
“저주는 당신네들이 받게 생겼네요. 하는 짓 보니까.”
뭐야? 야! 구하리! 후배에게 밀려 분해 길길이 날뛰는 못난 선배에게 쫄지도 않고 민호의 손을 잡아채고 같이 수업을 들으러 가는 하리였다.
“저기.. 너 이러다가…”
“저주받는다고요? 푸핫, 전 괜찮아요! 걱정하지 마세요. 저주니 귀신이니 뭐니 그런 거 하나도 안 무서우니까."
그렇게 단단한 대답은 처음으로 들어봐 어쩐지 마음이 놓이는 최민호였다.
생애 처음으로 자신에게 먼저 다가와준 첫 사람으로부터 쏟아지는 호의가 버거우면서도 ’ 이것이 행복하다는 거구나‘ 하며 최민호는 점차 깨우쳤다.
어릴 때부터 귀신과 그것들이 주는 환영과 환청에 시달려 왔다. 그러나 하리와 있는 순간에는 전혀 그러지 않고 오히려 평안했다. 그 애가 주는 안심과 다정함이 좋았다.
그렇게 정체 모를 혼란스러운 감정이 똬리를 틀어만 갔다. 어떨 땐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가 버릴 것 같다가도 속에서 울렁울렁 거리는 게 요상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챙김 받는 날이 갈수록 알았다. 하리의 다정은 자신만의 것이 아니란 걸.
그 애의 마음속엔 다른 사람이 자리하고 있단 걸 얼마 지나지 않아 싫어도 알아버렸다.
하교하며 건물을 나서는 하리를 발견하고 동행을 청하려 했으나 저에겐 절대 보여주지 않았던 미소로 활짝 웃으며 달려가 다른 남자에게 안기는 걸 목격했다.
최민호의 가슴속 깊은 곳에서 추잡한 질투의 구렁이가 대가리를 들었다.
*
“그 사람, 누구야?”
”아, 복학한 선배.”
“근데 왜 너랑만 다녀?”
역시 최강림 아니랄까 봐 눈치는 진짜 빨랐다.
“그게.. 그 사람이 예전부터 귀신을 봤다는데 그게 소문이 잘못 났더라고.”
“… 그랬구나.”
.. 방금 엄청나게 할 말을 삼킨 거 같은데.
잠깐이었으나 서운함이 스쳐 지나간 걸 하리는 보았다.
“하, 학교 적응할 때까지만 같이 다녀주려고!”
“한 달 다 되어가잖아.”
“그..렇지… 그런데도 아직 친구가 안 생기더라고 하하, 하…”
이거 질투 맞는 거 같은데. 하긴 그 선배, 못생긴 건 아니니까… 아니다, 남자면 다 경계하는 게 맞지.
이런 때일수록 최대한 빨리 안심시켜 줘야 한다.
“그 선배랑 나는 아무 사이 아니니까 신경 쓸 필요 없어, 강림아.”
조금 기분이 풀린 걸까. 굳었던 눈꼬리가 풀렸다.
“고마워.”
그러며 더욱 꽉 잡아오는 강림의 손이었다.
“그 선배, 내가 만나볼까? 도와줄 수 있을지도 몰라.”
“정말? 괜찮겠어?”
“응.”
이때까지만 해도 반갑지 않은 만남이 그리 성사될 줄은 몰랐다. 그것도 아주 최악의 방식으로.
*
“그동안 하리 곁에 있으면 괜찮았던 이유가 뭔 줄 알기나 해? 내 영력 때문이야.
나한테서 옮겨간 힘의 기운에 가까이 있었으니까 귀신들이 못 다가온 거야.
그것도 모르면서… 하, 됐어.”
“다 된 거야, 강림아?”
“응. 봉인했으니 나중에 해결하면 될 거야. 일단은…”
”알았어. 이 인간 집에 데려다주고 올게.”
“부탁할게, 신비야.”
여태껏 무슨 일이 있었냐고? 최민호는 악귀에 홀려 두 사람을 미행했었다.
두 사람은 주중에는 하리네 집인 신비아파트에, 주말에는 강림의 집으로 갔는데 그날은 월요일이었고 강림은 하리를 집까지 데려다주었다. 그 둘의 모습을 본 최민호의 추악한 질투가 증폭하여 악귀의 먹이가 되었고 위협의 불씨가 되려던 찰나였다.
“구하리, 여기 살아?”
“선배가 여길 어떻게?”
“…”
“설마, 미행한 건가? 아까부터 느껴지던 기운이 너였군.”
”뭐?”
“하, 이게 아주.. 후배 남친이면 다냐? 너?”
“그래, 너. 뭘 붙이고 여기까지 온 거야.”
”그게 무슨 말이야, 강림아?”
“됐다, 너랑 할 말 없어. 구하리. 너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왔어.”
“선밴 또 무슨 말이에요?”
“.. 좋아해, 하리야.”
맨홀 속에서 애들 왔는갑 보다 하고 마중 갈려던 참에 외부인과의 대화를 듣던 도깨비들도 어이가 없어지고 하리와 강림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둘이 사귄다니까? 이미 임자 있는 사람들을 앞에 두고 저 인간은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나자빠졌어?
“… 허.”
제일 먼저 기가 찬 강림이 실소를 했다. 여기 하리 남자친구가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
“나한테 잘해주는 사람은 너밖에 없었어. 네 덕분에 학교 다니는 것도 즐거워졌고 하루하루가 기대되기 시작했어.. 네가 날 벼랑에서 구해준 거야… 좋아해, 구하리…”
저게 뭐라는 거야. 하리는 날 먼저 구해줬는데. 실시간으로 강림의 얼굴은 동장군처럼 굳어갔다.
“죄송하지만, 여기 있는 강림이가 제 남자친구예요. 선배 마음은 못 받아줘요.”
“뭐? 그냥 친구가 아니었어? 반지도 없잖아?”
“아니, 반지 없다고 사귀는 거 아니에요?”
슬슬 하리도 화가 올라왔다.
“게다가 쟤, 무당이라며?”
“그걸 어떻게..”
“구하리, 정신 차려! 팔자 더러운 무당 놈이 너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을 거 같아?”
“일단 선배는 못할 게 확실하네요. 강림이한테 사과하고 당장 돌아가요. 다신 제 앞에 나타나지 말고요.”
“아니, 못 가.”
그때 검은 연무가 최민호에게서 뿜어져 나왔고 구렁이 형태의 악귀가 모습을 드러냈다.
두 사람이 도깨비와 친구에 10년 동안 귀신이란 귀신은 다 때려잡고 성불시킨 것도 모르는 물정 모르는 구렁이가 범들에게 까불었으니 말로는 정해져 있었다.
범이 구렁이의 목을 물었다.
*
이 소중하고 귀한 인연을 잘 지켜내자.
10년의 세월이 무색하지 않도록. 쌓아온 마음이 무너져 무로 돌아가지 않도록.
하지만 시간이 쌓일수록 의지는 집착으로 퇴색된 걸까? 하리에게 독점욕을 느끼는 자신을 발견할 때면 스스로가 혐오스러웠다.
이 끔찍한 집착이 끝내 하리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흔을 남겨 버리면 어찌할까 두렵다.
‘팔자 더러운 무당 놈이 너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을 거 같아?’
그 말만이 뇌리에 남아 울렸다.
아무리 악귀에 씌었다 할지라도 숙주 본연의 의지가 있었기에 그런 말이 나온 것이겠지.
생각할수록 기분 나빴다. 도대체 내가 무당인 건 어떻게 알았으며 그걸 무기로 쓸 발상을 했다는 거 자체가.
어머니는 나를 키우시면서 수치를 가르치시지 않으셨다. 당당하라고,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고, 자연스러운 것이고 세상에는 우리와도 같은 사람들도 있는 거라고 하셨으니 덕분에 나는 나를 숨기고 살지 않아도 되었다. 내가 당당하니 사람들도 받아들여 주었으니까. 그러나 세상엔 친구들과 같은 사람들만 있지는 않으니까.
어쩌면 나를 만나서 너의 운명이 험한 가시밭길로 얽혀 펼쳐진 것이면 어쩌지.
그럼에도 널 포기할 수 없는 내가 너무 징그러우면 어떻게 해야 하지.
나는 어리석어서 또 어리석음의 늪에 빠진다.
그러면 너는 또 나를 건져내려고 기꺼이 들어와 준다.
무엇도 모르는 타인의 말에 상처받지 말라 하며 기어이 함께 나눠 들어주고 미소로 치유해 주는 너를 난 아무래도 놓아줄 수가 없다.
너에게 미안해서 너를 사랑한다.
*
다른 사람들은 죄다 강림이가 매섭다고, 작게는 고양이부터 크게는 호랑이 같다고 하지만 내겐 덩치 큰 강아지만 했다.
어머님이 산중 칩거 수련 중이셔서 둘만의 공간이 되어버린 강림이네 집에 들르는 족족
요즘 들어 이렇게 품에 안고 안 놔주는 빈도가 는 거 같은데 기분 탓은 아닌 듯싶다…
애정표현이라고 또 얼마나 무얼 하는지, 손을 잡고 놔주질 않고 입술은 목덜미랑 얼굴에 귀마저 자꾸 지분거린다. 아니 이게 불쾌하다는 건 절대 아니라.. 좋은데… 너무 벅차달까, 응…엇비슷한 크기였던 손은 듬직하게 커져서 손아귀 속에 들어갔고 입술은 뜨거워 보이지 않는 낙인이 찍히는 것 같았다. 거기에서 흘러나오는 뜨거운 숨결은 귓바퀴를 자꾸만 간질여 가슴속이 간질여졌다.
내가 대학에서 다른 사람과 눈 맞을까 불안해서 그런가. 그럴 일 절대 없을 거라 수없이 안심을 여러 방식으로 시켜줘도 끝없이 불안한가 보다. 하긴, 내가 강림이라도 그럴 거 같다.
내 눈길은 이미 10년 전에 너에게 온통 빼앗겼는데도 말이지.
충분히 통감하고, 무엇보다.. 그 최강림이 나한테 이러는 게 싫진 않으니까…
모두가 어려워하는 애가 내 앞에선 무장해제를 하고 나만 아는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는 게 분에 넘치도록 기쁘고 행복하니까. 자기 사람이라는 소유욕을 오로지 나한테만 드러내니까.
그러는 나야말로 네가 다른 사람에게 빠질까 봐 노심초사한 세월이 10년이 넘었는데.
10년이면 믿을 때도 되지 않았을까.
그러면 이제 나를 너에게 맡겨도 되지 않을까.
우리에게 상처 주는 사람들과 같이 우리가 헤쳐나갈 시련들을 너와 함께하면 괜찮을 거란 생각이 들어.
그리고 나는 네가 무엇이라도 상관없어. 너의 있는 그대로를 좋아하니까.
많이 좋아해, 강림아. 너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을 만큼.
*
“하리야.”
모처럼의 주말. 강림이네 집이었다.
두 사람은 어김없이 강림의 주도로 얼싸안아 앉고 그런 강림은 하리의 왼손을 양손으로 잡아 만지작거리던 중에 그가 말했다.
“왜?"
”너 졸업하면 우리 같이 살까?”
“뭐, 뭣. 뭐!?”
“혹시 싫어?”
“아니, 아니. 싫을 리가 없잖아..! 그, 너무 갑작스러워서…”
그때 강림이 품속에서 뭔갈 꺼냈다.
한 쌍의 반지가 든 작은 보석함이었다.
그걸 본 하리가 반사적으로 놀라 뒤돌아 강림을 쳐다보니 그는 쑥스럽단 듯 웃었다.
“언제 이런 걸..”
“조금 됐는데, 용기가 없었어. 근데 이젠, 괜찮아서.”
강림의 손이 미세하게 긴장으로 떨리고 있었다.
정말이지, 악귀들도 때려잡는 그 강한 퇴마사가 맞나, 웃겨서 저도 모르게 픽 웃음이 새어 나왔다.
“왜.. 웃는 거야…”
귀까지 빨개졌어. 귀여워.
“그냥, 귀여워서.”
부드러운 검녹색 머리칼을 양손으로 부비부비 문질러 쓰다듬었다.
“그러면 안 되는데…”
“그래그래, 멋있어.”
“거짓말. 구하리.”
“정정. 귀엽고 멋있어.”
너 진짜-.
장난스레 키득거리는 하리마저 사랑스럽다는 듯 금방 표정을 푼 강림이었다.
“이 반지가.. 어쩌면 자유롭게 살 수 있는 너를, 나보다 더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는 널 묶어버리는 거면 어떡하나 그런 생각이 들어서… 그게 무서워서 주지 못했어. 하지만 이젠 아니야.”
강림은 함에서 더 크기가 작은 반지를 꺼내 건네며 오랫동안 하고 싶었던 그 말을 마침내 하였다.
“나랑.. 결혼해 줄래?”
대답은 바로 들을 수 없었다. 구하리가 최강림의 목에 양팔을 두르고 자신 쪽으로 끌어당겨 둘은 바닥으로 엎어졌다. 그 와중에 하리 머리가 다칠세라 반사적으로 큰 손을 펼쳐 받치고 반지도 사수한 강림이었다.
따뜻한 숨결이 겹쳐 공집합을 허공에 그려내는 거리였다.
“물론이지!”
이날의 일을 회고하며, 강림이 본 하리의 미소는 가장 해사했다고 자신할 수 있다.
댓글 1
출근하는 새우
너무너무 재밌었어요.... 강림아 하리야 행복하렴........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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