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만남
게토고죠 인간x인어 AU
그 해 여름은 유독 맑았다.
때때로 저 푸른 하늘이 땅 위의 모든 것을 집어삼키진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너와 만난 건, 그런 여름의 어느 날이었다.
"……."
매끄럽게 마모된 바위 사이로 철썩이는 파도.
그 위로 보석처럼 흩뿌려지는 눈부신 햇살.
그리고 나를 지켜보던 한 쌍의 눈동자.
들켰다는 자각을 하기도 전에 마주한 밤색 시선은 지금껏 느껴본 그 어느 것보다 따스하고,
날카로웠다.
"…뭍사람."
내가 입을 열자 밤색 눈빛에 호기심과 놀라움이 뒤섞였고, 곧 경계심을 내비치며 네가 입을 열었다.
“너는, …주령? 특급인가?”
"그게 뭔데?"
“그러니까, 저주 같은….“
내 질문에 네가 당황하며 나를 빤히 살펴보더니, 고개를 갸웃거리며 중얼였다.
“그렇다기엔 기운이, 탁하지 않은데.“
"저어주우~? 날 뭘로 보고! 난 명인 (溟人)이라고. 명! 인!"
명인? 처음 들어보는 단어에 입을 벌린 채 되묻던 네 표정은 혼자 보기 아까울 정도로 웃겼다.
"…그러고보니, 너희는 날 인어라고 부른다지? 지독히 차별적인 단어. 마음에 안 들어."
“인어, 라고….”
네 표정은 아직 벙쪄 있었지만, 인어라는 말에 다시 네 시선이 나를 샅샅이 훑어보았다. 그 느낌이 싫진 않지만 다소 낯설어서, 눈살을 찌푸리며 핀잔을 줬다.
"그렇게 빤히 쳐다보는 거 실례야, 너."
“아, 미안. ”
이젠 팔을 뻗으면 닿을 정도로 가까이 다가온 네가 머쓱하게 웃으며 주저앉았다.
“인어…. 명인이란 종족이 실존했구나. 구전으로만 전해지던 환상의 종족이라 생각했어.”
"뭐, 이젠 우리도 몇 안 남았으니까. 그마저도 너희 때문에 점점 더 깊은 곳으로 도망쳐야 했고."
“음, 그건 우리가 미안해.”
너는 나긋하게 웃으며 농담처럼 사과했고, 난 그런 네 목소리의 울림이 마음에 들었다.
"너, 이름은?"
“게토 스구루. 주술사야. 너는?“
"고죠 사토루."
“그렇구나, 사토루.“
네 입에서 나온 내 이름은 낯설었다. 그리고 그 날 처음 본 티 없이 맑은 한낮의 하늘과, 처음 느꼈던 바람 소리를 닮았다고 생각했다.
"어젠 널 본 적이 없는데. 여기서 뭐 해?"
“아아, 사전 조사를 하고 있었어. 이 부근에 퇴치해야 할 주령이 있다길래.”
"아까 말한 저주? 어떻게 생겼는데?"
“음, 대충 이렇게 생긴 것들.”
넌 어깨를 으쓱이며 네가 다루는 주령들을 꺼냈다.
“…보여?”
네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렴, 보이다마다. 기괴하고 오싹한 기운을 두른 찌꺼기들. 종종 얕은 바닷속을 헤집고 다니는 걸 혼쭐을 내준 적이 있어 익숙했다.
"그거라면 여기가 아니라 더 북쪽. 절벽처럼 가파르게 깎인 바위가 있는데, 거기에 꽤 큰 놈이 어슬렁거리는 걸 봤어. 뭍이라 쥐어패주진 못했지만."
“이런, 역시 길을 잘못 들었던 거네. 역시 보조 감독과 같이 왔어야 했는데….“
"…근데 너, 날 이딴 것들로 착각했단 말이지? 내가 어딜 봐서 그 못생긴 것들로 보이는데?"
“하하, 미안, 미안. 주령은 워낙 다양하고, 개중엔 사람이랑 구분이 안 가는 것들도 있어서 말이야. 알려줘서 고마워, 이제 그건 내가 처리할게.”
"조심해. 그거 꽤 이상한 술수를 부리는 것 같았어. 어제만 해도 인간을 두 명이나 바다에 빠뜨렸단 말이야. 내가 건져두긴 했지만."
“…어쩐지, 어젠 인명 피해가 없었다던데. 네가 구해준 거구나?”
나를 바라보는 네 시선이 조금 더 따뜻해진 느낌에 나도 덩달아 미소를 지었던 것 같다.
“그래도 걱정 마, 난 꽤 강하니까.“
그렇게 말하는 네 눈매가 시원시원하게 접히며 웃는 모습이 예뻐서, 돌아서려는 너에게 손을 뻗어 옷자락을 잡아버렸다.
"그걸… 퇴치하고 나면, 이제 여긴 안 오는 거야?"
“어, 아무래도 그렇지?”
내가 널 붙잡을 줄은 몰랐던 걸까. 넌 당황하며 다시 주저앉더니, 또 부드럽게 웃으며 말을 건네왔다.
“내가 다시 여기로 왔으면 좋겠니? 사토루.“
"어. 난 네가 마음에 들어. 그러니까 다시 날 만나러 와. 어떤 바닷가에서든 내 이름을 부르면, 곧바로 찾아올게."
“그래, 사토루.“
정면에서 마주한 밤색 눈동자가 곱게 휘어졌다가, 이내 미련없이 멀어졌다.
오전 내내 따끈하게 달궈진 바위에 턱을 괸 채 내가 알려준 곳으로 향하는 네 뒷모습을 빤히 바라보다가,
일렁이는 물거품 사이로 몸을 던졌다.
그날 밤, 은은한 달빛이 해수면을 밝히던 시각.
"…그러게, 이름을 부르라니까. 어휴."
널 바닷속에서 건져내며 혀를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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