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레노아 플레베크] 너의 의미

21.04.15 작업 완료

※ 공백미포함 2,024자.

※ 2021.04.15. 작업 완료

 

 

 

 

너의 의미

  

 

 

 

 

 

 

1.

 

레노아 플레베크는 여전히 수동적이었다. 중요한 것은 혼자서 결정하지 못했다. 그건 선도부장 선거도 마찬가지였다. 선도부장을 잘 할 자신도 없고, 누가 나가보라고 한 게 아니니 나갈 생각도 없었다. ‘출마해서 당선이 안 되면 부원이 된다나~…. 한번 해봐.’ 라는 에밀리아의 그 말이 아니었다면.

그는 여전히 선도부장에 욕심은 없었으나 선도부원은 하고 싶었다. 이유는 생활기록부에 적힐 몇 문장도 아니었고, 학교에서 줄 다양한 혜택도 아니었다. 글쎄, 거창한 게 필요한가? 그냥 재밌어보여서! 하지만 레노아 플레베크는 여전히 두려웠다. 내가 나가도 되나? 하는 그런 두려움. 연설이야 발표한다고 생각하면 할 수 있을 것 같긴 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자신이 없었다. 언니 체렌 플레베크에게 찾아가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다. 나가지 말라거나, 나가보라는 등의 결정을 요청하기 위해서였다. 출마를 하는 게 조금 부끄러웠지만, 언니가 긍정적인 답변을 준다면….

 

“글쎄. 네가 하고 싶으면 하는 거지.”

 

하지만 체렌은 그리 말하며 레노아의 머리를 쓰다듬을 뿐이었다. 고등부인 그는 향후 진로문제로 꽤 바빴고, 다시 도서관으로 사라져야만 했다. 둘의 대화는 그게 끝이었다. 혼자 남은 레노아는 언니가 쓰다듬어준 머리를 매만지다가 멍하니 중얼거릴 뿐이었다. 그럼 나는 어떻게 해야 해? 결국 원하는 답은 얻지 못했다. 돌아온 레노아는 또 고민을 했다. 하고는 싶은데… 나가도 되는 거야? 하지만 나중에 후회하게 되면 어떡해. 입후보 마감 시간까지는 아직 남았으니까 조금 더 고민해볼래. 그렇게 내내 고민하다가 데드라인을 놓칠 줄은 꿈에도 모르고. 바보같이.

 

2.

 

결과만 말하자면, 레노아 플레베크는 정말 괜찮았다. 물론 당시에는 나 자신이 너무 한심하고 그랬지만, 선거인단까지 직접 모을 자신은 없었기 때문이다! 세상에, 상상만 해도 너무너무 민망해! …같은 이유로 괜찮았다. 물론 선도부장과 선도부원이 된 친구들이 부럽지 않았냐고 하면 그건 또 아니지만 레노아 플레베크는 꽤 빨리 털어냈고, 제 표를 던질 때도 꽤 신중히 했으며, 선도부가 된 친구들을 진심으로 축하해줬기 때문이다.

 

3.

 

그리고 네가 이렇게까지 해줬는데 어떻게 괜찮지 않을 수가 있겠어.

 

4.

 

레노아 플레베크에게 뮐레 롱은 부드럽고 선한 사람이었지만 그와 동시에 어째 불안한 사람, 생각보다 덜렁대는 사람, 허당… 정도로 요약할 수 있겠다. 그도 그럴 것이, 분명 옷매무새를 정리하고 있었는데도 안 하느니만도 못한 상태가 되어버리거나, 머리를 빗고 나왔다고 했는데 평소보다 더 부스스하다든지, 다음 날 챙겨야 하는 준비물이나 숙제는 까먹기가 일쑤였고…. 음, 더 말하면 입 아프니 생략하도록 하자.

시작은 뮐레가 평소보다 산발인 머리를 가리켜 ‘오늘은 머리가 잘 정돈된 것 같아!’ 하는 혼잣말을 들었던 것이었다. 객관적으로 봐도 전혀 아닌 것 같은 상태를 레노아 플레베크는 차마 지나칠 수 없었고. 그 때부터 레노아 플레베크는 소위 말하는 오지랖으로 그를 챙겨주기 시작했다. 이 관계를 정의내린다면, 아마도 To-do list check! …그게 싫다는 뜻은 아니다. 그게 아니었다면 레노아는 지금도 뮐레에게 낯을 가렸을 것이다. 그러니 뮐레의 그런 점들은 레노아가 그와 친해질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준 것-으로 봐야 적절할 것이다. 하지만 종종 걱정이 들기는 했더랬다. 누가 안 봐주면 그는 여전히 덤벙댈 것 같아서. 조금은 물가에 애 내놓은 부모 심정이 되어 그를 보곤 했다.

 

5.

 

하지만 이제 걱정은 한시름 덜어도 될 것 같아. 내가 괜한 걸 사서 걱정하고 있었구나- 싶더라고.

 

6.

 

레노아 플레베크가 시무룩했던 이유는 미련과 아쉬움 때문이었지, 절대 남에게 동정을 받거나 위로를 받기 위한 목적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을 자책하고 있었다. 자기 자신이 너무나도 바보 같았다. 옆에 뮐레 롱이 다가오니 더 그랬다. 내가 우습게 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다. 평소에 이것저것 챙겨주던 주제에, 정작 본인이 중요한 걸 확인하지 못해 놓쳐버렸으니. 물론 뮐레가 그런 모진 위인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었으니, 그것은 오롯이 레노아 플레베크가 자학하다 못해 펼쳐진 망상이었다.

그래서 그는 혼자 상념에 젖어있느라 뮐레가 무슨 표정이었는지, 무엇을 하러 사라진 건지도 제대로 보지 못했다. 상황 파악도 제대로 못한 상태에서 뮐레가 이불을 가져왔고, 어안이 벙벙한 채 고개를 끄덕였더니 어느새 이불로 돌돌 말아져있었다. 그러더니 곧 토닥임을 받기 시작했다. 뮐레 롱이 그의 기분을 나아지게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정말로. 그 자체만으로도.

 

7.

 

네가 싸매준 이불은 너무 꽉 말아지긴 했지만 포근했고 따뜻해서, 꼭 네가 안아준 것만 같았어. 과장되게 말하면… 울어버릴 뻔했어! 토닥여주는 네 손길도 부드러워서 선도부장 입후보가 뭐가 중요하냐고, 그렇게 생각해버렸지, 뭐야. 내가 언제 뮐레에게 이런 위로를 받아보겠어… 싶어져서. 이런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 그런데 의자는 또 어디서 가져온 거람? 못 말린다니까, 정말로. 하지만 그런 것도 좋아. 그러니 너도 마음껏 누려. 무려 이! 레노아 플레베크가 실수해서 기 죽어있는 광경은 흔하지 않을 테니까!

 

8.

 

레노아 플레베크는 뮐레 롱에 대한 생각을 조금 바꿨다. 어째 불안한 사람, 생각보다 덜렁대는 사람, 허당. 하지만 부드럽고 선한 사람. 그리고… 따뜻하고, 믿을 수 있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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