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레노아 플레베크] 너와 함께한 소풍

21.04.21 작업 완료

※ 공백미포함 2,011자.

※ 2021.04.21. 작업 완료

 

 

 

 

 

 

너와 함께한 소풍

 

 

 

 

 

 

 

 

 

 

1.

 

레노아는 뮐레를 따라 천천히 걸었다. 그가 안내해주는 곳은 어떤 곳일까, 기대감 어린 눈빛으로 주변을 찬찬히 둘러보면서. 바람은 살랑이고, 햇빛은 따스하고, 어쩐지 간지럽고. 정말 소풍 나온 느낌! 6년이나 본 아카데미인데도 어쩐지 새로운 곳에 온 기분이었다. 졸리긴 졸렸지만, 신나는 게 더 컸다. 작게 콧노래를 흥얼거리는데, 어쩐지 뮐레도 그것을 듣고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 레노아는 허밍을 멈추지 않았다. 그래도 네가 보고 있다면 조금 부끄러웠을 것 같아. 자신이 그의 뒤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레노아는 뮐레의 뒷모습을 본다. 분명 중등부 때만 해도 이렇게까지 차이가… …아니지, 그 때도 크긴 했구나. 보정된 기억에 작게 웃으며 도리질했다. 어쨌든 언니보다는 컸던 것 같은데, 이제는 언니가 좀 더 작구나. 레노아의 기준은 언제나 언니인 체렌 플레베크였으나… 방금은 뮐레 롱이 기준이 되었음을 그는 눈치챘을까? 레노아는 이제 땅에 내려앉은 자신의 그림자를 본다. 내 그림자는 네게 뭐라고 말하고 있을까? 뮐레에게 딱히 숨길 만한 것도, 숨기려는 것도 없지만 어쩔 수 없이 궁금해지고 마는 것이다. 남들이 들을 수 없는 소리를 듣는다는 것은 참 굉장한 능력인 것 같아. 그러고선 시선을 옮긴다. 제 그림자보다 조금 더 크고 단단한 너의 그림자로. 그새 더 듬직하고, 믿음직하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구나.

 

2.

 

단순히 커진 키에서만 그렇게 느낀 것은 아니었다. 머리를 자른 덕인지 산발이 되는 일도 줄어들었고, 옷도 이제는 꽤 단정했으며, 무언가를 잊어버리는 일도 확연히 줄어들었다. 이제는 무려 자신의 생일을 알고 있지 않은가? …뭐, 그런 기질이 완전히 없어진 건 아니었지만 레노아는 그것마저도 좋았다. 그런 점이 여전히 뮐레다웠기 때문이다. 너와 나의 시작점이 그곳에서 시작되었듯이, 우리의 연결고리가 남아있다는 점이 레노아를 안심케 했다. 많이 자랐고 많이 변했지만 너는 여전히 내가 아는 뮐레구나, 싶어서.

조금 가파른 언덕이 나타나자 시야 안으로 손이 나타났다. 아, 잡으라는 거구나. 레노아는 거절하지 않고 웃으며 뮐레의 손을 잡았다. 저보다는 조금 큰 손은 따뜻했다.

문득 초반의 관계가 생각나 레노아는 웃었다. 그 때는 분명 내가 너를 챙겨주곤 했었는데 이제는 네가 나를 챙겨주는구나, 하고. 고맙고 기쁘지만 마음 한 구석에서는 네게 미안함을 가지고 있어서.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사과를 해야겠다, 그리 생각했다. 몸이 적응을 다 해서 더 이상 졸리지 않을 때. 그 때 사과를 해야겠다. 지금은 이 뒤바뀐 관계의 묘미를 조금 더 즐기고 싶었다. 그러니 레노아도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다, 라는 뮐레의 걱정은 할 필요가 없던 것이었다. 그는 지금 상황에 충분히 만족하고 있었으므로.

 

3.

 

“바로 앞에 저 나무야.”

 

이런 생각도 내 그림자가 뮐레에게 말해주려나, 이건 내가 직접 말하고 싶은데. 그런 생각들을 하고 있을 때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바닥을 보던 시선을 위로 올리자 쏟아져 들어오는 눈부신 햇살에 절로 눈이 찌푸려졌다. 잠시 후에 떠진 눈이 본 것은 커다란 나무 아래에 놓여있는 편평한 바위. 과연, 뮐레가 말한 대로 앉아서 무얼 하거나, 혹은 그 위에 낮잠 자기에 딱인 장소. 이런 곳도 있었구나. 느릿하게 주위를 둘러봤다. 바람이 불면 나뭇잎이 부딪치며 나는 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히고, 바람의 방향대로 춤추는 잔디들. 언덕 아래로는 아카데미의 풍경들이 보이고. 하지만 역시 그보다 더 마음에 들었던 것은 “나쁘지 않지?” 하며 웃는 너였다. 바람은 살랑이고, 햇빛은 따스하고, 어쩐지 간지럽고. 그래서 레노아도 활짝 웃었다.

 

“응, 정말 마음에 들어!”

 

하고.

 

4.

 

앉아서는 준비해온 음식들을 먹으며 시시콜콜한 얘기들을 했다. 이런 곳은 대체 어떻게 찾은 건지, 앞으로 진로는 어떻게 할 생각인지, 방학은 어떻게 지냈는지. 자신도 체력을 좀 길렀는데도 잠은 정말 못 이기겠다니, 너와 같이 탐사를 나가게 된다면 좋겠다느니, 우리 언니에게 너를 제대로 소개시켜주고 싶다느니 그런 얘기들을 하면서. 뮐레의 어머니가 체력장을 매일 시키셨다는 얘기를 들었을 땐 깔깔 웃어버렸다. 그래서 네가 이렇게 키가 커졌구나? 더 크겠는데~ 하면서 툭툭 옆구리를 찌르기도 하고. 그럼 이 밴드들은 체력장을 하다가 다친 거냐고 묻기도 하고.

그런 얘기들을 하면서 조금씩 먹다보니 어느새 샌드위치는 다 먹었고, 샐러드 역시 바닥을 보였다. 샐러드에 마지막으로 남은 연어는 뮐레에게 양보했다. 장소도 네가 안내해준 곳이고, 이렇게 많은 걸 챙겨온 것도 너이니 네가 먹어야 한다며 약간의 고집을 부리면서. 뮐레가 먹는 모습을 보고서야 그는 만족한 듯 웃었다. 남은 오렌지주스를 다 마셨더니 눈치 없이 하품이 나왔다. 하품을 해놓고 저가 더 놀란 눈치였다.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을 했지만 레노아는 꽤 민망했다. 평소라면 하품을 최대한 목 뒤로 삼켰을 텐데, 방심했던 탓이다. 배도 찼고 마음도 편안하겠다, 노곤노곤해진 몸의 반응은 정말이지 얄짤없었다. 몸이 이렇게까지 야속했던 적이 있었나. 마음 같아서는 당장 제어장치를 착용했을 텐데, 몸이 적응할 시간도 필요하다는 걸 안다.

아…. 오래는 못 버티겠어. 그리 생각하며 눈을 느릿하게 깜빡이고 있자니 자신도 졸려졌다는 뮐레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건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너를 놔두고 잠드는 것도 염치없고 무례한 일이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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