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피우는 방법
금마리/산나비 진엔딩 스포일러
-산나비 진엔딩 스포일러 주의
“꽃을 피우는 방법이 궁금하다고?”
응. 알려줘. 예쁜 꽃 심어서 아빠 보여줄래.
“그러면, 이거 하나 심어 볼까? 우리 마리가 직접 흙도 고르고, 화분도 선택하고, 물이랑 약이랑 비료도 직접 줘보는 거야.”
왜 이렇게 할 게 많아? 그냥 심으면 되는 거 아니었어?
“물론 그냥 심어도 자랄 수는 있어. 그런데 그냥 심고 내버려 두면, 마리가 원하는 예쁜 꽃이 자라긴 힘들지.”
알았어…. 그럼 흙부터!
“그래, 그래. 씨앗이 뿌리내리기 쉽게 부드러운 흙으로 하자.”
엄마는 그날 내게 꽃 심는 법, 그걸 돌보는 법, 물 주는 법을 가르쳤고, 나는 곧잘 기억하고 따랐다. 전해 받은 지식을 떠올리는 건, 내겐 숨 쉬는 것보다 간단한 일이었다.
다만, 그 순간 함께했던 엄마의 얼굴, 드러낸 표정과 목소리 같은 것은… 결국 폭음과 연기에 덮여 기억나질 않았다.
왜일까? 지식의 흔적은 이렇게 오래도록 남았으면서, 왜 기억의 유통기한은 이리도 짧은 걸까? 나는 아빠보다 엄마를 더 빠르게 잊었다. 엄마가 남겨준 유산은 전부 기억할 수 있었는데도. 어쩌면 아빠가 슬퍼하지 않도록, 점점 엄마의 이야기를 줄였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입 밖으로 꺼내고, 추억하지 않으면, 어떤 기억은 시간에 덮여 서서히 사라지니까.
머핀이 일어나질 않아, 엄마. 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 어제까지만 해도 나랑 같이 놀았는데….
“마리야, 머핀은 이제 긴 여행을 떠난 거야.”
여행? 왜? 머핀은 나랑 같이 노는 걸 제일 좋아한단 말이야. 말도 없이 이렇게 가버리면 어떡해!
“세상 모든 것은 언젠가 긴 여행을 떠나게 된단다. 머핀이 가장 먼저 여행을 떠났을 뿐이야. 저 먼 하늘의 야옹이별로 출발한 거지.”
야옹이별? 나도 갈래! 나도 갈 거야!
“우리 마리는 머핀이 떠나서 많이 외롭고 슬픈가 보구나.”
슬픈 거 아니야. 짜증 난 거야. 머핀이 말도 없이 갔잖아! 나랑 계속 놀았으면서!
“마리야, 모든 만남에는 끝이 있단다. 좋든, 싫든, 그것을 받아들여야 할 때가 와. 머핀은 우리와 오랫동안 함께했지만… 결국 끝날 때가 온 거야.”
엄마도 슬펐을까? 아마도 그랬겠지. 잘 기억나지는 않는데, 분명 그랬을 거야. 바쁜 아빠 대신, 내 친구는 엄마와 머핀이었으니까. 엄마도 마찬가지였을 테고. 내가 한창 감정을 구분하지 못하고 모든 걸 분노와 짜증으로 표현하고 있을 때, 엄마는 길길이 날뛰는 나를 앉히고 하모니카를 꺼냈었다. 엄마가 연주해 줬던 하모니카 곡들은 이제 다 먼 기억 속에 있지만, 이날 들었던 것만큼은 기억이 생생했다.
“옆에 앉아 봐. 엄마가 우리 마리에게 하모니카로 마법을 걸어줄 테니까.”
무슨 마법?
“마리가 더는 슬퍼하지 않도록 해주는 마법이지.”
슬퍼지지 않게 하는 마법은 정말 간단했다. 하모니카에서 지금은 질리도록 불러 기억하고 있는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당시엔 음악이 선물한 마법에 놀라워했던 것만 선명하게 남아있다. 듣자마자 짜증과 분노라는 이름의 슬픔이 눈 녹듯 사라져버리는 건, 마법과 다를 바 없었으니까.
이건 뭐야, 엄마?
“산나비라는 곡이야. 마리도 불러 볼래?”
응! 해볼래.
…난 왜 엄마처럼 안 돼? 엄청 쉬워 보였는데.
“처음 해보는 거니까 당연히 안 되지. 엄마 하는 거 잘 봐봐.”
엄마는 내게 몇 번이고 그 곡을 들려줬다. 나는 차갑게 식어가는 머핀을 무릎에 얹어 두고, 계속해서 하모니카를 연습했다. 다리가 저리고 팔이 아파질 때까지. 그럼에도 하모니카 실력은 그리 나아지지 않았다. 그때는 그게 그렇게 속상할 수가 없었는데, 생각해 보면 당연한 거였다. 악기라는 건 재능이 출중하지 않은 이상, 단숨에 배울 수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 내가 그 노래를 완벽하게 부를 수 있게 된 건 그때 이후로 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였다. 머핀이 묻힌 곳에 잔디가 뒤덮일 정도로 긴 시간이었다.
무정한 시간에 기억이 흐려져도, 살아남은 것들은 사금처럼 빛이 났다. 그저 다시 꺼내 볼 엄두가 나지 않았을 뿐이었다. 간혹 떠오르는 기억은 진귀하기도 했지만, 마치 사금파리 조각 같아서, 가슴을 콕콕 찌르는 것이기도 했으니까.
“아가씨, 진짜로 입대하실 검까? 게다가 저희 같은 요원이요? 차라리 정보부로 가시는 게 낫슴다. 아가씨 능력 생각하면 승진도 탄탄대로고….”
“사실 어릴 적부터 사슬팔 쓰는 군인이 꿈이었어서….”
“그러면 시험부터 힘들게 준비하셔야 할 텐데, 할 수 있겠슴까?”
“에이, 괜찮아요. 준비하면 되죠. 할 수 있어요. 아빠가 하는 것도 옆에서 봤는데요 뭘.”
언니의 걱정스러운 눈빛이 한번 훑고 갔지만… 결심은 이미 끝낸 뒤였다. 신청서도 냈고. 아마 시험 준비를 한동안 해야 할 것이다. 물론 시험 준비는 그날 이후로 꾸준히 했으니 상관없었다. 게다가 해킹 기술을 좀 보여주면 가산점을 받을 수도 있겠지. 이쪽 길을 선택한 건… 그저 옛날에 아빠와 했던 약속이 떠올라서였다. 아빠와 함께 모험을 나서겠다는 약속, 아빠가 슬플 때 하모니카를 불어 주겠다는 약속들. 그리고 군인이 되고 싶었다는 꿈도.
나는 이제 내 과거를 제대로 마주할 수 있다. 죄책감 때문에 외면했던 과거였지만… 제대로 된 작별이 주는 힘은 엄청났다. 아빠를 찾아다니던 긴 세월의 흔적이 지워지기엔 아직 멀었지만, 그래도 그 자리에서 한 걸음 걸어갈 수 있게 되었달까.
그날 이후, 옛 추억을 되살려 다시 심어본 꽃은 이제 볕 잘 드는 집에서, 따스한 햇볕을 받으며 자라나고 있다. 아직 싹도 제대로 틔우진 못했지만… 날이 좋으니까 꽃은 머지않아 피어나겠지. 그때 보지 못했던 꽃을 보게 될 때가 기다려졌다.
진엔딩에서 들을 수 있는 노래가사를 떠올리며 썼는데... 가장 넣고 싶었던, 좋아하는 가사는 못 넣었네요... 아쉽다
어쨌든 진엔딩 이후 시점이라고 생각해요. 사실 써둔 건 하나 더 있는데 딱히 올릴 만한 상태의 것이 아니라... 물론 이것도 그렇게 올릴 만한 것은 아닌데 아무튼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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