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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씨네 가족 총출동로그(?)
내용이 너무 간접적이고 길어서 그냥 요약해둠
이혼합니다
싱성식씨가 하나도 성장하지않음 썰.
내가 쓰고싶었던 부분은 쓰지도 못하고 폐기된 글<원래 글이라는게 그렇긴하죠……….
성하는 바빴다. 평소와 같은 하루를 보내는 것뿐이지만 누군가를 책임지는 사람은 언제나 바빴다. 딸인 지아를 학교에 보내고 텅 빈 집에 홀로 남아 키보드를 두드리는 하루. 남편과 별거를 다짐하고 나온 집은 좁지만 아직 어린 아이와 살기엔 나쁘지 않았고, 관리할 부분이 적으므로 오히려 쾌적했다. 이전에 살던 방 두개짜리 집은 셋이 살기에 넉넉한 공간이었지만 다 함께 살 수는 없는 곳이었다. 물론 그건 공간의 문제가 아니었지만. 성하는 잡생각으로 인해 멈춘 손을 가볍게 주무르고는 책상 한구석에 놓인 달력을 봤다. 아날로그가 편한 성격 탓에 언제나 빼놓지 않고 매년 사게 되는 물건 중 하나다. 달력에는 이미 지난 날짜에 표시된 부분이 선명하게 남아 성하를 괴롭혔다. 5월 5일엔 아빠랑 놀이공원에 가고 싶다며 졸라댄 지아 덕에 생각보다 빠르게 약속을 잡게 된 5월 16일의 만남. 보통은 한 달에 한두 번 간격으로 지아를 그 집에 보내곤 하지만… 이번엔 성하의 일정이 꼬이는 바람에 지아를 봐줄 사람이 필요했다. 남편이야 언제나 편한 대로 연차니 월차니를 내고 시간을 만드는 사람이었으니 어려운 부탁은 아니었다. 아무리 바빠도 지아와 관련된 약속은 꼭 지키기로 한 만큼 그날의 약속은 불변에 가까운 일정이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워크숍에 왔는데 일정이 미뤄졌어. 목요일까지 돌아갈 수 있을지 잘 모르겠는데?]
[갑자기 그런 말을 하면 어떡해? 12일부터 간다면서 무슨 회사 워크숍이 그렇게 길어.]
[그러게~아, 혹시 지아한테 정말 정말 미안해 🥺🥺🥺🥺사랑해💕💕라고 좀 전해줄래?]
[아니… 제대로 설명을 해줘야지 내가 납득을 할 거 아냐.]
[일단]
…
…
[성식씨?]
[성식아.]
[신성식]
[야!!!]
그렇게 휴대폰을 소파에 내던진 게 벌써 2주 전이다. 직후의 감정이야 어처구니없음에 가까웠다. 정말로 그 뒤로 아무런 연락도, 읽음 표시도 뜨지 않는 메시지 창을 보면서 성하는 다시 한번 그의 꽃밭에 발을 걸친 기분이 들었다. 분노가 뱃속을 괴롭혔다. 책임감이 없는 인간인 건 알고 있었지만 이런식으로 연락이 두절돼? 이 상황에서 무언가 불길함을 감지하지 못한 것은 남편에 대한 신뢰도가 낮아서였을 수도 있고, 사흘 내내 철야를 달려서였을 수도, 빼곡하게 세워진 계획이 틀어진 분노 때문이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 주는 별거 이후로 처음 맞이하는 ‘어째서 사람 몸은 두 개가 아닌 거지?’ 주간이었기 때문에, 이미 제 공간에서 사라진 지 오래인 남편의 부재는 성하의 머릿속에 오래 남지 않았다.
문득 이상함을 느낀 건 그가 메시지를 읽지 않은 지 일주일이 넘은 때였다. 불길함보다는 의아함이 먼저인 감정이었다. 아무리 그의 책임감에 대한 신뢰가 낮다고 해도, 남편이 가진 목적성에 대한 의욕 자체는 믿을 만했는데. 약속이 파투 난 와중에 일주일이나 연락을 잊을 리는 없을 거란 생각을 뒤늦게 했다. 그때부터 성하는 생각이 많아졌다. 이 인간이 결국 모든 걸 때려치우고 제 꽃밭을 따라 떠난 건지, 아니면 뭔가 단단히 잘못된 건지… 급하게 뉴스나 인터넷 기사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워크숍을 떠난 회사 대절 차량이 사고에 휘말렸다거나, 주로 워크숍을 진행하는 지역들에서 무언가 큰 사고가 일어났다거나 하는 내용은 없었다. 안도하다가도 그 때문에 다시 화가 치솟고. 다시 걱정하다가 그 걱정의 원인을 찾지 못해 안도하기로 하기를 반복했다.
성하가 다 때려치우고 제 삶을 살기로 한 건 남편이 연락 두절된 지 약 열흘째 되는 날이었다. 그리고 뉴스에서 나오는 회사 파업 소식을 흘려보냈다. 파업 영상에는 제법 익숙한 녹색 로고가 블러를 먹은 채 떠 있었는데, 어찌 보면 윤성하가 제 남편을 걱정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성식은 한가했다. 탈출 직전에 기절했던 그는 깨어나 보니 영 익숙하지 않은 병원 천장을 마주했고, 그는 그 불규칙한 패턴을 눈을 감은 채 하나씩 곱씹어 볼 수 있을 정도로 익숙해진 뒤에도 그 병실을 벗어나지 못했다. 교상, 타박상, 자상, 알 수 없는 이유로 얻은 화상에 관통상까지. 꿰뚫린 옆구리 탓에 실려 가던 수술실에서 어디 하나 부러진 곳 없는 게 그나마 다행이란 소리를 들은 성식은 그야말로 절대안정 상태의 환자로 침대에 누워있었다. 다행히 상처로 인한 감염은 적었고 다친 내장도 없었으며 봉합이 잘 된 옆구리와 등은 이따금 존재감을 알리는 것 외에는 얌전했다. 오히려 의료진을 당황케 했던 것은 누군가에게 목덜미를 물어뜯긴 자국이었는데, 선명한 이빨 자국과 찢어진 피부와 근육이 납치범인 사이비들에 대한 의혹을 강하게 만들었지만 신성식은 제시된 모든 걸 부정했다. …당연한 일이지만.
아무튼 신성식은 한가했다. 하루에 두어번 정도 상처를 확인하고 링거에 연결된 약을 교체하고 가끔 피를 뽑는 과정 외에는 신성식은 할 게 없었다. 모든 일이 있기 전 집에서 혼자 누워있던 때와 크게 다를 건 없지만, 한 가지 다른 점은 지금은 그 모든 일이 일어난 이후라는 점이겠지. 게다가 하루에 8시간은 꼬박꼬박 자던 그도 옆자리의 견인이 뿜어내는 공사장 ASMR엔 잠을 설칠 수밖에 없었으니, 그렇게 생겨난 시간은 모두 그가 생각하는 데 쓰였다. 그동안 외면했던 것들에 대한 생각이었다.
그리고 입원한 지 일주일이 되던 날, 성식은 태랑의 도움을 받아 성하에게 연락을 넣었다. 깨진 액정 탓에 연락을 넣을 수 없다는 이유로 차일피일 미뤄왔던 연락이다. 마지막 연락이 애매하게 간 뒤로, 화가 단단히 난 듯한 답장을 3주 만에 읽었다. 그리고 짧은 답장을 보냈다.
신성식은 지하에 있었다. 아무도 없는 지하에는 알 수 없는 방이 네 개 있었고 한쪽 면에는 강당으로 통하는 문이 보였다. 첫 번째 방문을 열자 지아가 자신을 반겼다. 자라지 않는 자신의 방을 언제나 신기한 듯 보다가 제 물건을 하나씩 가져다 두던 딸은 어느새 성식의 앞에 서서 손을 잡았다. 어린아이 특유의 작고 조금은 축축한 손바닥이 성식의 손가락을 감싼다. 스며드는 체온이 심장을 뛰게 한다. 신성식은 자신을 좋아해 주는 사람 밖에 마음에 둘 수 없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닫는다. 가볍게 쪼그려 앉아 시선을 마주한다. 분명 성하의 성격이라면 살가운 엄마는 되지 못할 테니, 지아는 웬만큼 크지 않는 이상 계속해서 자신을 좋아해 줄 거다. 그런 확신도 있었다. 하지만 신성식은 이제 알고 있었다. 그는 언제나 자신을 좋아해 주는 사람을 상처입히고 만다고. 그러니 아무도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게 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런 지하에 제 딸이 있을 리가 없지. 어느새 품에 안긴 지아의 온기가 선명했지만 성식은 이게 꿈임을 자각했다. 잠들기 전에 생각한 건 꿈에 나오기도 한다더니. 끌어안은 품에 힘을 주었다가 어깨를 양손으로 잡아 떨어트린다. 그리곤 말한다.
“아빠가 지아한테 많이 미안하네.”
끔뻑. 가볍게 눈을 감았다 뜨는 딸의 얼굴이 점점 흐려진다. 이런 말을 해본 적이 없으니 반응 같은 게 떠오를 리 없다. 이건 신성식의 꿈이니까.
성식은 이제는 텅 비어버린 방을 나와 바로 옆의 문을 열었다. 꿈을 자각한 만큼 처음보다 움직임이 시원했다. 그래서인지 지금 당장, 가장 필요한 사람이 눈앞에 서 있었다. 윤성하. 가장 오랜 시간 나를 사랑해 준 사람. 연애를 한 시간보다 친구로 함께했던 시간이 더 길었던 사람이다. 그저 친구로 남았다면 조금 더 오래 행복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 친구 사이에는 그보다 더한 책임감은 필요하지 않으니까.
하지만 정상성에 집착하는 두 남녀의 만남의 끝은 결국 결혼이라는 길로 들어섰고, 그 끝은 낭떠러지였다. 우정과 연애의 책임감 차이는 꽤 크지만, 연애와 가정의 책임감의 차이는 상상을 초월하는 일이니까. 필요한 책임은 끝없이 이어졌고, 커졌으며, 버거워지기만 했다. 둘 사이의 관계에서 오는 행복의 가치가 크다고 생각했던 시절에는 망해가는 소규모 회사에서 철야하면서도 버틸 만했던 것 같은데. 그것도 잠시, 결국 제 삶의 무게가 저울 위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하게 된 시점부터 성식은 아무것도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신성식은 결국 신성식이라서. 타인과의 행복이나 삶보다 자기 삶이 더 중요한 사람이었으니. 성식은 자신을 잃어가는 그 감각을 버티기엔 너무 약했다. 그 나약함과 이기심은 결국 책임의 포기를 낳았다. 가족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신성식의 이기심과 나약함 때문에.
괴로운 건 자신만이 아니었다. 출판사에서 일하는 성하나, 계획 없이 태어난 지아. 바쁜 와중에 임신을 하고 아이를 낳느라 괴로워하던 건 아내고, 필요한 일수를 채우지 못하고 태어난 건 지아다. 죽어가던 것도 지아고, 죽을 만큼 고통스러워했던 것도 성하였다. 그때 그는 어땠더라? 그저 움츠러든 아내의 등을 쓸어주며 낙관적인 말이나 하던 기억밖에 없다. 하지만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조금씩 깎여나가던 인간적인 책임감은 아이가 어느 정도 건강을 되찾은 이후로 완전히 무너졌다. 소위 말하는 ‘나도 힘들었어.’ 같은 쓸데없는 변명이었다. 신성식도 그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힘든 것은 모두였고 그것은 보통 책임을 버릴만한 이유가 되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그는 버렸다. 그게 신성식의 고질병이었다.
성하는 성식에게 할 말이 없었다. 그렇게 꿈속의 둘은 그저 서로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라서, 성식은 조용히 문을 닫았다. 그가 아내에게 할 말은 꿈에서 할 수 있는 종류가 아니었다. 현실의 일이다.
이쯤 되니 세 번째 방은 무엇일지 궁금해지던 찰나, 지하가 울리기 시작했다. 무너질 듯 진동하는 공간에서 성식은 중심을 잃고 넘어진다. 하지만 둔탁한 통증은 느껴지지 않았다. 무언가가 다리를 잡아끌고 추락한다. 창문이 깨지고 끌려가는 성식의 시선 끝에 문이 열린 강당의 내부가 보인다. 바닥에 쓰러진 다섯명의 인영이 검게 불타고 있었다. 그 너머에 선 것은 나무 형상의 동상이 아니라 자신이었다. 손에는 푸른 핵 대신 붉은 덩어리가 들려있었다.
성식은 생각했다. 나는 그때로부터 조금도 성장하지 않았다고. 고통을 견디지 못해 책임을 회피하고 제 안위만 생각하는 모습이 여전하지 않았던가. 우스울 지경이다. 자신은 괴롭고 싶어 하지 않는 주제에 언제나 타인을 괴롭게 하는 꼴이라니.
하지만 성식은 언제나 그 모든 이기적인 선택을 후회하지 않았다.
스스로 생각해도 언제나 그게 문제였다.
떨어지는 감각과 함께 눈을 떠보니 시간은 새벽 한시를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잠든지 얼마 되지 않은 그 찰나에 꾼 꿈이 그의 정신을 말똥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에 성식은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다리에 얽힌 이불을 치우고 무너질듯이 울리는 옆자리 청년의 코골이를 외면하자, 성식은 다시 한번 자신에게 너무 많은 시간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야 할 말이 있는데. 그 말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기엔 너무 이른 새벽이었다.
지아는 심각했다. 9살. 세상을 오래 살았다고 하기엔 어리고, 그렇다고 아무것도 모르냐고 하면 그것도 아닌 나이. 엄마 아빠가 따로 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진작에 알고 있는 이 아이는 학교 게시판에 그려진 달력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하나둘 셋 넷. 일주일, 열흘. 이주. 주말이 두 번 지나가고, 이만큼이 두 번 지나면 또다시 아빠를 만나겠다며 조르기 적당한 날이 되는 기간. 그만큼의 시간 동안 아빠가 사라졌다. 첫 날, 수업이 끝나고 집에 돌아와 보니 엄마는 소파에 널브러져 있고. 그 앞에는 화면이 켜진 휴대폰이 놓여 있었다. 아빠에게서 온 메시지에 하트가 붙어있는 건 나에게 하는 말이 분명하니, 엄마가 화면을 끄려는 것을 막고 내용을 알려달라 졸랐다. 그 때문에 삼일 정도는 토라져 있긴 했지만. 어쩔 수 없지. 만나기로 한 약속을 어기는 건 아빠답지 않다. 아무리 그래도 아이에게 아빠는 아빠였으니까. … 그래서일까, 지아의 불안은 엄마인 성하보다 빠르고 정확했다.
하지만 9살의 이야기를 누가 들어줄까? 아이가 입을 옷. 먹을 것. 필요한 물건들. 아이를 사랑하기 위한 모든 것을 제 손으로 마련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불안을 말해봤자 아무런 반응도 돌아오지 않을 거란 사실을 아이는 알았다. 아이가 느끼기에 엄마는 제법 딱딱한 사람이었고, 저 스스로가 납득하지 않으면 잘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기도 했으니까. 대신 아빠는 표면적으로나마 제 말을 들어주며 시선을 맞춰주던 사람이었으니, 아이가 모든 걸 눈치챈 뒤에도 아빠를 버리지 않기로 다짐한 이유기도 했다. 그런 아빠가 위험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9살의 인생에 꽤 큰 사건이었지만, 아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아직은 이르다는 이유로 컴퓨터도 휴대폰도 집에서는 만지지 못했다. 학교의 컴퓨터실을 사용해도 얻을 수 있는 건 없었다. 오늘의 사건 사고를 다룰법한 사이트는 학생 보호 목적으로 막혀 있었으니까. 그렇게 시간은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 채 흘러갔다.
그래서 그날. 엄마가 잠시 외출한다며 나간 뒤로, 해가 지지도 않았는데 돌아온 날. 왠지 힘없는 발걸음으로 거실에 들어와 멍하니 서 있다가 손에 든 가방을 소파에 내팽개친 날. 차마 애 앞이라 그 어떤 욕설도 하지 못하고 그저 머리카락을 쥐어뜯던 날. 결국엔 “이 개새끼가 진짜!!!!!!!”를 외쳐버린 그날. 지아는 모든 걸 짐작한 채 화를 식히는 엄마의 품에 뛰어들어 엉엉 울고 말았다. 아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아빠의 부재도, 그에 대한 걱정도, 그리고 이별조차도. 지아는 처음으로 누군가의 이기심으로 인해 오래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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