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팁재프] In the world of ice and fire

프라이배터 1~5편 백업

Sugar Song by 펠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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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팁재프 (사귀지는 않지만 할 거 다 한 사이) / 민첩한 날조, 선동, 캐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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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쫓아가세.”

크라우스가 말했다. 크라우스를 따라가기로 결정한 그날부터 스티븐은 크라우스의 말에 거의 따르고 있었기 때문에 이번에도 딱히 반박하지 않았다. 다만, 방법론적인 건 고민해야지.

“그래. 그런데, 어떻게 설득하지?”

“설득이라면…”

“방금 도망갔잖아, 창문을 깨고. 11층에서 뛰어내려서.”

유리가 완전히 박살 난 창문은 휑하니 바람을 그대로 통과시키고 있었다. 스티븐은 조금 속이 쓰렸다. 겨우겨우 구한 사무실인데. 구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자의로 여기 온 것도 아니고… 아니, 택배 상자 속에 쑤셔넣어져 있었잖아. 그런 사람을 대체 뭐라고 설득해야 하지?”

“음, 그래. 알겠네.”

크라우스는 크라우스다운 대답을 내놓았다.

“세계를 지키려는 우리의 목적을 밝히고, 가입을 권유해보겠네.”

스티븐은 은은하게 웃었다.

‘당장 쓸 수 있는 현금이 얼마 정도 있었더라?’

놀랍게도 크라우스가 정면으로 권유하는 일도, 스티븐이 현금 거래를 하는 일도 없었다.

재프 렌프로는 자신의 의지로 합류했다.

그 당시에 아직 이름도 붙어있지 않았던, 라이브라에.

 


 

“자네 스승님은…”

“네?”

스티븐은 무표정하게 물어봤다.

“제자들을 택배로 보내는 게 취미신가? 자네는 페덱X, 이번엔 항공운송.”

재프 또한 웃음기 하나 없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농담한 거죠? 스타페이즈 씨.”

“절반은.”

“절반은 진심입니까? 저는 저 녀석이랑은 다르죠, 저 녀석은 그래도 여기로 오는 줄은 알았을 거잖아요! 저는 그때 진짜 미치는 줄 알았다고요, 어디로 가는지도 전혀 모르겠고!”

“아…”

“누가 열든 다 죽여버리려고 했는데― 뭐, 보스랑 당신이 열었으니까, 그 정도로 끝났지만.”

비전투원이 그 당시에 없어서 다행이었군…

모두 퇴근한 사무실에는 그와 재프만이 남았다. 기절해버린 신입 회원은 일단 수면실로 옮겼다. 일반 침대뿐이지만 임시로. 특수한 그의 체질로 봐서는 따로 수조 탱크 같은 것을 마련해야 할 것 같다.

혈투신의 직제자다, 귀한 전력이지. 설비 정도의 투자는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그리고 스티븐은 새삼스럽게 재프를 바라봤다.

혈투신의 수제자, 이지. 하는 꼴이 영 엉망이라 잠깐잠깐 잊는단 말야.

“두류는 등장이 요란하구나.”

“걸레 영감에게 따지세요.”

“불평하려는 건 아니고.”

넥타이는 이미 풀어놨고 소매도 걷었다. 스티븐은 피곤한 몸을 소파에 묻으며 두 다리를 쭉 뻗어 커피테이블 위에 얹었다. 하루 종일 혹사당한 발이며 다리 전체가 비명지르고 있었다.

옆으로 가까이 다가온 재프의 손에 들린 시가를 빼앗았다. 한 모금만, 깊게 들이마시고 다시 돌려줬다. 피어오르는 독한 연기. 금연했지만 이렇게 다채로웠던 하루의 끝에는 가끔 니코틴도 나쁘지 않아. 얼마 남아있지 않았던 시가를 마저 피워버리고 재프는 커피테이블에 털썩, 앉았다. 그대로 자연스럽게 스티븐의 발에서 구두를 벗겨냈다. 말리려던 스티븐은, 차갑고 딱딱하게 굳어있던 발을 거침없이 주물러오는 따뜻한 손에 끄응, 낮게 신음을 흘리며 소파에 푹 기대어버렸다.

아직 씻지도 않았는데 만지는 건 좀 꺼려졌지만, 아프게 뭉친 곳만 기가 막힌 완급 조절로 풀어주는 손길을 거절하기엔 너무 지쳐있었다.

재프는 발 양쪽을 공들여서 마사지했고, 완전히 이완되고 노곤해진 채로 이대로 잠들고 싶다고 스티븐은 생각했다. 정말로 잘 것 같아서 소리 내서 말을 걸었다.

“전력이 늘어나는 건 언제나 환영이야.”

“저 녀석 저는 아직 인정 안 했습니다.”

“안 기쁜가?”

“기쁠 게 뭐 있죠?”

“바람이 왔잖아.”

너는 불이고.

발바닥을 누르던 손이 잠시 멈췄다. 곧 다시 움직였지만.

“써먹을 수 있는 놈인지 아닌지 모르잖아요.”

스티븐은 한쪽 입꼬리만 웃었다. 대 혈계의 권속 전이라는 게 언제부터 양과 질을 따졌지?

하지만 그런 말을 해봤자 당장은 반발만 살 뿐이라는 걸 아니까, 그 정도에서 화제를 바꿨다.

“낮엔 정말 놀랐어.”

“진짜로요.”

“그래, 너를 데려갈까봐.”

이번엔 정말로 손이 멈추고, 놓아졌다. 발은 충분히 따뜻해져 있었지만 멀어지는 체온이 아쉬워서 스티븐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뭐, 별로 걱정은 안 했어요.”

커피 테이블에 앉은 채로 재프가 상체를 구부려 이쪽을 들여다봤다. 둥글게 뜬 두 눈이 장난기를 담고 반짝인다.

“손에 들어온 걸 그렇게 쉽게 놓아주는 사람은 아니잖아요, 당신.”

―크라우스가 아니라 내 쪽을 믿은 건가?

제일 처음 든 생각은 그것이었지만, 말로 꺼내지는 않았다.

재프가 자리를 바꾸려는 건지 일어서자, 스티븐은 잽싸게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냈다.

“이거 물에 적셔와.”

“으응?”

“빨리.”

하, 기가 막힌 콧소리를 내면서도 재프는 순순히 탕비실로 가서 손수건을 물에 적셔서 가지고 왔다. 옆에 앉으며 건네는 재프에게서 손수건을 받아들면서 스티븐은 그대로 그 손을 닦아주기 시작했다.

자잘한 흉터로 가득한, 피가 멎는 날이 없는, 방금까지 자신의 발을 만지느라 먼지며 땀이나 굳은 피 따위가 묻은 그 손을. 왼손을 먼저, 손수건을 뒤집어서 그 다음엔 오른손을 마저 닦아주었다.

얌전히 손을 맡기고 있던 재프가 의아한 투로 물었다.

“그냥 닦고 오라고 해도 되지 않았슴까?”

스티븐은 삐딱하게 웃었다.

“무슨 소릴 하는 건가? 손 한 번이라도 더 잡아보려고 안달난 심정을 모르는 것도 아니면서.”

“아이고, 항복, 항복.”

손톱의 틈까지 모두 꼼꼼히 닦은 후에 손수건을 접어서 손에 쥐고 스티븐은 다시 소파에 등을 기댔다. 재프가 지포를 꺼내들고 무의미하게 달칵, 달칵 열고 닫았다.

“떠들썩해지겠어.”

“뭐어.”

재프, 네가 스스로 나가는 게 아닌 한 나는 너를 어디에도 보내지 않아. 사실, 네가 네 발로 나간다고 해도 허락하지 않겠지.

그 말도, 당연히 목소리를 내진 않았다.

“구두를 다시 신기 싫군…”

대신 그냥, 푸념이나 했다. 그다지 재밌진 않았던 것 같은데 재프는 하하, 크게 웃었다. 그러고는 일어서서 스티븐의 손에 들린 손수건을 쥐고 탕비실에 가서 한 번 더 씻어오더니 다시 낮은 테이블에 앉았다.

뜨거운 물에 빨아온 천으로 아직 그대로 드러나있는 맨발을 왼쪽부터 차례로, 양쪽을 조심스레 닦고 벗겼던 구두를 다시 신겨주었다. 익숙한 차가움이 살갗에 닿았다. 현실로 돌아가라는 듯이.

이번엔 스스로 마저 닦은 손을 재프가 내밀었다.

“자, 가요. 우리도 퇴근하죠.”

스티븐은 그 손을 잡고 일어섰다.

“가면서 뭔가 먹을까.”

“좋죠. 다이앤스 다이너?”

“햄버거와 스파게티 말고 먹을 걸 팔던가?”

두 사람까지 나서자 사무실은 텅 비었다. 닫히는 문 틈으로 복도의 빛과 대화 소리가 새어나온다.

“빵도 있고, 스프도 있고요.”

“아, 스프. 스프가 좋겠어.”

“그 집 양송이 스프가 진짜 맛있어요.”

찰칵, 그리고 정적.

 

 

 

 

2

 

 

“어어, 스타페이즈 씨 벌써 나가는 겁니까?”

위치는 붕괴된 「뉴욕」, 재조립되어 새롭게 명명된 「헬살렘즈 로트」.

장소는 임시 숙소. 정확히는 크라우스와 스티븐이 임시로 지내는 숙소이고 재프는 굴러들어왔다.

2 베드룸에 화장실이 하나뿐인 아파트는 둘이서 지내긴 나쁘지 않았지만 역시 다 큰 사내 셋이서 지내기엔 비좁고 불편하다. 어차피 오래 지낼 곳이 아니라서 당장은 괜찮다. 이 정도 환경은 나쁜 축에 들지도 못하고 말이다.

가방과 코트를 챙기고 현관을 나서려는데 소파에 누워있던 재프가 벌떡 일어서서는 외쳤다. 스티븐은 고개만 돌려서 실내복 차림의 재프를 바라봤다.

“어제 말하지 않았나? 회의가 있어. 무슨 일이지?”

“아~ 아니에요. 조심히 다녀오세요.”

‘다녀오세요,’ 그거 오랜만인데. 별거 아닌 인삿말인데도 뭔가, 좀. 잠깐 멈춰서서 무슨 용건인지 정도는 들어줄 마음이 생겼다.

“왜 그러는데?”

몸을 완전히 돌리고 가방을 잠시 내려놨다.

“아니, 진짜 아무것도 아니에요.”

“신경 쓰이게 하지 말고 당장 털어놔.”

“아니! 진짜! 아, 듣고 욕하지 마세요 그러면?!”

“욕 안 할게. 그러니까 말해.”

“오, 오늘은 안 만들어주시는 겁니까? 아침이요…”

“아침?”

“계란 토스트……”

이래서 약속을 함부로 하면 안 된다. 약속만 아니었으면 욕해줬을 건데.

스티븐은 손목시계를 들여다보며 시간을 한 번 더 체크하며 내려놨던 가방을 들어올렸다.

“그 정도는 알아서 해먹어. 재료도 다 있잖아.”

“하지만 스티븐 씨가 만들어주는 게 진짜 맛있단 말이에요!”

뭐야 그거? 상사한테 할 대사는 아니지 않아? 게다가 이 타이밍에 ‘스티븐’인 거냐?

시선을 되돌리니 다시 소파로 돌아간 재프는 무릎을 끌어안고 동그랗게 몸을 말고 있었다. 부끄러워하는 거야? 이걸? 저 녀석을 잘 모르겠는 건 알게 된 지 얼마 안 돼서인 건지, 아닌 건지.

“이래서 제가 말 안 하려고 했는데…!”

“아, 그러게. 내가 왜 물어봤을까. 이제 진짜 간다.”

“다녀오세요오…….”

그러니까, 그거 오랜만이라고.

 


 

벨을 눌렀지만 실내에서 아무 소리도 울리지 않았다. 아마 그새 연결이 끊긴 듯. 하긴, 3년이라는 시간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이 건물은 빠르게 노후화되었다. 주먹을 들고 잠시 고민하다가 스티븐은 그냥 발을 사용했다. 그쪽이 더 익숙하다.

쾅, 쾅!

크게 두어 번 걷어찼지만 여전히 감감무소식. 아예 박살을 낼까 하다가 그건 참았다. 이곳을 사용하는 녀석이 문을 수리할 돈 같은 게 있을 리 없으니까. 그러니 손잡이를 얼려서 부셔버리는 정도는 감안하길 바란다. 적어도 문짝을 뜯어내진 않았잖아.

실내로 들어가자 먼지 냄새가 훅, 났다. 스티븐은 익숙하게 창가로 가서 창문부터 열었다. 나름 몇 달간 살았던 곳이고, 그 후에도 여러 번 들렸다. 임시 숙소였던 이 아파트를 자신과 크라우스가 집을 구해서 나간 후로도 유지하고 있는 이유는 재프의 세이프 하우스로 기능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작 그 재프 렌프로는 왜 항상 침대를 안 쓰고 소파에 누워있는가, 그건 정말 의문이다.

“이봐, 재프.”

소파 팔걸이에 걸터 앉아서 스티븐은 담요를 덮고 있는 덩어리를 내려다봤다. 미처 덮이지 못한 은발을 만지려고 뻗던 손을 거둬서, 자신의 손가락만 만지작거렸다.

“퇴원하기 전에 연락하라고 했잖아.”

이번에도 약에 취해있었다면 정말로 화가 났을 텐데 그렇진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약에 취해있긴 했다. 진통제에.

뭉개지는 발음과 흐린 목소리로 재프가 대답했다.

“…제성함니다…”

“사과를 하지 말고 사과할 짓을 하지 마.”

“…티파니가 살인예고를 해와서 급하게 퇴원을 한 거라…”

“너의 그 황당하다못해 뇌세포 단위에서 이해를 거부하는 상열지사는 지껄이지 않아도 돼.”

재프가 담요 속에서 뭐라고 꿍얼거렸다, 너무해, 라고 한 것 같았다.

“너무한 건 너지.”

도대체가, 활동금을 조금 주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매번 받자마자 노름빚이며 온갖 대출 상환으로 순식간에 녹여버리는 거냐, 가불을 너무 많이 해서 금지당한 건 라이브라에 너밖에 없는 건 알고 있지? 그리고 어떻게 이렇게 매번 사고를 치고 병원에 입원하는 거냐, 병원비의 문제를 떠나서 그래가지고 몸이 성하겠냐,

그런 잔소리를,

절-대-로 하지 않겠다고 옛적에 결심한 스티븐 스타페이즈였기 때문에, 꿀꺽, 삼켰다. 용건만 간단히.

“일어나. 네가 필요해.”

“네에…”

기운 없는 몸짓으로 재프가 부스럭거리며 일어났다. 겨우 담요 밑에 숨어있던 모습을 보여주는군.

머리는 멋대로 뻗쳐있고, 편하게 입은 셔츠 한 장 차림에… 셔츠 한 장 차림이다. 그것도 분명히 자신의 것이다. 볼 때마다 적응이 안 된다.

맨다리가 욕실 쪽으로 사라지고 나서야 스티븐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재프! 빨리 씻고 나와.”

“예에―”

스티븐은 손목시계를 내려다봤다. 그래도 가는 길에 커피 한 잔 테이크아웃할 시간은 있겠어.

초스피드로 씻고 말린 재프 렌프로는 비교적 정신을 차린 얼굴로 평소의 차림새를 하고 거실로 나왔다. 가자, 하며 스티븐이 먼저 현관문을 나섰다.

“앗! 손잡이가!”

맞다, 그거 부쉈지.

“초인종이 고장났더라.”

“아아, 네에. 수리하기 귀찮았어요.”

“고쳐놔.”

“옛썰―”

계단을 내려가며 스티븐은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말했다.

“일이 끝나면 우리 집으로 가자.”

“아, 네.”

빠르게 내려가던 발을 멈추고 스티븐이 잠깐 뒤돌아서 올려다봤다. 하나도 귀엽지 않은 동시에 정말 너무 귀여운, 그 녀석을.

“해줄게, 계란 토스트.”

그러자 아직도 졸린 표정을 하고 있던 재프가 빛이 나듯 확, 웃었다.

“아자! 좋아요!”

정말이지, 너란 녀석 뭐가 이뻐서 내가 토스트를 해다 바쳐야 하는지 모르겠다.

인간관계는 풍비박산, 채무관계는 풍전등화, 애인관계는 만신창이.

정말이지 믿을 수가 없는 녀석이다.

나는 독점욕이 심한 남자야. 그래서 굳이 내 것을 만들지 않아. 너의 그런 모습들이 네가 내 앞에서만 보여주는 거란 생각도 하지 않아. 착각할 여지조차 주지 않잖아, 너는.

욕심내고 싶지 않다…… 요컨대,

매일 아침 계란 토스트를 만들어준다고 해서

네가 매일 밤 내 침대에서 잠들고 매일 아침 내 옆에서 일어나줄 리가 없으니까.

계단의 마지막 단을 내려서며, 스티븐은 짓고 있던 쓴웃음을 지워버렸다. 뒤에서 쫓아오는 부하가 따라잡기를 잠시 서서 기다렸다.

자, 오늘도 일이다.

 

 

3

 

 

뜨거운 훈풍이 불어온다. 방해물을 사르며 치솟는 불꽃. 주변의 모든 것을 잡아먹으며 몸집을 부풀리고 순식간에 앞질러 닿는,

인간의 송곳니.

“스타페이즈 씨―!”

저 멀리서 건물의 잔해 사이에서 하얀 머리가 불쑥 솟아올랐다. 이쪽의 모습을 확인하고서는 튀어나와서 빠르게 다가온다.

“괜찮습니까!”

이쪽은 살아있어, 덕분에. 그보다 저걸…

다시 재생을 시작하는 모습을 언제 확인했는지 피의 칼날이 하나 더 날아가 박히고선 화력에 박차를 가한다. 불길은 더욱 거세어지고 우리는 시간을 더 벌었다.

두류혈법의 「불」, 처음 봤다. 가까이 다가오는 재프 렌프로를 옆으로 올려다보며 콘크리트 사이에 처박힌 채 스티븐은 웃음을 흘렸다. 피가 부족해서 약간 가물거리는 정신으로.

“불꽃의 기사님 등장이네…”

“네? 뭐라고요?”

다가온 손길이 스티븐의 머리통을 가볍게 탐색하고 떨어졌다.

“괜찮은 거 맞아요? 머리 다친 덴 없는데. 이거 몇 개로 보여요?”

확인 고오맙다.

“셋. 그보다 저거.”

“아아~ 네.”

그가 항상 쓰는 날렵한 피의 칼을 - 이름은 호무라마루? - 바투 고쳐 잡고 넓게 서며 자세를 잡았다.

“어떻게 할까요?”

“어떻게, 라면?”

“저는 불태워서 재로 만들고 태우고 또 태우고 이게 최선인데.”

눈동자만 굴려서 이쪽을 본다. 질문이 날아온다.

“다른 게 혹시 더 있습니까?”

스티븐은 웃음을 더욱 깊게 했다.

“아아,”

명령했다.

“크라우스가 올 때까지 버텨.”

도약하기 직전에 재프가 대답했다.

“옛써―”

 


 

스티븐은 들러붙어서 떨어지지 않는 눈꺼풀을 겨우 떴다. 눈꺼풀은 물론이고 온몸이 천근만근이다. 누군가에게 엎혀있는데 아무리 착각을 한다고 해도 크라우스는 아니다. 그렇다면 한 명뿐이지…

재프…

부르려던 거였는데 목소리가 안 나와서 불발했다. 불발탄은 데구르르 굴러서 뇟속에서 빠져 나가버린다. 살아있다. 상황은 일단락된 것 같다. 발목 바로 아래를 잡힌 거나 다름 없는 위험이었는데 이번에도 살아남은 것 같다. 명이 질겨. 운이 좋은 거지. 문득 스티븐은 혼동한다. 그러다가 침착하게 뭔가 지시하는 여성의 목소리를 듣는다. 스메라기. 대답하는 신입, 레오나르도의 목소리도 들려온다.

아, 그렇다면 ‘지금’은 ‘그때’가 아니군.

재프한테 엎혀 있어서 그런지 순간 그때인 줄 알았다… 하지만 3년이나 흘렀지. 어떻게 보면 눈 깜짝할 사이였어… 감상적이 되려는 기분을 떨치려다가 스티븐은 이 순간 잠깐의 사치를 누리려고 마음을 바꿔 먹었다.

흘깃 확인하니 K.K.는 크라우스가 옮기고 있었다. 좋아, 그렇다면 더더욱 짧은 휴식을 누리자.

“스티븐 씨? 깼습니까?”

기척을 느꼈는지 재프가 물어왔다. 딱 달라붙어 있어서 목소리가 귀로 전해진다기보단 몸의 울림으로 바로 느껴진다. 말은 이번에도 소리가 되어 나오지 않았다.

“좀더 주무세요. 여긴 맡기고.”

아, 그렇다면 부탁한다…

 

* * *

 

그 녀석이 내내 코빼기도 비치지 않길래 결국 전화를 걸어서 한 마디 했다.

“병문안 정도는 와라.”

그러자 다음 날 아침 면회 시작부터 칼 같이 재프 렌프로가 도착했다.

꽃은커녕 빈 손으로 와서는 병실에 놓은 과일을 몇 개째 작살내고 있지만 그래, 그런 걸 기대해선 안 되는 녀석이지, 너. 애초에 안 했어, 기대.

길거리에서 겪고 주워들은 황당한 에피소드를 몇 개고 줄줄이 연속 방영해주고서는 가버렸다. 몰래 꿍쳐온 인스턴트 가루 커피를 무슨 불법 약물 거래하듯 슬쩍 품에 찔러넣어 주고서는. 이제 간다고 일어서는 녀석에게,

너도 다쳤잖아? 진료 정도는 받고 가,

그랬더니 그 녀석이 뭐랬더라. 실쭉 웃으며 그랬던 것 같다.

두류는 튼튼하거든요~

그러냐.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재프가 또 왔지.

너무 놀라서 쳐다보고 있으니까 멋쩍어 하며,

아, 갈까요?

하길래 서둘러서 의자를 가리켰다.

앉아.

너무 명령조로 말한 것 같아서 이번엔 내가 멋쩍었다. 얼버무리듯이 덧붙였어.

어제 준 커피, 같이 마셔줄 사람이 필요해.

그러자 네가 이를 드러내며 활짝 웃었다.

불도 몰래 피울 수 있어요.

아니, 그건 괜찮아.

스티븐은 눈을 떴다. 골이 찡 울렸다. 얼마나 잔 거지? 어둡다. 새벽? 최소한 열 시간은 잔 건가. 이 빌어먹을 수면 패턴…….

주위를 살폈다. 병원, 1인실. 어째서인지 침대 아래쪽 의자에 앉아 잠들어 있는 레오나르도 소년. 창가에는 재프가 서서 바깥을 보고 있다.

“재프?”

이번에는 목소리를 내는 데 성공했다. 그가 돌아봤다.

“더 주무셔도 되는데요.”

이상은 없나보군. 그런데 네가 왜?

“많이 잤어. 머리가 아플 정도로. 무슨 문제 있나?”

“아― 잔챙이 하나가 도망갔어요. 만약을 대비해서. 누님 쪽은 보스가 가있어요, 늑대개랑 같이.”

그래서 이 조합이군.

힘을 빼고 다시 침대로 가라앉았다. 더 자고 싶지만 머리가 너무 아프다.

재프가 창문 앞에 서있던 자리에서 멀어져 이쪽으로 왔다. 몸을 잔뜩 숙이고 속삭여온다.

“드실래요?”

자켓 안주머니에서 꺼내서 보여주는 것은,

언제나의 인스턴트 커피.

그러니까 왜 매번 밀거래 하듯이 물어보는 건데.

“좋지.”

미소와 함께 대답했다. 그러자 재프도 슬쩍 웃는다.

“잠시만요.”

갑자기 레오가 앉아있는 의자를 걷어차더니 깨운다. 약간 놀랐어. 소년에게 잘 보고 있으라고 엄포를 늘어놓곤 복도로 나갔다.

후아암, 소년이 길게 하품을 하고선 입을 가리고 사과한다.

“앗차, 죄송합니다.”

“아니, 괜찮아. 편하게 있어.”

돌아온 재프의 손엔 머그컵이 세 개였다. 뜨거운 김이 나는 물에 인스턴트 커피를 탄다. 빙글빙글 회전하며 녹아가는 갈색 소용돌이.

셋이서 둘러앉은 채 커피 타임을 가졌다.

싸구려 블랙 커피는 언제나처럼 쓰고

탄 맛이 나고

카페인 섭취와 속을 뎁혀준다는 목적으로 먹을 뿐 맛이 없는데.

“좋네요~ 이런 것도.”

“이 몸이 손수 타온 커피시다. 감사히 마셔, 따샤.”

“네, 네.”

이제는 너와 단둘이 마시지도 못하는 건가,

조금,

싱숭생숭했어. 미안하다, 어제부터 감상적이라. 너희는 근무 중인데 말이야.

적당히 식은 커피를 한입에 모두

마셔버리고

빈 컵을 내려놨다.

 

 

4

 

 

머릿속이 아주 깨끗하고 명료했다. 날카롭다고 해도 좋다. 한겨울의 찬 기운이 정신을 더욱 또렷하게 일깨웠다. 추위가 방해된 적은 없었다, 오히려 반대지.

냉랭한 나의 아군.

계획은 실수 없이 잘 끝났다. 치밀한 암살이었다. 꼬리를 잡힐 일은 없다. 절대.

성공적인 임무 완수이지만 축하할 일도 없다. 절대.

대로변으로 나서기 전에 살기를 좀 죽일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스티븐은 골목길의 어둠 속에 숨은 채로 벽에 기대어서 숨을 골랐다. 누그러뜨려야 한다. 군중에 섞이기 전에. 사람들과 접촉하기 전에.

아주 가벼운 발소리와 함께 하얀 구두가 불쑥 시야 끝에 들어왔다.

재프는 처음부터 동행이었다는 듯이 자연스럽게 옆에 기대어 섰다.

날카로운 머릿속이 너무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해서 그 소리가 들리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재프의 의중을 알 수 없어서 스티븐은 침묵했다. 미행했던 걸까? 어디서부터? 아니면 그냥 우연?

이 세계에 우연 따위 있을 리 없지.

답지 않게 침묵을 지키며 잠자코 시가를 피우던 재프가 문득 물었다. 바로 본론이었다.

“저는 이제 안 데려갑니까?”

“…….”

“이제 저를…….”

흐려진 말끝과 내려앉는 침묵.

스티븐은 속으로 땀을 한가득 흘리고 있었다. 겉모습을 냉정하게 유지하는 데 전력이었다.

‘저는’ ‘이제’ ‘안 데려갑니까’.

하나하나 안 걸리는 게 없다. 너무 많이 걸려서 지금 완전 잼에 걸렸어. 방금 뇌가 한 번 멈췄어.

잠깐!

침착해라, 스티븐 스타페이즈.

일단 얘기를 듣는 거야.

“이제 너를?”

그러자, 그게 정답이었을까 아니 이 경우엔 오답이라고 해야 할까, 버튼을 누른 듯 확 뛰쳐나간 재프가 정면에 서서 마주본 채로 크게 외쳤다. 지금까지 조용했던 게 거짓말처럼, 180도 돌변해서는, 재프 렌프로 통상 모드 100% 그대로,

“이제 저는 못 믿으세요?!”

지금도 뇌가 잠시 멈췄어.

무슨 소리야.

아니, 잠깐만. 진짜 무슨 소리야?

너를 믿고 말고랑 상관이 있는 거였어?

이제 나는 너를 그런 임무에 보내지 않아도 돼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쪽의 쇼크와 패닉을 전혀 모르는 채로 재프가 멋대로 떠들어댄다.

물론 우리가 지금은 많이 커졌죠 진짜 그건 저도 알죠 인원도 훨씬 많아졌고 사실 제가 모르는 신입도 많은 건 사실이고 어쩔 수 없죠 비밀결사가 괜히 비밀이겠어요 스타페이즈 씨만의 팀이 따로 움직이는 것도 알지만 말입니다, 그래도 ‘그거’는,

“저랑 둘이서만 하는 일 아니었어요?”

“…….”

또다시 침묵. 이번엔 재프가 재촉한다.

“네에? 스타페이즈 씨.”

스티븐은 노력했지만, 실패했다.

왜 나는 네 앞에서 종종 말을 잃을까.

종종 너무 어이가 없어서, 종종 너무 할 말이 많아서, 종종……

네 홍채 속의 불꽃이 눈부셔서.

스티븐은 길을 잃은 듯이 잠시 망설이다가, 두 손만 조용히 앞으로 내밀었다. 손바닥을 위로 하고.

재프가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당황한 표정으로 바라봐서, 어쩔 수 없이 말을 해야 했다.

이상하다……

왜 말을 해야만 하는 걸까?

왜 내 뜻이 그대로 전해지지 않지? 말을 하지 않으면,

이 모든 것들은 그대로 사라진단 말이야?

너에게 닿는 일도 없이?

그건 정말로 이상하고……

불가해한 일이다.

“손을……”

문장이 완성되기 전에 그것만으로 바로 잡아오는 두 손이 있었다. 그 두 손은 피로 된 칼을 다룬다. 언제나 상처투성이고 오래된 흉터와 새로운 흉으로 매일 얼룩져있다. 너의 인생과 같은 손이다. 그 손은 불꽃을 다룬다. 세계를 구하는,

손인 것이다.

스티븐은 막막하다. 이 모든 것을 어떻게 말로 표현하란 거야? 하면서, 분통이 나기도 한다. 분노의 힘을 빌려 말해본다.

“네가 원한다고 해도 내가 원하지 않아. 그러고 싶지 않아. 왜냐면……”

“왜냐면?”

“왜냐면,”

쥐어짜낸다.

어쩔 수 없이 불가해한 이 세계에서

너에게 닿기 위해.

“나는 너를 소모시키고 싶지 않은 거야.”

사실은 좀더,

다른 말을 하고 싶었어. 하지만…… 아무래도 지금은 이게 최선인 것 같다.

쥐어짜서 건넨 볼품없이 왜곡된 터무니없이 압축된 그 말을 재프는 신중하게 곰곰이 가만히 되뇌어보더니,

“그렇다면 제가 정말로 필요한 순간엔 불러주세요.”

왜 그런 말을 하는 거야.

평소의 너답게 불평이나 하면 좋아. 힘든 일 안 하면 편하고 좋다고, 그런 말이나 해.

“약속입니다?”

기분이 풀렸는지 어린애처럼 웃으며, 잡은 손을 가볍게 흔들지 마.

네가 그러면 나는……

그리고 그런 말을 하고서 금방 손을 떼지 마.

놓는 손을 잡아채자 재프가 두 눈을 크게 뜨며 의아하게 올려다봤다.

스티븐은 오늘은 이제 더 이상 사람의 말을 하고 싶은 기분이 아니었지만, 마지막으로 한 마디는 전하고 싶었다.

“따뜻해서.”

그러자 힘 있게 마주 잡는 너의 두 손.

“살아있으니까요.”

그래,

너도

나도.

가끔은 반대를 바란다. 엄혹하고 냉한한 추위가 지배하는 세계, 죽음과 어둠뿐인.

불은 너무 눈이 부셔,

태양을 쏘아버린 신화 속 인물을 이해하게 된다.

하지만 나도 결국

피와 살로 된

생물인 거야,

따뜻함이 기분 좋고

체온이 그립고

이기적인,

말을 하지 않으면

너에게 어떤 것도 전할 수 없는

세계의 법칙 속에서 사는.

이토록 필사적으로 이 세계를 지키려는 이유의 본질은 사실 그것뿐이야.

단지 그뿐이야.

 

5

 

 

네가 내 처음도 마지막도 아닌데.

누가 그 말을 했더라, 제니퍼? 앰버? 아니면……

그 말 그대로, 이번 차례의 이 사람이 내 인생에 처음도 아닐뿐더러, 마지막일 리도 없다.

카랑, 카랑.

지포를 의미 없이 여닫으며 시가를 피웠다. 문득 떠올린다. 지포를 만든 것은 패트릭이었고, 건네준 건 지배인이었다.

스위치를 눌러,

사용법을 알려줬고 그 말을 따라서 누르자 아플 새도 없이 찌르고 간 바늘에 피가 떨어졌다. 바로 혈법을 발동했다. 이거라면 일부러 손에 상처를 낼 필요가 없겠네요, 그런 말을 했던 것 같고.

그가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 그런 목적이야.

그의 얼굴엔 길고 큰 흉터가 있어, 웃거나 표정을 지을 때마다 그 흉터도 같이 움직인다. 살아움직이는 생명체처럼. 자기 멋대로 흔들리는 불꽃처럼.

나는 가끔 그게 만져보고 싶었던 것 같아……

하지만 내가 사람들에게서 매력을 느끼는 건 언제나 있는 일이거든. 이 사람은 이래서 매력적이고, 저 사람은 저 부분이 매력적이고.

얘기를 하다가 바라본 상대의 입술에 문득 키스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일도 자주 있어.

아무나, 까지는 아니고.

카랑, 카랑.

지포 뚜껑으로 손장난을 치면서 시가를 마저 태웠다. 또 하나의 기억, 엽궐련을 사준 건 K.K. 누님이고, 전해준 건 지배인이었다.

피울 거면 좋은 걸 피워,

말과 함께. 단단한 종이 상자를 열어보자 가지런히 놓인 시가가 보였지. 독특한 냄새가 나서 한참 킁킁거렸어. 깨끗한 새 지포로 불을 피웠고 처음 피워본 시가는 거침없는 향이 났고 제법 독했다. 기침할 뻔했지만 겨우 그건 면했던 것 같아.

원래 피우던 싸구려 담배는 그가 가져갔다.

이건 압수.

그 담배를 그가 피웠을까? 아니, 버렸겠지. 그런 걸 피울 남자는 아니다.

내 처음도 마지막도 줄 수가 없는데.

카랑, 카랑.

그 사람에게 줄 수 있는 건 그다지 없다. 나는 그래도 내 최선을 주기로 했어. 왜냐면,

그 사람, 역시 무리하고 있거든.

언제였더라, 우리 조직에 이름도 아직 안 붙어있던 때인가, 내가 막 이 도시에 도착했을 무렵?

아니지, 라이브라가 자리를 잡았을 때인가, 이곳에서 산 지 2년 차, 3년 차?

그게 언제더라도 말이지 보고 있으면 알 수 있었거든.

아, 이 사람. 힘내고 있구나.

전력보다도 더, 죽을 둥 살 둥 발버둥치고 있구나.

그렇다면 나는 이 사람에게 힘이 되어 주고 싶었어.

스스로 칭찬해주고 싶을 만큼 꽤나 기특한 생각이었지.

“그래그래. 그리고?”

“그리고,”

허락만 해준다면 나는 내 체온도 나눠주고 싶었어. 왜냐면,

그 사람, 추워 보였거든.

맞을 걸 각오하고 손을 뻗어서 만져봤지. 무의미한 말도 좀 했던 것 같아. 괜찮아요? 라던가, 당신이 잘못한 건 없어요, 라던가.

사람들이 듣고 싶어하는 말은 결국 뻔한 거거든.

그 손길 한 번과 몇 마디 위로에 넘어와버릴 줄은 몰랐어. 그래서 또 깨닫고 말았지.

아, 이 사람. 외로운 거구나.

여러 사람을 전전하며 그들의 따뜻함이나 부드러움을 게걸스럽게 섭취하는 나 같은 짓도 못하고,

혼자 그저 외로움을 견디고 있구나.

그렇다면 내가 가진 따뜻함 정도는 나눠줄게요,

하고, 그때에도 꽤나 기특한 생각을 했지 뭐야.

“좋~다아~”

“만족했냐? 그럼 나는 보내줄래?”

“아니! 그럴 순 없지♡”

인디고 핑크의 머리를 커다란 리본으로 묶고 철 가면을 쓴 편집왕이 두 손을 꼬옥 잡고서 발랄하게 강요했다.

“있지 있지, 내가 도와줄게♡”

“아니아니아니, 괜찮―”

“사양하지 마!”

“사, 스, 슷, 삿!”

재프 렌프로 인생 최대 위기. 상황을 어떻게든 돌파해보고자 재프는 굴러가지 않는 머릿속과 세 치 혀를 열심히 채찍질했다.

“사, 사랑이란 건 본인 힘으로 쟁취해야 하는 거 아니야?!”

“어, 어어~? 음~ 흠~?”

제법 먹히는 말이었는지 편집왕이 고민에 빠졌다. 시간을 벌었다고 생각한 것도 잠시, 편집왕은 다시 두 손을 잡으며 활짝 웃었다.

“하지만 나! 아리규라는!”

망……

“너의 사랑을 응원하고 싶은걸! 재프 렌프로!”

망했다.

“부디 사양하지 마!♡”

미안해요, 스티븐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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