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미션/연성교환/축전

[스팁체인] 질량의 온도 (커미션)

2차 커미션 / 2022. 10. 30

기억의 조각 by 匿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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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계전선> 스티븐 A 스타페이즈 X 체인 스메라기 커미션

 이따금 좋지 않은 일은 좋은 일 사이로 고개를 들이민다. 이게 아닌가. 좋지 않은 일들은 연속적으로 일어나곤 한다. 이것도 아닌가. 체인은, 선명해진 의식 사이로 생각을 겨우 정리했다. 완벽한 정리는 아니었다. 의식의 서랍 속에 엉망이 된 사고를 겨우 구겨 넣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체인 스메라기는 결코 정리에 소질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 집만 봐도 그랬다. 바로 그게 문제였다. 적어도 이 순간에는. 여자는 제 손을 본다. 정확히는 그 위에 얹힌, 손을 응시한다. 제 것보다 훨씬 큰 손이 덮여 있다. 싫을 리가 없다. 다만 조금 불편할 뿐이다. 불편하다는 것은 그저 편하지 않을 뿐 싫다는 뜻이 아니다. 둘의 갈래는 명백히 달랐다. 불쾌하지도 않다. 글렀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더라…….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지끈거렸다. 이 감각은 선명하게 불쾌하다. 과음 탓이었다. 생각의 흐름이 서서히 거슬러 올라가다 이내 거칠게 휘몰아친다.


 오늘은 여자의 무사 귀환을 축하하는 파티 날이었다. 파티는 대개 밤에 이뤄진다. 그 말인즉슨 낮에는 변함없이 각자 임무를 처리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세계의 균형을 위해 암약하는 라이브라에게 쉴 틈은 일반적으로 없다. 파티는 괜히 부담을 가중하는 격식 차린 행사보다는 편안한 분위기의 술자리에 가깝게 열렸으나 그리 작은 규모는 아니었다. 직접적인 외상만 없었을 뿐 체인이 영영 사라져버렸을지도 모르는 일이었으므로.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무도 열쇠에 관한 것은 입에 올리지 않았다. 애초에 기밀에 가까운 사안이기는 했으나 누구라도 그것에 관한 얘기를 화두로 던졌다면 당장이라도 희석하고 싶어졌을 것이다.

 여자의 시선은 은연중에 어느 한 곳에 닿는다. 스티븐 A 스타페이즈. 여자의 상사. 체인 스메라기의 열쇠를 돌리는 주체. 남자의 곁에서는 사람이 떠나지 않는다. 시선이 머무는 것은 아주 잠깐이다. 체인은 자리를 옮긴다. 거기까지 존재를 희석한 건 드문 일이었으므로 누적된 피곤이 밀물이 되어 밀려 들어왔다. 평소의 절반도 채 마시지 않았는데 술기운이 돌았다. 알코올이 식도를 타고 넘어가는 감각이 유독 싸했다. 얼굴이 뜨겁다. 만져 보지 않아도 알았다. 잠깐, 바람 좀 쐬고 올게요. 아무 테이블에 술잔을 내려놓는다. 몸을 돌린다. 제대로 걷고 있는 걸까. 묘하게, 시야가 좌우로 흔들렸다. 체인 씨! 체인! 사방에서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가 났다. 바닥이 가까워진다. 아, 이런. 제대로 취했구나.

 딱딱한 감촉은 없었다. 이상하다. 분명 아플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여자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체인, 괜찮아? 어떤 목소리가 어른거렸다. 낮고, 상냥한 음성이었다. 손길이 능숙하다. 여자는 그 모든 게 꿈인 줄만 알았다. 자신이 어떻게 행동했는지도 뚜렷하지 않다. 그 다정함에 기댔던가, 아니면 무너져가던 제정신을 겨우 붙잡고 바로 섰던가. 기억이 모호하다. 지금 왜 이런 상황에 놓였는지도 알 수 없었다. 눈을 한 번 끔뻑였을 뿐인데 집 앞이었다. 혼자였다면 뛰어난 귀소본능에 박수라도 보낼 수 있었을 텐데. 떠오른 생각은 가정형이었으며 체인 스메라기는 이 순간 혼자가 아니었다.

 “정신이 좀 들어?”

 “스, 스티븐 씨.”

 “다행이다. 알아보는구나.”

 일순 혀가 꼬였다. 입을 다문다. 그것조차 조금, 부끄러웠다. 그에게는 어떤 식으로든 무너진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어깨 끝자락에 겨우 닿는 손가락이, 머리 바로 위에서 맴도는 목소리가, 옆에 있는 상대가 누구인지 명확히 보여준다. 술에 잔뜩 취해 쓰러지기 바로 직전에 눈으로 좇던 사람이다. 직장 상사라는 사무적인 단어로는 다 표현해낼 수 없는 이. 존재에서 소멸로 넘어가는 순간에서 자신을 현실로 불러오는 열쇠. 왜 스티븐 씨가 여기에, 있냐고 묻고 싶었다. 물을 수 없었다. 당장 남자의 앞에 있는 문 너머의 난장판이 걱정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집 안까지 들어오지는 않겠지만 신경 쓰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시선이 남자의 뒤에서 멈춘다. 어깨에 아슬아슬하게 닿았던 손이 멀어져 간다. 겨우 호흡이 편안해진다. 은연중에 긴장했던 모양이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여자는 말없이 상대를 올려다본다. 남자가 시선을 맞춰 온다. 그 사소한 몸짓에조차 다정함이 묻어 있다. 체인은 그가 종종 하는 일을 알고 있었다. 목격한 적도 있다. 그래서 문득 상상하고 마는 것이다. 이 자리에 자신이 아닌 타인이 있는 광경을. 아무래도 그게 훨씬 자연스러웠다.

 “체인. 장소가 좀 뭣하지만, 해야 할 얘기가 있어.”

 “네.”

 스티븐은 굳이, 방에 들어가도 되는지 묻지 않는다. 남자는 이미 방의 풍경을 알고 있었다. 그게 체인에게 어떤 의미인지도 안다. 두 사람은 모두 입에 올리지 않는다. 세상으로 흘러나온 것과 흘러나오지 않고 가둬진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남자는 난간에 몸을 기댄다. 손을 얹은 채 체인을 응시한다. 여자도 가만히 그의 동작을 따라 했다. 착실한 모방이었다. 아주 잠깐, 서로의 시선이 건조하게 얽힌다. 곧 한 올 한 올 분리될 것만 같은 실타래를 닮았다. 심장이 누군가에게 통째로 잡힌 듯 갑갑하다. 울렁거린다. 손끝이 저릿저릿하다. 이 뒤에 나올 이야기가 무엇인지 가늠하고 싶지 않았다. 그럼에도 추측은 자연히 어느 방향을 향해 굴러간다. 술에 취해 있어서 오히려 더, 특정 지점을 향해 생각이 달려 나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열쇠, 말인데.”

 “……네.”

 남자가 묵묵히 이야기를 꺼낸다. 예상 범위였다. 완벽한 스트라이크였다. 스티븐이 체인을 찾는 이유는 대부분 일 관련이었다. 사적인 대화를 나눈 적이 없지는 않았지만 굳이 해야 할 얘기라고 칭해 가면서 이야기를 청한 적은 없었다. 그래서 체인은, 입이 썼다. 비단 알코올이 남긴 자취 때문만은 아니었다. 부담스러울 거야. 그야 당연하지. 국장님과 차장님으로부터 열쇠의 의미를 다 들었을 텐데. 당장이라도 사라지고 싶었다. 단어 그대로의 의미였다. 여자에게는 그럴 힘이 있었다. 허나 그러지 않았다. 여기서 사라지면 모든 게 무너질 것 같았다. 그것 또한 체인이, 스티븐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모습 중 하나였다. 설령 이 대화가 그와 한자리에서 공유하는 마지막 순간일지라도. 생각이 자꾸 부정적인 쪽으로 흘러간다. 입술을 꾹 깨문다. 의도한 대로 묘한 철의 맛이 났다.

 여자는 틀림없이 알고 있었다. 같은 직장에서 일하는 사이. 좀 더 파고들면 상사와 부하. 아무튼 연심이 싹 트면 도움 될 게 하나도 없는 관계. 하지만 정말 어쩔 수 없었다. 감정은 인식했을 때는 이미 걷잡을 수 없이 커져 버린 뒤였기에. 체인 스메라기는 라이브라의 그 누구보다도 흔적을 남겨서는 안 되는 일에 능했다. 고요히 조직의 수뇌부까지 파고들어 가장 중요한 정보를 빼내는 것은 누군가의 심장을 움켜쥐는 것과 같다. 무언가를 손에 쥐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그것의 주인에게 닿을 수밖에 없는 거리에 놓이게 되지만 결코 잡혀서는 안 된다. 그것이 체인의 임무였다. 아슬아슬한 줄 위를 걷는 것. 늘 잡는 위치에 있던 여자가 심장을 잡힌 것은 대체 어느 시점이었을까. 그 주인조차도 모르는 일이었다. 처음으로 스티븐 A 스타페이즈를 좋아한다고, 인식한 시점에서 이미 아웃이었다. 특별한 사건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제 이름을 부르는 그의 목소리에, 시선에, 손길에 심장이 언젠가부터 반응하기 시작했을 뿐이다.

 체인은 스티븐의 전부는 아니라도 많은 것을 알았다. 그가 부탁한 정보를 찾아 HL을 헤매다 보면 자연히 그렇게 되기 마련이다. 직접 본 적도 많았다. 남자는 종종 이성과 접촉했다. 스티븐이 먼저 다가갈 필요도 없이 상대 쪽에서 손을 뻗은 적도 잦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다. 사실 그런 이성과의 빈번한 접촉 때문만이 아니라도 그는 눈치가 빨랐다. 남자의 다정하고 섬세한 측면은 거기서 비롯되었다. 제 마음을 지금껏 알아채지 못했으리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자신이 숨기고 싶어 하는 것을 알고 있기에 그 역시 덮어 놓은 건 아닐까 추측할 뿐이었다. 여자는 그런 면을 포함하여, 남자를 인간으로서 존경했고 경애했다. 아니다. 복잡한 단어들을 털어 낸다. 그저 단순하게, 그를 좋아했다.

 “그게 무척 중요하단 얘기는 들었어. 뭐가 됐든, 체인이 사라지기 직전에 돌아오기 위해 필요한 거잖아.”

 “……”

 스티븐은 말을 멈추지 않는다. 체인은 입을 그저 다물고 있다. 두 사람 사이에서 잠깐 흐르는 정적은 그가 일과 관련된 지시를 내릴 때와 다를 게 없다. 두 사람의 관계는 으레 그랬다. 무서울 정도로 변화가 없다. 여자는 그의 말을 어절 단위로 곱씹는다. 정말로 이미 다 들었구나. 그러면서도 직접 그 열쇠의 내용물을 언급하지 않는다는 점이 그다웠다. 스티븐이 몸을 튼다. 체인도 몸을 튼다. 대화의 강이 서서히, 다른 줄기를 향해 뻗어나가기 시작한다.

 “하지만 말야.”

 “네.”

 “그 조건이 너무 실현되기 쉬운 것이면 조금 그렇지 않을까, 싶거든.”

 “……네?”

 체인이 순간적으로 스티븐을 올려다보았다. 남자의 낯에는 묘한 감정이 넘실거리고 있다. 여자는 그 말을 바로 이해할 수 없어 그저 되묻는다. 스티븐의 표정이 잠깐 바뀐다. 웃는 것에 가깝다. 체인의 귀가 웅웅거린다. 마지막으로 들은 말이 그저 귓가를 헤엄친다. 숨을 쉬는 것도 눈을 깜빡이는 것도 자신을 둘러싸는 공기도 그 모든 것이 어색하다. 여기서 벗어나고 싶다. 달아나고 싶다. 그리고 동시에, 대화를 끝까지 지켜보고 싶다. 희석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니까 난 잘은 모르지만, 체인이 이 세계로 돌아오고 싶은 이유가 너무 쉬운 건 아닌가, 해서…….”

 스티븐이 드물게 말을 흐렸다. 단정하게 정돈된 머리칼을 흩트린다. 말을 고르기 어려웠다. 검은 어둠 속 짙은 보랏빛이 묻어 나는 눈동자가 오로지 그를 비추고 있다. 덤덤한 얼굴로. 돌이켜 보면 체인은 대개 그런 표정을 짓고 있었다. 주변에 관심이 없다는 듯 무심한 낯. 재프와 다툴 때도 언성을 높이는 건 대부분 재프 쪽이었다. 일에 관한 보고는 조곤조곤 듣기 편한 속도로 하곤 했다. 스티븐 속의 체인은 막연히 안정되어 있었다. 흔들리지 않는 수면처럼. 주변에 늘 존재하는 공기처럼. 그랬다. 그에게 체인은 공기와 같았다. 투명하고 가벼우면서도 한없이 무거웠다. 어디에나 있지만 직접 만지고 느낄 수는 없으나 그럼에도 필요한 사람. 모호하면서도 선연한 모순된 존재. 그런 여자의 인상이 바뀐 건 언제부터였을까. 체인은, 그가 시키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척척 처리했다. 때로 이유를 알 수 없는 명령이라도 마다하지 않았다. 자그마한 실수 하나 없었다. 하기야 그럴 수밖에 없었다. 불가시의 인랑이 들어가지 못할 곳이 있을 리가 없고, 듣지 못할 얘기가 있을 리가 없었다. 허나 남자는 어느 순간 깨달았다. 이따금 흔들리는 동공과, 꾹 다무는 입술과 줄어드는 목소리를. 차마 잘못이라고 부르기도 애매한 자그마한 실수를 저지를 때마다 체인은 사그라들었다. 그 균열이 자꾸 눈에 밟혔다. 안쓰럽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불가시의 인랑조차 제대로 추적할 수 없었던 차량에 대해 눈물을 머금고 보고 할 때는 이미 무언가 확신한 뒤였다. 여자에게는 타인에게, 정확히는 그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모습이 있다. 벌써 보고 말았지만. 그게 싫지만은 않았다. 좋은 쪽에 가까운 감정이었으나 복잡했다. 어딘가 불편하기도 했다. 그러니까, 조금 더…… 편하게 여겨줬으면, 했다.

 “뭐라고 해야 하지, 악용될 여지가 너무 커.”

 허공을 맴돌던 손이 난간에 얹힌 손을 덮는다. 한 손이, 주변 공기를 차단한다. 손등과 손바닥이 접한다. 온기를 나눠 가진다. 손은 따뜻했다. 두 손 모두. 여자의 얼굴이 깨어지고 바닥에 흩어진다. 붉게 달아오른다. 술은 더 이상 그 이유가 되지 못한다. 남자는, 곤란한 듯 웃었다. 체인이 손가락을 꼼질거린다. 희석하려면 희석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모순된 감정들이 일렁거리고 충돌하고 부서진다.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감정의 이름을 여자는 안다. 그 이름을 떠올리기 전에 남자가 먼저 재차 입을 열었다.

 “분명 체인의 방은 앞으로도 들어갈 일이 많아질 테니까. 어떤 식으로든.”

 스티븐이 속삭인다. 맞닿은 손이 뜨거웠다. 세상으로 흘러나온 것과 흘러나오지 않고 가둬진 것에는, 틀림없이 큰 차이가 있다. 말로 전해야만 하는 것이 있단 사실을 깨달을 나이는 두 사람 모두 한참 전에 지나쳤다. 그럼에도 이런 식으로 말하고 만다. 스티븐도 체인도 제 손안의 무언가를 드러내지 않는 것에는 도가 튼 사람들이었고 그것은 속내도 마찬가지였다. 남자는 내밀하게 속삭인다. 그러니까, 문 너머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어도 나는 개의치 않아. 보여 줬으면 해. 구체적인 형태가 없는 그 언질만으로도 여자는 알 수 있었다. 체인은 열쇠를 새로 맞춰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니면 여벌 열쇠를 만들던가. 그것은 집뿐만이 아니라 제게도 해당하는 이야기였다. 제 손을 덮고 있는 손을, 다른 손으로 덮는다. 희석하지 않고 본래의 온도와 무게로. 손들은 여전히 따뜻하고 부드럽다.

 “저, 계속…… 문 앞에서 말씀하시게 하는 게 너무 죄송해서 그런데, 늦었지만 들어오실래요?”

 “부탁할게.”

 체인이 주머니를 뒤진다. 여자는 동료들의 열쇠를 떠올린다. 기밀이라고는 해도 함께 일하다 보면 자연히 알게 되는 게 있었다. 개중에 체인은 특이한 편에 속했다. 편의상 열쇠라고 칭하지만 그것을 부르는 명칭은 제법 다양했다. 중요한 건 세계의 틈새에서 존재와 소멸의 경계를 걷는 자를 이 세계로 확실하게 끌어당길 만큼, 그가 미련을 가질 만한 무언가라는 그 본질이었다. 동료들은 대부분 특정한 대상을 쐐기로 삼았다. 체인은 아니었다. 그 사람 자체에 얽매여 있지 않았다. 다만, 그에게 바닥만은 보이고 싶지 않았다.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는 상태에서조차. 여자는 제 손으로 문에 열쇠를 꽂아 넣으며 직감했다. 매뉴얼은 수정해야 했다. 스티븐에게 집착할 생각은 없었다. 자신에게는 과분한 사람이다. 스티븐과 같은 공간에서 주어진 일을 하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그럼에도 그가 제게 무언가를 불어 넣었다. 여자는 직시할 수 없었던 감정을 그가 결국 부풀렸다. 스티븐 A 스타페이즈가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만으로, 체인 스메라기는 언제든지 이곳으로 돌아올 수 있어진다. 그렇게 될 듯한, 어떤 잔인할 정도로 선명하고 확실한 예감이 들었다.

 남자는 그사이 제 손에 머물렀던 무게를 떠올린다. 스티븐은 지금껏 체인의 정확한 무게를 알지 못한 채 살아왔다. 그가 실감할 수 있는 무게는 여자가 건네주는 서류 더미의 것뿐이었다. 허나 불가시의 인랑은 실재하기에 무게 역시 있다. 온도도, 촉감도, 냄새도. 다만 희석되는 것이다. 허나 직전 스티븐의 손등에 얹혔던 손 하나의 무게는 희석되지 않은 그저, 날것의 질량이었다. 남자는 감히 생각한다. 언젠가 좀 더 무거운, 온전한 무게를 느끼고 싶다고.

 철컥.

 문을 여는 소리가 났다.

 무언가가 바뀌는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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