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계전선

[혈계전선/크라스팁재프]Blossom

(재프스팁+크라스팁)하나하키병AU. 스티븐이 재프랑 사귀고 있는데 꽃을 토함

솔새둥지 by 솔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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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스팁재프] Blossom

by. 솔방울새

*하나하키 소재

*크라스팁을 전제로 한 재프->스팁

헬사렘즈 롯트에 이상한 병이 돌기 시작했다. 일반적이지 않은 일들로 가득한 이 도시에서 위험하지도, 치명적이지도 않은 그 병은 재미있게도 인간과 이계인들을 통틀어 많은 이들의 주의를 끌었다. 아무래도 사랑하는 사람에게 닿지 못한 마음이 한 송이 꽃이 되어 입으로 토해져 나온다는 원인과 증상이 흥미를 불러 일으켰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 이 중엔 누구 없니? 칙칙한 사무실에 꽃 좀 뿌려 볼 사람."

어느 행인이 거하게 사랑에 빠진 모양인지, 출근 길에 꽃이 잔뜩 떨어져 있었다며 K.K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덕분에 화사한 꽃길을 걸으며 출근했다고. 본인은 절대 걸릴 일 없다고 완전히 즐기는 기색이었다. 인류 역사에서 늘 그래왔듯 사랑이란 소재는 신기할 만큼 질리지도 않고 소비되는 주젯거리였다. 세계의 균형을 위해 달리는 비밀 결사 라이브라도 크게 다르지는 않아, 다른 이들도 어쨌거나 재미있다며 웃고 한 마디씩을 던져대고 있었다. 

크라우스의 곁에 앉아 홍차를 마시고 있던 부관 스티븐이, 짧은 기침과 함께 홍차 위로 새하얀 꽃 한 송이를 밷어내기 전까지는 그랬다. 그가 자신의 구둣발로 주변을 얼린 것도 아닐진데, 순간 서늘한 침묵이 사무실 내를 뒤덮었다.

"....어?"

짧은 침묵은 레오가 모두의 속내를 대변하는 한 마디를 흘려내며 깨어졌다. 한 순간 폭발하듯 모두가 의문을 띄워내며 말을 얹었다. 누구에요? 뭐야, 당신이 누굴 짝사랑 한다고? 말이 돼? 웅성거리며 난리가 시작되고 있었다. 찻물 위에 떨어져 동동 떠오른 꽃을 보며 침묵하는 스티븐을 둘러싸고, 소란이 커지려던 찰나 두 번째 침묵이 찾아들었다. 과장된 반응을 내보이며 가장 적극적으로 놀려먹을 줄 알았던 재프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것이다.

"재프 씨?"

답지 않게 굳은 얼굴이었다. 이를 악문 듯 턱에 힘이 들어가고 눈가가 일그러져 있었다. 실망한 듯도, 분한 듯도, 질린 듯도 보였다. 하. 하고 기가 찬다는 듯 짧게 억지 웃음을 뱉어낸 그는 휙 몸 돌려 사무실에서 나가버렸다. 쾅. 소리를 내며 거칠게 문이 닫혔다. 저 인간은 또 왜 저러나 싶어 다들 스티븐의 눈치를 보았으나,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마시지 못하게 된 찻잔을 내려 놓을 뿐이었다.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하던 집사 길베르트가 자연스레 그것을 치웠다.

"오늘 브리핑은 다 했으니 이만 각자 위치로 가지."

이런 시덥잖은 잡담은 그만두자는 듯 담담하게 내뱉은 스티븐은 일어나 서류가 쌓여있는 책상 앞으로 가 앉았다. 크라우스의 의문 가득한 시선이 따라붙었으나 스티븐은 애써 그 쪽을 보지 않았다. 

스티븐 A 스타페이즈는 방금 전 뛰쳐나간 재프 랜프로와 비밀리에 사귀는 관계였다. 

라이브라를 이끄는 보스의 부관. 그리고 라이브라 최악의 망나니. 이렇게 두고 보면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지만 재프와 스티븐의 연애는 의외로 생각보다 괜찮았다. 적어도 재프가 느끼기엔 그랬다. 스티븐 A 스타페이즈란 남자는 기본적으로 의무에 충실한 사람이었으니까.

 공적으론 여전히 칼같았지만 그는 일이 바쁜 와중에도 계속 짬을 내어 재프와 시간을 보내주었고, 소소하게 신경을 써 주는 것도 제법 있었다. 이전 같으면 눈길도 주지 않았을 그의 부상에도 조심하라며 한 마디 하곤 손수 응급처치를 해 주었을 땐 솔직히 조금 감격스러워서 하마터면 눈물까지 찔끔 할 뻔 했다. 이전의 취급이 하도 좋지 않았던 탓에 상대적으로 더 크게 느끼는 것도 없잖아 있겠지만, 본인이 기쁘면 됐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더군다나 부족하지 않게 가지는 잠자리는, 그래, 잠자리는 정말이지 사람 돌아버리도록 끝내줬다. 스티븐의 다리는 놀랍도록 유연했다. 발차기를 주로 사용하여 전투하는 사람이니 당연했지만 근육이 빠듯하게 당기도록 한껏 잡아 올리고, 벌리고, 접어도 무리 없이 그대로 움직이는 것은 감탄사를 자아낼 지경이었다. 이는 허리도 마찬가지라 무릎이 가슴에 닿고 발이 머리 너머로 넘어갈 정도로 몸을 접어 눌러도 이 30대의 남자는 힘겨운 기색이 없었다. 길게 잘 빠진, 그러나 인간을 초월한 힘을 내는 강인한 다리에 힘이 들어가 근육이 도드라지면 저도 모르게 움직임이 격해졌다. 제가 몰아붙이는 거친 움직임에 침대가 삐걱이는 비명을 내지를 때면 그는 발가락을 바짝 오므리며 단단한 목덜미 위에 핏대를 세웠다. 맥이 뛰어오르는 그 위로 이를 박아 자국을 남기는 행위는 옷 위로 보인단 이유로 허락 받지 못했으나 크게 아쉽지는 않았다. 그의 양 발과 다리를 감싸 허리를 거쳐 목에까지 이르는 붉은 문신을 혀나 입술로 차근차근 타고 올라가면 속이 빠듯하도록 차오르는 기분이 들었으니. 

머리 끝까지 치민 열락에 이성을 잃고 땀에 젖어 달라붙은 그의 검은 머리카락을 움켜쥐기라도 하면 들뜬 신음을 흘려내는 와중에도 '네가 감히.' 라고 말하듯 붉은 눈이 서늘한 빛을 띄워냈다. 뒷일이 무서워 곧장 놓기야 하지만 그런 남자를, 직장 상사를 범하고 있다는 지금의 상황을 재확인 하고 나면 흥분감을 더할 뿐이었다.  아, 그 순간을 떠올리는 것 만으로도 아랫배에 후끈한 열기가 모여들었다. 

어쨌건 고백의 순간부터 스티븐이 '난 자네를 사랑하지 않아.' 라고 못박았던 것만 빼면 그래도 나쁘지 않은 연애였다. 애초에 재프는 그 말을 듣고도 상관 없다 답했으니 더 말 하기도 우스웠다.

"스티븐 씨는 나리를 좋아하는 거죠?"

"알면서도 내게 이러고 있다니 미련하네, 재프."

"무슨 미련한 게 저 뿐인 것처럼 말하시네."

스티븐은 답 없이 평소와 같은 웃음을 흘리며 들고 있던 머그잔을 기울였다. 재프의 말이 맞았다. 그야말로 크라우스를 짝사랑 하면서도 그의 곁에 부관으로 남겠다 결심한 미련한 남자였다. 

검은 액체가 스티븐의 입술 새로 흘러 들어가는 것을 보며 재프는 새삼 짙게 풍겨오는 커피 향에 코 아래를 문질렀다. 저 인간 속도 저 커피 색마냥 어지간히 시커멓게 죽어 있겠다 싶었다. 뭐, 원래도 속 검은 인간이니 큰 차이 없을지도 모르겠다만은.

"나리에게 고백이라도 할 게 아니면 그냥 나랑 사귀어요."

어차피 당신은 죽었다 깨어나도 그에게 말하지 않을 거잖아. 성격을 생각하면 마음을 크라우스에게 절대 들키지 않으려 덮어놓고 또 덮어놓을 사람이다. 자신의 진심을 짓밟아 눌러놓고, 둘둘 말아 속에 품은 채 철저히 은폐하겠지. 재프는 답답하고 무의미한 짓이라고 생각했다. 매 순간의 감정에 솔직한 것은 그의 장점인 동시에 단점이기도 했으니. 

스티븐의 눈이 느릿하게 깜박이고, 소리 없이 책상 모서리에 잔을 내려놓으며 그리 무겁지 않은 한숨을 짧게 내쉬었다. 재프는 그 모든 행동 하나하나를 시야에 담았다. 본인이 생각하기에도 다소 집요할 만큼. 

"내가 맨날 밖으로 나돌면서 사고 치는 거 성가시잖아요. 아무리 나라도 당신이랑 사귀면서 여자들 다 만나고 다닐 만큼 간이 크진 않거든. 그동안 나랑 애인들 치정싸움이니 뭐니 일 터지는 거 뒷수습 하기도 번거로웠을 텐데 그냥...."

"그래."

옅은 붉은 색을 머금은 눈이 저를 향하며 그렇게 답을 내어 놓는 순간 그제야 재프는 제가 여태 숨도 쉬지 않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진짠가? 싶었지만 제 청각은 멀쩡했고, 제 앞의 남자가 농담을 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짧게 호흡을 들이마시자 가슴팍이 뻐근하게 당겨왔다.

"그럼 그렇게 하기로 하지."

"...진짜죠? 무르기 없깁니다. 나 이따 나가는 대로 그동안 만나던 관계들 거의 정리할 거니까."

"그럴 필요까진 없고."

이내 누군가의 손아귀에 붙들려 옥죄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명확히 표현할 길 없는 묘한 기분에 사로잡혀 천천히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이자 스티븐의 입꼬리가 느른하게 올라가 웃어보였다. 재프는 독사의 아가리에 머리를 집어 넣은 멍청한 개구리가 된 것 같다고 느꼈다.

그는 지독함으론 스티븐을 절대 뛰어넘을 수 없었다.

연인이라 정의되는 관계에 짝사랑이란 있을 수 없다. 시작부터 틀어져 있던 관계를 어떻게든 좋게 포장해 두고 있었지만 이젠 무의미했다. 

스티븐이 누구를 좋아하는지 똑똑히 알고 있었으나, 굳이 이렇게 가시적으로 증명 받고 싶지는 않았다. 재프는 헬사렘즈 롯의 길거리로 뛰쳐나왔다. 흰 꽃을 뱉어내던 스티븐의 모습이 그의 뇌리에 집요하게 따라붙었다. 속이 울컥이며 치밀어 올랐다. 터져 나오려는 것을 잇새로 잘근잘근 짓씹었으나, 억누르는 입술 새를 기어이 비집고 새빨간 꽃잎들이 떨어져 내렸다. 너덜하게 찢어 발겨진 채 쓴 맛 나는 즙을 머금고 있었다. 역하고 역해서 꽃이 아닌 다른 것들까지 모조리 토해내고 싶었다.

씨발. 재프 랜프로는 그 위로 뱉어낸 욕설이 차라리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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