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듬을 것

벽장 속 톨로페는 계속 떠올릴 수 있는 모든 걸 다시 떠올리고 기억하고 살려내려 애쓰면서 더 아래로 아래로 깊숙이 내려갔다

그래서 톨로페는 다시 자신을 되돌아 보게 된 것이다. 매번 외면하고 멀리하던 그 바보같은 과거를. 다시 한 번. 이번엔 좀 더 꼼꼼히 살펴볼까. 어차피 시간은 많으니까.. 그래서 톨로페는 그 지루하고 긴 시간을 다시 되짚는다. 왜냐하면 그건 어렵지 않고 바로 어제, 아니 방금 일어난 일을 다시 돌아보는 것처럼 선명하니까. 그러다가 어느순간 툭, 하고 끊기는, 뚝 하고 떨어져 버리는 그 순간. 그 순간 이후부터 로페 인생의 2막은 시작이었다고. 로페는 자신의 삶을 그렇게 잃어버렸다고. 언제나 영위하던 언제나 주체가 나였던 내가 이끌 수 있던 그 삶을 잃어버렸다고. 스키는 그렇게 로페를 데리고 왔다고. 지옥같은 같은 일상 나날 다시는 내가 휘두를 수 없는 인생의 한복판에 떨어져서 너는 나를 휘둘리게 내버려두고 너도 같이 떠다니면서 아니 같이 잠겨 죽기만 기다리면서 내게 말해 우리에겐 우리가 가장 중요해, 그걸 잊지 마 톨로. 그리고 톨로는 그걸 잊지 않는다. 그래서 친구들 사이의 어려운 일이 생겨도 결국 중요한 건 우리야. 그래서 정신을 차리는 것이다. 하지만 톨로는 사실 스키에게서도 벗어나고 싶은지도 몰라. 스키가 자신에게 무언가 숨기는 걸 알아. 동료들은 다 죽었을거야. 그래서 스키는 아무도 찾지 못하는거야. 그래서 내게 말해주지 않는거야 스키는 나를 위해 버티고 있는거야 그 모든 사실을 모든 죽음을 떠안고 버티고 있는거야 그러니까 나는 계속 밝은 상태로 스키 곁에 있어줘야 해 내가 할 일은 그것뿐이야 그래서 톨로페는 스키에게 묶인 채 똑같이 죽을 날만 기다리면서 자신의 삶을 다룰 수 있던 자신의 것이었던 그 찬란한 인생을 그저 버리고 있을 뿐인 것이다. 톨로페는 제발
제발 구해주세요 제발 이 지옥같은 일상에서 벗어나서 내가 내 일을 하고 그래서 내가 나로 채워지는 걸 느낄 수있던 그때로 돌아가게 해주세요 제발 아무도 없어요? 왜 아무도 나타나지 않는거야 제발 단 한 명만 살아있는 누구든 한명이라도 나타나서 내 죄악을 들어내고 찢어서 결말에 다가가게 해주었으면 제발 제발
하지만 톨로는 단 한 번도 그런 말을 뱉은 적이 없다. 한 적도 없다. 그건 억눌린 톨로의 내부에서 메아리처럼 울렸다. 그래서 톨로 자신은 듣지 못했다. 내부가 너무 공허해 메아리가 닿을 벽까진 아직 한참이 남아있었다. 그리고 그 벽은 계속 커지고 있었다. 계속 계속 계속 누가 톨로의 진심을 알게 될 때까지. 하지만 그럴 일은 없다. 톨로는 누군가 자신에게 그건 다 거짓이야 라고 말해줄 때까지 속을 것이고 속는 척을 할 것이고 어느날 아는 얼굴을 만나면 말도 안 된다며 지나치거나 하지만 결국 인사를 하게 되거나 대체 왜 이렇게 된 거지? 나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내가 왜 이렇게 된 거야 결국 메아리를 듣는다 메아리는 돌고 돌아 다른 말을 싣고 와 버렸다. 이건 다 스키의 잘못이야. 그럼 가장 중요했던 우린 어떻게 되는 거야? 사라지는거지. 가장 소중한 건 그럼 뭐야? 톨로의 모든 것이 흔들리고 무너지고 그래서 다시 쌓을 수도 없을 정도로 톨로는 완전히 망가져서 가짜로 영위하던 삶조차 잃고 지하로 돌아가려 한다. 왜냐하면 그땐 모든 게 괜찮았거든. 사실 아무것도 괜찮지 않았는데도.

그러니까 그랜드 페스에서 과거팀에 간 건 톨로페에게 잘 맞는 일이었던거야.

단단했던만큼 깨지기도 쉬워서. 갈고 닦아온 망치가 너무 강력했거나. 너도 참 너다. 이쯤에서 헛웃음이 난 거야. 톨로페는 생각하고 생각하고 생각할 시간밖에 없어서 또 생각해서 그래서 꼬여있던 모든 걸 정리하고 다시 세우고 더 깊은 곳이나 잊었던 것, 흘러간 것, 놓친 말들 행동, 장면들을 연결해서 잊고 싶지 않았던 것 뿐이지만 되돌아보니 자신이 얼마나 많은 걸 놓치고 살았는지 알았다. 그걸 빨리 알았다면 이곳에 있지 않았을거야. 하지만 또 같은 이유로 그러지 못했기 때문에 여기 있었다. 그러니까 결국 도달하는 곳은 벽장이다. 원망할 건 자신뿐이구나. 그래서 톨로는 알게 된 걸 다시 짚어본다. 속았던 모든 햇수 도대체 왜 이렇게 많은 시간을 하지만 후회하기엔 너무 늦었다. 그럼 톨로는 다시 과거를 되짚는 것밖에 할 수 없고 다시 속았던 것을 상기하고 바보같았던 자신만 미워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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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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