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린님네(109호)

[히게무명] 死生亦小矣(사생역소의)

*사생역대의: 삶과 죽음이라는 것은 사람에게 대사건이라는 말

살아있음은 느닷없이 흩어지는 법이다.

그리 생각하면 살아있는 것과 살아있지 않은 것은 크게 다를 바가 없다.

히게키리의 주인은 그리 생각하는 이였다.

히게키리로 말하자면, 그런 주인을 보고 있는 것 자체가 좋았다.

살아 숨쉬고 있는 것이 신기했고, 심장이 박동하는 소리가 들리면 즐거웠다.

물건인 채로 있었다면 지난 천년과 앞으로의 천년이 그리 다를바 없었을 것을, 사람의 몸을 가진 지금은 흐름을 가늠할 수 없는 나날이 반복된다.

그 안에서 인간의 평생이란 얼마나 길고 짧을 것인가.

죽음이 유예된 주인의 살아있음은 또 얼마나 짧고 길 것인가.

히게키리는 목숨의 가벼움을 안다.

목숨의 무거움 또한 알고 있다.

주인의 목숨은 가벼울까, 무거울까?

이런 호기심 또한 사람의 몸을 가진 것에서 비롯된 것이고, 이 몸은 주인이 준 것이다.

히게키리의 주인. 보물의 주인.

무명의 보물, 히게키리.

그 삶이 한없이 단단하면 좋을텐데. 생의 무게가 무거우면 좋을텐데.

그래서 오래오래 지켜볼 수 있다면 즐거울텐데.

그러면 얼마나 흐뭇할까.

그것은 오롯이 주인의 생각, 주인의 시간, 주인의 삶.

주인의 왼가슴에 귀를 대고, 가만히 심장이 뛰는 소리를 듣고 있으면 주인의 살아있음이 느껴져서 좋았다.

살아있음은 느닷없이 스러지는 법이다.

그렇기에 살아있지 않은 것과 살아있는 것이 크게 다르지 않다면, 살아있는 편이 좋다고 무명의 중보는 생각한다.

이 속에는 물이 흐르는가, 불이 흐르는가.

나의 귓가에는 어떤 소리가 울리고 있는가.

그도 아니면 주인이 그리 좋아하는 시계의 바늘이 돌아가고 있는가.

히게키리 저 자신이 제멋대로라는 평을 듣는 것은, 그 마음이 쉬이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 주인의 영향일지도 모르겠다.

드러나지 않는 것인지, 틀어쥐고 꺼내놓지 않는 것인지, 둘 다인지.

물건인 채로 보낸 천년과 앞으로의 천년이 다를 것이라면, 안온한 듯 하다가 급변하기도 하는 나날의 반복이라면, 그의 천년은 인간의 평생과 같았으면 좋겠다.

주인의 생과 발 맞추어 걸으며, 그를 지켜볼 수 있으면 좋겠다.

무명의 중보, 히게키리는 그리 생각하며 주인의 왼쪽 가슴에서 귀를 떼고는 하고 싶은 건 다 했느냐는 눈을 한 주인에게 웃어보였다.

“오늘도 건강하구나, 좋은 일이야.”

살아있음은 느닷없이 깨지는 법이다.

물건이 부서지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으니, 그러지 못할 이유가 없으리라.

카테고리
#기타

댓글 1


  • 작은 늑대

    으아아아아아악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하 <ㅇ> 와아아아아악 너무 좋아서 언어를 잃었어요 정말 히게키리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한 조각 한 조각씩 따라가는 느낌.. 아직 어디에 정리는 못해놨지만(ㅋㅋㅋㅋㅋ 무명네 시라노조를 정의해 보자면, 말씀주신 대로 우구이스마루는 신에 가까운 개체, 히게키리와 히자마루는 인간에 가까운 쪽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어요. 그 와중에도 히자마루는 무명의 '지금'이 자기가 생각하기에 옳은 방향으로 존재하기를 원해서(이 부분이 히자의 오만한 점이라고 생각합니다만ㅋㅋㅋ)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기도 하고.. 그런 느낌인데, 히게키리는 무명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든 그 존재 자체를 즐겁게 지켜볼 것 같네요. "이 안에 물이 흘러도, 불이 흘러도" "심장이 뛰고 있어도, 뛰지 않아도, 대신 시곗바늘 같은 게 돌아가고 있어도" 그런 건 아무래도 좋고, 네가 지금 이렇게 있는 것만으로도 좋은.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히게키리... 살아있는 것과 살아있지 않은 게 크게 다르지 않은 유예의 상태라면, "기왕이면 살아있는 편이 좋네" 라고 생각하는 데에서 히게키리의 무심한 다정함이 ㅠ 무명을 정말 아끼고 있구나(방식은 좀 특이하지만요 ㅋㅋㅋㅋㅋㅋㅋㅋ)라는 게 느껴져서 좋았어요. 그리고 그런 히게키리의 호기심< 은 사람의 몸을 지녔다는 데서 비롯된 것이고, 그 몸을 준 무명에게서 비롯됐기도 하고 ㅋㅋㅋㅋㅋ 원래 강한 호기심을 지닌 무명의 성격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점도 ㅠㅠㅠ 좋네요...흐흑 아니 그리고 마지막 대사 진심 CV. 하나에나츠키 아닌가욬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今日も元気だねぇ" "いいことだよね" 약간 힘빠져 있는 듯하지만 후와후와 다정한 말투<ㅋㅋㅋㅋㅋㅋ ㅠㅠㅠ 흡 너무 좋아요 오늘도 저는 이렇게 살아갈 힘을 얻었습니다.. 매번 이렇게 상상도 못할 깜짝선물 주셔서 정말 감사해요ㅠㅠㅠㅠ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