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없음)

연습장 by 슈빌
4
0
0

뜨거운 햇살과 바람이 부는 한적한 아침 시간, 마을을 떠나기 전에 커다란 나무 아래에 앉아 둘은 어느 방향으로 갈지 짐은 다 챙겼는지 같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러면서 백주는 두번째 술병의 뚜껑을 열었다. 그리고 당연히 분골이 적당히 마시라는 잔소리가 돌아올 거라고 생각했지만 분골은 그저 하늘을 보고 있었다.

“날씨가 좋네요.”

“그렇구나. 한 잔 하겠느냐?”

평소라면 저녁 시간도 아니고 앞으로 더 걸어야 하는데 무슨 술이냐고 했을텐데 그는 손을 뻗어서 잔을 받았다.

“그러보니 자네 기타는 어디 갔나?”

“현이 끊어져서 수리를 맡겨야 할 거 같아서 두고 왔습니다.”

“그렇군.”

“새로 하나 사면 되니까요.”

백주는 눈앞의 상대를 보았다. 평소와 같은 보랏빛 눈동자와 웃음. 분골, 이름을 부르자 한 박자 늦게 대답이 돌아왔다. 백주는 술이 아깝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좋은 날, 이렇게 좋은 자연 속에서 술을 즐길 수 있다면 좋을텐데, 아직 오전임에도 불구하고 뜨거운 바람이 머리카락을 흩어놓아 시야를 가린다. 시야가 일부 가려진 순간 상대의 손에 들린 술잔이 백주의 얼굴로 날라왔다. 거, 흉내를 내려면 제대로 흉내 좀 내지. 성의 없게.

혀를 한 번 찬 백주는 술잔을 피하고 그 뒤를 따라오는 주먹을 막아낸 다음 그 손목을 잡아 당겨 균형을 무너트려 바닥에 넘어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자 마찬가지로 금세 자리에서 일어난 상대가 다리를 걸어오는 것을 피해 그는 상대의 위에 올라탔다. 멱살을 잡고 내려본 얼굴은 여전히 웃음으로 가득하지만 그 웃음에서 느껴지는 느낌은 눈앞의 존재가 자신이 사랑하는 이가 아니라는 것을 알리고 있었다.

“그대는 누구인데 내 짝의 흉내를 내는가.”

“하하, 아, 역시 당신이야. 어디에 있던지, 어떤 모습이든지 백주, 당신은 당신이야. 근데 내가 그가 아니라는 건 어떻게 알았데?”

“알려 줄 생각은 없고, 내 질문에 대답 먼저 하는 게 어떤가?”

눈앞의 상대의 얼굴이 그와 똑같은데 그 웃음에서 느껴지는 느낌은 전혀 달라서 기분이 나빠진다. 어설프게 타인을 흉내낸 인형을 보는 거 같은 이질적인 기분 나쁨. 백주는 멱살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언제부터 바뀌었지? 아침부터? 아까 화장실 갔을 때? 언제부터지? 그전에 무사할까?

“무사할 걸? 그가 내 얼굴을 하고 있는 그녀석을 어떻게 할 것도 아니고 그보다 나를 뭐라고 부른거야? 분골? 뭐야, 그 이름은? 놀라서 반응을 못했네. 아, 그래서 들켰나?”

“너는 누구지?”

“뭐기는 빙펀이지.”

재미있다는 듯이 다시 킬킬거린다. 손에 힘이 들어가려는 것을 참고 백주는 생각했다. 방금 전에 한 말로 봐서는 동료가 있는 거 같고 그 동료랑 같이 있는 건가. 그렇다면 아직은 무사할거라고 믿는 수 밖에 없나.

“네 동료가 있는 곳으로 안내해라.”

“하하하, 농담이 안 통하는 성격이었네.”

“이 상황에서 그게 농담이라고 생각하는 이는 드물거다.”

“난 농담이라고 생각하는 쪽이기는 해.”

역시 마음에 안 드는 웃음이다. 하지만 그래도 자신이 아는 연인의 얼굴과 같아서 어쩔 수 없이 팔목을 잡은 상태로 일어나게 하였다. 안내해라, 그 말에 뭐가 그리 웃긴지 킬킬거리던 그는 걸음을 옮겼다. 왔던 길을 되돌아서 마을 안, 자신과 분골이 아침 식사를 했던 식당이 보일 때까지 그것은 백주에게 잡혀서 걸어가면서도 떠들었다. 물론 그 말의 절반 이상을 듣지 않았지만 만상진 오류라니, 뭐라니 이야기하는 걸 보아하니 정말로 식혼인가? 하지만 같은 음식, 같은 얼굴 식혼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나?

“빙펀.”

“이야, 백주. 아니, 지금 저 붙잡고 있는 쪽 말고, 저쪽~.”

자신과 얼굴이 똑같은 이가 거기 서 있었다. 그 점이 매우 기묘했다. 그리고 그런 이 옆에 주저 앉아 있는 자신의 연인의 모습에 바로 잡고 있던 이를 놔주고 팔을 뻗었다. 금세 달려오는 것을 안아주자 제 옆에 있던 이도 교차하듯이 상대에게로 달려갔다.

“너 이상한 장난했느냐. 내가 장난은 적당히 치라고 했던 거 같은데 아무튼 사과는 했느냐?”

“안 했습니다. 만상진 멀쩡해졌나요?”

“다시 작동하고 있으니 괜찮겠지.”

백주는 자신과 똑같은 얼굴을 한 이가 빙펀이라고 불린 이의 등짝을 한 대 때리더니 꾸벅 고개를 숙이는 것에 마주하고 고개를 숙였다. 실례했다, 그 짧은 한마디의 사과와 제 옆에 있는 빙펀의 귀를 잡고는 끌고 골목으로 스윽 들어간다. 번쩍 빛이 새어나오는가 싶더니 골목은 조용해졌다.

“화장실에서 나오는데 백주가, 백주가 갑자기 나타나서- 나랑 같은 얼굴의 다른 식혼이 있어서 놀라서 굳어졌더니 제압 당했어요. 별 일 없었나요?”

검은머리카락, 보라색 눈동자가 자신을 본다. 어색하게, 미안함을 담아서 자신을 보는 시선. 방금전까지 느끼고 있던 불쾌함을 전부 날려버리는 안도감과 기쁨이 밀려와서 백주는 굳어 있던 얼굴을 풀고 그의 손을 잡았다.

“다치지 않았느냐?”

“네, 백주는 다치지 않았습니까? 아까 그는 전혀 아무 말도 안하고 저를 제압만 하고 있었을 뿐입니다.”

“대체 뭐하는 자들인지 알 수가 없지만 그래도 무사하니 다행이다.”

천천히 다시 얼굴을 살피고 몸상태도 확인해본다. 아무 이상 없다. 안심과 함께 백주는 분골의 손을 꼬옥 붙잡았다.

“걱정, 하셨습니까? 괜찮습니다. 저는 괜찮아요.”

“다행이구나.”

“그들도 갔으니 저희도 저희 여행을 계속하죠.”

어느새 태양이 구름 뒤에 숨고, 시원한 바람이 분다. 흩날리는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미소가 자신이 아는 그 미소라서 안심한다.

“그럼, 이번에는 어느 방향으로 가볼까?”

카테고리
#기타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