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없음)

연습장 by 슈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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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는 몇 십 년 만에 돌아온 고향의 풍경을 돌아보면서 추억에 잠겨 있었다. 집 안 어른의 장례식이라고 내려왔지만 그 어른의 얼굴은 거의 기억도 안 나고 일손을 도우려고 해도 마을 사람들이 다 하고 있으니 자연스레 한쪽 구석에서 멍청하게 서 있는 꼴이 되어 어릴적 일들을 떠올리고 있게 되었다. 하천에서 물고기도 잡았지. 공놀이 하다가 공을 잃어버려서 친구들끼리 싸우기도 하고 참 별 일이 다 있었네, 같은 생각을 하면서 도시로 돌아가서 일에 쫓기고, 돈에 쫓길 걸 생각하니 끔찍하다.

“지금 할 일 있니?”

생각을 끊은 것은 마을 어른의 부름이었다.

“아뇨, 아뇨 없습니다.”

“그래, 아직 해 지기 전이니 산지기님에게 인사도 드리고, 음식 좀 전해주고 오지 않겠니?”

산지기라는 말에 잊고 있던 기억이 떠올랐다. 마을의 산에 들어가기 전에는 누구나 산지기라고 불린 이에게서 허락을 받아야했다. 아이들끼리 산에서 놀아도 되지만 해가 질 때가 되면 산의 어디에 있든지 찾아와서 자신들을 내쫓아냈지. 아무도 해가 진 뒤에 산에 남을 수 없었다. 얼굴은 기억 안 나는데 자신이 어렸을 때 젊었다고 생각했으니 지금 아직도 살아있다고 해도 마을 어른들처럼 늙었겠지. 아니면, 그의 자식이 하고 있거나.

“그리고 음식 전해주면서 저번에 물어본 거 대답도 들어오렴.”

“네.”

생각해보면 산지기는 대체 뭐 하는 사람이길래 산을 관리하는 걸까? 산주인인건가? 땅주인 집안? 다들 왜 산지기님이라고 부르는 걸까. 떠오르는 의문에 고민하는 사이 산의 입구가 보인다. 기억 그대로라면 산지기는 산의 입구에 있는 정자에 있고는 했는데 정자는 그대로 있는데 안에 없다. 대신 ‘자리 비움‘ 라고 적힌 화이트 보드가 대신 있을 뿐이다. 그냥 음식을 전해주는 거라면 두고 가면 되겠지만 무슨 답을 들어오라고 했으니 기다려야하나?

아직 해가 완전히 지지 않았는데 들어가서 찾아볼까? 산지기의 허락 같은 거 꼭 필요한가? 해가 지기 전에 집에는 가야하니까, 싶어져서 결국 음식을 그대로 내려놓고 산으로 향했다. 시간이 많이 흐른 걸 알려주는 것처럼 산에는 사람들이 편하게 다닐 수 있는 등산로도 생겼고, 불조심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등산로를 따라서 올라가다가 그는 어릴적에 놀던 폭포가 생각났다. 폭포 아래에서 물고기도 잡고, 수영도 하고 놀았다. 언제부터인가 폭포 위로 보물이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높고, 까마득한 폭포 위로 가는 길은 험난해서 아무도 못 갔지. 어른들은 헛소문이라고 했지만 우리는 항상 길을 찾다가 산지기가 쫓아내고는 했다.

지금도 폭포가 있을까?

그것은 어떠한 충동이었다. 어릴적 추억과 산지기 따윈 아무것도 아닐거라는, 통화권 이탈 지역도 아닌데 상관 없지, 같은 오만한 생각이었다.

“어째 더 커진 거 같네.”

등산로 중간에 있는 등산로 지도를 한참 보다가 폭포를 찾아낸 그는 그곳으로 걸음을 옮겨서 찾아낸 폭포는 변함 없었다. 반쯤 저문 햇빛의 주황빛이 폭포물에 반사 되고 가까이 다가가니 송사리인지 작은 물고기들이 헤엄치고 있었다. 이 산 진짜 깨끗하네. 그 산지기가 잘 관리해서일까. 여기가 산지기 땅이라면 산지기는 제법 부유하지 않을까? A는 자신 안에 욕심이 생긴 걸 깨달았다. 누구는 도시에서 죽어라 살고 있는데 누군 여기서 신선처럼, 산을 물려받고 부럽다.

“해가 지면 산에 아무도 들어올 수 없을텐데 누구십니까?”

인기척도 없이 곁에서 들린 목소리에 놀라서 보니 사내가 서 있었다. 삽을 손에 들고 영화나 드라마에서 볼만한 옛날 무복 같은 옷에 도포를 걸친 묘한 사내가 서 있었다.

“산지기?”

“네, 제가 산지기입니다. 당신은 아, 은행나무 옆의 파란 지붕 댁의 손자분이네요.”

“어?”

“도시로 떠난 거 아니었나요? 아, 혹시 노란 지붕에 사시던 분의 장례식 때문에 온건가요? 고생이네요.”

웃고 있지만 묘하게 삐딱한 웃음을 짓는다. 나이도 자신보다 어려 보이는 그의 그 웃음이 자신을 비웃고 있다는 허튼 생각이 든다.

“어르신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들어오라고 하셨는데 아, 질문이 뭐였는지 못 들었네, 하하.”

“아, 이번에 돌아가신 분 유해를 산에 일부라도 묻어도 되는지 물어보신 거라면 글쎄요, 사람을 묻는 건 좋아하지 않아서 물건 일부만 묻는 게 좋겠죠. 그렇게 전해주세요. 그러면 이제 해가 지기 전에 나가요.”

여전히 웃고 있다. 저 자는 운 좋게 산을 받아서 잘도 사는군. 장례식 음식을 챙겨주는 걸 보니 평소에도 이것저것 챙김 받으려나. 부럽다. 그 생각이 들었다. 자신도 모르게 상대에서 삽을 뺏으려고 했다. 그 머리를 한 대 날려주려고 했다. 그런데 뭔가에 걸려서 넘어졌다.

“어쩜, 인간들이란.”

발을 보니 땅 속에 다리가 묻혀 있다. 왜? 그런 생각을 하며 눈앞에 서 있는 산지기를 올려보았다. 산지기는 미간을 찌푸리면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반격 당하는 거 아닌가, 싶었지만 그는 그냥 한숨만 내쉴 뿐이었다.

“주뢰, 그냥 전부 다 파묻어버리지 그랬어요.”

[아, 그래도 나중에 경찰 조사니 뭐니 파헤치는 건 별로라서요.]

산지기의 중얼거림에 누군가가 답한다. 그것은 낙엽이 바스라지는 소리였고, 폭포에서 물이 떨어지는 소리였고, 싹이 트는 소리었다. 산지기의 뒤로 산 봉우리가 보인다. 그 봉우리에서 시선을 느낀다. 쏟아지는 폭포는 소매자락이며. 쭈욱 뻗은 산등성이가 다리이고, 자신은 산 안에 있다는 걸 깨닫는다.

“뭐, 그건 그렇죠. 경찰이라면 지긋지긋하고 저런 사람을 묻어봤자 당신만 오염되니까요. 해지고 나서 산에 들어오지마요. 아무래도 영산인 이상 사람들을 홀리니까요. 라고 말해도 어째서 사람들은 안 듣는건지, 원.”

산지기가 엎어져 있는 A의 목덜미를 붙잡는다. 몸이 붕 뜨는 것에서 어릴적 기억 하나가 더 떠오른다. 어릴적에도 산지기는 숲에 숨어 있는 자신과 친구들을 찾아내서 밖으로 던져버리고는 했다. 바닥을 구르면서 잊고 있던 산지기의 얼굴이 떠오른다. 어째서 산지기님인지도 깨달으면서 정신을 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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