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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습장 by 슈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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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소리 없이 떨어졌다. 만약에 백주가 분골이랑 나란히 걷고 있었다면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말이다. 그날 산의 좁고, 험한 등산로를 걸으면서 백주가 분골의 뒤에 서 있었기에 떨어진 그것을 바로 볼 수 있었다.

“자네, 이거 떨어트렸다네.”

분골이 평소에도 아끼는 목걸이었다. 보아하니 고리가 고장나서 떨어진 거 같아보여서 백주는 가지고 있는 끈을 꺼내 임시로 고리를 대신하여 목에 걸어주었다.

“이게, 떨어지는 줄 몰랐는데 말입니다.”

그리 말하는 분골의 표정은 얼어붙어 있었다. 뭔가 크게 충격을 받은 얼굴로 가만히 백주와 목걸이를 바라보던 분골은 비틀거리며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백주는 거기에 대해서 뭔가 묻지 않았다. 누구나 마음 속에 비밀이 있지 않는가. 그가 목걸이를 소중하게 여기고 있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안의 사진이라든지 그 사정이라든지 그런 이야기들은 눈치 없게 먼저 물어보고 싶지 않을 뿐이다. 누구나, 말하기 힘든 이야기는 있을테니. 그래서 묻지 않았던거지만 방금 보인 파랗게 질린 얼굴에 백주는 묻고 싶어졌다.

그 목걸이가, 거기 담긴 이가 그렇게 소중하냐고.

새삼 나이에 맞지에 않는 질투라는 감정을 자각하니 부끄럽다. 부끄럽기 그지 없는 일이지 않나. 내가 지금 나이가 몇인데. 그런 생각들이 들어서 백주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면서 제 안의 그 끈적한 감정들을 털어내며 아직도 멍한 얼굴을 하고 있는 분골에게 말을 걸었다.

“다음 마을에 가면 고리를 수리할 수 있을테니 너무 걱정말거라.”

“네, 그렇겠죠.”

“하지만 오늘 안으로 산을 넘어가기 힘들겠구나.”

“이 근처에 머물 곳이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좀 더 걸어가보니 등산객들을 위한 휴게 장소인지 오두막이 하나 있어서 둘은 거기서 머물기로 했다. 난로에 불을 피우고 간단하게 먹을 음식을 차리는 동안에도 분골의 표정은 어두워 보였기에 결국 잔을 하나 더 꺼내서 멍하게 불을 보는 어린 연인을 불렀다.

“말하기 어려운 것을 억지로 말하라고 할 생각은 없지만 그래도 힘든 것이 있다면 힘들다, 슬프다 같은 기분 정도는 털어놔도 네 동행인은 힘들어 하지 않는단다.”

술잔을 받아든 그가 작게 웃는 것을 보며 백주는 자신의 기분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 제 손을 술잔을 비운 그가 크게 숨을 내쉬었다.

“조금, 아니다. 많이 놀랐다고 할까, 그랬습니다.”

“목걸이가 고장난 것이?”

“아뇨, 목걸이가 그렇게 떨어질 때까지 제가 목걸이를 완전히 잊고 있었다는 것이요. 언제나 매일 사진을 봤는데 어느순간 완전히 잊고 있었구나, 싶어서 스스로에게 놀랍고, 그에게 미안해서요.”

그가 누굴까. 그의 가족일까. 백주는 자신의 가족을 떠올렸다. 그도 헤어졌구나. 사라진 듯 보이는 달처럼, 떠난 이가 있구나. 이건 질투해도 소용 없는 일이군. 백주는 잔에 술을 따르는 분골의 손을, 얼굴을 바라보았다. 흐르는 물처럼 사는 우리는 보이지 않는 달을 곁에 두고 걸어가겠지. 허나, 너만큼은 달이 아니라 내 눈에 보이는 그림자로 있었달라고 한다면 큰 욕심일까.

“이대로 잊어버렸다면 영영 떠올리지 못 했을 거 같아요.”

“그랬다면 슬퍼겠지만 내가 주웠지 않느냐. 우린 혼자서 여행하는 것이 아니니 잃어버리면 같이 찾아주마.”

자신은 지금 제대로 위로하고 있는 걸까. 백주는 술과 함께 불안과 질투를 삼켰다. 불에 비친 얼굴이 빨갛게 보이는 건 착각일까.

“같이라는 말 역시 좋네요.”

“좋지.”

“그리고 당신이라서 더 좋구요.”

분골의 손이 목 뒤로 향한다. 목걸이의 줄을 만지는지 목걸이가 짤그락거린다.

“고리 이거 안 풀릴까요?”

“수리 전에 안 풀리게 다시 묶어주마.”

그의 뒤로 가 다시 실을 튼튼하게 묶는다. 은색 고리 사이 하얀 끈을 단단히 묶는다. 손이, 목을 스칠 때마다 묘한 느낌을 들게 만든다.

“수리 안 해도 이대로 충분할 거 같아요. 백주, 당신이 해준거잖아요.”

속삭이는 듯이 말하며 고개를 돌리는 그의 모습에 백주는 웃었다. 생각을 전부 정리했는지 활짝 웃는 것이 어쩜 그리 사랑스러운지. 아, 같이 흐르는 삶 또한 이 얼마나 즐거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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