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내일을 써내려가

그래서 이거 무슨 상황인데…….

네임리스 X

TAKE OFF-ER by 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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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이카와 시오는 이리저리 눈동자를 굴렸다. 그는 무릎을 꿇고 다다미에 앉아 있었다. 앞에는 비슷한 자세로, 아카아시 케이지가 앉아 있었고. 시오는 상당히 난처한 상태였다. 눈앞에 사촌이 있어 케이! 하고 불렀을 뿐인데 옆에 있던 다른 사람이—그게 츠키시마 케이라는 건 시오도 알았다. 하지만 우리가 요비스테 할 사이는 아니지 않나? 내 목소리를 모르는 것도 아닌 사람이!— 대신 고개를 돌리지 않나, 정작 당사자인 아카아시 케이지는 자신을 부른 거냐고 되묻질 않나, 어디 아픈 것 같으니 집에 가자고 하질 않나……. 시오는 당황해서 “내가 왜 너희 집에 가는데…?” 하고 물었고, 아카아시 케이지와 츠키시마 케이는 잠깐 서로를 보더니 “아픈 거 맞는 것 같은데.” “그러네요. 그럼 저는 이만.” “그래, 조심히 들어가.” 하고 알아서 이야기를 끝맺었다. 여기서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이카와 시오밖에 없었다. 시오는 얼떨결에 아카아시의 집까지 끌려갔다. 오, 케이. 좋은 데 사네……. 시오는 무심코 중얼거렸는데, 그걸 들은 건지 아카아시는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여기 ‘우리’집이야, 시오. 어쩐지 우리, 라는 단어에 방점이 찍힌 것 같다면 착각일까.

아카아시는 익숙하게 시오를 거실에 밀어넣고 차를 준비했다. 차? 누가 좋아하는 거지……. 시오는 그런 아카아시를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다, 어쩐지 제가 모르는 게 꽤 많아 보인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니까, 시오. 네 말은.”

아카아시 케이지가 입을 열었다. 시오는 얌전히 아카아시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너랑 내가 사촌이라고. 우린 서로의 든든한 지지자고. 한 번도 그런 쪽으로 서로를 생각해 본 적이 없고.” 시오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카아시는 관자놀이 부근을 짚었다. 정말로 어디가 아프다기엔 하는 말에 일관성이 있었고, 기억의 오류 외에 다른 문제도 전혀 없어 보였다. 아카아시가 한참의 침묵 후에, 입을 열었다.

“…미안하지만, 시오. 우린 결혼만 안 했지 거의 부부야.”

이번엔 시오가 입을 다물었다. 시오가 주먹을 입가에 가져다 대고 눌렀다. 고민하는 모양새였다. 시오가 중얼거렸다. “하긴… 우린 사촌이지만 결혼하는 데엔 문제 없으니까…….” 그러다 퍼뜩, 시오가 고개를 들고 물었다. 연애도 연애인데… 우리 둘의 연애를 절대 봐주지 않을 사람이 한 명 있지 않나? 그래, 쿠로오 테츠로 말이다.

“근데 테츠가 내가 너랑 사귄다는데 가만 뒀어?”

“…테…츠?”

아카아시의 표정에 금이 갔다. 그러고 보니 자신도 ‘케이지’가 아니라 ‘케이’라고 불렀던가. 이쪽의 시오는 애칭을 습관처럼 부르는 사람인가, 싶었다. ‘아카아시의’ 시오는 정직하게 이름 부르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는데. 그래서—당연히 애칭이긴 하겠지만— ‘테츠’도 한 번도 그런 식으로 부른 적이 없었다. 늘 테츠로, 라고 불렀지. 아카아시는 지금 제 앞에 있는 사람이 제가 알던 시오가 아니라는 것은 알았으나 그의 입에서 자신을 제외한 다른 사람의 이름이 나오지 않길 바랐다. 물론, 그게 됐으면 이렇게 우울할 리 없었겠지.

“응? 응. 테츠는 내가 자기랑 사귀기 전에도 아빠처럼 굴었거든. 본인 마음에 안 차면 절대 허락 안 해준다고 하고. 내가 보기엔 테츠는 자기 말곤 다른 사람들을 인정할 생각이 없었던 것 같아.”

아, 분명 이 시오는 ‘내 시오’가 아닐 텐데……. 왜 이렇게 거슬리지?

“시오.”

“응?”

“다른 사람 얘기 그만하면 안 돼? 난 네가 궁금한데.”

시오가 머리를 기울였다. 그렇지만 케이는 이미 나에 대해 다 아는 거 아냐? 아카아시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네’가 궁금하다고. 너는… 내가 알던 시오가 아니잖아. 내가 알던 시오는 나를 ‘케이지’라고 불러, ‘케이’가 아니라. 쿠로오 씨도 ‘테츠’가 아니라 ‘테츠로’라고 부르고. 그러니까 나는, 시오. 내가 알던 시오가 아니라 네가 궁금해. 너는 어떻게 지냈어? 네가 있던 곳은 어땠어? 너는, 지금 뭘 하고 있어? 아카아시 케이지가 아이카와 시오와 눈을 마주했다. 시오는 잠깐 고민하는가 싶더니, 이내 이야기를 해 나갔다.

응, 케이. 나는 너랑 고등학교 가서 만났고, 테츠랑 켄마랑은 내 기억의 시작부터 함께 지냈어. 그리고 피겨도 하고 있고. 이곳의 나도 피겨를 해? 응, 여전히. 다행이다! 난 여기선 국가대표까지 했다가, 음. 나이가 돼서 관뒀지. 그리고 지금은 보조 코치로 지내는 중. 가끔 안무도 만들어. 아, 대학도 갔어. 중앙체육대학. 응, 보쿠토 선배랑 같은 대학이야! 부럽지? 경기 직관도 몇 번 갔지롱. 이쪽의 케이는 어느 대학에 갔어? 우리 쪽은 도쿄대. 한 시간씩 타는 거 귀찮다고 나한테 몇 번 말하던데 난 솔직히 별 상관없었지롱. 덕분에 보쿠토 선배랑도 엄청 친해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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