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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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버몬트주 스펜스만 마을에서 의용소방대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주급은 많지 않지만 나 하나는 건사할 만하고, 불길은 무섭지 않다. 가끔 나는 와이오밍에 사는 내 친구 마이클 존슨에게 전화를 걸어 어떻게 지내냐고 묻고는 한다. 그는 알콜중독이고, 미혼에다가 가족이 없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전화를 걸어 안부를 확인해 줄 사람이 필요하다. 마이클은 오토메일 정비사다. 그 자신도 이슈발 내전에서 다리 한쪽을 잃고 의족을 장착했다. 우리는 전쟁에서 만났는데, 우리 같은 보병들은 전쟁의 자세한 내막까지는 알지 못 한다. 다만 이슈발인들을 최대한 잡아들이고, 가능한 한 사살하라는 명령이 떨어졌을 뿐이고 우리는 충실히 이행했던 기억밖에 없다. 물론 우리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친절이나 자비를 베풀었던 적도 있다. 그러나 단 한번도 그들과 우리가 동일한 선상에 놓여 있다고 생각한 적 없다. 우리는 무엇으로 보나 압도적 우위에 있었다. 전쟁이라기보다는 학살에 가까운 자행이었다.
1907년 6월, 나는 아메스트리스 동남부 국경을 따라 경계 초소를 정찰하고 있었다. 우비를 입은 채였다. 빗물에 눅눅해진 진흙 냄새가 범람했다. 초소에 세워진 가시 철책에 발목이 꽂혀 이도 저도 못 하고 있는 전쟁 포로 하나가 눈에 들어왔는데, 아마도 변소를 들르려다 안개 탓에 길을 잃어 경로를 이탈한 듯했다. 앳된 얼굴이었다. 이제 겨우 스무 살을 넘겼을까 말까 해 보였다. 나는 그 자리에 쭈그리고 앉아 철책에 엉킨 그의 다리를 풀어주려 애썼다. 살갗이 철책에 꿰뚫리고 짓물러 여기저기 고름이 곪아 터져 있었다. 그는 꼬박 반나절을 그곳에서 피 흘리며 누군가가 자신을 발견할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고 했다. 그의 다리를 관통한 철책을 끊어내려고 낑낑대고 있는데, 머리 위로 그림자가 드리웠다. 철모를 눌러 쓴 얼굴이 그늘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지만, 정복에 달라붙은 계급장으로 미루어보아 분명 소령이었다. 여기서 뭘 하고 있죠? 소령이 물었고, 나는 말라붙은 피에 빨개진 손가락을 들어올려 보였다. 포로가 발이 걸려서 도와주고 있었습니다. 금방 소대에 복귀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자 소령이 허리춤에서 총을 빼들었고, 나는 다음 순간 그가 무엇을 할지 알았다. 그럴 필요 없어요. 그는 방아쇠를 당겼다. 궤적을 그리며 날아간 탄환이 피를 너무 많이 흘려 창백해져 있던 어린 포로의 이마 정중앙을 뚫었다. 피를 그렇게 많이 흘렸는데도 또 다른 피가 이마에서 솟구치고 튀어 올랐다. 비린내가 진동했는데, 방금까지 대지가 내뿜던 젖은 흙냄새와는 다른 종류의 비릿한 쇠냄새였다. 당혹감을 숨기며 나는 뺨에 달라붙은 핏자국을 손등으로 문질러 닦아냈다. 죽…일 필요까지 있었습니까? 소령이 나를 내려다봤다. 나는 그의 손에 들려 있는 총구가 내게 옮겨올까 불안에 떨었다. 하지만 입을 멈추지는 않았다. 변소를 착각한 것뿐입니다. 그 순간, 번개가 쳤다. 하늘을 가로지르는 천둥이 번쩍하면서 철모에 가려졌던 소령의 얼굴이 하얗게 물들었다. 졸프 J. 킴블리 소령이었다. 부당하다고 느낍니까? 그가 물었다. 번개가 다시 한번 내리쳤다. 죽음이 부당한 것 같아요? 그가 재차 물었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소령은 총을 허리춤에 집어 넣었고, 그제야 나는 한숨을 토해냈다. 부당한 건 삶입니다. 우리가 이 삶을 선택했어요. 정당함을 원한다면 다른 직업을 택했어야 합니다. 잘못된 시간에, 잘못된 장소에, 잘못된 착각에 놓였다는 이유만으로 사람이 죽는 것. 그것이 전쟁입니다.
그의 말은 부조리했다. 우리는 명확한 명분을 위해 총을 쥐고 국가에 헌신했다. 그러나 그가 이 전쟁에 무슨 명분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답할 수 없다는 사실 역시 인지하고 있었다. 나는 침묵했다. 소령은 나의 불만스러운 표정을 눈치챈 듯 보였고, 그것을 자못 흥미롭게 여기는 것 같았다. 한참 턱을 매만지던 그가 다시 한번 허리춤에 손을 옮겼다. 그가 자신의 총을 내게 넘겨주며 한손으로 이마를 가리켜 보였다. 방금 총알을 쐈습니다. 여기 오기 전에 세 발을 더 쐈고요. 남아 있는 총알은 네 알, 비어 있는 총알도 네 알입니다. 그가 나의 손에 들린 총구를 자신의 이마에 가져갔다. 번들거리는 총구가 이마에 닿을 때 흠칫 떤 것은 그가 아니라 나였다. 쏘세요. 당신이 말하는 대로 전쟁이 그토록 정당하다면, 운명도 죄인에게 정당한 심판을 내리지 않겠습니까. 어깨가 떨렸다. 필히 추위 때문이었다. 한여름임에도 불구하고 며칠째 이어진 폭우로 인해 기온이 8도를 웃돌았다. 발갛게 얼어붙은 코를 씰룩거렸다. 소령은 여전히 나를 보고 있었다. 손가락은 어느새 방아쇠에 걸려 있었다. 당기기만 하면 된다는 것을 알았다. 그의 말이 진심이라는 것도 알았다. 그러나 당길 수 없었다.
마지못해 총을 떨구는 나를 보며 소령은 한참동안 말이 없었다. 그는 실망한 것처럼 보였다. 혹은 흡족해 보이기도 했다. 한동안 나를 골똘히 들여다보던 소령이 이내 입을 열었을 때, 번개가 쳤고, 그의 목소리가 천둥에 묻혀 불분명해졌다. 한 여자가 있었는데……. 그는 그렇게 말했다. 뒷말은 영 알아들을 수 없었다.
진리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뒤돌아서기 전, 소령이 물었다. 그것이 당신을 자유케 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까? 그는 대답을 기대하지 않았고, 나는 그의 기대에 충실했다. 바닥에 떨어진 총을 내려다보며 나는 헐떡거렸다. 소령은 중얼거렸다. 저는 진리를 찾고 있습니다. 아주 오랫동안 찾아 다녔죠. 그것이 내가 원하는 바를 줄 수 있을지……. 그가 고개를 들었다. 빗줄기는 약해지는 대신 점점 굵어졌다. 아쉽게도 내게 답을 줄 수 있는 유일한 여자는 이 전장에 오지 않은 모양이군요.
소령이 빗속으로 사라져 갔다. 내리치는 빗줄기 사이 가물거리는 그의 등을 보다 나는 총을 집어들었다. 희미해져 가는 그의 뒷모습에 대고 황급히 총구를 겨누었다. 숨을 골랐다. 방아쇠를 당겼다. 철컥. 빈 탄창이 걸려 불발에 이르는 총을 허망하게 지켜보다 그것을 내동댕이쳤다. 살상의 기능을 수행하지 못 하는 총은 쓰레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을 알면서도 소령이 이 쓰레기장을 배회하는 이유가 궁금하면서도 알고 싶지 않았다. 나는 눈도 감지 못 하고 죽은 시체를 옆에 두고 고뇌했고, 내전 이후 군을 나왔다. 소령이 상관 살해 혐의로 구속되어 현재 감옥에 있다는 소식을 들은 것은 그로부터 얼마 후였다. 나는 면회를 가지 않았고, 그를 완전히 잊은 것처럼 살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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