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크리스마스 합작

청소부의 크리스마스

* 과거 연성 백업본입니다.

* 영문 번역본: https://docs.google.com/document/d/1z2-xvr8nC8c8KxOvuS1Jf57ksvmvalnI3wzsxcONbt8/edit?usp=drivesdk

크리스마스가 왔다고 해서 제 일은 별반 다를 게 없어요. 병실도 관리해야 되지, 복도 대걸레질 해야 되지, 여기저기 소독해야 되지... 그 외에도 해야 될 온갖 잡일이 많아요. 휴일이라고 사람들이 안 아픈 것도 아니니까, 병원은 계속 바쁘게 돌아가죠. 게다가 이 병원 상황이 어떤지는 당신도 잘 아시다시피, 가뜩이나 일손도 부족한데 겨울이라서 환자들이 평소보다 더 많이 오고 있잖아요.

그래서 저도 이렇게 크리스마스날 출근해서 일하고 있잖습니까. 병원이랑 환자들을 위해서라는 건 입 발린 소리고, 추가 수당 준다길래 이러고 있습죠. 전 사실 돈 쥐꼬리만큼 더 받는 거보다는 간만에 좀 쉬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하는데 말이에요. 하지만 먹고살려면 어쩔 수 없잖아요. 지금 월급으론 별로 넉넉한 편이 아니라고요. 그래도 올해 크리스마스는 조금 나은 기분으로 일하고 있어요. 어째선지 얘기해 드릴까요? 흥미가 있으시다면요.

아시다시피 어제 오전에 눈이 잔뜩 내렸지요. 눈이 오면 아이들은 눈 속에서 노느라 신날 거고, 몇몇 사람들은 온통 눈으로 덮인 풍경을 보며 그저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즐기고 있겠죠. 하지만 저한텐 눈이란 그저 성가신 존재일 뿐이에요. 눈이 오면 바닥이 온통 눈 녹은 물로 진창이 돼서 평소보다 더 자주 닦아줘야 하는 데다가, 눈이 꽁꽁 얼어붙기 전에 제설도 해야 하니까요. 또 구급차가 들어와야 하니까 도로가 얼어붙지 않게도 해야 하고요. 진짜로 힘들다고요.

어쨌든, 하려던 이야기로 돌아가죠. 그 날 전 병원 건물 주변의 눈을 치우고 있었어요. 거의 다 치워갈 때 쯤에, 눈 쌓아놓은 곳에 뭔가 조그만한 게 반짝이는 게 보이지 뭡니까. 뭔가 해서 자세히 보니까 은색 반지더라고요. 삽에 있던 눈을 그 위에 쏟기 직전에 발견해서 다행이었죠. 하마터면 반지가 영영 눈 속에 묻혀 버릴 뻔 했다니까요.

아무래도 이거 누군가가 잃어버린 것 같았어요. 나중에 이거 때문에 귀찮은 일이 생길지도 모르니까, 전 일단 반지를 안내 데스크에 맡겨 놓기로 했습니다. 안내 방송이라도 하면 주인이 찾아갈 테니까요.

그런데 반지를 맡기러 가는 도중에, 누가 고래고래 소리지르는 게 들리더군요. 보니까 웬 취객이 난동을 부리고 있었고요. 병원에 취객이 들어와서 문제 일으키는 건 종종 겪는 일인데, 그런 건 보통 해 진 뒤에 생기거든요. 그런데 저 사람은 크리스마스 이브라고 아침부터 퍼마신 것 같았더라고요. 세상에, 술냄새가 아주 진동을 하더군요. 게다가 그 양반 성질은 또 얼마나 고약한지, 간호사가 그 사람 말리는 데 아주 진땀을 빼고 있었죠.

저랑 간호사랑 둘이서 그 사람을 간신히 내보낸 거,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십니까? 그나마 저희 둘 다 별로 안 다친 게 다행이었죠. 성질 더러운 인간들이 크리스마스 시즌이라고 스크루지 영감마냥 막 착하게 굴게 되는 게 아닌 건 알지만, 크리스마스 이브 날에까지 그런 사람을 상대해야 했다니. 정말이지 월급 좀 더 받아야 되겠다니까요.

그뿐인가요. 그 인간이 난리 치고 간 거 뒷정리도 해야 했다고요. 그거 정리하느라 반지에 대한 건 잠깐 잊어먹고 있었죠. 적어도 그 십대 아이들이 페이지 씨한테 물어보는 걸 듣기 전까지는요.

"의사 선생님, 혹시 반지 못 보셨나요? 은색 반지에요. 아까 놀다가, 아니면 놀고 나서 병실로 돌아갈 때 잃어버린 것 같아요."

둘 중에 여자아이 쪽이 물어보자, 페이지 씨가 대답했죠.

"미안하지만 반지는 본 적 없는 것 같아. 그래도 반지 찾는 것 정도는 도와줄 수 있을 것 같은데. 지금이라면 시간이 좀 나거든."

"정말이요? 고맙습니다!"

남자아이가 그렇게 말하고 나서, 셋이서 같이 다른 쪽으로 가 버렸습니다.

전 그 아이들이 찾고 있던 반지가 아까 그 반지인 게 틀림없다고 생각하고 반지를 가지러 갔죠. 아, 깜빡하고 얘기를 안 한 것 같네요. 아까 그 취객을 말리러 갈때, 손에 들고 있던 반지를 근처 어디다가 올려놓았거든요. 그런데 문제가 생겼지 뭡니까. 뭔진 대략 짐작 가시죠? 맞아요, 반지가 없어졌어요.

반지 놔뒀던 곳 주변을 열심히 찾아봤는데 안 보이니까, 정말 오만 가지 생각이 다 들더라고요. 솔직히 말하죠, 저 그때 그냥 반지 찾는 거 관두려고 했습니다. 어짜피 제가 반지 찾은 건 아무도 몰랐고, 제가 그걸 굳이 또 잃어버렸다고 말해서 또 다른 문제를 만들고 싶지도 않았으니까요.

그런데, 그 아이들 둘이서 실망한 표정으로 이쪽으로 돌아오는 걸 보니까, 솔직히 좀 찔리더라고요. 특히나 여자애가 "어떡하지? 그 반지, 부모님이 선물해 주신 건데..." 라고 말하는 걸 들었을 때요. 그냥, 저랑은 상관없는 일인 척 하기가 어려웠어요.

어떻게 상관없는 사람인 척 하면서 도와줄 지에 대한 건 생각보다 쉽게 해결됐죠. 그 애들이 직접 저보고 반지 찾는 걸 도와달라고 했거든요. 페이지 씨는 환자 호출 때문에 급하게 가셔야 했다나요. 게다가 운도 좀 따라 줬어요. 애들이 이번에는 구역을 나눠서 따로 찾기로 했는데, 저는 제가 반지를 뒀던 쪽에서 찾아보게 됐거든요.

여기저기를 찾아본 끝에, 이번에는 반지를 찾을 수 있었어요. 어디서 찾은 줄 아세요? 제가 반지 뒀던 곳 바로 근처에 있던 크리스마스 트리 밑이요.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트리 받침대의 바닥에 닿는 부분이 금속 링 모양으로 되어 있어서 위장 효과를 낸 모양이더라고요. 어쩌다 트리 밑으로 떨어진 건진 모르겠지만, 뭐 찾았으니 이젠 상관없죠.

반지를 여자애한테 돌려주니까 그 애들이 정말로 기뻐했어요. 여자애는 저한테 엄청 감사 인사를 했고요. 아, 그리고 오늘 아침에 보니까, 제 사무실 앞에 빨간색 포장지에 싸인 상자 하나가 카드랑 함께 놓여 있었어요. 안에는 크리스마스 쿠키 여러가지 종류가 들어있더라고요. 카드엔 이렇게 적혀 있었어요.

'어제 반지 찾는 거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엄마랑 같이 쿠키를 구웠는데, 좀 나눠드리고 싶었어요. 마음에 드셨으면 좋겠네요. 메리 크리스마스! 헤일리로부터.'

솔직히 답례까지 받게 될 지는 몰랐지만, 기분은 꽤 괜찮더군요. 게다가 이 쿠키, 진짜 맛있거든요. 있잖아요, 올해 크리스마스는 꽤 기억에 남을 것 같아요.

이야긴 여기서 끝인데, 어땠나요? 아 이런,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요. 슬슬 일이나 계속 하러 가야 될 것 같아요. 얘기 즐거웠어요. 즐거운 크리스마스 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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