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키 단편 (미완성)
럭키가 팀의 가장 사이 안 좋은 팀원을 만났을 때
* 과거 연성 백업본입니다.
* 현재 미완성인 글입니다. 계속 이어서 쓸지는 모르겠습니다.
* 5-X 이후 시점입니다.
* 원작에 등장하지 않는 오리지널 캐릭터가 등장합니다.
* English version: https://docs.google.com/document/d/1tkUyi_6MU9LnhGV_eyZ0BqHv4NwqGh3HeB0qynaH85A/edit?usp=drivesdk
야구공이 이곳저곳 날아다녔다. 미들시 병원 야구단이 연습 중이었고, 코치인 막시모 ‘럭키’ 혼드로네로가 그 근처 벤치에 앉아 있었다. 미들시 스케일즈의 전 에이스인 그는 오른팔에 깁스를 한 채로 환자들이 수비하는 모습을 엄하지만 조금은 기쁜 눈길로 지켜보았다. 지난번의 승리로 고무되어, 환자들의 연습에는 한층 더 힘이 들어가 있었다.
“좋아요, 오늘은 이쯤 하죠. 각자 물품 정리하시고, 몸 상태 이상하다 싶으면 의사한테 말씀하시고요.”
럭키가 박수를 딱 치자, 환자들은 연습을 마치고 각자의 병실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함께 떠들던 환자들이 떠나고 야구장이 다시 조용해졌을 때, 럭키도 슬슬 자기 병실로 돌아가려고 했다. 그 목소리를 들은 건 그때였다. 익숙했지만 여기서 들으리라곤 예상하지 못했고, 또 듣고 싶지도 않았던 목소리가.
“오랜만이에요, 럭키 씨. 부상 이후로 처음 보네요.”
미들시 스케일스 유니폼을 입은 그 남자가 말했다.
“그 부상조차도 야구랑 당신을 떼어내지는 못한 것 같지만요. 코치 복장도 잘 어울려요, 럭키 씨.”
그가 미소지었다. 럭키가 입원한 이후로 구단 쪽 사람 중에서는 처음으로 찾아온 사람이었지만, 럭키는 전혀 기쁘지 않았다. 왜 하필 저 자식이란 말인가?
다리우스 그라임스, 그 남자의 이름이었다. 한때 스케일스 최고의 타자였던 남자. 럭키가 자신의 타자로서의 재능을 발견하기 전까지의 얘기긴 하지만 말이다. 럭키가 부상으로 자리를 비운 후로 다시 주목받기 시작하고 있는 선수이기도 했다.
그라임스는 럭키가 팀 내에서 가장 싫어하는 팀원이기도 했다. 럭키 성격상 그의 주변에는 그렇게 가까운 사람이 많지 않은 편이었고, 럭키 자신도 자신의 플레이에 크게 방해가 되지 않는 이상 팀원들에게 그렇게 큰 관심을 주지 않는 편이었다. 그러나 그라임스의 경우는 달랐다. 럭키에게 있어서 그라임스의 존재는 거슬렸다. 그가 ‘나쁜’ 사람이어서는 아니었다. 오히려 그라임스의 대외적인 이미지는 정반대였다.
그라임스는 항상 미소짓고 친절하고 예의바른 사내였다. 하지만 럭키는 늘 그가 불편했다. 이유는 몰랐지만, 그의 본능은 그를 피하라고 소리지르고 있었다. 특히 럭키와 그라임스가 잠깐이라도 단 둘만 있을 때면 말이다. 그의 눈빛 때문일까, 말투 때문일까, 거의 항상 입가에 띠고 있는 저 미소 때문일까? 아니면 도대체 저 머리 속에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일까? 저 친절한 언행 속에서도 럭키는 뭔가 기분 나쁘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었고, 그 느낌은 종종 그를 향한 거친 언행으로 튀어나오고는 했다. 그래서 럭키와 다른 팀원들과의 불화에 대한 기사에는 항상 그라임스의 이름이 빠지지 않았다.
“...네가 왜 여기 있는 건데.”
럭키는 짜증이 치밀어 오는 것을 느끼며 일어섰다. 그의 적갈색 눈이 그라임스의 눈을 쳐다보았다.
“그 대학 팀과의 경기 얘기 듣고 한번 와봤어요.”
그라임스가 항상 럭키를 불편하게 만들었던 그 미소를 얼굴에 띤 채로 대답했다. 마치 럭키의 무례한 말투는 하나도 신경쓰지 않는다는 듯이.
“허, 그래?”
럭키는 억지로 짜증감을 누르며 다시 앉았다. 아무리 싫어하는 상대라도 어쨌든 부상 이후 처음으로 누군가가 방문한 상황이니까. 쫓아낼 만한 구실도 없었고, 어쨌든 구단 쪽 사람이니 언론이 다루지 않는 내부 상황도 알 터였다. 팀에서는 영 소식이 없으니 이렇게라도 알아낼 수밖에 없었다. 대화 상대가 마음에 안 든다는 게 문제였지만.
“그래서, 팀은 어떤데? 나 없이도 팀 분위기는 당연히 아주 잘 돌아가겠지. 플레이오프가 2주 전이었던 것 같은데.”
럭키의 말투에 여전히 짜증이 묻어나는 것은 별 수 없었다. 그라임스는 그러거나 말거나 럭키 옆 빈 자리에, 적당히 거리를 두고 앉았다.
“팀은 그럭저럭 돌아가고 있어요. 하지만 역시 팀 최고의 투수이자 타자인 당신을 잃었으니 역시 좀 힘들어요. 최근 경기를 보셨을 테니 아시겠지만요. 그래도 최소한 팀 성적은 제가 유지하고 있으니 너무 걱정 마세요. 제가 럭키 씨만큼 단숨에 팀 성적을 끌어올릴 만한 실력까지는 안 되지만, 최소한 하위권으로 떨어뜨리지는 않게 노력하고 있으니까요.”
럭키는 얼굴을 살짝 찡그렸다. 그 녀석의 말은 아무리 들어도 진심으로 하는 말 같지 않다.
“...코치가 나에 대해 뭔가 말한 건 있어? 다른 사람들은?”
“코치님은 럭키 씨가 재활에 집중하셨으면 하세요. 그래서 저희도 찾아오지 않았던 거고요. 그리고 제 생각엔 코치님이 맞아요. 럭키 씨는 좀 휴식이 필요해요. 팀 걱정은 말고, 천천히 럭키 씨만의 시간을 좀 가지세요. 완벽한 컨디션으로 돌아오실 수 있도록요.”
그라임스는 마치 럭키를 걱정이라도 하듯 ‘휴식’이라는 단어를 묘하게 강조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전혀 럭키의 맘에 들지 않았다. 걱정이나 동정 따위도 필요하지 않았다. 그게 싫어하는 사람으로부터 오는 것이라면 더욱. 그는 슬슬 짜증을 억누르기가 힘들어지고 있었다.
“안 그래도 착실히 재활하고 있다고. 네가 상관하든지 말든지.”
“그냥 걱정돼서 그렇게 말한 거예요. 충분히 시간을 갖고 몸을 좀 돌보세요. 무리하셨다간 더 나빠진다고요.”
“안다니까!”
간신히 분노를 참으며 럭키는 주먹을 꽉 쥐었다. 그라임스의 말투가 그 어느 때보다도 럭키를 더 화나게 만들었다. 그는 슬슬 한계를 느끼기 시작했다. 반면 그라임스는 태연히 대화를 이어 갔다.
“그나저나 잘 돼가요? 재활 말이에요. 언제쯤 팀에 돌아오실 것 같나요?”
“그건 도대체 왜 묻는 건데? 상관 마.”
이제 럭키는 분노를 감출 생각도 하지 않았다. 높아진 언성에도 그라임스의 태도는 흔들리지 않았다.
“진정하세요. 전 그냥 코치님이 한번 확인해달라고 해서 물어보는 거라고요. 그게 다예요.”
쯧. 럭키는 혀를 한번 차곤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몇 달 정도.”
그는 자신의 약점을 그라임스에게 드러내는 것만 같아서 더는 말하고 싶지 않았다.
“몇 달이라… 길다면 긴 시간이네요. 그럼 그 뒤엔 그라운드로 돌아오시겠네요?”
“내가 그걸 어떻게 아냐고! 의사들조차 내가 이전처럼 공을 던질 수 있다고 장담하질 못하는데!”
럭키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오른 나머지 무심코 말을 내뱉었고, 곧 자기가 실수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 잊어버려. 재활만 끝난다면 난 돌아갈 거야. 예전보다 훨씬 나은 상태로. 내가 자리를 비웠다는 걸 느낄 수도 없게 만들어 주지.”
그라임스는 여전히 미소짓고 있었다. 기분 탓일 수도 있겠지만, 럭키는 순간적으로 그라임스의 표정이 살짝 바뀌었던 것을 본 것 같았다. 동시에 그는 묘하게 소름끼치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가요? 다시 마운드에 서시는 모습 기대할게요, 럭키 씨. 제가 응원할 테니까요.”
럭키는 아직 머리가 채 식지 않은 채였다. 그라임스의 말에 대한 적당한 답을 찾지 못한 그는 그대로 조용히 있었다. 그러나 아까보다는 한 풀 꺾인 분노 사이로 이성이 다시 고개를 들자, 럭키는 한 가지 의문점이 떠올랐다. 저 자식이 왜 굳이 방문한 거지? 코치가 자신의 회복 기간을 알고 싶었다면 병원에 연락을 하면 됐었을 텐데. 아니면 다른 구단 관계자를 보내든가. 그렇다면 이 방문은 그냥 선의에서 나온 걸까? 럭키는 그 생각을 곧바로 부정했다. 럭키는 그라임스의 의중을 읽으려는 시도를 금방 집어치우고 직접적으로 물었다.
“그저 안부나 물어보려고 여기까지 행차하진 않았을 텐데. 대체 왜 온 거야? 그렇게나 걱정되면 왜 진작 오지 않은 건데?”
그라임스는 침착했으나 럭키의 추궁에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묘한 표정으로 럭키를 쳐다볼 뿐이었다. 그의 두 눈이 슬쩍 주변을 확인하고 있었고, 언제나의 그 미소는 더 이상 미소로 보이지 않았다.
“과연 에이스 투수다운 날카로운 통찰력이네요, 혼드로네로 씨. 맘에 들어요. 그 통찰력이 어디까지 닿을지 궁금하군요.”
‘도대체 무슨 꿍꿍이인 거지, 그라임스?’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것을 느끼며 럭키가 벌떡 일어섰을 때, 그를 부르는 낯익은 목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로건과 헤일리였다. 럭키는 멈칫했다. 두 명이 손을 흔들며 외쳤다.
“코치님, 페이지 선생님이 찾으세요!”
그라임스가 슬쩍 둘이 오는 방향을 곁눈질한 직후, 그에게서 뿜어져나오던 묘한 기운이 갑작스레 사라졌다. 예의 그 미소 역시 돌아왔다. 럭키에게는 어느 쪽이나 기분 나쁘긴 마찬가지였지만 말이다.
“세상에, 다리우스 그라임스 씨 맞네요! 여긴 코치님을 만나러 오신 거죠?”
두 명은 그라임스를 금방 알아보았다. 둘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마, 만나서 영광이에요! 지난번 경기 때 그 홈런 대단했어요!”
“하하, 고마워요. 좋아해 주시니 기쁘네요.”
여전히 그 미소를 얼굴에 띤 채로 그라임스는 로건의 소심한 악수를 받아 주었다. 헤일리도 옆에서 눈을 빛내고 있었다.
그라임스가 십 대 두 명을 상대하느라 바쁜 동안, 럭키는 그라임스와 거리를 약간 두고 팔짱을 낀 채 조용히 그를 지켜보며 얼굴을 찡그렸다. 럭키는 아까 그라임스가 했던 말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확실히 럭키를 견제하려는 것 같았다. 하지만 왜 굳이? 럭키가 어깨 부상으로 당분간 복귀가 요원해진 이상 그럴 필요도 없을 터이고, 자신을 견제해 봤자 팀에게 돌아가는 것은 피해뿐일 텐데 말이다. 여지껏 팀을 지탱해 왔던 게 바로 럭키였으니. 럭키는 그 이상 그라임스의 의도에 대해서 알 수 없었다.
로건의 말로 인해 럭키의 생각은 끊겼다.
“코치님, 슬슬 페이지 선생님한테 가봐야 할 것 같아요. 저희도 이따 선생님을 보기로 했고요. 같이 가실래요?”
“곧 갈 테니까 먼저 가봐.”
고개를 끄덕이곤 먼저 출발하는 둘에게 손을 흔들어 주고는, 럭키는 역시 그 자리를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던 그라임스를 힐끔 쳐다보았다.
“저도 가 봐야 할 것 같네요. 당신 작은 팀이 잘 되도록 응원할게요, 코치님. 그러니 럭키 씨도 저희를 지켜봐 주세요.”
그렇게 말하고선 그라임스는 떠났다. 럭키는 간신히 도발을 무시하며 병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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