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비
인턴 뇌피셜을 풀기 위한 단편
* 과거 연성 백업본입니다.
* 필자의 인턴 뇌피셜을 풀기 위해 이틀만에 후다닥 써낸 글이라 퀄리티가 조금 떨어집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미들시 병원에서의 근무가 항상 그렇듯이, 그 날 저녁도 인턴의 PDA는 쉴 틈을 모르고 울렸고, 인턴의 모니터는 이 병실 저 병실을 비추었다. 오늘 몇 번째 환자를 본 건지도 잊어버릴 정도의 업무를 처리하면서, 인턴은 기계 팔을 또다른 병실로 움직였다. 지친 탓인지 기계 팔의 움직임도 유난히 굼떠 보였다.
아니, 자세히 보니 기분 탓이 아니었다. 모니터 너머로 보이는 팔의 움직임이 조금 이상했다. 움직임은 느렸고, 검지손가락에서는 조금 삐걱이는 소리가 났다. 아까 환자 볼 때까진 괜찮았던 것 같은데.
아마 이안이라면 왜 이러는지 알 수 있으리라 생각하며 인턴은 이안의 사무실이 있는 지하실로 기계팔을 이동시켰다. 이안은 자기가 부르지도 않았는데 사무실의 카메라가 작동하자 의아한 눈치였지만, 인턴이 기계팔을 움직여 보이자 곧 이유를 알아챘다.
“아 이런. 요즘 바빠서 정비를 통 못 했네. 기계 자체가 오래됐기도 하고. 이거 리듬닥터 프로젝트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만든 거거든. 미안해, 인턴. 바로 정비해 줄게.”
이안은 기계 팔의 연결을 끊고 책상 서랍에서 공구를 꺼내서 바로 작업에 돌입했다. 카메라 연결은 끊지 않았기에, 인턴은 이안이 작업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인턴은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보통 팔의 정비는 인턴이 퇴근한 사이에 이뤄졌기 때문이었다.
이안이 기계팔을 환자들이 좀 더 친숙하게 느끼도록 하기 위해 덮어 놓은 소매와 실리콘 피부를 걷어내고 나사를 몇 개 풀자 금속으로 된 관절과 뼈대가 나타났다.
“아이고, 여기가 마모됐네. 역시 최근에 너무 무리했구나. 부품은 있으니까 교체해 줄게.”
이안은 능숙한 솜씨로 마모된 검지 부분의 부품을 교체하고 마무리로 윤활유를 발랐다.
“이젠 잘 될거야. 다시 연결해 줄테니까 한번 움직여 봐.”
그 말대로 손가락에서는 더 이상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고, 손가락의 움직임이 훨씬 수월해졌다.
“그리고 그 다음은… 움직임이 느린 걸 해결해야 하는데. 음, 통신 문제인가?”
이안이 기계팔을 좀 더 끌어당겼다. 그러자 저 긴 팔 뒤에 뭐가 있었는지 인턴은 드디어 볼 수 있었다. 팔의 반대쪽 끝, 사람이라면 어깨가 있었을 자리에 컨트롤 박스가 있었다.
“어… 분명 열쇠를 여기 둔 거 같은데…”
이안이 서랍을 뒤지며 중얼거렸다. 이안은 한동안 주변을 뒤지다, 우연히 주머니에 손을 넣어 보고는 멋쩍게 웃으며 열쇠를 꺼냈다.
“등잔 밑이 어둡다니까. 하하…”
이안이 드디어 박스를 열었다. 안에는 인턴이 잘 알지 못하는 복잡한 기계장치가 들어 있었고, 한 편에는 와이파이 통신 장치가 있었다. 이안이 통신 상태를 점검해 보곤 말했다.
“통신 상태는 정상인데. 바퀴가 문제인가? 아니면 좋겠는데.”
이안이 컨트롤 박스를 지지하는 받침대의 아래쪽을 들여다봤다. 그리고 곧 살짝 얼굴을 찡그렸다.
“아, 이거 어쩌지. 교체를 해야겠는데, 아까 보니까 바퀴는 여분이 없더라고. 게다가 넌 지금 바쁘잖아. …아, 일단은 임시로 외출용 기체에 있는 거 빼다 써야겠네. 잠깐만 있어봐.”
이안이 또다른 기계 팔을 끌고 왔다. 헤일리와 함께 외출했을 때 처음 연결해 본 기체다. 전체적으로, 특히 팔 부분은 거의 똑같이 생겼지만 몇 가지 차이점도 눈에 띄었다. 컨트롤 박스가 훨씬 작고 받침대에서 분리할 수 있게 되어 있다는 것이 제일 큰 차이였는데, 덕분에 사람들의 눈에 덜 띄도록 가방에 넣고 다닐 수 있었다. 기차에서도 헤일리가 캐리어에다 기계 팔을 넣어 다녔었다. 대신 버튼은 잘 챙기고 다녀야 한다는 게 단점이었다. 평소에 쓰는 것은 받침대에 수납부가 있어서 평소에는 버튼을 편하게 넣어뒀기 때문이다.
“이것도 상태가 영 꽝이네. 하지만 일단 굴러가긴 하니까…”
그 말대로 이 기체의 바퀴도 상태가 별로였다. 하긴, 그 기체로 리무진을 추격하고 롤러장을 달리리라곤 예상도 못 했으니까. 바깥에서 활동할 것을 상정해 좀 더 안정성이 높고 더 빠르게 움직일 수 있게 만들어진 바퀴라도 그런 짓을 하면 상태가 안 좋아질 수밖에 없다.
이안은 외출용 기체를 눕혀 그나마 상태가 나은 바퀴를 하나 떼서 병원용 기체에다 끼우고 연결을 복구했다.
“됐다. 제대로 작동하는지 시험해 보자. 다시 시스템에 연결해 줄테니 테스트해 줘.”
인턴은 그 말에 따랐다. 바퀴의 상태가 아주 좋지는 않았지만, 최소한 아까보다는 빠르게 움직였다. 이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지막으로 보정만 다시 하면 되겠네!”
인턴은 버튼을 꺼내서 근처에 올려놓고, 이안이 보정용 프로그램을 켜자 환자들에게 늘 했던 것과 같이 이안의 컴퓨터에 버튼을 무선으로 연결했다. 리듬닥터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데 사용하는 컴퓨터라서 그런지, 병원의 다른 컴퓨터와는 달리 이 컴퓨터는 리듬닥터의 시스템이 환자로 감지했다.
삑, 삑, 삑, 삑, 삑, 삑, 삑! 뚜루두두두두. 익숙한 효과음과 함께 보정이 완료되자, 이안은 인턴에게 가 보라고 손짓했다.
“다 됐어. 환자들이 기다리고 있을 거 같으니까 빨리 업무로 복귀하는 게 좋겠다. 나도 팀장님 요구사항을 다 맞추려면 빨리 일해야 하고. 우리 둘 다 힘내자. 에이다가 올 때까진 아직 몇 시간이나 있어야 하니까.”
인턴은 이안에게 인사를 한 후 이안의 사무실을 나와 다시 업무로 복귀했다. 기계 팔의 바퀴가 살짝 덜커덩거리며 병실로 향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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