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meo

하이틴au

#0

너는 몰랐겠지만, 우린 생각보다 많은 씬에 함께 나왔어.

#1

나는 숨을 오래 참을 수 있어. 그래서 종종 숨을 가득 참고선 바다 아래로 잠수를 했지. 물 밑에서 바라보는 수면의 반짝임은, 생각보다- 끝내주거든. 내가 알고있던 파랑이 오로지 빛무리를 만났단 이유로 반짝임을 받아들이고 아름다움이 가속화돼. 플라네타리움에서 보는 인공의 조도가 만들어내는 별무리보다 더, 쏟아질것같이 잘게 빛나는 모습은 몇 번을 봐도 질리지 않아. 그 날도 마찬가지였어.

귓가에는 귀울음같이 먹먹한 물아래 특유의 소리가 들렸고, 나는 들이킨 숨을 뱉을 정도로만 그 아래 있었지. 아래에서 위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비밀 공간이 생기는 설렘을 알고있을까. 아마 모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 그도 그럴게, 빛으로 일렁이는 그 순간을 네가 가르고 들어왔거든. 의도한 다이빙은 아닌 것 같은데 물보라가 엄청 세게 치고, 내가 보고있던 세계가 잔뜩 흔들렸지. 잔잔한 세계가 한꺼번에 이지러지면서 네가 호흡하느라 토해낸 기포가 자연스레 방울져서 위로 올라갔어. 그 모든 곳으로 쏟아지는 빛과 함께, 눈을 꼭 감은채로 팔을 휘적이는 네가 있었던거야.

그래, 넌 꼭 바다에 떨어진 유성처럼 내 세계를 가르고 오는구나. 분명 별의 조각이 대기권을 찢고 바다의 수면을 부술 때도 꼭 그날같은 소리가 났을 거야. 첨벙! 하고. 꼭, 넌 보지 못했던 바닷속의 풍경 마냥 세상이 물보라로 흔들렸겠지!

세상엔 복잡한 것들이 너무 많아. 캘리의 일교차가 위아래로 20도만 더 났어도 남에게 관심갖는 일이 줄어들까? 누군가와 이야기하는 건 즐겁지만, 특정한 하나를 만나지 않는단 이유로 모두를 즐겁게 해야한단건 때론 버거워. 내 배가 있었다면 좋았을텐데. 마치 아일랜드의 거친 폭풍우를 뚫는 갤리선 선장처럼 말야. 닻을 내리는것보다 올리는 날이 많다면 이런 고민은 사라지려나? 뭐, 네 손목을 잡은건 의도보다는 우연이었어. 나는 답지않게 곤란했고, 너는 그저 내 옆을 스쳐가고 있었지. 네 동그란 뒤통수를 보자마자 나는 반사적으로 움직였어. 손목을 낚아채고 전리품마냥 들었지. 못생긴 체크셔츠, 두텁게 쓴 안경. 이어폰 너머로 빠져나오는 시끄러운 기타리프와, 테가 예쁜 녹색 눈.

너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가 온통 '놀람'으로 가득차던 표정까지.

내가 너랑 사귄다고 말했을 때, 넌 무슨 생각을 했어?

난 네가 그 자리에서 부정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 그도 그럴게 접점이라고는 딱 두번이잖아. 네 어설픈 다이빙을 봤을 때랑, 네가 내 옆을 지나갔단거. 심장이 뛰긴 했는데, 나쁜 짓 한 것 같아서 두근거렸어. 아니라고 딱 한 마디만 내뱉었다면- 아무렇지도 않은 관계인채 그냥 아무것도 아닌 독립된 두 사람으로 있었을텐데, 너는 입을 다물었지. 아직도 네가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어.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단단한 입술은 굳게 닫혀있어서 완고했는데도, 마주친 눈과 시선만은 부드러운 호선을 그리고 있었지. 나는 내가 한 거짓말을 순간 잊어버릴뻔 했지. 네가 내 연인이라고 믿어버릴뻔 했어. 현실과 공상 사이의 경계가 지워지는 기분을 알고 있니? 그건 분명-

숨을 잔뜩 내뱉느라 남은 공기방울과, 물보라와- 높은 파도의 모습을 하고 있을 거야. 

#2

거짓말을 정교하게 쌓아올리는 건 스윙바이랑 비슷하다고 생각했어. 그렇게 아다리가 꽉 맞는건 아니지만 사실과 흡사한 거짓말들을 중력처럼 삼아 도약할 추진력을 얻었던 거야. 같이 붙어다니는 것도, 주말에 너를 보러가는 것도 모두 '우린 사귀는 사이야'라는 큰 거짓말의 핍진성을 더하기 위해 수행했던 행동인데도, 부수적으로는 항상 즐거움이 남아. 그건 진짜- 이상한 기분이야. 맘이 둥둥 떠다니는것같고, 닻을 잃은 배처럼 표류하는 것 같아. 나는 너랑 같이 있으면서, 네가 꼭 석양의 풍경같은 사람이라는 걸 알았어. 남을 속이는게 길어질수록 함께 있는 시간이 길어지는 건 이상해. 거짓말과 현실의 경계는 매일 흐려지고, 손을 잡을 때 숨을 이상하게 삼키는 '나'만 네 옆에 남는 거야.

이 속임수의 최초는 ‘마나난은 때로는 혼자 있고 싶다’였을텐데, 최후는 왜 ‘너와 같이 있고 싶다’가 되는걸까? 가장 처음의 네가 시야에 남아서? 그것이 곧 눈길이 되어서? 거짓말 하나를 줄이기 위해 섞었던 진짜 데이트가 즐거워서? 너와 함께 걸었던 해변의 백사장의 모래가 너무 간질거려서? 날 스쳐지나가는 네 손목을 잡았을 때부터 사랑이 예비되어있어서?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은 어디서부터 기원하는걸까. 너는 날 위해, 내가 널 위해 예비된 것도 아닌데 왜 자꾸만 같이 있는 순간을 그리게 되는 걸까. 나는 숨을 오래 참을 수 있어. 잠수는 인내심의 문제지. 종종 조용히, 바닷속에 잠겨있는걸 좋아해. 사람을 그닥 좋아하진 않아. 그런데….

하늘을 찢고 바다에 쏟아지는 유성처럼. 그 별이 불러오는 물보라마냥. 끊임없이 산란하는 수면의 빛처럼. 이 모든 연쇄가 널 사랑하기 위해 예비된것마냥 차질없이 이뤄지는 이 순간에서는 그냥, 다소 억울하게도 네게 좋아한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거야. 이 모든 비유나 구질구질한 설명들 위에 성립하는 마음의 이름은 사랑. 그러니까, 결론을 내릴수밖에.

나 마나난은 너. 아를을 모자람없이 사랑해.

최초의 비행기는 양력을 정확히 모르면서도 하늘을 날았대. 내 손으로 잡은 우연이 어느 순간 필연처럼 느껴지는 것에도 이름을 붙일 수 없지만 알수 있는 게 있어. 그러니까, 내 말은… 정확히 이름짓지 않아도, 내가 널 좋아하게 된건 모자람없는 진실이라고 믿어.

너는 몰랐겠지만 우린 생각보다 많은 씬을 함께 겪었어. 허울 좋은 거짓말도 무대에 올리는 순간 연극이 되지. 그러니 커튼콜의 순간 물어보게 되는건 체호프의 총처럼 당연한 한 마디네. 

있지, 아를. 내 주인공이 되어주지 않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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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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