닿음의 미학

십이국기 au

남친이 상서로운 동물이라도 입술은 부비고싶어... 

 

가볍게 눈을 깜빡일 때마다 보이는 두 뺨은 서서히 세를 늘리는 노을처럼 붉어져 있었다.

누군가를 꾀었던 적이 언제인지조차 기억나질 않았고, 저가 지금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붉게 달아오른 그의 뺨만큼이나 자신의 것도 달아올랐으리란 미약한 추측만이 가능했다. 쪼듯, 그의 입술에 깊게 입맞추었다. 그를 부를 호칭이 태보, 혹은 엔키- 정도밖에 없다는 것이 뭇내 아쉬웠다. 근처를 둘러싼 모든 것들에 이름을 명명하는 그 습관을 몇십 년 전에라도 닮았더라면, 지금 눈 앞에 있는 이 사람을 좀 더 특별하게 불렀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했다.

고대했던 순간을 눈 앞에 두고도 생각이 다른 곳으로 튀는 것은, 그만큼 현실감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저 몽롱했다. 허리를 감싸 안은 두꺼운 두 팔을 느꼈다. 체온은 깊게 따뜻했다. 열기가 올라 뺨이 홧홧했다. 괜히 장난을 치는 척 그의 볼에 입술을 누르고, 입을 벌려 볼을 담았다. 볼살이 그렇게 있는 편은 아니라, 벌린 입에 비해 들어온 것은 적었다. 사탕을 핥는 것처럼 볼을 간질였다가 다시 입술에 제 숨을 지그시 겹쳤다.

새삼스러운 일이었다. 하고 싶어했던 일이기도 했다. 괜히 눈을 감았다. 시선의 행간을 읽을 것 같았다. 눈을 감자 감각은 자연스럽게 기민해졌고, 그의 숨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태보, 라고 부르면 네, 하고 공손히 답이 돌아온다. 호칭으로 쌓아둔 벽을 자각해야만 하는데, 눈을 감아 들리지 않았다. 그저 그가 따듯했다는 어설픈 이유를 붙여 이 다음으로 나아가고 싶단 욕망이 선명했다. 그것은 왕과 기린에게 허용되지 않을 영역 같아서, 그는 괜히 주저하듯 그의 입술만을 지분거렸다.

무언가 말을 하려 입을 벌린 그 애의 숨을 가볍게 핥았다. 아랫입술을 빨다가 쪽쪽거리면서 다시 어린애가 하는 쪼는 듯한 입맞춤을 남기고, 또다시 깊은 곳을 욕망하는 것처럼 입술 전체를 입에 넣었다가, 혀로 길게 훑었다. 물기 어린 소리가 남을수록 달아오르는 것은 욕심인데, 이러한 음심을 그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아 닿을수록 비참해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저 쾌락만이 선명하여 어떻게 해야할지 알수 없었다.

당겨준다면 좋을텐데 같은 어설픈 생각을 하다가도, 미움받고 싶지 않다가도. 마음은 몇 번이고 모습을 바꾸어 닿고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어떠한 리듬도, 의도도 없이 그저 입술을 핥다가도 깊은 마음을 담아 그의 혀 끝을 가볍게 건드리고선 실수인척 애매하게 웃었다. 제 꼴이 우습단 자각은 있었다. 태보의 주상이 하기에는 너무나도 깊은 욕망이 선명해서 울 것 같은 기분이 되었다. 그러니까 선을 넘지 말았어야지. 스스로에게 속삭이는 소리는 마치 귀울음처럼 들렸다.

숨을 갈무리하듯 그의 혀 끝을 톡톡 건드리고선 입술을 다시 누르고, 친애인 척 그의 콧망울과 콧날에 쪽, 쪽, 하고 숨을 묻히고는 입술을 땠다. 입맞춘 것만으로도 몸이 달아오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만, 눈 앞의 태보에게는 그다지 당연한 일은 아닐 것이라 애써 생각하며 몸을 때었다. 실컷 예쁨받았으니 놔 주어야지, 라고 말하면서 눈을 뜨자. 저 하는 꼴을 골몰히 본 듯한 표정의 그 애가 보여 순간 소리를 지를 뻔 했다. 도둑이 제발 저리는 꼴이 따로 없었다.

여전히 허리에는 양팔이 굳게 두르고 있고, 뒷걸음친다하여도 놓아줄 것 같지 않았다. 조금 곤란하여 시선을 돌리자 염려하는 듯한 목소리가 물었다. 괜찮으십니까 주상? 이라는 호칭에 잠시 아득해졌다. 조금이라도 무언갈 알았다면 이 다음이 있었을까 싶었다가도, 저 스스로 그어둔 선을 손수 넘었다는 것이 부끄러워 그저 그의 어깨에 이마를 대고 체중을 기대었다. 여전히 심장소리는 귓가에서 울렸고, 이렇게 수치스러워할거라면 그냥 혀라도 넣을 걸 싶다가도 그저 이 자리에서 사라져버리고 싶다가도 또 온기를 탐하고 싶다가도.

주상인 주제에 여염집 소녀처럼 오르락거리락 하는 마음을 갈무리 하지 못해, 그는 그저 저의 태보에게 적당한 애칭을 진작 지어줬더라면 이 순간 부를 ‘덜 부끄러운 호칭’이 있었겠지 싶어 한숨이나 푹푹 내쉬는 것이었다. 와중에 닿았던 입술이 간질거리는 것 같았다. 가득 찬 마음이 범람하는 듯 파도쳐, 이를 어찌 수습할까 하다가 그저 그의 등 너머로 보이는 현영궁 아래의 운해만 힐끗힐끗 바라보다가, 문득 제 숨쉴 포말은 쉼 없이도 밀려올 것이라던 첫 날의 약속이 생각나 문득 개구지게 웃어버리고선 기대어 끌어안게 되는 것이었다.

이 모든 것이 그저 불가항력적인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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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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