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

아무개글짓기연습

글쓰기 by 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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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1 기말고사를 망치고 나서 다니고 있던 학원을 모두 끊었다. 그 후 겨울방학이 시작되자 원혁은 방 안에만 틀어박혀 하루종일 게임만 했다. 일주일이 되던 날, 보다못한 그의 엄마가 그를 억지로 끌고나와 차에 태웠다. 옆에는 이미 여동생 연서도 타고 있었다.

“넌 뭐냐?”

“뭐가.”

자기는 뺏긴 핸드폰을 보면서 태연하게 앉아있는 연서를 보곤 짜증이나 괜히 시비를 걸었다. 연서는 그런 오빠를 향해 인상을 구겼다가 금새 다시 핸드폰에 집중했다. 그 모습에 원혁은 멋쩍어져 고개를 돌리고 팔짱을 껴 도도한 척 했다.

“우리 어디가요?”

“할머니집.”

차가 출발한 지 30분 째에 원혁은 이상함을 느끼고 엄마에게 서둘러 물었다. 대답이 돌아오자 원혁과 연서는 동시에 네? 하고 외쳤다가 서로를 쳐다봤다.

“넌 아는 거 아니었어?”

“엄마가 집에서 할 거 없음 타라길래 어디 카페라도 또 가는 줄 알았지!”

“카페?”

“사실 저번주 주말에 방에만 있는 오빠 빼고 엄마아빠랑 티비에 나온 유명한 카페 다녀왔거든. 그래서 또 거기 가는 줄 알고 탄 건데….”

“어쩐지 너 인*타에 글 엄청 올리더라. 게임 하는데 알림 자꾸와서 팔취했어.”

“아 씨, 팔로우 수가 비대칭인 게 니가 원인이었구나?”

그 뒤로 연서는 다시 팔로우를 걸라며 원혁을 계속 협박했다. 머리끄댕이를 잡아도 꿈쩍을 안하자 연서는 결국 포기하고 똑같이 팔로우를 취소했다.

“다 왔어. 내려.”

엄마가 차 앞문을 닫는 소리에 자다 깬 원혁은 서둘러 창문 밖을 보았다. 풍경에서 눈 쌓인 논과 산이 보였으므로 영락없는 시골이었다. 곧 엄마가 동생과 원혁을 불러 트렁크에 실린 짐을 옮기라고 시켰다. 안을 슬쩍 들여다보니 모두 자신들의 옷이었다. 아, 자고 갈 건가 보네. 연서는 대놓고 질색하다 옆에서 한 대 맞았기 때문에 원혁은 속으로만 질색했다.

“눈 별로 안쌓였네.”

그래도 춥긴 추운지 원혁은 코를 훌쩍였다.

퍽.

등 뒤가 한 순간에 시려워졌다. 그리고 좀 아팠다.

“뭉칠 만큼은 있어.”

뒤를 돌아보니 동생이 어느새 장갑을 가져와 돌을 넣어눈을 굴리고 있었다. 무서워진 원혁은 조금씩 뒷걸음질을 치다 그대로 할머니 집까지 단숨에 뛰어 들어갔다. 현관쪽에는 아까 옮긴 짐이 그대로 있었다.

“근데 할머니는 어디 가셨어요?”

“마을회관~. 아마 저녁 때나 오실거야.”

시계를 보니 대강 1시 쯤이었다. 어느덧 원혁을 쫒아 집까지 온 동생이 그를 보고 던질 자세를 잡았지만 엄마가 보이자 급하게 뒤로 숨겼다.

간단하게 라면으로 점심을 때우고 다시 밖에 나오자 햇빛이 강하게 비춰 아까보다 눈이 녹은 게 보였다.

“우와, 그 짧은 시간 안에 눈이 이렇게 많이 녹아도 되는 거야?”

연서가 놀란 눈으로 주위를 몇 번 둘러보다 이내 실망하며 장갑을 벗어 주머니에 꽂았다. 그 모습을 본 원혁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근데 이 정도 온도면 눈이 아니라 비가 내리겠는데?”

“해 없으면 또 모르지. 그리고 지금은 구름도 없잖아.”

“아까 좀 춥긴 했지만 그래도 12월인데 이것보단 더 추워야 되는 거 아니야?”

연서는 겉옷을 벗어 팔에 끼우곤 그대로 몇 초간 기다렸다. 그의 볼은 감싼 게 없어서 약간 빨개졌으나 생각보다 버틸만 했다.

“비 오면 눈 다 녹겠지?”

아직도 미련을 버리지 못했는지 연서가 조용히 혼잣말을 했다.

“비 안 온다니까…. 햇빛 가려지면 또 추워질 거야. ”

“오면 어쩔 건데? 내기 할래?”

연서는 허겁지겁 집으로 다시 들어갔다가 금방 다시 나왔다. 손에는 만원 두 장이 들려있었다.

“그 돈은 뭐야?”

“내 거랑 오빠 거.”

“미쳤냐? 도로 넣어 놔라.”

“비 오면 이거 둘 다 내가 갖고 눈 오면 오빠가 갖는 거야. 왜? 질까봐 겁나?”

연서가 지폐를 흔들거리며 원혁을 살살 약올렸다. 원혁이 돈을 뺏으려고 손을 약하게 몇 번 뻣었다가 빗나가 실패했다. 오기가 생긴 원혁은 연서의 팔을 붙잡고 손에 들린 이 만 원을 빠르게 휙 낚아챘다.

“아, 내 만 원 내 놔!”

“내기 할 게. 그 대신 돈은 내가 갖고 있는 걸로.”

결국 동생의 도발에 넘어간 그를 보며 연서가 실실 쪼갰다.

“그럼 그 때까지 기다리는 거야. 하늘에서 뭐가 먼저 내릴 지 보자고.”

“겨울이니까 당연히 눈이지.”

“온도가 이렇게 높은데? 그리고 돈 몰래 쓰면 나한테 죽을 줄 알아.”

“내가 넌 줄 아나.”

마지막 한 마디에 동생이 주먹을 들어 올렸다. 원혁은 더 있다간 그 주먹으로 맞을 것 같아 집으로 후다닥 대피했다.

할머니 집에 있는 동안은 하늘이 맑아 뭐가 내릴 것 같지 않았다. 지붕에 올라와 누워서 구름을 찾다 지친 연서가 내려왔다가 또 올라오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엄마에게 들켜 위험하다고 혼이 났다. 중학생은 원래 저렇게 겁이 없나 하고 원혁은 생각했다.

겨울이라 그런지 낮보다 밤이 더 조용했다. 여름에 왔으면 온갖 벌레들과 곤충의 울음소리로 가득했을 것이 윗공기가 조금 추웠을 뿐 뜨거운 바닥 덕에 큰 어려움 없이 곧바로 잠에 들었다.

2박 3일을 할머니집에서 보내고 차에 다시 짐을 실었다. 할머니의 푸짐한 인심 덕분에 왔을 때보다 짐이 더 커져서 안 그래도 작은 차의 작은 트렁크를 잠구는데 조금 힘이 들었다. 내용물은 저번 달에 담궜다던 김치가 대부분이었다. 원혁과 연서가 그렇게 잘 먹는다며 엄마가 할머니께 떠든 결과였다.

“결국 눈도 비도 안 왔네.”

“내기는 무효로 할까.”

만 원을 포기하지 못했던 연서는 고개를 저었다. 그 답변에 원혁은 아깝다는 표정을 지었다. 유치한 도발에 넘어가 내기를 수락한 것을 내심 후회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후회한 것 중 눈이 올 것 같지 않은 온도도 한 몫했다.

그렇게 며칠이 흐르고 잊어갈 때쯤 밖에 나가려고 잡은잠바 주머니에서 이 만 원이 나왔다. 동생 방을 지나갈 땐 살짝 눈치가 보였지만 그쪽도 까먹은 모양이라 땡잡았다 생각하고 편의점에 뛰어 들어갔다.

먹을 것들을 쓸어담아 계산대에 올렸을 때 빗방울이 하나 둘씩 떨어지더니 봉투에 물건을 넣고 편의점 문을 열였을 땐 소리가 날 정도로 비가 쏟아져 내렸다.

띠롱-

폰을 들여다보니 동생이 남긴 메시지가 보였다.

‘내가 이겼으니까 이 만 원 내 거.’

원혁은 못 본척 폰을 끄고 원래 만나기로 했던 친구들을 만나러 발길을 향했다.

그 날 비가 갠 뒤엔 재수없게 무지개가 폈다. 원혁의 친구들은 겨울에도 무지개가 피냐며 한참을 신기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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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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