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무지개가 싫다

“난 무지개가 싫어.”라는 말에 너는 “왜?”라고 물었다.

그야, 우리 뽀미랑 할머니가 무지개다리를 건너갔고, 심지어 너도 저 너머로 가버리려고 하니까.

차마 그런 말을 내뱉을 수는 없어서 머리를 긁적거리다 그냥 입만 삐죽 내밀고 창밖을 봤다.

조용한 병실 창문 앞에는 경고라도 하는 것처럼 찬란한 무지개가 코앞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아쉽다. 난 무지개 좋아하는데.”

병실 침대 위에 앉아 몇초간 무지개를 바라보던 네가 입을 열었다.

“그도 그럴 게, 우리가 처음 만난 날에 무지개가 있었잖아.”

그랬던가.

너와 처음 만난 날은 이제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너와 있으면서 과거를 기억할 시간이 아까워 뒤돌아보지 않았으니까.

시간이 갈수록 너와 함께한 과거는 흐려지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만 커져갔다.

우리는 10년지기 친구고, 가능하다면 평생 친구로 지낼 수 있을 텐데.

의리 없는 놈이 자꾸만 먼저 가버리려고 한다.

맞다.

초등학생 때 운동장에서 너를 봤을 때 해가 쨍쨍한 여름이었지.

혼자 그네를 타고 있던 내 앞으로 한 팔에 농구공을 안고 찾아왔었다.

처음에는 뭐 하는 놈인가 싶었는데.

그냥 농구밖에 모르는 바보 멍청이.

같이 농구를 하자며 손을 질질 끌고 가서 몇 시간이나 공을 튀겼었지.

일기예보에 비가 온다더니, 먹구름이 조금씩 꼈다.

결국 비가 쏟아져 우리는 손으로 머리를 가리고 학교 입구 쪽으로 달려가 비를 피했다.

우리는 한동안 문 앞에 쭈그려 앉아 비가 그치기만을 기다렸다.

그 짧은 사이에 너는 처음 만나는 사람한테 고민을 주절주절 쏟아내다 눈물을 흘리더라.

그러다 뭔가를 깨달았는지 울음을 뚝 그치고 벌떡 일어나 고맙다며 배시시 웃었지.

무슨 고민이었는지, 농구 관련이었던 것 같긴 한데. 아마 별 커다란 고민도 아니었겠지.

그런데도 나와 같은 꼬마애가 혼자 극복하는 과정을 보는 게 내게는 꽤 충격이었다.

그때 네 뒤로 무지개가 보였던 것 같기도 해.

그 시절에는 나보다 키가 한 뼘은 더 커서 앞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그늘을 만들어냈다.

지금은 왜 이리 작아졌지.

농구로 다져진 근육은 어느새 다 빠져 앙상하고 길쭉한 뼈다귀만 남았잖아.

방심하면 눈물이 흐를 것 같아서 네 어깨에 얼굴을 푹 묻었다.

너는 바보같이 쓰다듬어달라는 줄 알고 내 머리를 잔뜩 헤집었고.

그리고 무지개는 서서히 사라져갔다.

“오늘은 못 건너가겠다.”

네가 헤실거리며 웃는 말에, 욕지거리를 하며 주먹으로 명치를 퍽 쳤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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