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일이 많은 날

그런 날은 유독 무지개가 뜨고 햇빛이 눈부시더라.

올블라 by 올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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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기게도 그렇다.

공부든, 과제든, 쌓인 일이 많을 때.

지친 몸을 이끌고 간신히 집 근처 정류장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은 아무도 없고 차창은 눈부신 햇살을 눈 따갑게 내 눈에서 반짝이고 날씨는 바람이 서늘히 불며 하늘은 새파랗더라.

아니, 이런 건 다 누가 꾸미는 짓인가? 당장이라도 버스를 뛰쳐내려 자신에게 오라는 듯 하늘에 뜬 무지개가 손짓했다.

할 일들이 많아서 눈물을 머금고 돌아설 때 즈음이면, 저 멀리서 무지개가 구름을 한 아름 껴안고 나의 뒤를 조심스레 밟아온다.

나는 걷다가 멈추고 걷다가 멈추고를 반복하며 그런 네가 괘씸해 돌아서서 눈을 흘기면 아무것도 모르는 마냥 멈춰서 휘바람을 불었다.

[이거는 오늘까지 자료 보내주시고요. 다음에 만나서 다 같이 정리해 봐요. 시간이 없어서 회의는 여기까지 하고 부탁한 대로 시간 엄수해서 단톡방에 보내주셔야 해요.]

나도 오늘은 나가고 싶었는데.

애꿎은 콘크리트 바닥을 턱턱거리며 발로 찼다. 집으로 들어가기 전 얼음컵과 아메리카노 음료를 담아 움직이기 싫은 다리를 움직여 현관을 열고 들어와 나의 몸을 침대에 무너뜨리며 눈을 잠깐 감았다가 뜨면 아까까지 보였던 무지개가 보이지 않고 어느샌가 내가 보이지 않는 곳으로 숨어버린다.

나는 한숨을 내쉬곤, 책상에 앉아 쓰디쓴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노트북을 두드리기 시작한다.

사락사락 소리내며 넘어가는 책장소리와 토독토독 문자를 적어내려가는 소음이 방안을 메운다.

그렇게 창밖은 무지개를 품었던 하늘마저도 검게 변해 보이지않게 되어버렸고 내 방에 밝은 것이라곤 자료를 다 정리한 노트북의 화면창만이 밝게 빛을 내뿜었고 얼음이 다 녹기 전에 마셔버린 아메리카노는 얼음이 녹아 물이 가득 담긴 플라스틱 컵이 됐고, 컵의 벽면을 타고 흐르는 물방울에는 각각 무지개 색을 띠었다.

나는 무감각하게 파일을 보내고 노트북을 덮었다.

방안이 어두워졌고, 이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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