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가 싫어
밴드 같은 건 할 생각도 없었다.
그것도 보컬은 더더욱.
애초에 난 심각한 음치였으니까.
노래를 부르는 게 지독히도 싫어서 노래방도 몇 번 가본 적 없다.
그런데도 어떻게 밴드부에 들어가게 되었냐고?
정말이지 내 의지는 아니었다.
친한 친구가 밴드를 하고 싶어 했고,
또 밴드부에 인원이 부족하다고 멋대로 내 이름을 끼워 넣은 것이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보컬이냐고.
내가 끔찍이도 노래를 싫어하는 걸 알면서.
뒤늦게 밴드부에 가입된 사실을 알고 선생님께 말씀드렸지만,
동아리 신청 기간이 끝나 더는 변경할 수 없다고 했다.
그 뒤로 일주일이 넘게 친구와 냉전을 벌이고 있다.
복도에서 마주쳐도 인사도 않고 쌩하니 가버렸다.
사실 노래 자체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노래를 부르는 게 싫은 건, 노래를 못 부르기 때문이다.
유치원 시절에 노래하면 친구들이 울었고,
초등학생 때는 조롱거리가 되었다.
중학생부터는 수행평가 시간마다 꾀병을 부리고 도망갔다.
그리고 고등학교에 온 지금.
어이없게도 밴드부 보컬이 된 것이다.
친구는 쉬는 시간마다 나를 보러왔다.
몇 번을 미안하다며 사과했지만,
내 허락 없이 밴드부에 집어넣은 것이 괘씸하여
아직까지 사과를 받아주지 않았다.
사실 화는 오래전에 풀렸다.
칭찬을 어려워하는 친구는,
가끔 좋은 말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항상
내 목소리를 칭찬해 주었다.
밴드부 인원수가 부족하다는 핑계로
보컬에 나를 집어넣었지만,
사실 나와 노래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그동안 노래방에 절대 같이 가주지 않고,
가더라도 노래는 절대 부르지 않았으니까.
동아리에 들어가면 다른 부원들 눈치를 봐서라도
불러야 하는 상황이 생기고 말겠지.
걔는 그런 상황을 원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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