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창작

밴드

레트로봇 - 권부자

글창고 by 모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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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도시의 영웅들 1기 이전 시점!

※별 거 없고요 짧습니다 오늘도 어김없이 마구 갈긴 글…….

>>이 글을 쓰게 된 계기.

주간창작_6월_2주차

밴드

다들 한 번쯤 가져본 적 있는 로망

w. 목화

“어때, 마음에 드니?”

그렇게 묻는 리모의 목소리가 조금 들떠 있었다. 티스푼으로 컵을 휘휘 저으면서도 시선은 거실의 세모에게로 고정한 채였다. 직접 악기사에서 구매한 기타를 들고 집으로 돌아온 지 겨우 10분도 안 되었다. 코어로이드 상태의 제트와 함께 세모는 기타를 구경하기 바빴다. 조심스레 빳빳한 소프트커버를 벗기자 반짝이는 일렉기타의 바디가 드러났다. 우와, 진짜 멋지다 그러더라구! 제트가 작게 외쳤다.

“마음에 들어요. 감사합니다, 아빠.”

“감사할 게 뭐 있어. 네가 용돈 모아 산 건데.”

물론 기타의 가격이 세모가 모은 용돈의 금액을 꽤 넘어서, 세모 몰래 제 돈을 보태주긴 했지만. 저축의 중요성과 아이의 성취감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지불할 값이었다. 애초에 리모는 밴드 음악을 즐겨 듣던 아이가 기타를 갖고 싶다고 말했을 때 선뜻 기타를 사주겠다고 하기도 했고. 그걸 거절하고 제 용돈을 모아 사길 택한 것은 다름 아닌 세모 스스로의 의지였다.

“레슨은 정말 안 받아도 되겠니? 기타는 네가 샀지만, 레슨비 정도는 아빠가 내줄 수 있어.”

“괜찮아요, 숙제 받고 연습하면서 의무적으로 하는 것보단 혼자 하는 게 좋아요.”

뭐, 네가 정 그렇다면야. 리모가 어깨를 으쓱였다. 커피를 휘젓던 티스푼을 개수대에 내려놓고, 소파에 앉아있던 세모의 근처로 다가갔다. 조심조심 기타를 잡고 폼을 취하고 있는 게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서툰 아이의 모습에 웃음이 비져나왔지만, 슬슬 사춘기가 올 시기인 세모가 수치를 느끼고 제 방으로 냉큼 숨어버릴까 리모는 머그컵을 입가에 가져다대며 애써 표정을 감추었다.

“세모, 기타 칠 줄 아냐, 그러더라고.”

“인터넷에서 코드만 몇 개 봤어. 그러니까, 제일 쉬운 코드가…….”

세모가 기억을 되짚으며 왼손으로 기타 넥을 더듬었다. 언젠가 인터넷에서 보았던 기초 코드는 손가락 두 개만 짚으면 되는 것이었는데. 실제로 기타를 손에 쥐니 몇 번 지판을, 몇 번째 줄을 짚어야 맞는 건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엠프나 헤드셋을 연결한 것도 아니라 틱틱거리는 소음만 날 뿐 기타 소리가 시원하게 들리는 것도 아니니 더 그랬다. 제트의 기대 가득한 눈빛에 너무 성급히 쥐었나. 헤드셋을 쓰고 혼자 이리저리 잡아볼 걸 그랬나. 제 앞에 서서 저를 올려다보는 제트의 반짝이는 눈빛에, 세모의 등골을 타고 식은땀이 주륵 흘렀다.

“검지를 여기, 중지를 여기.”

내색도 하지 못하고 우왕좌왕 지판 위를 맴돌던 세모의 손을 이끌어준 것은 다름아닌 리모였다. 세모의 눈썹이 들썩였다. 아, 맞다. 흐릿하던 코드가 정확히 기억났다. 리모가 도와준대로였다. 이게 am 코드였지. 조심스레 오른손으로 기타 줄을 쓸어내렸다. 기타 바디에 줄이 부딪히는 소리는 악기의 소리와는 거리가 멀었지만, 제트는 제자리에서 방방 뛰며 감탄사를 쏟아냈다.

“우와, 세모! 진-짜 멋지다 그러더라구!”

“아빠, 기타 칠 줄 아세요?”

그런 말씀 없으셨잖아요. 세모가 리모를 돌아보았다. 제가 기타를 사고 싶다고 말했을 때도, 중학교에 올라가면 밴드부 활동을 해보고 싶다고 했을 때도, 어떤 기타를 사야 좋을지 모르겠다며 며칠 동안 머리를 싸매고 고민할 때도 묘하게 한 발 물러난 채 그저 세모를 응원해주기만 했어서. 리모의 전공이나 직업도 음악과는 무관하니 리모가 기타를 칠 줄 알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뭐……. 고등학교 때 잠깐.”

“……과학고등학교에서요?”

세모가 못 믿겠다는 듯 눈을 가늘게 떴다. 리모 역시 뭔가 찔리는 구석이 있는 듯, 세모의 시선을 똑바로 마주치지 못하고 눈을 데굴데굴 굴리기 바빴다. 아, 이래서 말하기 싫었던 건데. 작고 귀여운 우리 아들이 쩔쩔매는 모습을 보니까 괜히 안쓰러워서 몸이 먼저 나가고 말았다. 이번에는 리모가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입술 안쪽 살을 잘근잘근 짓씹었다.

“잘은 못 해, 정말 기초 코드 몇 개만 잡을 줄 아는 게 다고…….”

“왜요?”

“……준비하다 파토났거든.”

“뭐가요?”

“학교 축제 무대.”

아. 세모가 뭔가 깨달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빠의 실패담이구나. 그러면 아빠가 먼저 말을 꺼내지 않으려고 하던 게 이해가 갔다. 여기서 더 캐묻는 것도 아빠는 기분 나쁘실 수 있겠지. 12살, 어린 세모는 아빠의 감정을 존중하고자 잠자코 제 호기심을 억눌렀다.

“아, 그리고. 코드 잡는 손은 좀 더 세게 잡아야 해. 안 그러면 소리가 안 나더라고.”

리모가 기타 케이스 안에서 헤드셋 연결 선을 꺼내며 조언했다. 제트가 종종걸음으로 소파 저 옆에 있던 헤드셋을 집어와 리모에게 내밀었다. 세모의 용돈으로 엠프까진 사지는 못해서, 급한대로 세모의 헤드셋에 연결할 수 있는 연결선을 사왔다. 세모의 연주를 함께 감상할 수 없다는 건 아쉽지만, 세모는 헤드셋을 끼고 충분히 연습할 수 있겠지. 리모가 고무줄로 묶여있던 연결선을 풀며 곁눈질로 세모를 확인했다. 세모는 리모의 말대로 지판을 누른 손에 힘을 주기 위해 시도하는 중이었는지, 오른손과 왼손을 번갈아보며 이리저리 손을 움직이고 있었다.

“세모야, 헤드셋 쓰고 해 보렴. 소리를 듣고 해야 감 잡기가 훨씬 더 쉬울…….”

콰직.

요란한 소리에 거실에 있던 세 사람이 일제히 몸을 움찔, 떨었다. 리모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헤드셋에 선을 꽂느라 숙였던 고개를 느리게 돌려 세모를 바라보면, 처참하게 부서진 기타의 넥이 세모의 왼손에 들려 있었다. 힉. 제트가 양손으로 입을 가리고 숨을 들이켰다. 거실 분위기가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아빠…….”

아, 큰일났다. 리모가 손에 들고 있던 헤드셋과 연결선을 황급히 옆으로 던져두고, 냉큼 세모의 곁에 찰싹 붙어앉아 세모를 끌어안았다. 잔뜩 당황한 얼굴에 실시간으로 새카만 그늘이 드리우는 것을 보았으니 천장을 뚫을 듯 들떠있던 세모의 마음이 순식간에 어디까지 처박혔을지 안 봐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괜찮아, 괜찮아. 뭐, 초보자니까 그럴 수도 있지. 아빠가 괜한 소릴 했어. 힘 주긴 뭘, 우리 세모가 알아서 잘 하는데 아빠가 괜히 말을 얹어서 그랬네. 미안해, 아빠가 새로 사줄게.”

“하지만…….”

“하지만은 무슨~. 세모야!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냐, 기타? 얼마나 한다고 그래. 우리 세모 하고 싶은 거 맘껏 다 해야지! 실패도 하고 좌절도 하고 그러면서 크는 거야. 그치, 제트?”

“마, 맞다~, 그러더라고! 기타는 원래 부수고 시작하는 거라, 그러더라고!”

얀마, 그건 아니지. 허겁지겁 동조하는 제트의 허황된 소리에, 리모가 제트를 향해 눈을 부라렸다. 순간 제트가 제 눈빛을 읽고 세모가 기타를 부러뜨렸을 때보다 더욱 몸서리를 쳤지만, 세모는 다행히 그 광경을 보진 못한 모양이었다. 리모는 세모를 품 안 가득 꽉 끌어안고, 세모의 등을 쉴 새 없이 토닥였다. 조금 조급하다고 느낄 정도의 속도였다. 그도 그럴 것이, 몸을 써서 하는 일을 배우려는 아이가 남들보다 더욱 큰 실패를 겪어야 하는 이유는 리모 자신이 만들어준 의수와 의족 탓이었으니까. 걷는 것도, 밥을 먹는 것도 적응하는 데 한참이었다. 친구들을 다치게 할까봐 축구나 농구도 아이들과 뒤섞여서는 섣불리 하는 일이 없었고, 또래 남자아이들이 흔히 간다는 태권도장도 등록하지 못했다. 물론 세모가 무술보다 음악에 더 관심이 있다는 게 이유이긴 했으나 하지 않는 것과 못하는 것의 차이는 큰 법이지.

리모는 여전히 세모를 끌어안은 채, 바지 뒷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냈다. 지금 바로 출발한다면 아까 다녀온 악기사가 문을 닫기 전엔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까 기타 사서 가놓고 왜 또 왔냐는 눈치를 줄 테지만,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원체 하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에 대해 잘 말하지 않는 세모가 웬일로 먼저 기타를 사고 싶다고 말해주었고, 그것도 본인의 용돈을 차곡차곡 모아 악기를 구매하기까지 했다. 아이의 꿈과 열정이 이런 일로 꺾이게 둘 순 없었다. 그러고 싶지도 않았고.

‘중학교에 올라가면 밴드가 하고 싶댔는데. 우리 세모는 그 정도로 꿈을 가진 아이라고.’

리모는 입 안이 바짝바짝 마르는 느낌에, 휴대전화로 얼른 제로를 호출했다. 지금쯤 카센터 청소를 하고 있을 텐데, 지금 그깟 청소가 문제가 아니었다. 빗자루따윈 아무데나 던져두고 서둘러 자동차 기체로 몸을 옮겨 현관 앞으로 오라고. 리모가 또키 어플을 이용해 서둘러 제로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아빠.”

“응응, 그래. 얼른 가서 기타 수리 문의 해보고, 안 되면 새로 사자. 더 멋지고 좋은 걸로 사서…….”

“배우면, 잘 할 수 있겠죠?”

코끝이 빨개진 채 저를 올려다보는 아이의 얼굴을 보고, 리모는 순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부러진 기타 넥을 놓지 못하던 세모의 왼손을, 리모의 손이 힘주어 감쌌다. 당연하지. 남들이 하는 걸, 우리 세모라고 못할 리 없지.

“밴드는 원래 누구나 한 번쯤 동경해본 적 있을 걸.”

리모가 개구지게 웃어보이자 세모가 잠자코 고개를 끄덕였다. 세모는 무대에 서면 최고로 멋질 거라, 그러더라고! 작은 코어로이드 모습을 한 제트는 세모의 무릎에 와락 안겨들었다. 기타를 들고 있던 세모가 얼마나 멋졌는지 조잘조잘 떠드는 제트와 얼굴이 빨개진 채 그 말들을 듣고 있는 세모를 보며, 리모는 그제야 몰래 가슴을 쓸어내릴 수 있었다.

‘남들 다 하는 거, 세모라고 못할 일 없지.’

그런 일 없게 할 거고. 리모가 세모의 품에서 조심스레 가져온 기타를 내려다보았다. 부러진 파편이 이리저리 비죽이며 튀어나온 기타 넥은 수리도 안 될 것 같은 처참한 몰골이었지만, 빨간색을 칠하고 광을 낸 바디는 여전히 새 것 티를 내며 반짝이고 있었다. 리모가 반질거리는 기타 바디를 손으로 쓰다듬었다.


적폐동림솔 쓰려다가 빠꾸했다네요

하지만 언젠가..시간이 좀 더 남으면 진짜 써보고 싶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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