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호사키] 결혼식

심해 by 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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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물에 젖은 옷자락이 몸에 끈질기게 달라붙는다. 튀어나온 돌부리도 없거늘 다리 사이를 파고드는 옷자락에 결국 발이 꼬인다. 굽이 부러졌다. 추락. 발을 삐었나 했더니 하나도 아프지 않다. 차라리 아팠다면 마음이라도 편했을 텐데. 제 이름을 부르며 잡아 이끄는 손을 따라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빗소리에 묻혀 목소리는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사키는 신에게 묻고 싶었다. 어째서 나만 아파야하는 건가요? 어째서 나만 학교에 갈 수 없나요? 어째서 비와 바람이 거센 날에는 배가 뜰 수 없나요? 어째서, 어째서 오늘이었어야 했나요.

최악의 결혼식이었다.


별이 보이는 곳이면 좋겠다고 사키는 말했다. 별이 보이려면 밤이어야 하는데? 그럼 저녁부터 하자! 그게 그렇게 쉬운 줄 알아? 타박하는 말투와 달리 시호는 웃고 있었다. 계획들로 가득 찬 종이와 휴가 일정, 청첩장을 돌릴 사람의 목록.

본디 시호는 결혼이라는 것은 타인에게 보이기 위한 형식적인 수단이라고 생각했다. 결혼식을 올리지 않아도 혼인할 수 있다. 혼인하지 않아도 결혼식을 올릴 수 있다. 그렇다면 이 결혼식의 의미는 어디에 있는가. 사키는 평범함을 바랐다. 다른 아이들처럼 뛰어놀 수 있길 바랐고, 다 식어버린 죽이 아닌 따뜻한 쌀밥을 먹길 바랐고, 숙제를 하길 바랐고…. 시호와 사키는 법적으로 가족이 될 수 없다. 그것은 폐쇄적인 일본 사회의 한계였다. 그렇기에 시호는 이 타인에게 보이기 위한 형식적인 수단의 평범함에 감사할 수 밖에 없었다. 이것이 시호가 사키에게 줄 수 있는 평범함이었으므로.

“단순히 결혼식이 아니라, 다른 분들에게 감사하는 자리를 만들고 싶어.”

사키는 항상 타인을 먼저 생각했다. 우리만 즐거운 게 아니라 모두가 즐길 수 있는 결혼식을 열자. 그 말투는 같은 성씨를 가진 누군가와 사뭇 비슷했으므로 역시 피는 못 속이는구나, 같은 장난스러운 말을 했다. 이후로는 순조로웠다. 소식을 들은 이들은 모두 기꺼이 그들의 결혼식을 돕길 바랐고 덕분에 레오니드로서의 일정을 소화하면서도 결혼식 준비를 마칠 수 있었다. 최고의 결혼식이 될 것이었다. 그랬어야 했다. 별이 잘 보이며 초대한 자들만 올 수 있는 사적인 공간으로 섬을 꼽았고, 그곳이 배를 통해 올 수 밖에 없다는 것. 그것이 발목을 잡을 줄 누가 알았을까. 예고 없는 폭풍우. 손님을 맞이할 자리는 전부 흔적을 찾을 수 없게 되었고, 비에 쫄딱 젖어버린 두 신부와 부러진 구두굽. 엉망으로 흙투성이가 된 옷. 출발할 수 없는 배.

너무 괴로우면 눈물도 나지 않는다고 누군가 말했던 것 같다. 사키는 울지 않았다. 다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사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것이 시호의 두려움이었다.

“…사키.”

“응? 아! 시호 쨩! 헤헤… 조금 아쉽게 되었네. 오늘같은 날 비가 올 건 뭐람. 일기 예보에서도 오늘은 괜찮다고 했는데. 정말! 거짓말쟁이들이라니까~ 조금 아쉽지만…”

“사키.”

“…응. 시호 쨩”

“너는 괜찮아?”

사키가 고개를 들었다. 잔뜩 얼그러진 얼굴이었다. 이 얼굴, 두 번 다시는 보고 싶지 않았는데.

“내가 생각한 건 이런 게 아니었어…”

그제야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한다. 오늘의 날씨는 약간 흐리지만 비는 내리지 않을 예정입니다. 눈을 뜨자마자 찾아본 뉴스의 일기 예보가 스쳐지나간다. 누가 예상할 수 있었을까. 일기 예보조차도 빗나갔는데. 그런데도 사키는 애써 눈물을 삼키고 있었다. 시호를 위한 행동이다. 자신마저 울어버린다면 시호도 속상할 거라 생각하나 보다.

“사키.”

“응, 시호 쨩.”

“속상해해도 괜찮아.”

“…시호 쨩은?”

“…”

또야. 또 시호 쨩은 괜찮은데 나만 괜찮지 않은 것 같아. 결국 눈물이 나온다. 나도 시호 쨩처럼 강해지고 싶어. 무너지지 않고 싶어. 시호 쨩이 기댈 수 있는 존재가 되면 좋겠어. 설움에 터져나오는 말들은 눈물을 동반한다. 사키, 널 탓하려던 게 아니야. 알아, 하지만…,

“하지만 나도 이제 다 컸잖아.”

어른이라고 모두 감정을 조절할 수 있는 건 아니야. 이런 상황에서는 누구라도 속상할 거야. 많은 위로의 말이 시호의 머릿속을 지나갔지만 아무 말도 나오지 않는다. 이런 말로는 사키를 위로할 수 없어. 순간 누군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사키를 웃게 해주고 싶어 쇼를 시작했다! 아, 이 말투는 같은 성씨를 가진….

비가 내리고, 손님을 태운 배는 출발할 수 없고, 이곳은 섬이고, 곧 시작될 결혼식…. 이건 최악의 결혼식이 아니야. 오히려 우리를 위해 준비된 스테이지.

“…그럼 다시 어려지면 되지.”

“…응?”

“어릴 때처럼… 말이야.”

Y, You can dance. You can jive. 어색한 노랫소리가 시작된다. Having the time of your life…. 무엇을 하려는지 눈치챈 사키의 웃음소리에 노래가 끊긴다. 멋쩍은 듯 웃는 사키를 바라보길 잠시,

“아하하!! 시호 쨩도 참…”

See that girl, Watch that scene.

Dig in the DancingQueen.

신부가 손을 뻗는다. 신부는 손을 잡는다. 굽이 부러진 구두는 벗어던지고 힘차게 부는 바람과 내리는 빗방울 사이에서 두 신부는 춤을 춘다. 금요일 밤 해가 지면, 놀 곳을 찾아 헤매지. 음악이 시작되면 리듬에 몸을 맡겨. 너의 짝을 찾아. 평범하지 않아도 괜찮아. 남들과 같지 않아도 괜찮아. 그것이 우리니까.

세상에서 가장 완벽하지 않은, 최고의 결혼식이 시작되는 신호였다.

https://youtu.be/QRoWiTcO7dk?si=yvdIztYwWWKCOR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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