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미노] 나는 당신을 여름이라 불렀다

몇 살 때의 일이였을까.

그 시골 마을에는 왜 가게 되었을까.

지금은 잘 기억나지 않아.

그치만 그 날의 하늘만은 아직도 기억하고 있어.

꼭두새벽부터 부모님에게 이끌려 무작정 차에 타서 한참을 이동했던 적이 있었다. 어디로 가는 건지도 제대로 모른채로, 지루한 장거리 이동에 계속 칭얼거리기 일쑤였다. 그럴 때 어머니가 건네주시던 밀크 카라멜의 달콤함. 덜컹거리는 바퀴 소리를 자장가 삼아 서서히 잠들어가던 눈. 그렇게 몇 시간이나 지났을까. 

"...미노리~ 도착했어. 일어나야지!"

"흠냐... 엄마... 5분만..."

"얘는, 여기가 집인줄 아니."

잠결에 들려오는 부모님들의 목소리가 새로운 곳에서의 첫 기억이였다. 

부모님에게 붙들려 어거지로 차에서 내렸다. 잠에서 덜 깨서 눈도 제대로 떠지지 않는 채로, 시원한 여름날의 아침 공기가 볼에 닿아왔다. 아버지의 손을 잡고 간신히 발걸음을 옮겨나갈 때마다 어젯밤 내린 비가 만들어낸 물 웅덩이가 찰싹 소리를 내며 샌들을 적셔왔다. 바짓단을 적시는 물소리도, 가끔씩 머리 위로 떨어지는 이슬도, 그때까지는 그 무엇도 아직 좋아할 수 없었다.

"...어디까지 가는거야... 하암."

"후훗, 조금만 더 가면 금방 도착이야."

칭얼거리는 나를 상냥하게 달래주는 부모님들과 함께 계속해서 어디론가로 걸어갔다. 흙길도, 돌바닥도 지나 발걸음이 멈춘 곳은 어느 큰 집 앞이였다. 앞서 걷던 어머니가 갑자기 멈춰 서서 가볍게 머리를 부딪치고. 아야야, 머리를 문지르며 고개를 들었다. 지금은 아마 변해버렸을 그 풍경이, 아직까지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자, 여기가 할아버지 댁이야."

할아버지 댁 마당에는 높게 솟은 소나무가 있었다. 그 아래로 오래된 시골 주택의 푸른색 지붕이 보였다. 곳곳에는 집을 지지하는 짙은 갈색 나무로 된 기둥들이 흰색의 벽 사이로 세워져 있었다. 돌담으로 둘러싸인 마당에는 회색의 작은 돌멩이들이 바닥을 채우고 미닫이문이 달린 작은 마루가 있었다.

뭐랄까, 지금 생각해보면 전형적인 일본의 시골 주택 스타일의 집이구나 싶지만. 시골에 처음 가본 어린아이에게는 모든 것이 새롭기만 했다.

호기심에 잠은 어느샌가 달아나버리고 집안 이곳저곳을 신나게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구경했다. 마당 구석의 작은 창고 안에는 온통 처음 보는 신기한 물건들이 가득했다. 미닫이문을 열면 나오면 다다미방 안에는 신기한 족자가 걸려있어 만져보다가 주의를 받기도 했다. 집 내부는 전통적인 구조에 현대적인 요소들을 몇개 섞은 스타일이였는데, 거실 한 가운데에 있는 올라가는 계단이 눈에 띄었다.

할아버지와 인사를 나누는 부모님을 뒤로 한채로 무작정 계단을 올라가면 바로 우리가 한달동안 머물 다락방이 나왔다. 계단을 올라가는 동안 발이 나무바닥에 닿을 때마다 삐걱거리는 소리가 울려퍼졌는데, 나는 그것이 마치 피아노를 치는 것 같다고 좋았다.

2층에 올라 문을 열면 1층과는 다르게 완전히 현대식 구조와 가구를 갖춘 다락방이 나왔다. 신나게 달려가 방 한가운데 드러누워서, 이리저리 신나게 뒹굴거리다 문득 방의 한쪽 벽에 시선이 닿았다. 앞으로 밀어서 여는 정사각형 모양의 작은 나무 창문이 있었다. 어린 날의 나는 호기심에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빠르게 다가가 그 창문을 확 열어 젖혀버리고 말았다.

"야~호~ 어... 어라...?" 

예상했던 것과 다르게 창문 바깥으로는 이웃집의 맞다른 창문이 있었다. 창문 너머의 방에는 어느 한 소녀가 서 있었는데, 소녀는 머리카락 색과 똑 닮은 푸른 눈을 가지고 있었다. 시끄럽게 문을 열었는지 창가에 앉아있었던 소녀는 이 쪽을 돌아봤고, 그대로 눈을 마주쳤다. 혼자 신난 모습을 들켰다는 부끄러움에 얼굴에서 화끈거림을 느꼈던 것 같다... 아마도.

"......안녕."

그것이 길고도 긴 여름의 시작이였다. 

"아.... ...으에엣?!"

이제는 오지 않는, 그 여름을

나는 몇 번이나 더 떠올리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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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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