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즈카나미즈] Give Me Your Night
커미션 작업물
미즈키는 미지근하게 식은 머그잔을 들었다. 가득 있었던 코코아는 어느덧 절반이 줄어 있었고, 처음 코코아를 입에 댔을 때부터 시간은 4시간 반이 지나 있었다. 한밤중이었다. 늦게까지 활동하는 사람들조차 대부분 잠에 드는 이런 시간이면 창 밖으로부터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SNS나 포털 사이트의 갱신도 한없이 느렸다.
빛도 소리도 다가오는 것이라고는 모니터로부터 나오는 푸르스름한 전자 기계 안의 것이 전부인 시간. 이럴 때면 미즈키는 어항을 바라보는 마후유의 마음이 무엇일지 알 것 같곤 했다. 자신이 어항을 바라보는 쪽이 아니라 어항 안에 있는 쪽이라는 차이점이 있었지만, 문제될 건 없었다. 그런 감각이라면 남부럽지 않을 정도로 익숙하지 않던가.
디지털의 물결이 파도가 되고 달빛이 되어 스며들었다 빠져나가는 일은 기실 썩 나쁘지 않았다. 온종일 도시와 거리가 내리쬐는 공해에 노출되는 일보다는 훨씬 나았다. 고독은 상대적인 개념이라 그를 고독 속에 빠트리는 사람들로부터 벗어나면 아이러니하게도 고독감은 사라지고 자유로움이 찾아왔다. 이 파도가 치는 어항에서 그는 무엇도 신경쓰지 않아도 됐고, 무엇에도 신경쓰이지 않아도 됐다.
편안한 세계였다. 좋아하는 것들로 꾸린 풍경을 미지근한 코코아와 함께하며 바라볼 수 있는, 좁고 안락한 세계.
종종 너무 적막하고, 또 그 좋아하는 것들마저 아스라이 멀어지는 느낌이 들기는 했지만, 요란하고 칼날 같은 광활한 곳보다는 분명히 훨씬 나았다.
그래서 그는 이 세계를 벗어날 마음이 없었다. 언제까지고 이런 세상에서만 숨 쉴 수 있길 바랐다. 설령 이 세상 째로 송두리째 표류하게 된다고 해도, 분명…….
[Amia, 아직 깨어 있네.]
즐거움도 괴로움도 없는 표정 위로 낯선 알림창이 깜빡였다. 코코아를 내려놓은 미즈키가 의아한 낯으로 마우스를 움직였다. K였다.
[K, 웬일이야~? 먼저 메세지를 보내고. 자러 간 거 아니었어? 다른 애들도 오프라인인걸.]
[응. 자려고 누웠는데……]
[응응.]
[눈을 감으니까 악상이 떠올라서. 잊어버리기 전에 스케치 해두고]
[아~ ㅋㅋㅋ 그럴 때 있지!]
[다시 끄려던 참이야.]
[K답네~ 오늘도 늦게까지 수고했어~]
느릿하게 타이핑하는 카나데와 달리 미즈키는 타자 속도가 빨랐고, 입력창 하단에 뜬 ‘메세지를 입력하는 중입니다’ 표시가 사라질 때마다 ‘왜? 왜?’ 같은 이모티콘을 올린 탓에 카나데는 중간중간 말을 끊어 가듯 엔터를 쳐야 했지만, 미즈키는 상대가 이런 점을 불편해 하지 않으리란 걸 알았다. 아마 화면 너머에서 카나데는 살짝 웃고 있지 않을까. 그는 보통 상대가 하려는 말을 다 입력할 때까지 기다리는 편이었지만, 둘이서 1:1 메세지를 할 때면 종종 이렇게 장난을 치곤 했고 그가 그럴 때마다 음성 채팅이 켜져 있을 때면 카나데는 작게 웃음소릴 내곤 했으니까.
세카이에서 카나데를 정말로 만나게 된 이후로 그는 카나데가 채팅할 때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쉽게 상상할 수 있게 됐다. 즐거운 점이었다. 그곳에 가서 모두를 만나게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한 적이 많지만, 이런 때도 그 중 하나였다.
[나는 아직 잠 오기 전인데, 나랑 좀 더 놀아 줘, K~]
[아…… 뭐 하고 놀면 좋을까?]
딱히 진심으로 뱉지도 않은 떼 쓰는 말에 진지하게 고민하며 쳤을 카나데의 메세지를 보며 미즈키는 키득키득 웃었다. 게임을 하지도, 애니를 보지도, 메신저로 수다를 떨지도 않는 K에게 놀만한 방법 같은 게 떠오를 리 만무할 텐데, 자신이 하자는 일에 진심으로 임해줄 생각일 카나데가 훤했기 때문이다.
[그저께 새로 발매했다는 공포 게임 스트리밍 같이 보기! 어때?? 완전 잠 깨고 재밌겠지!]
[으응. Amia가 원한다면…….]
장난을 가득 담은 메세지에 대한 답은 한참만에 왔고, ‘메세지를 입력하는 중입니다’ 표시가 몇 차례나 사라졌다 떠오르길 반복한 화면을 보며 미즈키는 깔깔 웃었다.
[농담이야~! 열심히 스케치도 끝냈잖아, K. 이제 자야지!]
[응……. 그치만, Amia가 같이 보고 싶으면 나는 정말 괜찮아.]
[에에~ 정말~??]
[해본 적 없는 일이라, 새로울 것 같아.]
[게다가 Amia랑 같이니까.]
올라오는 메세지를 가만히 바라보며, 미즈키의 한껏 올라갔던 입매가 찬찬히 내려왔다. 즐거이 요동쳤던 바람이 잔잔하게 가라앉듯이, 흔들림 없는 지평선과 높이를 같이하듯이.
키보드 위에 올라간 미즈키의 손이 잠시간 멈췄다가, 곧 빠르게 문장을 완성했다.
[그럼 다음에 내가 또 자기 싫어지면 같이 봐 주는 걸로 어때? 그걸로 나도 K 덕에 덜 심심할 것 같애.]
[응. 좋아. 언제든지 불러 줘.]
[OK~ 약속이야! 신난다~~ 그럼 이제 누워, K! 자다 깨서 많이 졸리지?]
[응, 조금…….]
[응응. 내일 25시에 보자. 잘 자, K.]
[응. Amia도, 잘 자.]
띠링. 이야기가 끝나고 잠시 뒤, 카나데의 오프라인 전환 소리가 들렸고, 미즈키는 가만히 턱을 괸 채 더는 메세지가 올라오지 않는 채팅창을 바라봤다. 그리고 다시 찾아온 적막 속에서 머그컵을 들었다가 도로 내려놨다.
“작업 해야지……. 열심히 하는 K를 위해서, 나도.”
그리고 켜뒀던 포털 사이트나 SNS 창을 내려놓고 동영상 작업 창으로 돌아갔다.
‘언제든지.’ 카나데가 하는 말은 모두 진심이라는 걸 세카이에서 만나기 전부터 미즈키는 알고 있었다. 카나데는 반드시 진실만을 말한다. 자신이 느낀 그대로를 표현하려고 하고, 작고 사소한 것과도 올곧게 마주한다. 알게 되는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카나데가 쓴 곡을 듣고, 카나데와 조금만 이야기하면 충분했다. 창작물 몇 개와 인터넷 상의 말 몇 마디가 한 사람을 온전히 대변할 수 없다는 건 그가 가장 잘 알았지만, 때로는 부분이 전부인 경우도 있었다. 카나데가 그랬다. 그래서 미즈키는 카나데의 표현을 돕고 싶었고, 카나데가 보는 걸 함께 보고 싶었다. 때로는 카나데가 안고 있는 걸 알고 싶기도 했다. 알게 됨으로써 함께 안거나 짊어질 수 있다면, 하다못해 무언가를 안고 있는 카나데를 지탱하기라도 할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았다. 왜냐하면 그가 카나데에게 받고 있는 것들이 그런 종류였으니까. 카나데가 있으면, 카나데의 곡을 들으면 좁고 안락한 세계 바깥으로 조금쯤은 나가도 괜찮을 것만 같아져서.
그렇지만 미즈키는 카나데에게 그런 것들을 말하고 싶진 않았다. 카나데가 자신의 바닷가에서 언제든지 함께해 줬으면 했지만 그럼으로써 카나데의 또다른 짐이 되기는 싫었다. 다행히, 그는 무언가를 가장하는 일이라면 잘 했다. 온라인에서든, 오프라인에서든.
그렇기에 작업에 열중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고, 심심하지 않았다. 조금 고독했지만, 괜찮았다.
카나데가 자신에게 ‘언제든지’라는 부분을 내주면 그걸로 지금은 충분했다.
그의 세계는 작고 좁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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