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글 3

프로젝트 세카이 시즈쿠 x 아이리

히노모리 시즈쿠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초가을 공활한 하늘 위로 비행기 구름이 일자 궤적을 그리고 있었다. 청명한 배경 속으로 조금씩 흩어지는 흔적을 멍하게 바라보다가 아가씨는 문득 생각하였다. 하늘은 어떠한 벽도 없이 넓게 열려있으니, 비행기 씨는 길을 헤매는 일이 없으려나- 하고. 아니, 오히려 기준점으로 잡을 지표가 없어 더 헷갈리게 되려나. 이쪽도 푸르고, 저쪽도 푸르러서 어디로 향하고 있었는지 방향을 알 수가 없게 되는 거야. 그렇다곤 해도 비행기 씨는 항상 제대로 가야할 길을 찾아내겠지. 히노모리 시즈쿠와는 다르게.

오늘은 충분히 안심하고 다닐 수 있는 길을 따라 나섰던 터였다. 몸에 익을 정도로 반복해서 다닌 거리는 의식하지 않아도 내딛는 걸음이 방향을 알려줬기에, 미아가 될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었다. 문제가 된 건 사소한 경로 변경. 공원의 가장자리를 따라 돌아가는 길목에 도착했을 때, 그 부근에서 동생의 친구가 연습을 하곤 한다는 사실을 아가씨는 떠올렸다. 시간도 충분한데 잠깐만 얼굴을 비춰도 괜찮겠지. 인사만 하고 돌아오면 되니까. 그처럼 간단하게 생각했던가.

제법 모여든 관중 앞에서 거리 공연을 하고 있던 호시노 이치카를 발견한 건 좋았다. 친숙한 이의 방문을 알아챈 이치카가 눈을 동그랗게 떠서, 그런 후배를 향해 헤실 웃으며 손을 흔들어줬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나쁠 일은 전혀 없었다. 열심히 해- 하는 응원에 쑥스러워하며 기분좋게 웃는 미소가 돌아왔다. 부가적인 목표는 그렇게 훌륭하게 완수. 그렇게 멀리 빠져나온 편도 아니었기에 왔던 길을 되짚어 돌아가 원래의 목적지로 향하면 충분했다. 분명 그랬을 건데.

“으음......”

해봤자 도심에 딸린 공원이다. 빠져나가기 어려울 정도로 길이 복잡하거나 막막할 지경으로 부지가 넓은 편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아무리 걸어도 공원으로 보이는 구간을 벗어나지 못한다. 안내 표지판을 봐도 딱히 도움은 되지 않았다. 어째서 공원 북문이라는 명칭이 동시에 두 군데나 표기되어 있는지 몹시 궁금했지만, 당장 그 의문을 풀어줄만한 상대는 없었다. 나, 길을 잃은 거구나. 현실을 인정한 다음 아가씨는 근처의 벤치에 앉았다. 잔잔하게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고 있다가, 햇살이 콧잔등을 간지럽혀서 쓰고 있던 마스크를 살짝 끌어올린다.

어렸을 적부터 걸핏하면 길을 잃어버리곤 했다. 약도를 들고 심부름을 나섰던 날, 손에 들고 있는 일련의 정보는 아무런 의미도 되어주지 못했다. 첫 번째 가로수 뒤로 이어지는 가로수는 첫 번째와 다를 바 없는 생김새를 하고 있었다. 그러니 첫 번째 갈림길에서 이어지는 장소와 그 다음 갈림길로 도달하게 되는 장소의 차이를 소녀는 이해할 수 없었다. 익숙한 간판을 기점으로 삼아보려고 해도, 어느 방향에서 그 간판을 바라보아야만 했던 건지를 잊어버리게 되었다. 꺾여들어가는 골목은 아마도 다음 길목과 만나게 되겠지. 그처럼 추정이야 해볼 수 있지만 몇 걸음의 거리에서 두 직선이 교점을 가지게 되는지를, 소녀는 짐작할 수 없었다. 당혹감 속에서, 분명 익숙할 터인 거리에서 미아가 되어버린다.

목적지에 도착하는 경로의 지표들을 사소한 부분까지 필사적으로 암기하는 걸로 간신히 목적을 달성할 수는 있었다. 남들은 이해하지 못할 고난과 맞서 싸워 이긴 끝에, 뿌듯함을 느끼며 돌아선 순간 소녀는 깨달았다. 돌아가는 길은 풍경이 바뀌게 된다. 오른쪽에 있었던 안내판이 이번에는 왼쪽으로, 시계 방향으로 돌았던 골목은 이번에는 반대로, 담벼락 너머로 보였던 가정집의 형태가 이번에는 다소 다른 모양새로.

가는 길을 알고 있으면 되짚어 돌아오는 일은 간단하다. 모두가 그처럼 말하는 세상에서 소녀는 소외감을 느꼈다. 다들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걸 제대로 하지 못하는 자신이 잘못된 게 분명하다고, 훌쩍임을 삼키며 생각했던가. 선천적으로 떨어지는 공간지각력은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 방도가 마땅히 없기에, 차후에도 이를 염두에 두고 조심해서 지내는 수밖에 없다는 전문의의 선고는 간결했다. 그나마 대상 간의 지점 파악에 다소 어려움이 있을 뿐 운동 신경에 장애가 생길 정도는 아니라는 부연 설명을 위로로 삼는 수밖에 없었다.

“......시이에게도 몇 번이나 폐를 끼쳤고.”

집에 돌아가지 못하게 된 언니를 찾아 동생이 숨을 헐떡이며 뛰어다녔던 적도 몇 차례인가 있었다. 언제나 의지할 수 있는 멋진 언니로 있고 싶었는데, 오히려 동생에게 의존해야만 하는 처지가 될 때마다 소녀는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자매끼리 손을 잡고 돌아오는 길에 동생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눈가에 눈물을 그렁그렁 맺고 있으면서도 우는 소리를 내지 않는 언니를 흘끗 쳐다보기만 했을 뿐.

그래도 어렸을 적에는 길을 찾기 어려워한다는 점을 두고 소녀를 탓하는 이는 없었다. 상냥함 섞인 염려 속에서 충분히 주변 지리에 익숙해질 때까지 소녀는 가족들의 손을 잡고 외출을 하였다. 동쪽으로 길게 뻗은 신작로로 이어지는 길목이 대충 어디에 위치하는지 유추하지 못하더라도, 몇 차례나 걸음을 반복하다보면 몸이 깨닫게 되었다. 학교로 가는 길, 할머니 댁에서 돌아오는 길, 동생이 좋아하는 라멘 가게가 있는 거리의 위치......

‘너, 컨셉질 진짜 지독하게 한다?’

이해받을 수 있었던 건, 가족들 곁에 있었을 때 뿐이었다.

잠깐만, 정말 잠깐만 숨을 돌릴 요량이었다. Cheerful*Days 멤버들의 해변가 여행 기록, 이라는 기획을 진행하던 때였다. 잇시키 해안의 프라이빗 비치는 아름다웠으나, 스태프들이 밀집하여 소란스럽게 돌아다니는 분위기가 부담스러워 시즈쿠는 매니저에게 이야기를 남기고 짧게 산책을 나섰다. 촬영지 바로 뒤쪽 길만 잠깐 둘러볼 생각이었건만, 하야마 역에서 오던 중 보였던 풍경이 인상적이어서 그를 떠올리느라 아가씨는 잠시 넋을 놓았다.

물은 맑았고, 하늘은 푸르렀으며, 해변으로 밀려드는 파도는 잔잔했다. 불어오는 해풍에는 바닷가 특유의 짠내보다는 기분 좋게 맑은 기가 감돌았다. 날이 좋으면 후지산이 보인다고 했던 이야기 그대로, 수평선 위로 새하얀 봉우리가 우뚝 자리잡고 있는 게 보였다.

열 걸음 걸었을까. 아니, 그보다는 많았나. 스무 걸음? 서른 걸음? 이제 그만 돌아가야지, 생각하며 돌아선 순간 시즈쿠는 얼어붙고 말았다. 생전 본 적 없는 바닷가 마을의 풍경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쭉 뻗은 2차선 도로 옆으로 붙은, 백사장에서 올라온 모래 알갱이로 보도블럭이 뒤덮인 통행로가 여기까지 걸어온 길일 터였다. 하지만 그 길에서 어디로 향해야만 하는 건지 시즈쿠는 알 수가 없었다. 옆으로 빠지는 길목은 몇 개나 보였다. 하나같이 해변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간신히 단말기를 조작하여 매니저에게 연락을 취하고서 10여 분, 시즈쿠의 앞에 나타난 건 매니저나 스태프들이 아닌 같은 그룹의 멤버들이었다.

‘미, 미안해......’

‘길을 잃어버려서 돌아올 수가 없게 되었다고? 바로 앞이잖아. 장난치는 거야?’

‘뭐, 캐릭터성 만드는 거지. 촬영을 갔다가 길을 잃고 그랬었어요- 하고. 팬들도 없는 곳에서까지 이럴 필요가 있나 싶지만. 그런 거 안해도 어차피 늘 센터 차지하면서.’

‘컨셉이 아니라......’

‘됐으니까 빨리 따라와. 너 때문에 촬영 엄청 밀리고 있으니까.’

‘......정말 미안해.’

몇 번이고 사과하는 말 외에는 무엇도 입 밖으로 꺼낼 수가 없었다. 남들은 당연히 해내는 걸 못하는 자신의 잘못이 맞았기에 달리 변명할 방도도 생각나지 않았다. 아이돌로 있는 동안은 항상 의젓하고 아름다워야만 한다는 책임감이 어깨를 내리눌러서, 흐느껴 우는 걸로 감정을 풀어내는 방법만큼은 마음 속에서 지우려고 노력하며 시즈쿠는 묵직한 슬픔을 목 너머로 삼켰다.

여행 기록 기획의 촬영은 늦은 저녁 시간대에도 이어졌다. 해변에서 이루어지는 불꽃놀이 동안, 시즈쿠를 몰아붙였던 멤버 두 명은 카메라가 향할 때마다 아가씨의 곁에 다가붙으며 친근한 척 행동하였다. 매번 센터를 차지하는 유망주의 옆자리를 차지해야 조금이나마 자신들의 지분을 키울 여지가 생겼으니. 그들이 나쁜 게 아니라 매사 어리숙한 자신이 나쁜 거다. 그렇게 생각하며, 아가씨는 있는 힘껏 환하게 웃는 얼굴을 연기했다. 카메라 렌즈 위로 불꽃의 반짝임이 허망하게 반사되고, 컷- 을 외치는 목소리는 밤의 파도 소리에 잠겨들었다.

먼발치에서 그녀를 보던 이들은 모두 히노모리 시즈쿠가 얼마나 완벽한 존재인지를 쉼없이 찬사하고는 했다. 우아하고, 정숙하며, 사려깊으며, 때로는 고혹한 면모도 가지고 있다며. 그토록 완벽한 기품을 갖춘 아이돌이기에 그룹의 센터 자리는 마땅히 그녀에게 맡겨져야만 한다고. 반면에, 가까이에서 그녀를 상대하던 이들은 한 걸음 뒤에서 소녀의 결점을 물어뜯었다. 언제나 넋을 놓고 지내는 거 같다고. 길 하나 찾지 못해서 약속 시간을 몇 번이나 어기고 있다고. 그러면서도 혼자 착한 척은 다 하면서 내숭을 부린다고.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길 여지가 느껴지면 시즈쿠는 먼저 사과를 하게 되었다. 착한 척 행동하는 거라고 흉을 보더라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마냥 칭송해주는 팬들의 평가와는 달리, 히노모리 시즈쿠는 불완전한 인간이었다. 뭔가 잘못 돌아가는 일이 생겼다면 정확히는 몰라도 자신이 실수를 한 게 분명하다고, 깎여나간 마음으로 지레 겁을 먹게 되어버린다. 긴장해서는 서둘러 말한다. 미안해요. 제가 부족해서. 미안해요. 폐를 끼치게 되어버려서.

언제까지 미안하다는 말만 반복하며 지내야 하는 걸까.

그날도 분명 비슷한 흐름이었다. 국내에서 어느 정도 입지를 확보한 아이돌들을 죄다 불러모아 예능계 대축제라는 명목으로 거창하게 진행하는 연말의 행사 당일이었다. 리허설까지 시간 여유는 있었으나, 시즈쿠는 이미 자신이 일을 망치고 있다는 생각을 했던 터였다. 각기 다른 그룹들의 이름이 붙어있는 대기실 문들은, 하나같이 똑같이 생겨서 분간이 되지 않았다. 알기 쉽게 일자로 쭉 뻗은 구조도 아니었다. 대기실을 포함하여 행사와 관련된 공간들은 몇 층에 걸쳐 어지럽게 배치되어 있었다. 나 때문에 또 모두가 피해를 입게 된다면 어쩌지. 울음이 나올 듯한 기분을 필사적으로 숨기며 아가씨가 걸음을 내딛으려던 순간이었다.

‘시즈쿠, 여기서 뭐하고 있어?’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는, 친숙했다. 고개를 돌리면 ‘QT’ 라고 적힌 문패가 시야에 잡혔다. 반쯤 열린 문 사이로 고개를 내밀고 있는 상대와 시선이 마주친다. 예쁜 석류빛 감도는 눈동자가 의아함을 담고 깜박거렸다. 아이리. 속으로 상대의 이름을 중얼거리며 시즈쿠는 저도 모르게 그쪽으로 두어 걸음을 내딛었다. 까닭 모를 안도감이 차올라서 눈꼬리부터 따뜻한 물기가 번져올랐다. 다른 그룹 멤버의 앞이었다. 그룹의 센터 담당으로서 약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되겠지만, 흘러나오는 훌쩍거림을 억눌러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뭐야. 비 맞은 강아지 같은 얼굴을 하고는.’

‘저기, 그게......’

‘뭐, 알 거 같지만. 길 잃은 거잖아?’

‘......응.’

‘보자, 너네 대기실이 어디였더라.’

단말기를 두드려 정보를 확인하고는, 모모이 아이리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웃었다. 씩 웃는 입술 아래로 특유의 덧니가 살짝 보일 정도로 당당하게. 잠시 나갔다가 올게! 대기실 문을 탁탁 두드리며 안쪽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을 전한 뒤, 아이리는 가벼운 걸음으로 시즈쿠의 곁에 섰다. 나 때문에 같이 가주는 거야? 그렇게 물으려고 하다가, 빨리 가자고 재촉하며 고갯짓을 하는 아이리에게 선수를 빼앗겨 시즈쿠는 말없이 뒤를 따랐다.

‘돈도 어마어마하게 벌어들일 게 뻔한데 행사장은 새로 옮길 생각이 없나봐. 보나마나 내년에도 여기서 하겠지.’

‘그럴까?’

‘그래. 그러니까 이번에 구조를 외워두면 내년에도 써먹을 수 있을 거라고. 뭐, 그냥 하는 말이니까 진지하게 받아들이지는 말고.’

‘구조를 외워두면......’

‘그러니까,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말라구.’

톡 쏘는 어조로 말하고는, 시선이 마주치자 아이리는 기분좋게 웃었다. 눈을 깜박이다가, 시즈쿠는 따라서 미소를 지었다. 긴장감에 굳었던 어깨에서 부드럽게 힘이 풀린다. 자신 때문에 모든 일이 잘못 돌아가게 될 거란 불안감은 어느 순간 사라진 상태였다. 여전히 Cheerful*Days의 대기실이 어디에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가능하면 예상보다 좀 더 멀리 대기실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시즈쿠는 생각했다. 그렇다면, 아이리와 조금이라도 더 같이 걸을 수 있을 건데.

‘아이리, 미안해. 나 때문에......’

‘그게 아니지.’

‘응?’

‘딱히 사과받을만한 일 당한 적 없거든. 네가 길 찾기 어려워한다는 거, 진작에 알고 있기도 하고. 기껏 도와주는데 돌아오는 게 뜬금없는 사과라면 수지가 안 맞아. 알겠어?’

‘으응, 알겠어.’

‘좀 더 들었을 때 기분 좋을만한 걸로 해달라는 거야. 고마워요, 라든가, 평생의 은인이에요, 라든가, 이 은혜는 반드시 갚겠습니다, 라든가. 물론 고작 그거 듣는다고 좋아할 정도로 내가 쉬운 여자는 아니지만.’

말하고는 새침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흔든다. 그러고는 아이리는 살며시 시즈쿠를 돌아보았다. 버라이어티 무대에 어울릴 법한 다소 과장된 행동은 능청스러우면서도 귀여워서, 시즈쿠는 저도 모르게 소리내어 작게 웃어버리고 말았다. 다른 사람을 상대하고 있었던 거라면 소리내어 웃는 행동이 실례가 될까 싶어 황급히 수습하였겠지만, 이번은 경우가 달랐다. 해피 에브리데이의 팬 서비스를 받고서 웃음짓게 되는 건 당연한 일이었으니까.

‘괜히 사과할 필요 없어. 네가 잘못한 거 아니잖아. 건물을 이 따위로 짓고는 대기실 배치도 엉망으로 해둔 녀석들이 나쁜 거지.’

‘......아이리, 고마워.’

‘그래. 후훗, 알겠지. 히노모리 시즈쿠, 너 나한테 빚 하나 진 거야?’

그렇게 말하고는 아이리는 한쪽 눈을 찡긋해보였다. 장난기와 자신감이 공존하는, 그야말로 생기 넘치는 아이돌다운 윙크. 그 모습은 멋지고 멋져서, 시즈쿠는 생각하였다. 자신도 언젠가 그처럼 당당한 면모를 갖출 수 있기를. 그리하여 이 아이의 곁에 나란히 서도 부끄럽지 않은 아이돌이 될 수 있기를.

“찾았다. 울상일 줄 알았는데, 제법 느긋하네.”

“......아이리.”

옛 추억의 회상을 끝내고 눈을 뜨면, 앞에는 그 아이가 서 있었다. 뾰로통하게 입술을 살짝 내밀고 있는 상대를 보고는, 시즈쿠는 다정한 목소리로 이름을 불렀다. 길을 잃은 뒤 아이리에게 연락을 하고서 이제 30분이 되었을까. 길을 잃었다는 보고에 군말 붙이지 않고 장소를 묻고는, 미아가 된 이를 구해주러 달려온다. 해피 에브리데이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무적이네. 속으로 생각하고는 시즈쿠는 쓰고 있던 마스크를 벗었다.

“지금까지 내가 아이리에게 졌던 빚이 얼마나 될까, 생각하고 있었어.”

“......그러네. 하나하나 센 적은 없지만 제법 되었겠지? 언제 날을 잡아 몰아서 받는 걸로 할까.”

“어떻게 갚는 게 좋으려나?”

“그건 네가 고민해야지. 됐고, 어디에 가려던 길이었어? 데려다줄게.”

“응. 아이리, 언제나 고마워.”

타인의 상냥함을 당연하게 여겨서는 안된다고 배웠다. 오늘의 호의가 내일로 이어질 거라 기대해선 안된다고 하였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은 냉정하고 계산적이기에, 마냥 타인에게 의존하는 이는 언젠가 버림받게 될 거라고 했었다. 그렇지만, 어째서일까. 곤경에 처하게 되면 분명 네가 와줄 거라며 안도하게 되어버리는 건.

하늘에는 이정표가 되어줄 대상이 없어서, 가끔은 비행기 씨도 가야할 길을 전혀 모르게 되는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비행기 씨는 결국에는 옳은 길을 찾아낼 거야. 어디로 가는 게 좋을지 알려주는 관제탑 씨가 항상 기다려주고 있을 거니까. 혼자서는 어찌할 수 없는 난관을 마주하였을 때, 울먹이는 목소리로 메이데이, 메이데이, 메이데이- 세 차례 외치고 나면 작게 내쉬는 한숨과 함께 답이 돌아오리라. 정말이지 어쩔 수 없네- 하고.

“......손 잡아도 괜찮아?”

대답이 돌아오지 않지만 그게 거절을 의미하는 게 아니란 걸 이제는 알고 있다. 말없이 손을 살짝 내밀어오는 반응에 포근한 감정을 느끼며, 시즈쿠는 연모하는 이의 손을 살며시 잡았다. 맞닿은 손끝을 따라 전해지는 온기를 느끼며, 히노모리 시즈쿠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초가을 공활한 하늘 위로 비행기 구름이 일자 궤적을 그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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