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글 2

프로젝트 세카이 에나 x 미즈키

아키야마 미즈키가 새로 개장하는 화장품 전문 매장, ‘코스메 아 라 모드’ 에서 일하게 된 과정에는 약간의 사연이 있었다. 개장일에 맞춰 짧은 기간만 일하는 임시 근무일 뿐, 원래 일하고 있는 의류 리폼 아르바이트를 그만두는 건 아니다. 정식으로 고용 계약을 하는 형태였다면 미즈키는 새로 생기는 매장에서 일하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터였다.

화장품 매장에 일하는 자체는 꾸미기를 좋아하는 미즈키의 취향에 잘 들어맞는 편이긴 하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눈높이에 맞게끔 화사하게 꾸며진 매장 인테리어와 각종 다양한 화장품들이 화단의 꽃들처럼 배치된 진열대는 미즈키의 마음에 쏙 들었을 게 분명했다. 그럼에도 곤란한 문제가 있다는 건 바뀌지 않는다. 제안받은 일이 플로어에서의 접객이라는 점이 미즈키에게는 다소 껄끄러웠다.

사람 대하는 일 자체를 꺼려하느냐고 하면, 상대와 경우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일단은 그렇지 않다. 대화의 주제가 가볍고 즐거운 영역으로 한정될 때 미즈키는 그 날 처음 만난 사람과도 이야기꽃을 피울 친화력과 재치를 지니고 있었다. 접객이 서투른 편이냐고 한다면, 그 또한 딱히 그렇지 않다. 디자인이 귀엽고 예쁘장한 제품이 맡겨진다면 그와 같은 장점을 120%로 상대에게 전달하여 영업할 수 있는 재능이 미즈키에게는 있었다. 걸림돌이 되는 건 조금 다른 영역의 문제.

새로 생기는 매장은 시부야의 명물, 109 빌딩에서 멀지 않은 곳에 들어섰다. 이름에 걸맞게 최신 유행의 거리에 입성한 셈이었다. 주말만 되면 ‘천국’ 이라고 칭해지는 SBY 8F에 멋내길 원하는 청춘들이 도쿄 전역에서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그 중에 카미야마 고교에 재학 중인 학생들도 분명 있을 터. 접객을 담당하는 일을 맡았을 때 ‘아키야마 아니야?’ 하며 그를 알아보는 상대와 마주칠 가능성이 생각보다 높아지게 된단 뜻이다. 그게, 미즈키는 정말로 내키지 않았다. 앞에서는 '분위기와 제법 어울리는 일을 하고 있네-', 같은 말을 해놓고는 돌아서서 자기들끼리 이러쿵저러쿵 다른 말을 해댈지 누가 알겠는가.

그런 점에서 의류 리폼 일은 마음이 편했다. 일 자체도 적성에 맞고 각종 다양한 옷감이나 장식이 정기적으로 의상실에 잔뜩 들어온단 점도 최고였지만, 고객을 직접 마주할 일이 별로 없다는 점이 특히나 좋았다. 리폼 의뢰는 가게의 프론트에서 일괄적으로 접수되는 형태여서, 작업 담당은 창구를 통해 접수된 요청에 맞춰 의상 손질을 하면 그만이었다. 그러니 혹여나 아는 얼굴과 마주칠 우려가 있는 접객 담당의 업무 따위, 미즈키는 웬만해서 받아들일 생각이 없었다.

“공주님들, 어서오세요! 코스메 아 라 모드입니다!”

인생사 예외는 간혹 생기게 되는 법이다. 예외가 생긴 이유가 그리 거창하지는 않다. 코스메 아 라 모드의 플로어 매니저가 예의 의류 리폼 가게와 연이 있어서, 그곳에서 나름 오래 일한 미즈키와 면식이 있었다는 점. 그가 미즈키처럼 애교 많고 깜찍한 아이야말로 최적의 인재라며 말문을 열었다는 점. 손님들을 직접 맞이하는 일은 조금 곤란하다고 난색을 표하는 미즈키에게 개장 이후 손이 많이 필요한 초반 일주일 정도만 일해줘도 고맙겠다며 간곡한 청이 들어왔단 점. 그리고, 일반적인 아르바이트와 비교해 배는 되는 금액이 보수로 약속되었다는 점.

어쩔 수 없다. 아키야마 미즈키도 평범한 사람이니. 세상의 귀엽고 깜찍한 걸 하나하나 사다보면 돈이 절실하게 필요해지는 체험을 종종 하게 되는 법이다. 이제 곧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면 얇고 하늘하늘하게 귀여운 신상들이 의류 매장의 진열대를 가득 채우게 되겠지. 이런 시기에 지갑은 가능한 두꺼울수록 좋은 법이다. 미리 정해둔 짧은 기간만 일하는 거니까 말야. 그 사이 별다른 일이야 있겠어. 그렇게 납득하게 되어버렸단 이야기.

“이 제품은 색조가 은근히 진한 편인데, 으응- 공주님의 피부톤이 하얗고 고우신 편이라 대비가 강해질지도 모르겠어요. 어울리는지 잠깐만, 사알짝 칠해볼게요.”

보수가 업무에 있어 강력한 동기 유발점으로 작용한단 건 조직행동론의 기초. 아무리 어이없는 일을 시키더라도 받을 수 있는 금액이 상당하다면 어느 정도 선까지는 눈감아줄 수 있게 되는 거다. 찾아오는 손님을 ‘공주님’ 혹은 ‘왕자님’ 으로 설정하고, 그 컨셉에 맞게 직원들은 집사복이나 메이드복을 입은 채 일종의 역할놀이를 해야만 한다는 방침은 직원 입장에서 눈앞이 아득해질 이야기였다. 그렇지만 그 때문에 그만둔다는 사람은 없는 걸로 보아, 돈이 된다면 못할 일까지는 아닌 모양이었다.

그리하여 미즈키 또한 약속받은 보수에 걸맞게 맡은 바 소임을 다하는 중이었다. 활동성을 살리기 위해 소매와 치맛단을 다소 줄이기는 하였으나 나름 클래식하다고 할만한 메이드복을 차려입고 머리에도 하얀 헤어 드레스를 확실하게 두른 채, ‘잘 어울리시네요. 아름다우셔요.’ 라고 말해주면 마냥 기뻐하는 공주님들을 연달아 상대한다. 워낙에 귀여움의 화신 같은 외견을 하고 있기 때문일까. 그 덕에 일종의 신뢰감이 생기게 되는 건지, 미즈키가 어울린다고 평가를 내려주면 대부분의 손님들은 공신력 있는 미인 대회에서 트로피라도 따낸 듯한 표정이 되었다. 공주님들이 추천받은 제품들을 모조리 집어들고 계산대로 직행하게 되는 건 정해진 수순이었다.

새로 생긴 가게인데다가 마침 주말이기도 하여 매장을 찾는 손님들의 수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다. 매장 현황을 살피던 매니저가 엄지를 한 차례 치켜들어보이고는 휴식 시간을 챙겨준 덕에 미즈키는 간신히 숨을 돌릴 여유를 챙길 수 있었다. 이야, 나 너무 유능한 거 아닌가. 이세계 전생을 해버린 주인공마냥 말이지. 간이 의자에 앉아 물을 한 모금 마시며 그렇게 자화자찬한다. 인정받는 건 어쨌든 기분 좋은 일이다. 자신이 잘할 수 있는 분야가 있다는 걸 명확한 형태로 확인하는 일도 마찬가지로 기쁜 일이고. 이러다가 정식으로 일하는 게 어떠냐는 제안에 오케이 사인을 보내버릴지도 모르겠네. 혼자서 너스레를 떨고는 어깨를 으쓱하며 미즈키는 킥킥 웃었다.

들떠서 마음의 긴장이 풀어진 순간이야말로 예기치 못한 기습에 취약해지는 법이다.

“공주님, 어서오세요! 코......”

붙이고 있는 벚꽃색 속눈썹이 어느 브랜드의 제품인지 집요하게 묻는 손님을 겨우 보내고 난 다음, 새로 손님이 들어올 때 입구에서 울리는 알람음을 들으며 미즈키는 반사적으로 말을 꺼냈다. 흘끗 살피는 눈길로 상대가 여성이란 특징만을 잡아내서 그에 맞게 호칭을 부르던 입이, 다음 순간 굳어버려 뒤에 이어질 내용을 완성하지 못한다. 코스메의 ‘코’ 를 발음하던 그대로 입모양을 멈춘 채로 미즈키는 느릿하게 눈을 깜박거렸다. 하얀색 나시 원피스 차림이 무척이나 잘 어울리는 한 사람만이 시야에 잡힌다. 한순간 세상 전체에 현실감이 증발해버린 듯한 기분. 현실감이 부재하여 텅 비어버린 세상에 마주하고 있는 상대와 자신만이 남겨진 듯한 착시감.

“......미즈키?”

“에, 에나......”

비슷한 표정이 되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던 상대가 먼저 말을 꺼낸다. 생각도 못한 일을 마주했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움직임에 땋아내린 벼머리가 찰랑거린다. 그녀, 시노노메 에나의 눈동자에 당혹스러워하는 기색이 점차 가라앉고, 그 공백을 강렬한 호기심과 흥밋거리를 발견했다는 짓궂은 기대감이 채우기 시작하는 걸 감지한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하여 그 세찬 박동에 미즈키는 잃어버렸던 현실감을 되찾았다. 어째서 에나가 여기에. 그와 같은 의문이 뇌리를 채워버려서 반응은 여전히 둔할 뿐이었지만.

“깜짝 놀랐네. 여기서 일하는 거야?”

“아, 아하하, 그게 말야, 임시로 잠깐 동안만 일하기로 해서......”

“흐응, 그렇구나. 그보다 뭐야. 공주님이라니? 옷차림도 굉장하고.”

“가게 방침이라서 말이지. 찾아오는 손님들 모두 공주님, 왕자님으로 대할 것, 이라고. 의상은 나름 귀엽지 않아? 본격적인 메이드복인데. 에나는 무슨 일로 여기에 온 거야?"

“화구를 사러 나온 김에 핸드크림을 하나 사려고 했는데, 이번에 개장한 가게가 있대서 와본 거 뿐이야. 이런 컨셉 매장일 줄은, 게다가 여기서 미즈키가 깡총거리고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지만.”

“무슨, 깡총거리고 있다니......”

그처럼 경망스러운 행동을 한 적은 없다. 들뜬 기분 탓에 한층 메이드복 특유의 귀여움을 살려보고자 하는 생각이 들어 가볍게 총총 걸어다녔을지는 몰라도, 깡총거린다는 말을 들은 정도는 아니었을 건데. 갑작스러운 만남에 놀란 탓인지 술렁이는 가슴을 가라앉히고는, 미즈키는 곧 평상시의 능청스러움을 어느 정도 되찾았다. 그렇게 말한다면 정말로 깡총거리는 게 뭔지 보여줘야지. 두 손을 토끼귀마냥 머리에 올리고 콩콩, 토끼가 뛰어가는 흉내를 낸다. 그리고는 혀를 살짝 내밀어 베에.

“깡총거린다는 건 이런 걸 말하는 걸까나?”

“......미즈키 너에게 딱 맞는 아르바이트를 구하긴 했구나 싶네.”

“흐흥, 무려 ‘당신 같은 인재가 아니면 안 돼’ 라며 스카우트 당한 거라구. 대단하지?”

“네에네에, 대단하네요. 그보다 고객을 공주님이라고 부르는 게 방침이라며. 왜 나는 그렇게 대하지 않는 건데.”

아, 오늘 온 손님들 중 제일 귀찮은 이에게 붙들린 걸지도. 괜히 뾰로통한 표정을 지어보이는 에나에게 미즈키는 어색하게 웃어보였다. 에나의 말이 틀린 건 아니다. 누가 오더라도 매장에 한 걸음 들어선 순간 공주님과 왕자님으로 대우받아야만 한다는 게 코스메 아 라 모드의 방침. 딸의 뒤를 따라 별 생각없이 매장으로 들어온, 평생 화장과는 연이 없었을 50대 아저씨조차 일단은 왕자님으로 승격되는 장소에서 시노노메 에나가 공주로 대접받지 못할 이유는 없다. 아니, 오히려 시노노메 에나만큼 공주님이라고 불리는 게 잘 어울리는 사람도 흔치 않을 거다. 분명 그렇긴 하지만.

“진지하게 하는 말이야?”

“당연하지. 일단 그것도 서비스의 일부인 거잖아? 나만 못 받는다면 그거대로 억울해.”

“받아서 도움될 서비스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일하고 있는 직원이 그런 식으로 말하는 건 문제 있지 않아?”

“뭐, 에나가 원한다면야......그럼 공주님, 안으로 모시겠습니다.”

서로 잘 아는 사이에 어린애 소꿉장난 같은 역할 놀이를 해야하다니. 나름 재미난 경험일까. 상황을 받아들인다면 그리 곤란한 문제도 아니다. 유치하고 실속없는 장난은 아키야마 미즈키의 전문 분야가 아닌가. 미즈키는 사뿐하게 안내하는 손동작으로 시노노메 공주를 맞이하였다. 공주의 얼굴에 알기 쉽게 부끄러워하는 기색이 피어오른다. 공주님으로 대해달라며 고집을 부리기는 하였으나 막상 그렇게 불리자 제법 민망한 모양이었다.

“핸드크림이 필요한 거라고 했었, 이 아니라, 핸드크림이 있는 쪽으로 안내할게요. 제품이 여러 종류가 있는데, 공주님의 곱고 예쁜 피부에 딱 맞는 제품을 찾기 위해 몇 가지 질문을 해도 괜찮을까요?”

“으, 으응.”

“감사합니다. 그럼 먼저 예전에 어떤 브랜드의 제품을 쓰셨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분위기에 적응한 미즈키가 쾌활하게 말을 꺼낼수록 반대로 에나의 말수는 적어진다. ‘공주님’ 이란 호칭으로 불릴 때마다 얼굴 표정이 살짝 흔들리는 게 뻔히 보이는데도, 어떻게든 태연함을 가장하려고 하는 게 무척이나 귀엽다. 주도권이 자신에게로 넘어왔음을 감지하며 미즈키는 속으로 쿡쿡 웃음을 삼켰다. 에나는 반응이 알기 쉬우니까, 보고 있으면 장난을 치고 싶어진단 말이지. 그래도 공주 대접을 받고 싶다고 말한 건 에나 쪽이라구? 나중에 불만 가지지 않기야.

“그렇담 이쪽의 제품을 추천할게요. 유분기가 많지 않아 끈적거림도 덜하고, 공주님께서 붓을 들었을 때 불필요하게 미끈거리는 기분도 들지 않을 거랍니다. 분명 마음에 드실 거에요.”

“완전 영업사원 같은 말투네.”

“후훗, 그럼 시험삼아 조금 발라보도록 할까요. 견본이 있어서 여기서 곧바로 확인해볼 수 있답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제가 직접 발라드릴게요.”

공주님의 반응을 훔쳐보는 게 재밌어 오늘 중 그 어느 때보다 메이드 역할에 몰입해버린 와중이었다. 화장품 견본에서 크림을 살짝 퍼올려 손님의 손등에 슥슥 문질러주기만 하면 되는 간단한 일이었다. 여태까지 다른 손님들에게 했던 그대로, 손등이 위로 향하도록 손을 살짝 잡아 들어올린다. 유분기가 적다고는 해도 피부에 닿는 감촉이 촉촉한 크림이 에나의 손등에 하얗게 번졌다. 크림이 고루 퍼지게끔 손끝으로 그를 문지른다. 에나의 손은 이야기 속 공주님의 손마냥 작고 곱네. 이 손으로 항상 그림을 그리는 거구나. 그러한 감상을 떠올리고 있다가, 미즈키는 문득 자신이 하고 있는 행위의 무게감을 자각했다.

맞닿은 손, 스며드는 크림, 피부를 통해 전해지는 체온.

시선을 끌어올리면, 하염없이 두 뺨을 붉게 물들인 채 눈길을 피하고 있는 공주가 보인다. 저도 모르게 입에서 작게 ‘아’, 탄식하는 소리를 흘리고 만다. ‘뭘 부끄러워하고 있는 거야. 에나도 참, 이 정도는 일하다보면 흔하게 한다구?’.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그처럼 말하면 된다고 떠올리지만, 어디까지나 생각일 뿐 입은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뭐라고 말하는 게 좋을지 전혀 알 수 없게된 입술이 잠시 동안 달싹이기만 하였다.

“......마, 마음에 드시려나요.”

“......으, 으응. 괜찮, 네.”

더듬더듬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고, 속삭이듯 작은 목소리로 답한다. '견본' 이라는 글자가 붙어있는 물건을 에나에게 내밀었다가 미즈키는 뒤늦게 실수를 깨달았다. 화들짝 놀라며 진열되어 있는 새 제품을 꺼내 넘겨준다. 다른 직원들이 이 광경을 본다면 갑자기 왜 저렇게 행동하는지 의아하게 여기겠지. 슬며시 주변을 살펴 누구도 자신들을 보고 있는 중이 아니란 걸 확인하고는 미즈키는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지인 할인은 없어?”

“그런 걸 해줄 수 있게 되면 따로 메일로 알려줄게. 아마 10년 정도 걸릴 거야.”

“어라? 메이드치곤 말투가 불손해졌는걸?”

“송구하오나 별도의 할인 정책은 따로 없답니다. 공주님께서 너그럽게 이해해주셨음 하여요.”

“할인 하나 받아낼 권한도 없다니, 공주란 지위도 별 거 없네.”

손님을 계산대까지 에스코트할 의무는 없었으나, 영양가 없는 문답을 주고받으며 미즈키는 에나의 곁을 지켰다. 조금 전 있었던 다소 민망했던 사건을 묻으려는 듯 양쪽 다 괜히 말이 많아진다. 아무래도 좋을 시시한 대화를 번갈아 이어가며 나란히 걸어가는 구도는 어딘가 익숙해서, 한번씩 둘이서 외출하던 때의 일이 생각나 미즈키는 오늘 자신이 직원의 입장이란 사실을 깜박 잊어버릴 뻔 하였다.

“배웅까지 해줄 필요는 없는데.”

“공주님만을 위한 특별 서비스랍니다. 무려 무료 서비스-.”

장난스레 덧붙이는 말을 듣곤 피식 웃는다. 무시하고 넘겨도 무방할 장난에 에나가 반응을 보이는 순간이 미즈키는 좋았다. 짜증내며 인상을 찌푸리는 경우도, 어이없다는 듯 눈썹을 치켜세우며 새침한 표정을 지어보이는 경우도, 지금처럼 가볍게 받아넘기며 웃어보이는 경우도. 에나에게만 해주는 서비스라는 건 진짜니까. 오늘 맞이했던 그 어느 손님도 매장 앞 거리까지 배웅하지는 않았었으니.

“그럼, 갈게. 열심히 해.”

“네에-, 응원 감사합니다. 공주님.”

“맞아, 여기 임시로 일하는 거라고 했지? 언제까지 여기서 일해?”

“딱 다음 주까지 하기로 했으니까, 응, 다음 주말까지.”

“흐응.”

고개를 한 차례 끄덕이고는 에나는 흘끗 미즈키를 돌아보았다. 바라보는 눈길이 묘하게 새초롬하다. 에나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짐작이 가지 않아 미즈키는 어색하게 눈을 깜박여댔다.

“알겠어. 다음 주말까지.”

“왜?”

“그냥. 그보다 미즈키.”

“응?”

“입고 있는 옷, 잘 어울려. 귀여웠어.”

그렇게 말하고는 에나는 앞으로 총총 걸어나갔다. 몇 걸음 가지 않아 뒤를 잠시 돌아보고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만 있는 메이드에게 혀를 쏘옥 내밀어보인다. 하얀 나시 원피스를 입은 공주님은 금방 복잡한 인파 사이로 모습을 감춰버렸다. 자리에 붙박힌 듯 서서, 미즈키는 잠시 동안 그 아이가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았다.

매장으로 돌아오자 매니저가 미즈키를 불러세웠다. 바로 앞이기는 해도, 근무 중에 멋대로 매장 밖으로 나간 점을 지적하는가 싶어 미즈키는 자세를 바로잡았다. 방침에 어긋나게 행동한 건 사실이었다. 쓴소리가 나오면 곧바로 사과를 해야하겠지. 실책을 탓하는 말이 나올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매니저는 이리저리 살피는 눈을 하더니 걱정스런 어조로 말을 꺼냈다.

“아키야마 씨, 얼굴이 많이 붉은데. 한 차례 더 휴식하는 게 좋을 거 같아.”

얼굴이 붉다는 말에 미즈키는 손을 들어 뺨을 짚었다. 손바닥에 번지는 열감이 생생하여 스스로 조금 놀라버린다. 이렇게나 뜨거워져서는. 계절이 계절이니 무리하지 않는 편이 좋다는 염려 섞인 말에 작게 고개만을 끄덕인다. 아뇨, 이건 여름 때문이 아니라, 어느 제멋대로인 공주님 한 분 때문에 생긴 열기라서요. 남들 앞에서 말할 리 없는 답을 삼키고는, 미즈키는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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