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글 1

프로젝트 세카이 마후유 x 카나데

치킨 카레 도리아 한 그릇과 모듬 오뎅 한 봉, 거기에 생크림 모찌 롤케이크. 아사히나 마후유가 사온 식사는 화려하지는 않아도 제대로 후식까지 갖춰져 있어 구성이 충실했다. 편의점에서 공수해온 음식들이란 점을 생각하면 이보다 고급스럽기를 기대하기도 힘들겠지. 얄팍한 크기의 컵라면 하나와 비교하자면 흠잡을 구석 없는 만찬이다. 요이사키 가로 들어서자마자 식탁 위에 식사를 차리고는 마후유는 집주인을 의자에 앉혔다. 이제는 이와 같은 흐름에 익숙해졌기에 요이사키 카나데는 차분하게 수저를 들었다.

요이사키 가의 위치를 파악하게 된 이후, 마후유는 카나데의 집을 자신의 생활에서 일종의 경유지이자 비밀 기지로 써먹기 시작했다. 학교를 마치고 예비교에 가기 전까지의 여유 시간, 그녀의 어머니가 어련히 딸이 자습실에서 공부하고 있으리라고 생각할 그 시간에, 별다른 일정이 없다면 마후유는 요이사키 가의 초인종을 눌렀다. 머물 수 있는 여유는 길어야 한 시간 반 남짓이었으나 그 시간 동안 소녀는 나름 휴식을 즐겼다. 때로는 침대에서 토막잠을 자고, 때로는 작업 중인 이를 은근히 방해하고, 때로는 집주인이 어설픈 솜씨로 우려주는 차를 마시기도 하면서.

남의 집을 좋을대로 휴식처로 쓰고 있단 점에 대해 보은을 해야한다고 생각한 건지, 아니면 제대로 끼니를 챙겨먹을 생각을 하지 않는 카나데를 그녀 나름 보살피고 싶었던 건지 언젠가부터 마후유는 식사거리를 챙겨오기 시작했다. 대체로 편의점 음식들, 가끔은 근방에서 유명한 가게들의 테이크아웃 메뉴로. 특정한 음식에 대한 호불호가 없는 거나 마찬가지인 마후유였기에 식단은 그때마다 달랐다. 어쩌다 눈에 들어왔다, 집어들기 쉬운 위치에 있었다, 할인 행사 중이었다, 하는 적당한 이유들로 선별된 식단이었다. 굳이 매번 사올 필요는 없다고, 아니면 적어도 자신이 비용의 절반을 계산하겠다고 카나데가 말하기도 했으나 마후유는 고집스럽게 자신의 방침을 고수했다. 그렇게 둘이서 마주 앉아 식사를 하는 시간이 서로의 일상에 추가되었던 터였다.

“이 도리아, 치즈가 고소해서 맛있어.”

“그렇구나. 다행이네.”

카나데의 평에 고개를 끄덕여주고는 마후유는 오뎅 사이에 들어있던 곤약을 집어들어 입으로 가져갔다. 치즈가 끈적하게 따라붙는 도리아 한 입을 삼키고는 그를 오물오물 씹으며 카나데는 맞은 편에 앉은 마후유를 쳐다보았다. 그녀가 곤약을 베어물어 삼키는 광경을 관찰한다. 어떤 음식을 먹든 간에 아사히나 마후유가 식사를 하는 모습은 우아하다. 다듬어진 동작과 작게 움직이는 입, 식욕을 드러내지 않아 절제된 태도가 그녀만의 고상함을 빚어내는 거겠지. 무엇보다 마후유가 워낙에 예쁜 아이이기 때문일지도. 거기까지 생각했다가 카나데는 혼자 부끄러워하며 얼굴을 붉혔다.

자주 얼굴을 보는 사이가 되었기 때문일까. 혼자 내버려 둘 수 없다는 마음이 살짝 다른 형태로 바뀌어버린 걸까. 마후유 나름으로 카나데 자신을 챙겨주려는 마음을 느낄 수 있어서, 그게 고마워서일까. 그로 인해, K와 유키로서 회선을 통해 교류를 시작했던 순간부터 느꼈던 끌림을 최근 들어 한층 뚜렷하게 체감하고 있기 때문일까. 예쁜 아이다. 한 송이 라일락이 피어있는 거 같아. 텅 비어있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얼굴을 마주했던 그 순간에 그처럼 생각했었던 터였다. 지금도 그 감상 자체는 바뀌지 않았다. 다만 수줍은 욕망 한 줄이 덧붙여졌을 뿐이다. 라일락의 향기에 흠뻑 취하고 싶다. 가능하다면, 남들 모르게 자신 혼자서만.

마후유가 음식을 먹는 모습이 예쁘다는 생각을 떠올린 순간부터 카나데는 식사에 집중할 수 없었다. 자신이 상대를 바라보는 시선을 의식하게 되어 움츠리듯 고개를 숙인다. 이런 마음을 품고 있다는 걸 들키게 된다면 마후유, 꺼림칙하게 여길지도 몰라. 더 이상 찾아오지 않게 될 수도. 그건 싫다. 일상의 일부로 들어온 존재가 없어진다면 공백과 상실감을 느끼게 되는 법이다. 모든 오선지는 음표를 그려넣기 전에는 비어있는 상태다. 음표를 채워넣는다면 그를 따라 악보는 노래를 부르겠지. 그럼에도 그 음표를 다시 지워버린다면 침묵만을 연주하는 곡이 공허함 속에 흐르게 되는 거다. 그건 단순히 채워지지 않아 비어있을 때보다도 서글픈 공백이지 않은가.

“잘라둘테니 먹고 싶을 때 먹어.”

“응, 언제나 고마워, 마후유.”

롤케이크를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두고는, 그 중 한 조각만 기계적으로 행하는 절차마냥 맛본 다음 마후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터키석 색상의 머그컵에 담긴 물을 마저 마시고 잔을 개수대에서 씻기 시작한다. 은은한 초록색 머그컵은 요이사키 가의 재산이 아니었다. 둘이서 식사를 하게 되었을 즈음, 마후유가 사들고 온 그녀 자신 몫의 잔이었다. 마후유가 요이사키 가에 두고 다니게 된 기념비적인 첫 소유물. 마후유는 씻어낸 머그컵을 카나데가 애용하는 하늘색 머그컵과 나란히 두었다.

머그컵 외에도 요이사키 가에 두고 다니는 아사히나 마후유의 소유물들은 몇 개 더 있다. 세면실의 선반에 놓아둔 예비용 머리끈 몇 개와 칫솔 건조대 안에 들어있는 자주색 칫솔, 여우비가 왔던 날 들고 왔다가 깜박 놓아두고 다니게 된 접이식 우산까지. 대단한 물건은 없지만 그렇게 놓아두고 다니는 일상용품들이 요이사키 가가 마후유의 생활 반경 안에 놓이게 되었음을 이야기해준다.

굳이 ‘세면실 좀 쓸게’ 같은 말을 하지 않고서 마후유는 세면실로 들어섰다. 이제와서는 그런 예의를 차릴 이유가 딱히 없었다. 요이사키 가를 지켜주는 좌부동이 있더라도, 아사히나 마후유가 세면실을 쓰는 일을 수호령 또한 이제는 당연하게 여길 터였다. 뭐, 적어도 마후유는 당연하게 여기고 있다. 건조대에서 칫솔을 꺼내들고 물을 묻힌 뒤, 그 위에 소금향 치약을 쭉 짜올린다.

칫솔질을 하는 소리가 실내에 조용하게 흘렀다. 마후유가 양치질을 하는 동안 카나데는 롤케이크 한 조각을 먹었다. 달콤하고 쫀득하면서도 입 안쪽에 텁텁함을 남긴다. 남은 건 나중에 저녁에 먹어야겠다. 충분한 포만감을 느끼며 카나데가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깨끗하게 세안을 마친 마후유가 부엌으로 걸어나왔다. 식사가 마무리 된 식탁을 슬쩍 훑어보고는 작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 가볼게.”

“조심해서 가. 나중에, 나이트코드에서 봐.”

“그래. 나중에.”

손을 흔들며 배웅해주는 카나데에게 눈짓으로 인사를 하고서 마후유는 현관을 나섰다. 묵직한 소리를 내며 문이 닫히면 요이사키 가에는 한 사람의 숨소리만이 남았다. 짧게나마 주고받던 대화조차 지금은 이어지지 않는다. 서늘하고 적막하다. 마후유가 가자마자 벌써부터 쓸쓸한 기분이 들다니, 너무 빠르지 않니. 스스로가 지나치게 외로움을 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그게 안쓰러우면서도 우스워 카나데는 힘없이 웃었다.

롤케이크가 입 안쪽에 남긴 끈적거림이 꽤나 거슬렸다. 중단해뒀던 작업이 생각났으나 방에 돌아가기 전에 카나데는 세면실로 걸음을 옮겼다. 조금 전 사용한 사람이 있었던 탓에 세면대에는 물기가 남아있었다. 건조대에서 자신의 파란색 칫솔을 꺼내려다가 소녀는 손을 멈췄다. 바로 곁에 걸려있는 자주색 칫솔에 손가락이 닿는다.

“......”

정당화하기 힘든 짓을 하고 있다는 자각은 있다. 그럼에도 카나데는 떨리는 손으로 그 아이의 소유물을, 칫솔을 집어들었다. 이걸로 뭘 하려고? 스스로에게 그렇게 묻지만 답은 나오지 않는다. 목적을 제대로 인지하지도 못하는 상태로 카나데는 손가락으로 칫솔을 조심스레 매만졌다. 조금 전 사용했을 터인데도 칫솔의 모는 빳빳하게 마른 듯 느껴졌다. 칫솔모라는 게 이렇게 감촉이 좋았던가. 부드러우면서도 빡빡할 정도의 탄성이 전해지는 그것을 몇 차례나 손가락으로 꾹꾹 눌러보다가 카나데는 그를 얼굴 가까이로 가져왔다. 그리고는, 킁킁 냄새를 맡는다.

저질, 변태, 최악이야. 상상 속의 마후유가 차디찬 눈을 하고서 싸늘하게 매도하는 말을 던진다.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면서도 카나데는 행동을 멈추지 않았다. 왜 이런 짓을 하고 있는지 소녀 자신도 알 수가 없었으나, 그럼에도 의미 모를 일을 계속해서 하게 되어버린다. 흡사 보이지 않는 끈이 들러붙어 의지와 무관하게 전신을 인형마냥 조작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쓸쓸해져서 이렇게 할 뿐이야. 마후유가 가버리고 난 다음 외로워져서. 이렇게라도 마후유를 느끼고 싶어서. 속으로 변명을 하고는 카나데는 한층 죄악감을 느꼈다. 변론으로 쓰이지도 못할 헛소리라는 걸 스스로도 알고 있다. 그렇지만, 그래도.

내쉬는 숨이 뜨거워졌음을 느낀다. 뺨을 붉힌 채로 잠시 망설이다가 카나데는 칫솔모에 입술을 맞췄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의미가 있다고, 닿은 순간 소녀의 심장이 콩닥콩닥 세차게 뛰어버린다. 마후유의 머그컵을 들고, 아마도 입술이 닿았을 지점에 입을 맞췄던 때만큼이나 부끄러운 기분이 들었다. 마후유, 미안해. 이런 방식으로 널 떠올리며 흥분하는 나는 둘도 없이 꼴불견인 여자아이겠지. 네가 이를 알게된다면 날 얼마나 경멸할까. 자기혐오와 비참함을 느끼면서도 카나데는 행위를 반복했다. 최저의 인간이 되더라도 라일락 색채의 그 아이와 닿고 싶었다.

양치질을 하는 마후유의 모습을 상상한다. 칫솔을 들고 입 안 가득 하얀 거품을 내고, 그를 머금었다가 한번에 세면대에 뱉어내는 광경을. 한 차례 입을 비워낸 뒤에 다시 칫솔을 들어올린다. 살짝 벌린 입으로 칫솔이 들어간다. 칫솔모가 치아를 문지르며 내는 그 특유의 소리가 울린다. 부드럽게 쓸리는 소리가 반복되고, 반복된다. 휘어지는 가닥들이 입 안 구석구석 닿아서 문질러진다. 하얀 거품, 묽은 타액, 새하얀 치아, 라일락의 향기.

어느 순간 혀를 내밀어 칫솔모를 핥고 있었다. 그렇게 하더라도 마후유의 맛은 느껴지지 않는다. 마후유의 맛, 달콤할까 씁쓸할까 황홀할 지경으로 자극적일까. 기묘한 상상을 하면서 카나데는 칫솔을 입 안쪽으로 밀어넣었다. 지금껏 누군가와 입맞춤을 해본 적은 없었다. 아사히나 마후유를 만나고, 그녀와 교류를 나누게 된 이후로 상상만큼은 해보게 되었지. 없는 거나 마찬가지인 서투른 지식을 바탕으로 떠올려봤던 입맞춤의 방식대로, 안에 들어온 칫솔을 훑어낸다. 아주 조금이나마 남아있을 라일락의 파편을 얻고 싶어서, 그와 같은 집착 속에 욕망이 선명하게 피어올라서.

“......하아.”

사리에 맞지 않는 바보 같은 짓거리를 하고 있다고 스스로를 책망할만한 냉정함은 한순간에 찾아들었다. 거의 울 듯한 얼굴이 되어서 카나데는 입에 넣었던 칫솔을 빼내었다. 타액이 묻어 촉촉해진 칫솔을 쳐다보면 감내하기 괴로울 지경으로 자기 혐오가 밀려들었다. 앞에서는 좋아한다는 마음을 조금도 표현할 용기가 없으면서, 뒤에서 그 아이 모르게 이런 짓이나 하고 있다니. 흐르는 물에 칫솔을 깨끗하게 씻어 건조대에 돌려둔 다음 카나데는 황급히 세면실을 나섰다. 고개를 들어 거울 속 자신과 마주쳤다간 부끄러움에 주저앉을 듯 싶어 바닥으로 시선을 떨군 채로.

“마후유, 미안해......”

작곡을 하던 중이었으나 악상을 이어나갈 마음이 들지 않았다. 마후유를 구할 곡을 만들겠다니. 조금 전에 그런 짓을 했으면서. 침대에 쓰러지듯 누운 채로 카나데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치밀어오르는 열기로 손바닥이 후끈거렸다. 들켰다간 곧바로 재판에 끌려나갈 엄청난 죄를 지은 기분이었다. 줄에 묶여 피고인 자리에 앉은 채로 내려질 판결만을 기다린다. 검사석에 서 있는 보랏빛 머리카락의 그녀가 매섭게 노려보는 상상을 해버리고 만다.

“나도 내가 이런 아이인 줄 몰랐어. 정말 미안해......”

네가 좋아서. 네가 너무나도 좋아서. 견딜 수 없을 만큼 좋아서. 단 하나의 감정으로 압축되는 최종 변론이 그렇게 끝나버린다. 어깨를 옅게 떨다가 소녀는 결국 훌쩍이는 소리를 흘리고 말았다.


볶음고기 유부초밥과 스팸 유부초밥 3개입씩 묶어서 한 세트, 미트볼 한 접시, 신선 야채 샐러드 한 통과 계절감엔 맞지 않은 사쿠라 모찌 한 팩. 아사히나 마후유가 사온 식사는 오늘도 충실했다. 일주일에 두세 번씩 찾아오는데 매번 이렇게 사오다니, 지갑 사정은 괜찮은 걸까. 내심 걱정이 들지만 말해봐야 마후유가 답해주지 않을 거란 사실을 경험으로 알고 있어서 카나데는 일단 내색을 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소녀 나름 방책을 세우기도 했고.

“있잖아, 마후유. 식사 메뉴와 관련해서 리퀘스트가 있는데, 다음 번에는 그렇게 사다줄 수 있을까?”

“편의점에 파는 거라면 얼마든지.”

“응, 나중에 적어줄게. 그리고 내가 원하는 걸 사다주는 거니까 돈은 내가 내는 걸로 했음 좋겠어.”

“......”

그 말에 물끄러미 카나데를 바라보다가, 마후유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피식 웃는 것마냥 그녀의 입가가 움찔거리는 느낌이 들었으나, 아마도 자신이 잘못본 거라고 카나데는 생각했다. 그 직후 미트볼을 씹는 동안 마후유의 입술은 선이 고운 일자를 유지하고 있었으니. 어쨌든 마후유가 수락했단 사실에 안도감을 느낀다. 지금처럼 같이 식사를 하는 일상이 이어진다면 식비는 같이 부담했으면 하는 게 카나데의 바람이었으니까.

한 팩에 2개가 든 사쿠라 모찌를 카나데에게 양보하고는 마후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머그컵에 남은 물을 마시고는 언제나처럼 얼마 되지 않는 뒷정리와 설거지를 한다. 날마다 컵라면만 먹으며 생활하던 시절에 비해 얼굴색이 제법 좋아진 카나데를 흘끔 보았다가 마후유는 자신의 초록색 머그컵을 하늘색 머그컵 옆에 놓아두었다. 정해진 자리에 정해진 물건을 두었다는 작은 만족감이 들었다.

세면실을 쓰겠다는 말은 따로 하지 않는다. 세면실로 들어온 다음 마후유는 건조대에서 칫솔을 꺼내들었다. 물로 칫솔모를 적신 다음 소금향 치약을 올린다. 가느다란 가닥들이 치아와 잇몸을 건드리는 간지러운 감각과 함께 칫솔질 하는 소리가 실내에 울려퍼졌다. 리듬감 속에 행동을 유지하다가 마후유는 건조대로 다시금 눈길을 주었다. 선택받지 못한 칫솔 하나가 덩그러니 남겨져 있다. 마후유 자신이 사왔던 자주색 칫솔.

자신이 사오긴 했었으나 마후유는 그 자주색 칫솔을 딱 한번 밖에 쓰지 않았다. 의도한 건 아니었으나, 그렇게 된 거다. 포장을 뜯고 처음 그걸 사용한 뒤 건조대로 손을 뻗었다가 파란색 칫솔을 손가락 끝으로 톡 건드렸었다. 카나데, 이 칫솔을 쭉 쓰고 있었겠네. 문득 그렇게 생각한 순간 아가씨는 충동을 느꼈다. 적당한 욕망조차 품지 못해 텅 빈 채로 지내온 나날이었다. 간절한 욕구가 지루한 상식을 집어삼키길 원하고 있다면, 그 정도는 이루어줄 수 있다.

수도꼭지가 돌아가고 물이 쏟아진다. 하얀 거품을 내뱉고는 입을 헹군다. 물기 남은 입가를 손바닥으로 닦아낸 뒤 마후유는 씻어낸 칫솔을 들어올렸다. 여러 차례 사용해서 칫솔모 끝이 살짝 눌려진 파란색 칫솔. 지금껏 카나데의 입 안을 깨끗하게 씻어줬을, 이제는 마후유도 몇 번이나 사용해버린 칫솔. 카나데의 곁에 있을 때 느껴지는 하얀 꽃잎의 향기가 나. 환각이나 다름없는 황홀함을 느끼며 마후유가 나지막하게 한숨을 내쉬었을 때였다.

“마후유, 아직 시간은 괜찮을 거 같은데 차 끓여줄까? 카모마일로 하려고 하는데.”

“......좋아. 부탁할게.”

“응.”

세면실 문간까지 다가왔던 인기척이 다시 멀어진다. 세면실의 문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다가 마후유는 옅게 미소를 지었다. 만약 이런 행동을 들키게 된다면 카나데는 자신을 어떤 눈으로 바라볼까. 거북함이 깃든 눈으로? 그보다 더 진하게 혐오감을 담아서? 그 아이의 푸른 눈동자에 대해 생각하다가 마후유는 혀를 내밀었다. 청결해진 칫솔모를 천천히, 천천히 핥아올린다. 소녀 자신의 타액이 흠뻑 묻을 만큼.

“......후후.”

희미한 웃음에는 자조의 색이 묻어났다. 자신의 흔적을 남긴 칫솔을 건조대에 돌려둔 다음 마후유는 세면실을 나섰다. 꽃이 잠시 머물렀던 공간에는 라일락의 향기가 은은하게 감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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