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즈마후] 그녀는 겨울에 속한 사람이였다

이별을 고하는 사람의 눈은 사무치도록 다정했다.

아키야마 미즈키는 영원을 믿지 않는 사람이였다.

그렇기에 미즈키는 언젠가 다가올 끝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이 세상에 영원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아. 학교에는 졸업이 있고 관계는 언젠가 깨지기 마련이며, 사람은 모두 죽어. 끝이 예고 없이 찾아온다는 것은 모두 미리 준비하지 못한 사람들의 변명일 뿐이야.

정말로 단 한 번도 끝에 대해 생각해본 적 없어? 상대에게 싫증이 나면? 나는 아니더라도 저 사람이 나를 싫어하게 되면? 어느 한쪽이 죽으면? 결국 어떤 관계든 어떠한 방식으로든 이별은 찾아오게 될 텐데. 그럴 바에 차라리 언제나 끝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편이 낫지 않아?

나의 미래에 상대가 있기를 바라는 건 욕심이다.

상대방의 미래에 내가 있기를 바라는 건 죄악이다.

그렇게 미즈키는 아무도 상처받지 않을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갔다. 첫 만남에 기뻐하고 이별에 슬퍼하는 사람들을 비웃으며, 동시에 한편으로는 동경하면서. 어떻게 저렇게 순진할 수 있을까? 애정이니 증오니 하는 것들은 귀찮을 뿐이다. 누군가에게 기대하는 것도, 필사적으로 미워하는 것도 모두 무의미한 감정 소모. 더군다나 흔히들 말하는 '사랑'이라고 하는 감정은 그중에서도 가장 엮이고 싶지 않은 단어였다.

평생 함께할 거라고 좋아라 떠들어 대다가도 헤어지고 나면 남보다 못한 원수로 남게 되는 관계. 그게 뭐야.

그러나 미즈키는 제 주변 지인들 사이의 가장 뜨거운 관심사를 모른척할 수 있을 만한 위인은 아니였다. 그것에 대해 뭐라 말을 얹을 자신은 없더라도 그 자리를 피하고 싶지는 않았기에. 결국 연애 상담이니, 누구와 헤어졌다니 하는 것들에 적당히 맞장구쳐줄 수 있을 정도로는 사랑에 대해 익혀나갔다. 미즈키의 호불호와는 별개로.

그러니까, 이 긴 한탄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아키야마 미즈키는 이런 상황을 바란 적 없다는 것이다. 단 한 번도.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 경고를 무릅쓰고 마을 밖으로 나갔던 것? 그녀에게 첫 눈에 홀려버린 것, 아니면 그런 그녀를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만나고 싶다는 욕심을 부린 탓이었을까. 아니 어쩌면, 자신을 둘러싼 모든 현실에 염증을 느끼고 이 마을로 도망쳤을 때부터 이런 결말은 예정되어 있었을 지도 모른다.

확실한 건 지금의 미즈키 자신에게는 시간이 얼마 없다는 것이겠지.

지금 자신의 눈앞에 서 있는 상대는 눈보라 속에 갇힌 여행자들을 유혹해 죽이고, 마을에 산사태를 일으킨 원흉. 수백 년간 지켜져 온 마을과 괴이들 사이의 약속을 깨버린 사상 최악의 설녀. 차갑게 얼어버린 다른 여행자들과 마찬가지로, 미즈키가 아사히나 마후유를 처음 만난 것도 눈보라 속에서 길을 잃었을 때였다. 마을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그런 그녀를 만나고도 미즈키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하늘이 도운 일이라고 한다.

그녀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지만. 말 없이 마을로 향하는 길을 안내해주던 그 호의에, 그러면서도 상냥함과는 거리가 먼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던 그 눈동자에 끌리지 않았다고 한다면 그것도 거짓말이다. 그렇지만, 그녀는 겨울에 속한 사람이였다. 그리고 미즈키는 마후유의 눈을 바라보았을 때 확신할 수 있었다. 자기 자신은 이 세계를 떠날 수 없으리란 것을.

아마 자신은 평생 이 선택을 후회할 것이다. 1년 중 절반이 넘는 시간을 겨울을 동경하면서 보낼 것이고, 겨울이 오면 그녀가 떠난 눈을 밟으며 괴로워할 것이다. 그렇지만, 아키야마 미즈키는 인간이다. 자신은 인간으로 태어난 것을 원망한 적은 있어도, 그렇다고 괴이가 되는 것을 선택하지는 않을 것이다. 자기 자신은 영원한 삶을 살아가기에는 너무나도 나약했다.

다시 한번 기회가 주어진다 해도 자신은, 영원한 행복보다는 끝이 있는 불행을 선택하리라.

둘 사이로 정적이 흘렀다. 둘 중 누구도 입 밖으로 말을 꺼내지 않고 있었지만, 왜인지 서로의 뜻을 잘 알겠다는 듯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다. 이제 시간이 되었다. 그녀는 자신의 대답만을 기다리고 있고, 자신은 그런 그녀에게 이별을 고해야 한다. 

"그럼 잘 있어. 마후유, 아니..."

또 하나의 벚꽃이 피어나지만 아키야마 미즈키의 겨울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유키."

눈을 감으면 첫 눈의 향기가 밀려온다.

영원할 수 없었던 그해의 겨울이다.

그 겨울의 이름은 유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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