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쿠이치] The Last Prequel

별무리: 별자리가 되지 못한 이야기

밤하늘 아래 고요한 복도 사이, 한 교실에서 노랫소리가 흘러나온다.

노랫소리가 들리는 교실 문 앞에서는 한 소녀가 서 있다. 소녀는 두 눈을 감고 조용히 들려오는 노랫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헤어스타일은 초록색을 띄는 머리카락을 양갈래로 높이 묶어 올렸으며 머리카락 끝 쪽에는 진한 분홍색의 브릿지가 눈에 띈다. 또 헤어 브릿지 색과 같은 분홍색의 체크무늬가 포인트인 진한 회색의 재킷을 걸치고 있다. 재킷의 깃 부분에는 작은 클립 모양의 브로치가 걸려있고 재킷 카라 부분에는 진한 분홍색의 커다란 리본이 장식되어 있다. 재킷 아래에는 재킷과 한 세트인 듯 같은 색감과 단추, 체크무늬로 디자인된 치마를 두르고 있다. 

교실 안에서 들려오던 노랫소리가 잦아들자 소녀는 천천히 눈을 뜬다. 그러고는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클립 모양의 머리핀을 꺼내 들었다, 재킷에 걸려있는 브로치와 같지만 크기가 조금 더 큰 장식이다. 손으로 앞머리를 몇 번 빗어 넘겨 정리하더니 다시 흐트러지지 않도록 클립 모양의 핀을 다시 꽂아 고정한다. 옷매무새까지 가다듬고 심호흡을 하는 모습에는 조금 긴장한 감이 역력하다. 교실 문에는 작은 홈이 파여있어 그곳을 잡고 미닫이식으로 문을 열자 온 복도에 드르륵 소리가 울려 퍼진다.

"미쿠...!"

교실 안에는 원래 가지런히 있어야 할 책상과 의자들이 모두 제각각 불규칙하게 배열되어 있다. 그들 중 밤하늘 앞 창가 쪽에는 책상 하나가 홀로 떨어져 있다. 책상 앞 의자에는 조금 전 들려오던 노랫소리의 주인공으로 보이는 푸른빛이 도는 흑발의 소녀가 앉아있다. 긴 앞머리가 여러 방향으로 삐죽 튀어나와 있고 구김 없이 고운 직모가 허리춤까지 길게 내려오는 헤어스타일이다. 흑발의 소녀는 찾아온 상대를 보자마자 반가운 듯 자리에서 일어나 상대를 맞이했다.

"응, 이치카."

엷은 미소로 화답한 소녀는 주변에서 의자 하나를 가져와 이치카가 앉아있던 맞은 편에 내려놓았다. 단 둘뿐인 빈 교실에 의자를 끄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이치카도 미쿠를 따라 제 자리에 다시 앉는다. 서로를 마주 보는 두 사람, 미쿠는 이미 알고 왔다고, 억지로 말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듯 아무것도 묻지 않는다. 이치카도 그런 미쿠에 쉽사리 말을 꺼내지 못하고 망설이다가 조심스레 입을 연다.

"...미쿠는, 어째서 우리 앞에 나타난 거야?"

"그야 물론, 이치카가 진정한 마음을 찾을 수 있도록."

대답을 들은 이치카는 미쿠의 시선을 피해 고개를 숙인다. 미쿠는 여전히 시선을 떼지 않고 이치카를 바라보고 있다. 그러다 어디선가 신선한 밤바람이 피부에 닿는다. 그 순간 미쿠는 고개를 살짝 돌려 이치카와 거리가 있는 뒤쪽, 바람이 불어온 방향을 쳐다본다. 열린 창문 사이로 밖에서 들어오는 바람에 커튼이 어지럽게 흩날리고 있었다. 

"미쿠, 나..."

그 사이 이치카가 말문을 열었다. 깍지를 낀 두 손은 긴장으로, 아니 외로움으로 떨리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다고, 다 털어놓고 위로받고 싶다고. 그렇지만 털어놓는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음을 이치카는 잘 알고 있었고, 미쿠 또한 그러했다.

"어떻게 해야할지... 잘 모르겠어."

바람에 흩날리던 커튼은 어느새 잠잠해졌다. 

"미쿠도 계속 레슨을 봐줬고... 사키도, 시호도... 모두가 노력해줬는데... 그런데."

무슨 말을 해줘야 할까. 벌써 몇 번이나 겪어보았는데도 이 쓰라림에는 익숙해질 수가 없었다. 손을 뻗어 토닥여주고 싶어도, 너의 웃는 모습을 보고 싶어도 이대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테니까. 자신은 위로하는 것엔 재주가 없었고 그저 매번 똑같은 결말을 반복해왔을 뿐이다.

"사키가 슬퍼하고, 호나미도... 시호도 모두가 힘들어하는데도 나는..."

이치카의 눈가에 물방울이 글썽거린다. 울지 않으려고 했는데, 왜 이러지. 미쿠는 다급하게 눈물을 훔치려는 이치카의 손을 붙잡고. 그러면 눈 부을지도 몰라,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이치카의 눈물을 닦아준다. 미쿠의 행동에 이치카는 쑥스러움에 얼굴을 붉히며 울었던 건 잊어달라며 급하게 화제를 돌린다.

"...기억나? 우리 처음으로 모두 함께 연주했을 때."

분명 학교 정원에서 사키와 이야기를 나누다 정신을 차려보니 이곳이었어. 그러다가 시호와 호나미를 만나고, 소리가 들리는 교실을 찾아왔더니 미쿠가 있었어... 그리 오래되지 않은 일인데도 오래된 추억을 떠올리는 것처럼 그리운 기분이 들었다. 

"그때는 어쩌면 이대로 다시 옛날처럼 지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연주를 들려주면 돌아가는 법을 알려주겠다는 미쿠의 제안으로 어쩔 수 없이 시작한 연주였지만, 솔직히 싫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즐거웠다. 옛날에는 이렇게 자주 넷이서 연주하곤 했었는데, 하고 추억을 떠올라면서. 밴드를 시작한다면 어쩌면, 혹시, 설마, 이런 단어들로 희망을 품어보면서.

"그럼, 그때로 돌아갈까?"

"...응?"

"이치카가 원한다면, 처음부터 다시 한 번 시작할 수 있어,"

미쿠는 결연한 표정으로 두 손을 뻗어 이치카의 한 손을 맞잡는다. 이치카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다가 미쿠가 손을 맞잡아오자 놀라 움찔거린다. 미, 미쿠. 이치카는 당황스러운 기색을 감추지 못한다. 미쿠는 여전히 진지한 표정으로 이치카의 두 눈을 바라본다. 

"다시, 여기서 또 만나자."

"잠깐, 미쿠..."

이치카가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눈을 뜨지도 못할 정도로 눈부신 빛이 둘 사이에 끼어든다.

시간의 톱니바퀴는 몇번이고 다시 되돌아간다.

언젠가 올 그 날의 밤하늘을 위해서.

"우리들은 세카이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비어있는 교실에서 한 아이가 노래해.

"그럼, 나도 같이 연주해도 괜찮아?"

"에, 미쿠도?"

아무것도 모르는 너의 손을 잡고, 이번에는 반드시 해내어 보이겠다고.

"응, 모처럼이니까."

그렇게 오늘도 첫 번째의 우리들을 기억하는 채로,

"함께 노래하자!"

언제나의 노랫소리엔 끝나지 않을 여름의 매미 소리가 겹쳐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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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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