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ow white on cloud Nine

프로젝트 세카이 마후유 x 카나데

흘러내린 눈물이 뺨을 적셨다. 축축하게 스며드는 물기가 괴로워 옅게 신음하다가, 아가씨는 눈을 떴다. 온통 어두워 무엇도 보이지 않지만 코에 닿는 냄새는 익숙하다. 외롭게 홀로 떨고 있지 않아도 된다고 다독여주는 듯한 안온한 향기. 손등으로 눈가에 남은 눈물을 닦아내고는 아사히나 마후유는 상체를 일으켰다. 덮고 있던 얇은 이불이 사르륵 흘러내린다. 이불의 끝자락을 따라 손을 더듬거리다가 마후유는 침대에 자신만이 남아있음을 깨달았다.

새벽 4시. 협탁에 자리잡은 디지털 시계가 그렇게 말하고 있다. 점차 동이 트기 시작하겠지만 아침이 찾아들기엔 한참이나 남은 시각. 시야가 점차 어둠에 익숙해지는 걸 느끼며 마후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다소 불안정하게 흔들리는 걸음으로 문으로 다가가, 조용히 손잡이를 돌린다. 방이 어두운 만큼 거실 또한 어둑했다. 하지만 가느다란 실처럼 희미한 조명이 번지는 게 보인다. 그를 확인하고는 마후유는 이마를 살짝 찌푸렸다.

침실에서 거실로, 거실에서, 한때는 누군가의 침실이었지만 이제는 작업실로 쓰이는 방으로. 발소리 죽여 조심조심 걸어나가서 작게 열려있는 문을 밀어서 연다. 문 너머로 보이는 광경은 아사히나 마후유에게 이제 익숙하다. 어련히 예상되는 광경이기도 하였다. 불만 섞인 한숨을 작게 내뱉고는 아가씨는 안으로 걸음을 내딛었다.

“카나데.”

“흐잇! 마, 마후유?”

문이 열리는 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집중해서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있다가, 곁에서 낮게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를 듣고는 의자에서 뛰어오를 듯이 놀란다. 어깨까지 바들바들 떨며 이쪽을 돌아보는 그녀, 요이사키 카나데를, 아사히나 마후유는 지긋한 시선으로 쏘아보았다. 당사자들은 심각하지만 지켜보는 이가 있다면 실소를 터뜨릴 모습으로. 놀란 기색을 가라앉힌 다음 카나데는 어색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옅게 움찔거리는 눈썹 아래로 푸른 눈동자가 눈치를 살핀다.

“어째서 안 자고 있는 거야.”

“그게, 갑자기 좋은 멜로디가 생각나서. 음이 어떤지 확인만 하고, 기록해두기만 하려고.”

“......”

“곧, 곧 끄려고 하던 중이었어.”

“......”

“미안. 혹시 나 때문에 깬 거야?”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그녀의 곁으로 다가간다. 조명이 꺼진 방에서 유일한 광원으로 작용하고 있는 모니터가 가까워진다. 미안함 섞인 눈길로 마후유를 바라보다가, 카나데는 눈을 동그랗게 치켜떴다. 조심스럽게 내뻗은 손이 마후유의 뺨을 살짝 건드린다. 카나데의 손길이 닿는 걸 마후유는 가만히 받아들였다.

“혹시, 울었어?”

“......나쁜 꿈을 꿨어. 어떤 꿈이었는지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꿈속에서 카나데와 나는, 서로 모르는 사이였어. 전혀 모르는 사이여서, 이름조차 모르고......그런데도 카나데는 내게 상냥했어. 그게, 그게 이상하게, 슬퍼서......”

“마후유......”

“......카나데 때문이야. 한밤중에 멋대로 일어나서, 작업하러 가버리고. 날 혼자 내버려두고. 그래서 나쁜 꿈을 꾼 거야.”

억지가 아니다. 이치에 맞다. 곁에 카나데가 있어주지 않았기에 그토록 서글픈 꿈을 꾸게 된 거다. 떠나지 말고 곁에 있어달라고 말했었는데. 항상 곁에 있을 거라고 그렇게나 다정한 목소리로 약속했었으면서, 좋은 발상이 떠올랐다며 멋대로 자리를 비워버리다니. 잘못을 저지른 쪽은 피해를 입은 쪽에게 배상할 의무가 있다. 약속을 지키지 않아서 아사히나 마후유가 무서운 꿈을 꾸게 만든 요이사키 카나데는, 그만큼 배상을 해야만 할 터였다.

티없이 하얀 꽃송이에서 변함없이 새하얀 향기가 묻어난다. 뺨에 살짝 닿는 입맞춤을 받은 다음, 카나데는 넋이 나간 얼굴로 눈을 몇 차례 깜박였다. 입술 끝에 잔류하는 애정을 느끼며 마후유는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깊은 밤 멋대로 행동한 죄에는 멋대로 정하는 벌이 걸맞겠지. 그래도 끔찍했던 꿈과는 달리 우리는 함께 있어. 지금까지도, 그리고 앞으로도. 그러니 정상참작, 이 정도로 용서해줄게.

“그래서, 좋은 생각이 떠올라 만들었다는 곡은, 이거야?”

“아, 으응. 들어볼래?”

고개를 끄덕이고는 마후유는 한쪽 이어폰을 건네받았다. 그를 왼쪽 귀에 끼운 뒤 의자에 앉아있는 카나데의 어깨를 살며시 곁에서 끌어안는다. 눈을 감으면 감각이 물결처럼 밀려들었다. 그 아이의 체온이 전해진다. 더없이 사랑하는 익숙한 체취가 스며든다. 아직은 미완성인 음악이 의식의 세계로 한 줄기 복음처럼 흘러든다. 너를 닮은 하얀 꽃들이 끝도 없이 피어있는 화원을 마주한다. 어디선가 불어온 한 줄기 바람에 피어오른 알싸한 향이 가슴을 가득 채운다. 따뜻하고, 따뜻해서.

“아직은 이 단락까지만 완성했어. 어떨까?”

“......카나데다운 곡이네.”

“역시 그런가.”

물론 칭찬이다. 요이사키 카나데가 만들어낸, 그녀 자신을 닮은 곡들은 언제나 아름다웠으니. 아무리 힘든 순간에도, 막막할 지경으로 어두컴컴한 와중에도 다른 이를 위해 손을 내뻗을 줄 아는 상냥함으로 짜올린 음계가 아름답지 않을 리 없다. 손을 뻗어 키보드를 조작해 마후유는 끝났던 음악을 다시금 재생했다. 미완성 걸작이 한 차례 더 재생된다. 너와 나, 우리의 손을 거쳐 언젠가 완성될 작품이었다.

“......여기에 어울리는 가사, 생각해볼게.”

속삭이듯 작게 전하는 말을 듣고 카나데는 미소를 지어보였다. 따스하고 다정한 미소. 따라서 희미하게 웃어보인 다음 마후유는 다시 한번 음악을 재생했다. 민들레 홀씨처럼 흩뿌려지는 희망이 밝아오는 새벽을 가득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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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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