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치 못한 ■■
보가트
스텔라는 딱히 기대도, 불안도 없는 표정으로 옷장 앞에 섰다.
뭐가 나올지 예상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되려 그 무엇도 예상되지 않아서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고 할까. 두려워 하는 거라, 잘 모르겠는데. 기껏해야 죽는 것 정도려나. 누구나 두려워 할 만한 그런 거. 사실 그것도 딱히 크게 뭐가 느껴지지는 않는데...
연습을 게을리해서 부모님께 혼나는 거? 그건 짜증만 나는데.
언니가 개한테 물릴 뻔 했던 일이려나. 아니, 그건 오히려 웃겼을지도...
처음 학교에서 싸움이 났을 때? 생각보다 주먹이 아프긴 했어.
정말 없네. 아, 정말 딱 떠오르는 게 없어! 원래 두려움을 마주해야 더 강해지는 법인데, 아!
괜히 신경질이 나서 눈썹 치켜뜨고 있던 때였다. 지팡이 대충 들고 발 끝 바닥에 툭툭, 부딪히고 있는 그녀 앞으로 불빛이 일고, 옷장에서, 그녀조차 모르던 그녀의 두려움이... 걸어나온다.
— 스텔라.
맑게 떨리는 목소리가 그녀를 불렀다. 너무나도 익숙한 목소리였다. 스텔라가 사랑해 마지않는, 하나뿐인 가족. 그녀를 유일하게 이름으로 불러주는 그 사람.
— 언니?
황당했다. 아니 언니가 나온다고 여기서? 뭔 소리야 그게 웃기지 마라.
하지만 정확했다. 그건 분명 그녀의 언니였다. 그 희고 얇은 머리카락, 옅은 미소, 울 때면 맑게 떨리던 그 목소리까지. 그런데 문제는, 정말... 저거라고? 내가 두려워 하는 게 고작? 그럴리가 없었다. 그녀는 좀 황당했을 뿐, 눈 앞에 제 언니를 두고 두렵다거나 겁난다거나... 솔직히 짜증도 안났다. 어이가 없었다.
아, 언니를 계속 여기 세워두는 건 좀 그런데. 일단 언니도 여기 학생이고... 나중에 누가 우연히 만나서 알아보면... 음, 언니가 곤란하겠지. 그렇다고 주문을 외워버리기도 좀... 애들 앞에서 언니를 우스꽝스러운 꼴로 만들라고? 역시 좀 아니다... 어쩌지. 그냥 다시 옷장 안에 넣어버리면 안되나. 그건 불쌍한데...
그녀의 고민이 이어지고 있을 때, 실을 끊듯이, 또 다른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언니, 제발. 왜 그렇게 답답하게 구는 거야? 진짜 이해를 못하겠어서 그래.
뭐가 그렇게 무서워? 뭐 때문에 그냥 그렇게, 무력하게 살아?
스텔라는 언니만 있어도 돼. 언니도 그렇지? 그렇다고 해주라.
우리가 서로를 믿고 지지해주지 못하면 그 누가 우릴 이해해!
됐어. 그만하자. 나는 싫다고 했어.
가족같은 거 때문에, 정 때문에, 내가 날 포기할 거라고 생각 마…
나는 언니랑 다르니까…
자신의 목소리였다. 그래. 몇번이고 상상했던, 몇번이고 목 끝까지 차올랐던 그 목소리. 하지만 결코 꺼내지 않았던, 여태껏 꾹 참아왔던.
"언니, 언니가 하고 싶은대로 해" 라는 말로 여태껏 맘 속에 구겨 던져놨던.
아하하! 스텔라는 그제서야 이 모든 것을 이해하고 웃었다!
눈 앞의 언니는 움직이지 않고 숨 죽여 울었다. 아, 이렇게 무력할 수가!
스텔라는 지팡이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제 언니를 향해 양 팔 벌렸다.
무력하게 우는 것도, 그걸 받아주는 것도,
정말 불합리하다. 나는 불합리한 게 싫다, 정말로…
그렇지만 그럼에도 두려움을 끌어안은 것은.
첫째, 선한 것이 선할 수 있도록.
둘째, 무엇보다 내 정의를 잊지 않도롴.
셋째, 아끼는 만큼, 서슴없이.
무엇보다 첫번째가, 제 불합리한 선의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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