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의 이야기
텐리쿠
지금부터 숨바꼭질을 하는 거야. 술래는 저택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고, 해가 떠있는 동안 그들에게 들키지 않는다면, 매일 밤 너를 만나러 갈게.
앞으로 내밀어진 손을 바라보던 소년은 눈을 꿈뻑였다. 창을 등지고 앉은 탓에 맞은 편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으나, 소년은 그가 평소처럼 저를 향해 웃어주고 있으리라 생각했다. 망설일 것도 없었다. 매일 밤 저를 찾아와준다는 달콤한 말에 소년은 바닥을 짚고 있던 손을 떼어냈다. 작은 손가락 두 개가 얽혔다. 대칭되는 두 개의 그림자가 차가운 바닥 위로 번졌다.
그날부터 소년의 숨바꼭질이 시작됐다. 처음엔 방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넓은 방 안에서 하루 종일을 보냈다. 시간에 맞춰 도착하는 식사를 하고, 한켠에 있는 책장에서 책을 꺼내 읽기도 하고, 침대에서 구르기도 하고, 커튼 사이로 정원을 훔쳐보기도 했다.
당연히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았다. 약속한 밤이 되었을 땐, 그가 찾아왔다. 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소년은 침대에서 내려와 쪼르르 문 앞으로 향했다. 문을 열자, 짙은 밤 냄새와 함께 약속대로 그가 서있었다.
“■■!”
“약속, 지켜줬구나.”
“응. ■■가 만나러 와준다고 했으니까.”
“착한아이네.”
다정히 머리를 쓸어주는 손길에 소년은 그와 눈을 맞춰 웃었다. 그 후로도 그는 매일 밤, 소년의 방을 찾아왔다. 소년은 그와 만나는 시간이 무척이나 좋았지만, 하루, 이틀, 사흘, 나흘, 방 안에만 가만히 있는 것이 무척이나 지루해져갔다.
소년은 결심했다. 방 밖으로 나가기로. 숨바꼭질이니까 다른 사람들한테 들키지만 않으면 되겠지. 그렇게 마음을 먹은 소년은 문 위로 귀를 가져갔다. 문 너머로 재잘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가 점차 멀어져가고 들리지 않게 될 즈음, 소년은 문을 열었다.
빼꼼, 열린 문 사이로 주변을 살폈다. 펼쳐져 있는 넓은 복도 위론 새하얀 햇살이 번지고 있었다. 소년은 숨을 들이켰다. 방 밖으로 발을 내딛었다. 심장 소리가 귀 바로 옆에서 들려오는 기분이었다. 다시 한 번 숨을 들이키자, 따뜻한 공기 내음이 콧속으로 들어왔다. 바닥을 밟고 있던 발을 천천히 떼어냈다. 복도를 가로 지르는 걸음에 속도가 붙었다. 소년의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첫 외출은 복도 반대편에서 들려오는 발소리에 마무리됐다. 점점 가까워지는 발소리에 소년은 급히 제 방으로 돌아가 문을 잠갔다. 문에 등을 붙이고 서서 크게 심호흡을 하고 있자, 발소리가 문 앞으로 지나갔다. 조금 전과 마찬가지로 심장이 귀에서 뛰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처음이 어려웠을 뿐. 소년의 숨바꼭질 범위는 넓어져갔다.
복도에서 위층으로, 때로는 아래층으로, 때로는 정원으로. 숨바꼭질을 즐기기 시작한 소년의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여느 날처럼 정원의 한 쪽에 숨어있던 소년은 눈을 감았다 떴다. 정말 잠깐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사방이 어둑한 것을 보곤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샛노란 보름달이 머리 위로 떠올라 있었다.
소년은 다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벗어뒀던 신발을 신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소년은 맨발로 달렸다. 정원을, 복도를, 계단을 달리는 동안 목구멍 저 아래에서 까끌한 숨이 차올랐지만, 소년은 멈춰있을 틈이 없었다.
벽을 짚으며 발을 옮겨 겨우 방 앞에 도착했을 땐, 방 문이 열려 있었다. 소년은 열린 문 사이로 새까만 인영이 보였다. 인영 속에서 연분홍색 눈동자가 선명히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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