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비비
총 8개의 포스트
지금부터 숨바꼭질을 하는 거야. 술래는 저택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고, 해가 떠있는 동안 그들에게 들키지 않는다면, 매일 밤 너를 만나러 갈게. 앞으로 내밀어진 손을 바라보던 소년은 눈을 꿈뻑였다. 창을 등지고 앉은 탓에 맞은 편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으나, 소년은 그가 평소처럼 저를 향해 웃어주고 있으리라 생각했다. 망설일 것도 없었다. 매일 밤 저를
어느 무더운 여름이었다. 창가에 걸어둔 풍경 속, 주홍빛의 금붕어가 둥그런 유리 표면을 유영하는 모습을 따라 리쿠는 눈을 움직였다. 반쯤 열린 창문 사이로 뜨뜻한 남실바람이 들어왔다. 창밖으론 새하얀 구름이 느릿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가만히 그 풍경을 내려다보던 리쿠는 배를 덮고 있던 얇은 담요를 거두고 침대에서 내려왔다. 한 쪽 벽면에 걸린 달력 앞에 섰
사시사철 눈이 내리는 마을에서 일자리를 구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얇은 가죽 신발을 뚫는 냉기에 소녀는 발가락을 안으로 말며 발을 내딛었다. 수중엔 겨우 두어끼를 해결할 돈 밖에 남지 않았다. 더 늦기 전에 일자리를 구해야할텐데…. 눈 위로 새겨지는 발자국만큼 깊은 걱정을 새기며 걷던 소녀는 커다란 벽면에 덩그러니 걸린 구인 전단지에 눈동자를 굴렸다.
촬영 전까진 자유롭게 주변을 둘러보셔도 좋아요. 내밀어진 손전등을 받아든 이오리는 고개를 주억였다. 멤버들과 스텝을 태우고 온 차량의 라이트와 촬영용 조명을 제외하곤 인공적인 빛을 찾을 수 없는 곳이었다. 별을 쫓는 소년들, 콘티대로라면 완벽한 장소였다. 손전등의 전원을 누르자, 푸른색 긴 빛이 앞으로 이어졌다. 풀숲을 밝히는 이질적인 빛에, 늘어진 풀잎
복도를 지나온 B의 머릿속엔 A의 이야기가 맴돌았다. 붉은 장미가 가득한 정원, 작은 주인님, 웃는 얼굴. 다들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며 한 귀로 흘려듣는 눈치였다. B역시 그러고자 했지만 저 아래에서부터, 의구심이 스믈스믈 기어 올라왔다. 매일, 같은 시간마다, 똑같은 청소를 반복하는 별관의 방은 누구의 방일까? 알람소리와 함께 일어난 B는 재빠르
쿠죠 저택에 관한 소문은 무성했다. 누군가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건축가의 저택이라 했으며, 또 다른 누군가는 궁정 악사로 하사 받은 저택이라 했다. 또, 저택에 살고 있는 큰 주인님은 자애로운 신사라는 이야기가 있었으며, 또 어딘가에선 반쯤 미치광이라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그 어떤 게 정답이라고 단정할 순 없으나, 저택의 사용인 A는 이것 하나만큼은 확신할
1. 밤 텐은 몰래 리쿠의 병실을 찾았다. 태어날 때부터 약한 기관지를 가진 제 반쪽은 호흡마저 얕아서,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그 호흡을 알아채기 어려웠다. 조용히 닫은 문을 뒤로하고 침대 앞으로 다가간 텐은 상체를 기울였다. 낮게, 아주 낮게 들썩이는 심장께에 귀를 갖다 붙였다. 물고기의 꼬리짓과 같은 작은 박동. 텐은 숨을 들이켰다. 제가 지키고 싶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