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민건수] by. 열맨
웹툰 끝까지 간다 창민건수 합작 소설
[창민건수] 침수
[ 열맨 / 소설 ]
"... 야, 이 미친..."
"재밌잖아 왜~ 엄청 귀한 경험이다 이거?"
창민이 핸들을 풀고 기어를 힘껏 당겼다. 차가 덜컹거릴 때마다 건수의 심장도 함께 오르내린다. 평소 박창민의 운전은 정말 속이 터졌다. 예열도 되기 전에 출발해놓고선 기사식당에 들렀다 가자며 차를 멈추기 일쑤. 이 자식이랑 같이 있으면 시간이 왜 이렇게 안 가는지- 답답한 마음에 종일 손목시계를 쳐다보는 게 일상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한계에 다다른 속도를 내고 있다. 차는 주인을 쏙 빼닮아 제멋대로였다.
좀 쉬어라 쉬어. 네가 그렇게 좋아하는 해장국도 먹고!
그렇게 불평하는데 뇌리에 누군가 스쳐 지나갔다. 건수의 차를 탈 때마다 천장 손잡이를 동아줄처럼 붙잡고 따가운 시선을 보내는 여자였다.
언니... 나는 영철씨랑 얇고 길게 살고 싶거든.
왜 그래 이모~ 나는 좋아! 롤러코스터!
운전자를 철석같이 사랑하는 조수만이 그녀의 편을 들어주었다. 우리 딸이 최고- 희영의 화는 잠시 뒤로 미룬 채, 고사리손이 넣어주는 과자를 낼름 받아먹으며 소소한 보람을 느끼기도 하는 것이다. 건수에게 적어도 드라이브란 그런 의미였다. 그런데 지금은 대체 무슨 꼴인지. 행복의 값보다 불행의 값이 더 크다.
9월 한낮, 도로에는 차가 없었다. 고향으로 흘러가는 연어들은 다 어디로 가 버린 걸까. 거리가 한산하지 않냐는 물음을 창민은 가볍게 무시했다. 70% 이상이 산지라는 나라에서 이렇게나 길게 뻗은 도로를 대체 어디서 찾아냈는지 알 길이 없었다.
경찰에다 약 장사에다 체력이 남아도냐?
아, 이 새끼라면 충분히...
새빨간 기억이 떠오른 건수가 눈을 빙글빙글 돌리다가 입을 댓 발 내밀었다. 고개를 살짝 옆으로 트니 불그스름하게 물든 나무들이 스쳐 지나간다. 하지만 인적은 보이지 않았다.
허름한 컨테이너 건물 하나 없는 게 말이 돼? 그녀가 사람 풍경이니 뭐니 하는 것들을 신경 쓰는 타입은 아니었지만, 도저히 의심을 지울 수 없었다. 까딱하면 사람 하나 묻기 좋은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고도 없이 시킬 만한 일에는 무엇이 있을까? 그의 차 안에서 머리를 끊임없이 굴렸다. 경계를 늦추지 않으면서도 막연한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였다.
...
창문 사이로 매섭게 부는 바람은 남자의 말소리를 자꾸만 갈랐다. 조수석에 앉은 여자는 그래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저 속삭임이 귀에 꽂히면 페이스에 말리기 쉬웠다.
제 평온을 무참히 으스러트려놓은 음성이 아직까지도 생생했다. 상호를 죽이고도 소름 끼치도록 고요했던 목소리가...
속도는 서서히 제 자리를 찾아가기 시작했지만 건수는 크게 체감하지 못했다. 턱 가에 붙은 머리칼을 정리하지도 않은 채 심드렁히 창밖을 쳐다보았다.
빨리 달리든, 느리게 달리든 간에, 운전대를 잡은 게 미친놈이라는 사실만큼은 변하지 않는다. 맞아 죽는 한이 있어도 내 차를 가지고 오는 건데, 새 차 뽑고 싶으면 가져와도 된다고 하도 지랄을 해서 원.
끼이이익-
깊게 굽은 커버 길에서 창민이 한 손으로 핸들을 돌렸다. 오른손으로는 팔을 뻗어 건수의 어깨를 감싸듯이 잡아당겼다가 차가 똑바로 설 즈음 다시 밀어냈다. 몸이 휘청임과 동시에 지클래스는 가드레일과 아슬아슬한 간격을 유지하며 달렸다.
이 미친놈이…. 여기가 할리우드냐?
건수가 차체에 부딪힌 어깨를 만지작거리며 미간을 찌푸렸다.
"고건수, 어때? 남들 철야하고 있을 때 이렇게 달려보니까."
"... 니 차 다시는 타지 말아야겠다는 생각."
창민이 살갑게 물었지만, 건수는 그 무모함을 받아줄 여유가 없었다. 아까부터 운전하는데 계속 장난질이야. 죽으려면 너 혼자 죽어 이 새끼야... 무어라 따지고 싶었는지만, 쌍시옷 소리를 내면 당장이라도 무언가를 쏟을 것처럼 메스꺼운데다 목숨줄을 창민이 잡고 있으니 말씨가 제법 부드러워졌다.
"남이라니 정 없게... 고경사, 드라이브 재미없어?"
"니 같으면 재밌겠냐?"
창민이 웃음기를 쫙 빼고 묻자 건수도 목소리를 낮추었다. 그 말에 창민은 좋다, 아니다 나눠 대답하지 않고 어깨만 으쓱했다. 마치 제 일이 아니라는 양, 콧노래까지 부르는 창민을 위아래로 훑으며 건수는 헛웃음을 흘렸다.
"난 모르겠다, 이게 맞는 건지..."
그동안 시간이 많이 흘렀다. 이제는 국내에서 동료들과 수사하는 시간보다 창민과 함께 외국을 오가는 시간이 많아졌다. 새 정권이 들어서고 마약과의 전쟁이 다시 전개되었지만, 동료들은 박창민 경위의 머리카락 하나도 찾지 못했다. 암묵적으로 정한 듯이 끄나풀과 유명 인사 몇 명의 옷을 벗겼을 뿐이다.
"뭘 몰라, 고건수. 이건 그때 네가 다 선택한 거라고."
말만 선택이다. 불에 타고 물에 빠져 진즉에 귀신이 됐을 사람이 하는 이야기가 어떻게 제안으로 들리겠는가. 그 지긋지긋한 시간을 그때 끝냈어야 했는데, 건수에게 운이 따르지 않았다.
창민은 리볼버를 제 품 깊숙이 감추고선, 책장 밑에 깔려 옴짝달싹 못하는 그녀를 한심하게 보았다. 발을 돌려 냉장고에서 물병을 찾아 꺼내 마시고는, 부엌에서 과도를 찾았다.
그는 건수의 팔다리를 짓누르고 검은 피어스가 달린 왼쪽 귓불부터 날을 대고 고기 자르듯썰어냈다. 희영이 숫돌 사는 것을 자꾸만 깜빡해 잘 들지도 않는 칼이었다.
거실 바닥을 둥글게 적시는 선혈에 건수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위를 올려다보는데, 창민이 서늘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피를 보면서까지 저를 포섭하려고 하는지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앞으로 이보다 더한 고생과 치욕이 있을 거란 건 알고 있었지만, 더 이상 선택지가 없었다.
결정적으로 그녀의 메시지 함이 시끄럽게 울리고 있었다.
엄마 나 지금 엘리베이터!
치료가 꼼꼼히 되지 못한 건수의 왼쪽 귀를 창민이 흘겼다. 옆머리를 뒷머리보다 길게 길러 흉터가 살짝 가려져 있다.
"... 정말 모르면 어쩔 수 없고. 그런 거 시시콜콜 알려줄 인간 없으니까. 선생님 찾을 나이는 지났잖아~"
"그래. 젊어서 좋겠다, 좋겠어. 니는."
건수가 손사래를 치며 적당히 무시했다. 확실히 남자 쪽이 더 어렸다. 하지만 이런 대화까지 나눌 정도로 괴리가 크지는 않았다. 박창민을 고건수보다 더 젊어 보이게 하는 건, 그 나이를 먹고도 아무것에 구속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가족도, 친구도, 연인도, 부채도 없이...
못나긴 했어도 두려울 게 많은 어른은 그게 쉽지 않았다. 가족 때문에 잃은 게 없지는 않아서, 속 편하게 사는 남자가 가끔 부럽기도 했다. 하지만 굳이 입에 담지는 않았다.
차가 멈추자마자 건수는 반가운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창민은 부리나케 달려가는 뒷모습을 훑으며 눈밭을 보고 좋아하는 털짐승과 닮았다고 내심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남자가 어깨를 맞대고 서자 들뜬 마음이 빠른 속도로 가라앉았다. 이래서야 내린 보람이 없네. 건수가 툴툴거리고 있을 때 가을바람에 소금 냄새가 실려 온다. 그제야 눈앞의 바다가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괜찮아? 여기 유명하대서 와봤는데."
"바다가 그냥 다 바다지. 뭐."
"재미없게."
둘은 연인 같은 게 아니었다. 선임과 후임이라기엔 위계가 없고, 친구라기에는 정이 없다. 동료라고 하기에는 지낸 시간이 너무나 짧다. 박창민은 아무것도 아닌 그런 사람에게 무언가 다른 반응을 기대했던 모양이었다.
무슨 속셈이야?
건수가 재킷을 여미며 날아가는 새를 구경하는 척하다가, 힐끗 눈을 굴려 창민을 올려다보았다. 그러다 고개는 곧바로 떨어졌다. 그녀의 서투른 시선을 눈치챈 창민이 코트에 손을 찔러넣고 내려다보고 있었다.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
그렇게 운을 떼놓고 더 이상 말을 얹지 않았다. 참을성 없는 건수가 내심 식은땀을 흘리며 물음을 재촉했다.
"할 말 있으면 빨리 해 시간 끌지 말고."
"바다는 오랜만이다. 한 3년은 됐나? 고경사 만나기 전이네?"
"... 오늘 일 때문에 부른 거 아니었냐? 왜 아까부터 자꾸 헛소리야?"
"그냥 이랬잖아 그냥. 당장 어제 해준 말도 기억 못하면 섭섭하다?"
너를 못 믿었던 거야, 너를!
그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그대로 쑤셔 넣었다. 그냥 술자리래서 나갔더니 깡패들 칼부림 구경한 적이 얼마나 많은데, 우리가 바다 놀러 다닐 만큼 다정한 사이도 아니고. 저놈의 사춘기 변덕 맞춰주는 것도 아주 죽을 맛이었다.
"고건수, 바다 언제 마지막으로 와봤어?"
"... 알면 어쩌게? 기억도 안 나."
"민아가 바다 가고 싶어 하는 건 알아?"
건수가 답이 없자 창민이 재차 물었다.
"민아는 엄마랑 가본 기억이 없다길래. 애들이 4살까지는 기억을 못 한다는 말이 있잖아. 그래서 엄마인 그 쪽한테 물어보는 거..."
"아 거 진짜!”
건수가 소리 지르며 말을 끊었다. 창민은 귀청 떨어지겠다는 듯 등을 살짝 뒤로 물리고는 자세를 바로잡았다.
"... 남편이랑 온 적 있을걸. 프로포즈도 해변에서 받았어."
창민은 별로 놀란 기색 없이 이야기를 들었다. 건수는 한참 전부터 떨떠름한 얼굴로 있었지만, 바다를 싫어하지 않았다. 그러나 연애할 때만큼은 바다에 온 적이 없었다. 남편이 산을 싫어하는 줄은 꿈에도 몰랐던 탓이다.
어떤 호탕한 친구를 떠올리며, 남자라면 다 좋아하는 줄 알고... 선후배 시절부터 싫은 기색도 하지 않고 따라다니던 정돈한 얼굴을 떠올렸다. 술김에 동창들에게 털어놓았더니 클라이밍으로 어필하는 여자는 정말 질색이라며 핀잔을 듣기도 했다.
건수로부터 바다가 싫진 않다는 확답을 듣고부터야 그는 반지를 들고 해변을 다시 찾았다. 건수와 어울리지 않는, 특별히 모난 데 없는 남자였다.
"전남편 때문에 민아 안 데리고 다닌 건 아니니까 신경 꺼."
요즘 들어 창민이 민아에 대해 궁금한 게 많은 것 같아서 말에 더욱 가시를 세웠다.
"바빠서 그랬어. 젊을 때 실적 좀 내보겠다고 상호랑 반장님 줄기차게 따라다니고. 근데 지금은... 말을 말자, 이씨."
"말이 뭐 그래? 너만큼 쓸만한 친구 또 있대?"
창민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사직서 냈다는 소리 들었어, 대체 무슨 생각인데?"
서부서 강력반 핵심 인원이 워낙 적기도 하고, 겉으로 특별한 징계사유가 없었기 때문에 서장한테 금방 퇴짜를 맞고 끝난 일이었다. 하지만 창민에게는 상당히 의아한 일이었다.
"... 이왕이면 민아랑 시간 보내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뭐, 형사가 꼭 하고 싶었던 건 아니었고." 건수가 눈을 피하면서 기어가듯이 말하자, 창민이 쯧 하고 혀를 찼다.
"고건수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상관없는데, 넌 경찰 일 절대 그만 못 둬. 거래할 때도 불편하고."
"야씨... 적당히 해라. 넌 내가 경찰 그만두길 바랐잖아."
"대체 누가 그래? 난 너랑 한 약속 지키고 있는 거야, 나는."
창민은 눈이 미치도록 따가운 것을 참고, 건수가 기절할 때까지 발길질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때 창민도 들어 본 적 있는 여자아이 웃음소리가 아파트 복도에서 들려왔다.
문은 열지 마! 제발...
눈앞에서 최상호 경사가 죽었을 때보다 건수는 더 연약하게 떨었다. 창민이 그걸 내려다보며 한숨을 내쉬다가 현관 걸쇠를 걸어 잠갔다. 그렇게 해서라도 지키고 싶었던 거 아니었어? 창민이 팔짱을 끼고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쳐다보자 건수가 중얼거렸다.
"에휴, 깡통 새끼가 뭘 알겠냐... 안 그만둘테니까. 금요일은 네 일정 빼. 타협 못한다."
건수는 입술을 꾹 짓눌러 악을 쓰다가 휙 몸을 돌려 바다로 걸어가 버렸다. 파도가 굽이치며 모래 위에 진한 물 자국을 남기고 있었다.
건수가 주머니 속에 들어있는 공무원증을 바다 쪽으로 신경질적으로 던졌다. 사장에 낙인하듯 질질 끌린 워커 자국 뒤에는, 구두 자국이 소름 끼치리만큼 일정하게 찍히고 있다. 창민이 파도에 다시 떠밀려 내려온 목걸이줄을 주워든다.
"야, 고건수."
뒤에 선 창민의 두 팔이 건수의 허리를 감았다. 한 바퀴를 감고도 한참 남는 손. 손아귀에 힘이 강하게 들어갔다. 창민의 머리가 건수의 왼쪽 어깨 위로 파고들어 떨어졌다. 딱딱한 가슴이 등에 무겁게 달라붙으니 건수가 숨을 느릿하게 들이쉬었다.
"아씨... 갑자기 뭐야 이건 또."
손을 떼어내려고 애썼지만. 들려오는 말 없이 창민이 얼굴을 들었다. 어깨를 끌어안고 그녀를 압박하던 한 손은 점점 위로 향하더니 이윽고 목가에 닿았다.
건수의 몸이 꼽추처럼 굽었다. 등 뒤에는 조르는 남자의 손이, 눈앞에 보이는 건 파도였다. 파도는 그대로 휩쓸어 건수를 집어삼키고, 시야는 하얗게 매어온다.
컥, 컥.
그대로 철퍼덕 넘어져 목가에 모래가 쓸렸다. 손톱으로 모래를 긁어대며 울부짖는 미묘한 신음만이 살아있음을 느끼게 했다. 건수가 발을 밀어내 손길을 떼어내려 애썼다. 고건수 죽는 거 아니지? 축 늘어진 몸을 보며 창민이 장난스레 숨을 불어넣었다.
입술이 맞닿으니 한 번은 부츠 발이 창민의 고간을 향했다. 창민이 잠시 물러나자 건수의 몸이 삐끗하며 기울었다.
"아이고야... 고경사 버릇이 나쁘네."
"니가 먼저 목 졸랐잖아 이.... 새끼야..."
건수는 억울한 기침을 계속 토해내다가 창민의 팔을 지지대 삼아 일어났다. 그리고 그의 가슴팍을 내치듯이 밀어내고는 옷매무새를 정리했다.
탁탁!
건수가 아랫입술을 떨며 옷을 털어냈다. 목깃에서 모래알만 떨어져 나간다. 불그스름한 피부 위로 붉은 손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는 채로. 창민은 공무원증에 붙은 바다 이끼를 털어내고 고개를 숙였다. 축축한 목걸이를 빙 둘러 다시 걸어주었다. 건수가 차가운 기운에 파르르 떨더니 이를 악물며 말했다.
"... 웬만하면 이런 덴 데려오지 좀 마라. 여자친구랑 좀 오고."
"나 얼굴 때문에 장가 못 갈 것 같은데~"
"... 그래도 니 정도면 아직 한국 상위권이야. 우리 딸이 그러더라."
언제 싸웠냐는 듯 알 수 없는 농담이 오가는데, 건수가 역린을 찔린 얼굴로 대답했다. 전보다는 많이 회복되긴 했지만, 얼굴 반쪽이 예전과 같지는 않았다. 기생 오라비같은 얼굴을 두고 잘생겼다고 칭찬하던 희영도 많이 안타까워했다.
의외로 한창 무서울 게 없는민아만 거부감이 없는 듯 창민을 잘 따라다녔다. 건수가 목에 닿는 차가운 기운에 파르르 떨고 주차되어있는 차로 향했다. 멀어져가는 뒷모습을 보며 창민은 주머니에서 빛바랜 폴라로이드 사진 몇 장을 꺼내 들었다.
여기가 우리 엄마가 좋아하는 곳이에요, 여기도. 아빠한테 들었어요.
창민이 웃었다.
-글쎄, 삼촌이 봤을 때 엄마가 바다를 좋아한다기 보다는...
개와 너무나도 닮은 여자는 의외로 헤엄치는 취미는 없는 것 같았다. 수영도, 서핑하는 모습도 담겨있지 않았다. 다만 사진마다 어떤 남자가 환하게 웃으며 안고 있었을 뿐이다. 특별히 잘난 구석이 없어 보이는 인간이었다.
민아와 함께 앨범을 볼 때까지만 해도 별 생각이 없었는데, 창민은 건수가 잘 때 건수의 휴대폰에서 통화기록을 본 적 있었다. 금요일마다 일렬로 찍혀있는 번호가 그의 뇌리에 남았다. 이름이 따로 저장되어있지는 않았지만, 휴지통에 숨겨져 오간 문자의 내용을 보니 대충 예상이 갔다.
"고건수."
그가 건수를 나즈막히 불러 세웠다. 여자가 도끼눈을 뜨고 뒤돌아보니 남자는 의미를 알 수 없는 웃음을 짓고 있었다.
"많이 보고 싶어? 그 사람."
그녀는 창민과의 바보같은 싸움이 끝난 후로부터는 그에 대해 궁금한 게 전혀 없었다. 하지만 여전히 그는 궁금한 게 참 많은 듯했다. 문장에는 시기도, 분노도 담겨있지 않았다. 그저 사실확인 여부를 묻는 듯이 건조했으므로. 적어도 건수는 창민과 깊은 물결을 천천히 번갈아 보다가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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