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살부터 시작하는 육아법

4살부터 시작하는 육아법 3화


 

 

 

홍학이 홍학을 타고 다닌다.

 

진짜 홍학이 어떻게 동족을 타고 다니는 것인지. 물론 저 홍학은 배였으니까 그럴 수 있다고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플라밍고라고 플라밍고 배를 만들다니 진짜 자기 자신이 홍학인 줄 아는 모양인데, 그래. 자기 자신을 아는 건 좋은 일이니까.

 

진짜 홍학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지만, 그냥 그렇다는 거다. 생각하는 게 잘못된 건 아니잖아?

 

“베헤헤. 그 애는 뭐야~~~?”

 

코찔찔이가 가까이 다가왔다. 그것도 심하게 가까이. 너무 가까워서 콧물이 닿을 것 같았다. 에비에비! 저리 가! 쉭쉭!

 

덜렁 빠져나온 팔로 코찔찔이를 향해 휘두르니 코찔찔이가 날 비웃었다.

 

“까칠한 꼬맹이네, 베헤헤~”

 

웃지마! 웃지말라고. 식식거리며 팔을 흔들다가 지쳐서 그만뒀다. 이러다가 팔에 알 생기게 생겼네.

 

“트레볼, 가깝다.”

“베헤헤~ 가까웠어? 응? 즈어기~ 가까웠어~?”

“앞으로 우리 해적단에 들어올 아이다.”

“엥? 이 꼬맹이도 패밀리에 넣을 거야?”

“그래.”

 

뭐어?! 당황해하는 코찔찔이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홍학이는 나를 데리고 선실로 들어갔다.

 

분홍 털에서 드디어 해방되었다…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침대에 내려놓기는 했는데 분홍 털도 함께 내려놓았다. 뭐지, 함정 카드인가?

 

“이름이 뭐지?”

 

예? 아니, 그걸 지금에서야 묻냐. 하긴. 물어볼 타이밍이 없기는 했지.

 

“……말을 못 하는 건가?”

 

응? 그건 아닌데. 입을 다물고 있으니 어쩐지 홍학이 오해를 해버렸다. 흠, 그냥 이대로 놔둘까?

 

고민하고 있는데 홍학이 갑자기 손가락으로 내 볼을 콕콕 찔렀다. 손길을 거부할까 싶었는데 볼을 누르는 힘이 조심스러워서 의아했지만, 대충 파악했다.

 

이 자식. 내가 자기 동생이랑 제법 닮았다고 생각해서 이렇게 데려온 거 맞지? 의심은 곧 확신이 섰다. 그래! 그렇지 않고서야 그 ‘홍학’이 날 이렇게 챙길 리가 없었다.

 

이해했다, 홍학아. 크으, 이 자식. 내가 좀 비슷하게 생기긴 했지?

 

“아야.”

 

근데 볼을 건드리는 손가락이 짜증 나서 물어버리니 아프단 듯이 소리를 낸다. 이 자식, 아프지도 않으면서.

 

“이빨이… 있군.”

 

아니, 그럼 잇몸만 있는 줄 알았냐? 미친 새끼…. 내가 아무리 한 손에 들린다고 하지만 있을 건 다 있다고.

 

“그러고 보니 몇 살쯤 된 거지?”

 

아까부터 혼잣말 잘~ 하네. 뭔가 부랴부랴 움직이는 홍학이의 뒷모습을 보며 눈을 비볐다. 근데 진짜로 날 패밀리에 넣으려고 하는 건가? 미친 거 아니야? 난 돈키호테 패밀리라던가 해적 같은 거 졸라 싫거든?

 

내 최애가 누구냐면…….

 

꼬르륵.

 

“…….”

“…….”

 

내 배에서 배꼽시계가 울렸다.

 

홍학은 조금 멍한 얼굴로 나를 내려다봤다. 왜. 뭘 봐. 사람이 배가 고플 수도 있지. 어제오늘 굶어서 배고픈 건 어쩔 수 없어, 홍학아. 아까 먹을 수 있었던 오징어도 못 가져와서 슬프거든?

 

내 눈빛을 읽었는지 어쨌는지 홍학은 선실 안에 있던 전보 벌레로 누군가에게 ’어린애가 먹을만한 음식을 만들어 와라.'라고 말했다.

 

꼬르륵.

 

또 한 번 내 배에서 배꼽시계가 울자 홍학의 손가락이 책상을 톡톡톡 두들기기 시작했다.

 

꼬르륵…

 

톡톡톡…

 

꾸르르르르륵…

 

톡톡톡톡톡톡…

 

내 배꼽시계가 울릴 때마다 빨라지던 손가락은 네 번째의 배꼽시계가 울리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난 홍학이 방에서 나가버렸다. 혼자 있게 된 선실 안을 둘러보다가 양손으로 얼굴을 어떻게든 가렸다.

 

“시발.”

 

홍학이 나가자마자 지금까지 다물었던 입을 벌려 욕부터 내뱉었다. 시발, 진짜. 사람이 욕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상황이다, 진짜.

 

아버지라는 보호자는 죽었고 4살짜리 어린애가 뭘 할 수 있겠나. 홍학 새끼는 날 자기 동생 대용품으로 볼 생각 만만인 것 같고.

 

침대 위에 있으니 저쪽 책상에 있는 거울이 잘 보인다.

 

조금 탁한 노란색 머리카락에 흐린 눈썹 그리고 제법 험악한 눈매를 가진 내 얼굴이 보였다. 마치 도플라밍고의 어린 시절을 그대로 복사해서 붙여넣기 한 느낌이었다.

 

근데 그게 아니라는 게 더 웃겼다.

 

나한텐 아버지라는 보호자가 있었고 어머니라는 보호자가 있었다. 이젠 다 없네. 시발, 어떻게 인생이 이러냐. 어쨌든 그 두 사람이 고심 끝에 지어준 내 이름이 ‘베라미’다. 베라미.

 

뭐? 베라미를 몰라? 그럴 수 있지.

 

초반에 루피에게 털리던 멍청한 해적.

 

후반에 도플라밍고에게 이용만 당한 멍청한 해적.

 

그게 베라미고, 그게 나다.

 

 

 

 

 

 

“자, 먹어봐라.”

 

돌아온 홍학이 손에는 따끈따끈한 수프가 들려있었다. 그리고 수저를 들고 내게 내밀었다.

 

뭐지? 이건, 그, 신종 협박인가?

 

따뜻, 아니, 뜨거워 보이는 수프가 내게 들이밀어 졌다. 김까지 펄펄 나는 수프는 잘못 보면 용암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후끈거렸다.

 

진짜 협박인가? 대체 저런 뜨거운 음식을 왜 식히지도 않고 주는 거지?? 나는 어린애라고? 그것도 4살. 갓난아기는 아니라지만, 여린 혓바닥을 가진 나잇대의 애에게 그 뜨거운 걸 먹일 생각을 하다니. 해적이란…!!

 

입으로 향하는 수저를 홱 피하니 홍학이가 의아한 듯 고개를 기울였다.

 

"왜 먹지 않지?"

 

그리고선 자기가 한 입 먹어본다.

 

"맛에 이상 없는데."

 

다시 한번 퍼서 내게 내밀었다. 먹으라는 듯이 수저를 이리저리 움직이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는 고개를 다시 홱 돌렸다.

 

"흠."

 

홍학이 갸웃? 하고 고개를 기울였다.

 

"뭐가 문제지?"

 

나한테 묻는다고 내가 답 해주겠냐?

 

홍학은 수저를 놓고 다시 선실에서 나갔다. 그리고 조용해졌다. 아까처럼 좀 늦게 돌아오겠지? 이때가 기회라 생각하고 나는 수저를 쥐고 수프를 식혔다. 후, 후. 열심히 입김을 불어 수프를 식혔다.

 

식혔다가 살짝 입가에 대보니 여전히 뜨거운 것 같아서 다시 후, 후 불었다.

 

“아.”

 

??

 

언제 왔는지 모를 홍학 얼굴이 눈앞에 보여서 후, 가 푸, 가 되어버렸다.

 

“…….”

“…….”

“…….”

“…….”

 

난 수프를 불었고.

 

그 앞에 홍학이가 있었고.

 

수프는 홍학이 얼굴에 뿌려졌고.

 

나는 수저를 내려놨고.

 

홍학이는 가만히 나를 바라봤고.

 

지금 이 순간 나에겐 사과하는 것 외엔 방법이 없었고 내가 해야 할 말은 정해져 있었다.

 

“……죄송합니다.”

 

그런데 홍학은 나에게 화내지 않았다. 아무렇지 않게 자기 얼굴에 뿌려진 수프를 책상 위에 있던 수건으로 문질러 닦아낸 뒤에 다시 자리를 잡고 앉아 수저를 들어 수프를 식히기 시작했다.

 

뭐, 뭐뭐, 뭐지. 뭐지 진짜. 진짜 뭐지.

 

뭔지 모르겠지만.

 

날 로시 대용품으로 보니까 봐주는 모양이구나 생각하기로 했다. 그렇지않고서야 알지도 못하는 꼬맹이가 벌인 일을 쉽게 용서해주겠어? 고럼, 고럼.

 

“자, 아.”

 

다시 수저가 내밀어졌고 이번엔 정말로 입을 댈 수 있을 정도로 식은 수프가 되었기에 나는 얌전히 입을 벌려 한 입 먹었다.

 

입에 들어온 수프는 정말로 맛있었다. 이 맛은 미미(美味)로다.

 

“……더 먹어라.”

 

홍학이는 내게 기계적으로 한 입씩 떠주기 시작했다.

 

와, 진짜 맛있다. 떠줄 때마다 바로바로 받아먹었다. 테이스티~!

 

홍학이네 쉪은 정말 짱이다. 누가 쉪인지 모르겠지만 월급 더 줘야 한다. 진심이다.

 

“배가… 그렇게 고팠던 건가…….”

 

녜?

 

방금 뭐라고 하지 않았음?

 

가만히 홍학이를 보니 홍학이가 손을 뻗었다. 뭐, 뭐여. 때리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어서 얌전히 있었다. 잠깐 멈칫한 홍학이의 손이 조금 더 가까이 다가와 내 얼굴을 문댕거렸다.

 

조금 오래 문댕거리다가 떨어졌지만 왜 그랬는지 알 수 없었다. 진짜 뭐야… 눈곱이라도 있었나.

 

“더 먹을 건가?”

 

홍학이의 물음에 생각하던 건 다 뒤로 넘겨버리고 고개를 열정적으로 끄덕였다.

 

 

 

 

 

 

얼레. 나 언제 잠들었지. 눈을 비벼보니 밖은 아직 어두웠다. 몸을 꽉 잡아내는 것 같은 무언가에 고개를 돌려보니 누군가 있었다.

 

와, 시발.

 

이 새끼는 누구여. 응? 아니, 낯선 놈이 아니라 홍학이네. 어이구? 선글라스를 벗고 있네?

 

와. 홍학이의 민얼굴 처음 본다. 아니, 이렇게? 순한? 얼굴인데? 그런 사악한 얼굴이 된다고?

 

이건 선글라스 문제인 건가? 선글라스가 만악의 근원인 건가?

 

근데 얜 왜 나랑 같이 자고 있던 거야??

 

아. 방금 깨서 깜빡했네. 얘 나 로시 대용품으로 보고 있었지, 참.

 

그래서 침대도 함께 쓰는 건가?

 

생각해보니 로시는 살아있잖아? 그치? 그럼 로시 대용품인 나는 진짜 로시가 등장하면 끔살 당해 죽는 거 아닐까? 생각해보니 그렇네? 짭보단 찐이 좋을테니까.

 

씁. 아버지란 보호자처럼 이마에 한 방으로 끝내주려나? 아니면 필요 없어졌다고 내동댕이치려나?

 

어찌 되었든 내 미래는 버려지는 건 확실하니 태도를 잘하자.

 

진짜 로시가 올 때까지 귀염을 받기로 하자. 진짜 로시가 오면 그 날이 대탈출의 시작으로.

 

크큭, 계획적으로 살아가야 한다고 인간은…….

 

“깬 건가?”

 

워씨, 깜짝아.

 

생각하고 있다가 홍학이가 눈 뜬 것도 못 봤다. 근데 어쩐지 덜 깬 것 같기도 하고… 아닌가?

 

애초에 어두워서 잘 보이지도 않는다.

 

“…좀 더 자라.”

 

그러면서 날 자기 팔에 눕혀줬다. 이건… 그건데? 팔 배게. 세상에. 홍학이가 나에게?

 

아. 이건 로시에게 해주는 거구나. 응응.

 

이럴 때, 로시라면 어떻게 했으려나….

 

"잘자, 형아…."

 

좋아! 분명 그렇게 말했겠지?

 

“…….”

 

홍학이에게선 답이 돌아오지는 않았…

 

“로…시.”

 

봐봐! 내가 이럴 줄 알았지!

 

홍학이는 날 로시라고 부르며 더욱 껴안았다. 에휴. 그래. 진짜 로시가 올 때까지 로시 대용품으로서 힘내주마. 에휴에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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