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성

오마카세 리퀘

해수욕장이 개장하기 전, 동틀 무렵의 여명에 몸을 맡기는 것은 인명구조요원인 샤샤만이 누리는 사치였다. 아침잠이 없어서 어스름이 내려앉은 새벽이면 샤샤는 하루를 시작했다. 시작이라고 해서 거창하지는 않다. 군청색으로 일렁이는 파도를 내다보다가 보드에 올라탄다. 샤샤는 해수욕장 개장을 담당했는데, 기왕 오는 김에 조금 빨리 와서 놀자 했던 것이 어느새 습관으로 굳어졌다. 그렇게 파도를 타다 보면 문득 눈이 부시는 때가 있다.

샤샤는 반사적으로 눈을 깜박이다가 균형을 잃고 엎어졌다. 코와 입으로 물이 들어와 켁켁거리던 샤샤는 한 손으로 보드를 잡고 겨우 앉았다. 눈살을 찌푸리며 앞을 보자, 바다가 온통 붉었다.

샤샤는 자신이 어째서 이 시각에 바다로 나오는지를 되새겼다. 바다는 장엄했다.

동료가 시간을 바꿔 달라 해서 오후 해수욕장을 책임지게 되었을 때 보았던 바다도 마찬가지였다. 석양은 바닷물을 뜨겁게 물들였지만, 파도의 온도는 찼다. 밤낮의 경계에서 모순적으로 변하는 바다를 샤샤는 즐겼다.

방문객으로 북적이는 해변도 샤샤는 좋아했다. 땡볕에 파라솔이 줄줄이 늘어서고 파도 소리와 말소리로 시끌벅적해지는 관광지의 해수욕장은 많은 사람들이 바다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사람들은 다양한 형태로 바다와 함께했다. 그늘에서 쉬기만 하는 사람도 있었고 도구로 모래놀이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 샤샤는 근처에서 모래성을 만드는 아이들에게 다가갔다. 아이들은 삽으로 힘겹게 모래를 퍼서 뭉치고 있었는데, 부슬부슬한 모래는 아무리 뭉친다 한들 벽처럼 견고해지지 않았다. 샤샤는 무릎을 쪼그리고 앉아 인상을 찌푸렸다.

“이건 뭘까? 먼지?”

샤샤가 손가락으로 툭 치자 모래성이 부스러졌다. 샤샤는 가볍게 비웃으며 아이들을 슬쩍 보았다.

“너네는 생각을 좀 안하고 사는 것 같네. 이렇게 지으면 다 부서지는데.”

샤샤는 모래놀이 도구를 집으며 아이들의 손을 쿡쿡 찔렀다.

“내가 해 줄까? 나는 못하는 게 없어요.”

“아니, 뭐…. 모래놀이를 알면 얼마나 안다고.”

“모래도 결국은 바다잖아?”

“그렇죠.”

“바다는 내가 잘 알지!”

샤샤는 팔을 굽혔다가 펼치면서 검지를 뻗었다. 지켜나 보세요. 아이들은 말없이 샤샤를 올려다보았다. 하늘은 삶을 북돋기라도 하는 듯 청량했다.

샤샤는 도구 가방을 챙겨 물로 갔다. 방수 비닐이어서 양동이 역할로 훌륭했다. 샤샤가 묵직한 가방을 모래에 푹 파묻어 고정시키니 양갈래로 질끈 묶은 아이가 눈치껏 도구를 내밀었다. 샤샤는 고개를 저었다. 대신 가방에 손을 넣어 적시고 조심스럽게 모래성을 매만졌다. 샤샤는 모양을 다듬지는 않았다. 하지만 모래성은 이전보다 더 굳건하여 멋져 보였다. 다 됐네요. 샤샤는 눈을 가늘게 접으며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모래놀이는 말이야, 이렇게 하는 거란다.”

“모래성 좀 잘 쌓는 게 뭔 대수라고.”

인명구조요원으로서는 하등 쓸모없는 능력이 맞았다. 하지만 샤샤는 나름대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아이 하나가 인상을 구긴 채로 어이없다는 듯이 샤샤를 노려보아도. 아이는 벌떡 일어났다.

“질렸어. 물놀이나 할 거야.”

아이는 파도로 뛰어갔다. 갈매기가 울었다. 파도에 삼켜지는 아이의 모습을 손차양을 하고 내다보던 다른 아이는 활짝 웃으며 샤샤에게 말했다.

“모래성 잘 쌓는 비법이 뭐예요?”

샤샤는 비음을 흘리며 앞머리를 넘겼다.

“비법? 별거 없어. 바다에 관심과 애정을 주면 돼.”

바다를 다루는 일은 어렵지 않다. 애초에 방문객이 다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인명구조요원의 임무였다. 샤샤는 바다를 잘 알 수밖에 없고 잘 알아야만 했다. 모래 언덕에서 발을 헛디뎌 굴러 떨어질 뻔한 사람을 주시하던 샤샤는 아이에게 말했다.

“다른 사람들도 바다를 즐겨 줬으면 하는 때가 있는데, 그럼 알아서 모래성 정도는 잘 만들게 돼.”

아이는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다음에는 네가 직접 만들어 봐. 다른 애 데려와서 알려주는 것도 괜찮아.”

그리고 샤샤는 턱을 괴었다. 멀거니 해변을 살피자 아이는 말을 붙이는 대신 모래성을 다듬는 데 열중했다. 방문객들의 말소리가 뒤엉켰다. 잔잔히 굴러 오는 파도 속 모래알을 듣던 샤샤는 문득 목에 걸어 두었던 호루라기를 불었다.

해변에서 오래 일하다 보면 시각보다 경험에 더 의존하게 되었다. 이맘때쯤이면 사고가 하나 난다는 어렴풋한 예측. 미래로 확정된 예언이나 다름없다. 발을 움직이니 뒤늦게 사람들 사이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작게 났다.

결과가 이미 정해져 있다니, 잔인하기 그지없다. 수많은 경험과 보고서로 단련된 뇌는 기정사실을 하나 도출해 냈다.

수평선 언저리에 튜브가 하나 떠 있었다. 가운데에 껴 있던 아이는 힘에 겨워 몸을 부르르 떨면서 한 발을 튜브에 올려놓았고, 이어 나머지 한 발도 올려놓았다. 튜브를 밟고 서자 얼굴이 잘 보였다. 모래놀이는 질렸다면서 물로 가더니, 의기양양한 표정이었다. 아이가 손을 흔들자 튜브가 흔들렸다. 샤샤는 아이가 선 곳의 수위를 어림했다. 아이 키의 두 배는 되었다. 곳곳에서 비명이 터졌다. 물을 튀기던 연인이 동작을 멈춘 채 아이를 바라보고, 파라솔에 누워만 있던 사람이 물 코앞까지 와서는 어디론가 다급하게 전화를 했다. 119였다. 샤샤는 해변에 119가 왔던 수많은 기억을 떠올렸다. 바다는 우연찮게 숨을 앗아가기도 했다. 단지 파도를 타며 기뻐하는 사람일지라도 예외는 없었다. 그런 경우를 대비해 샤샤가 있는 것이지만, 샤샤라고 해서 모든 목숨을 구하지는 못했다. 그러면 대개 119도 마찬가지로 구하지 못했다. 샤샤의 발은 빠르게 모래 언덕을 뛰어내렸다.

“너 거기서 딱 기다려!”

아이의 몸이 움찔 떨렸다.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보더니 겁을 먹었는지 표정을 일그러트렸다. 샤샤는 손가락질하며 소리쳤다. 뒷말은 화가 난 듯 소리가 크고 발음이 정확했지만 알아듣기가 힘들었다. 샤샤도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는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 아이는 겁을 먹었는지 샤샤와 눈 마주치기를 피했다.

샤샤는 작년 새벽, 부표 너머에서 자신을 바라보았던 사람을 한 명 기억했다. 죽을 각오로 물살을 타던 사람이었다. 육지에서 빠르게 멀어지던 사람을 샤샤는 잡지 못했다. 하지만 아이에게는 각오가 없었다.

뒷걸음질 치던 아이는 허공을 크게 발로 쳐올리더니 뒤로 엎어졌다. 해변에서는 파도 치는 소리밖에 나지 않았다. 아무도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아이는 부글거리며 수면 밑으로 가라앉았다.

이윽고 샤샤는 입수하여 눈을 부릅뜨고 헤엄쳤다. 물은 맑았다. 멀리서 아이가 발버둥치는 것이 선명하게 보였다. 샤샤의 머릿속에서는 여명이 비추어 내렸다. 물 흐르듯 매끄럽게 앞으로 나아갔다.

샤샤가 손을 뻗자 이번에는 사람의 몸이 잡혔다. 샤샤는 재빨리 낚아채어 수면 위로 밀어 올렸다. 아이를 물에 띄운 채로 잡아 끌며 뭍으로 갔다.

모래사장에 아이를 내려놓고 응급처치를 했다. 아이는 얼마 안 가 눈을 떴다. 샤샤는 가장 먼저 미쳤느냐고 물었다. 아이는 미쳤냐는 말이 무슨 뜻인지 자세히는 몰랐지만 나쁜 뜻으로 쓰였음을 유추해 내고서 반사적으로 울음을 터트렸다. 아이는 얼굴이 창백하게 질린 채로 부모를 찾으며 울었다. 샤샤는 목을 한번 꺾더니 뒤돌아서 보호자 어디 계시느냐고 소리쳤다.

부모는 파라솔 아래서 낮잠을 자고 있었다. 주변이 시끄러워지자 일어난 듯 보였다. 샤샤는 애써 화를 가라앉히고 부모에게 애가 죽을 뻔했다는 사실을 설명했다. 부모는 놀란 기색이었다. 아이가 부모의 사이로 기어가 다리를 끌어안았다. 부친이 아이를 들어 올려 안았다. 샤샤는 그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면서 해수욕장 이용 시 주의 사항과 안전의 중요성을 거듭 안내했다.

“애가 좀 놀랐을 거예요. 일부러 부표 밖으로 나간 건 아니니까, 너무 혼내지는 마시고요. 잘 달래 주세요. 그래야 애가 커서도 바다를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샤샤는 한숨을 내쉬며 이만 가 보셔도 된다고 말했다. 부모는 샤샤에게 고개를 숙이고는 해수욕장 밖으로 향했다.

샤샤는 일하는 내내 아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눈을 벌겠고 안색은 창백했다. 입술은 파래져서는 덜덜 떨리고 있었다. 떠올릴수록 속이 울렁거렸다. 과식하고 수영하는 기분이었다. 해서는 안 되지만 계속 하게 되었다. 샤샤는 아이의 얼굴이 계속 떠올랐다.

해수욕장 운영이 끝날 때까지 다른 사고는 발생하지 않았다. 마지막 방문객이 떠나는 것을 보던 샤샤는 모래 언덕에 풀썩 앉았다. 해가 바다까지 미끄러졌다. 온통 불그스름하고 뜨거웠다. 샤샤는 모래를 한 움큼 쥐어 멀리 던져 보았다. 손이 까슬거렸다. 그런데 모래가 손톱 밑이 아니라 눈에 들어간 것처럼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샤샤는 손등으로 대강 눈꺼풀을 비볐다.

동료가 아직 근처에 있었다. 샤샤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고 물로 갔다. 물은 아직 차가웠다. 파도를 거슬러 깊숙이 들어가니 몸이 덜덜 떨렸다. 샤샤는 허리를 굽혔다. 얼굴을 묻자마자 눈과 코가 식었다. 눈에서 흘러내리던 물이 바닷물로 흘러들어가 흔적조차 남기지 않았다. 샤샤는 점점 온몸이 차가워지는 것을 느꼈다. 소리 내어 울었지만 수면 밖으로 울음소리가 새어 나가지는 않았다. 샤샤는 고요히 진정을 되찾아 갔다.

샤샤는 바다에서 쌓는 추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았다. 여름철 습한 장마도, 겨울철 첫눈도 모두 바다에서 비롯된다. 사람은 늘 바다의 냄새에 둘러싸여 산다. 바다를 좋아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좋아한다고 인정할 기회를 샤샤가 박탈해 버린 셈이었다.

아이는 바다를 싫어하게 될지도 몰랐다. 샤샤는 아이의 안전을 보장해 주지 못했고, 무서워하는 아이를 달래 주지도 못했다.

샤샤는 모두가 바다에서 즐겁게 놀기를 바라 이 직업을 선택했다. 그런데 샤샤의 바람은 손 틈새로 빠져나가는 바람처럼 부질없고 말았다. 아무런 걱정 없이 바다에서 편안하기를 바라는 것은 욕심에 불과했을까.

눈을 몇 번 깜박이다가 샤샤는 문득 얼굴을 들었다. 달이 물결대로 흔들렸다. 벌써 가울인지 밤공기가 찼다. 운영 기간 끝물이었다. 올해도 샤샤는 만족스럽게 모두를 지켜 내지 못했다. 양팔을 쓸던 샤샤는 모래사장에서 겉옷을 찾아 껴입고는 저벅저벅 해변을 벗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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